완벽한 고립의 시간

[Stay here] ② 아름다운 숲속 나그네의 집 ‘의림여관’
ⓒJaeyoun Kim
에디터. 김지아  사진. 김재윤  자료. 백에이어소시에이츠

 

머무는 공간이자 장소를 뜻하는 오늘날의 ‘스테이stay’는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안한다. ‘여행’과 ‘집’,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재고하기를 요청받는 과정에서 스테이의 맥락은 폭넓게 재편되는 중이다. 브리크는 이번 특집에서 공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야기가 명확한 여러 스테이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각 공간에서 건축가, 디자이너, 운영자가 제안하는 바는 결국 변화하는 동시대의 생활 양식과 닿아 있다. 자연 속에서의 휴식, 자발적 고립, 일과 생활, 스포츠와 문화 활동, 유려한 건축 공간에서의 비일상적 경험까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스테이의 궤적을 살피는 일은 이 시대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과 다름 아닐 것이다.

 

Stay here
① 오늘의 여인숙 – 삼화 여인숙 
② 완벽한 고립의 시간 – 의림여관 
③ 세 가지 사색의 공간 – 서리어
④ 고요함 속 감각을 여는 호텔 – 이제 남해
⑤ 숲속 진정한 나를 마주하다 – 아틴마루
⑥ 호텔과 글램핑 사이 – 글램트리리조트
⑦ 일과 쉼이 공존하는 곳 – 오-피스제주
⑧ 꼭 하룻밤만큼의 예술 – 다이브인 인사
⑨ 여기가 내 집이었으면 – 어 베터 플레이스


 

혼자 있고 싶은 날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누구도 마주치지 않는 곳에서 호젓하게 보내는 시간은 삶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불필요한 자극에서 멀어져 오롯이 ‘나’와 독대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시선도 강요받지 않는 곳에서 비로소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해 가는 일은 바쁘게 지내온 일상 속 잊고 있던 내면을 일깨울 계기가 된다. 춘천에 위치한 ‘의림여관’은 자발적 고립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스테이다. ‘아름다운 숲속 나그네의 집’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곳은 도시에서 한발 물러나 자연과 호흡하며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Jaeyoun Kim

 

손님을 묵게 하는 집
의림여관의 첫 번째 손님은 바로 공간을 만든 호스트다. 맞벌이를 하며 치열한 도시 생활에 피로를 느낀 그는 숙박객에게 고립이라는 형태의 휴식을 제안하기에 앞서 스스로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춘천에서 얼마간 고립되어 살아갈 것을 택한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주인이 머무르며 손님을 묵게 하는 집’이라는 전통적 의미의 여관에 가깝다. 멀찍이 떨어진 두 채의 집은 각각 호스트가 머무는 주거 공간과 게스트가 머무는 객실이다. 게스트는 하루 이틀 머물다 공간을 떠날지라도 호스트는 그곳에서 계속 삶을 이어간다. 그러니 여기서의 고립은 프라이빗 독채 스테이를 표방하는 여타 공간들이 추구하는 ‘콘셉트를 위한 콘셉트’와는 구분된다. 진정한 휴식을 통해 치유의 시간을 몸소 경험한 이가 건네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Jaeyoun Kim
ⓒJaeyoun Kim

 

경계로서의 건축
춘천 시내에서 차로 10~15분가량 이동하면 의림여관에 도착한다. 한적한 마을 끝자락에 놓여 산과 마주하고 있는 땅은 외부로부터 단절된 자연을 경험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그 땅에서 호스트가 본 것은 산도 경치도 아닌 밝은 빛을 내는 밤나무였다. 그렇게 마치 땅의 주인인 듯 고요히 자리한 밤나무 아래 건물은 선처럼 들어섰다. 이는 건축으로 자연을 감싸 안거나 담아내려는 시도와는 다른 접근이었다. 땅과의 풍성한 상호작용을 원한 호스트와 디자이너는 머무는 이들이 건강한 고립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단절과 고립을 위한 경계로서의 선형 공간을 만들었다. 또한 건물을 최대한 산 쪽으로 붙여 앞쪽 땅으로는 여백을 더했다.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크기를 늘릴수록 건축은 되레 자연에서 멀어질 터였다. 대지 면적이 1488㎡인 데 반해 객실은 180㎡에 그치는 이유다. 

 

ⓒJaeyoun Kim

 

“의림여관은 일상에서 느끼는 피로함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온전한 휴식을 취함으로써 삶을 치유하고 회복할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공간이다. 하지만 막상 완성하고 보니 역설적으로 공간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을 둘러싼 자연의 힘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건축적으로 무언가 많은 걸 하지 않았는데, 머무르는 동안 풍요롭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숲의 소리에 귀 기울여 머무는 시간이 공간을 찾는 모든 이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 박솔하 백에이어소시에이츠 공동 대표

 

ⓒJaeyo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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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향해 열린 객실
단 두 개의 독채로 구성된 객실은 닫힌 경계로 기능한다. 내부에서는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도로 쪽 외벽으로는 창을 내지 않음으로써 단절감을 더했고, 숲을 바라보는 방향으로는 시원하게 창을 열어 마치 휴양림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붉은 목재로 마감한 객실 내부는 바깥을 지키고 선 밤나무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마주한 숲에는 밤나무가 우뚝 서 있고, 밖을 향해 열린 작은 마당에는 밤송이가 굴러다닌다. 그 연장선에서 내부 공간은 밤나무의 속살과도 같은 부드럽고 따뜻한 곳이기를 의도했다. 그렇게 객실은 나무의 온기를 머금은 채 숲의 조요함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Jaeyo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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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고독을 위한 침실
일상의 시공간을 벗어나 여백처럼 머무는 시간이 중요했기에 공간은 빼곡한 구성으로 압도하기보다 고독에 점차 가까워지도록 덜고 비워냈다. 형태와 기능을 단순화한 침실은 일반적인 호텔 객실과 동일한 크기임에도 한층 확장되어 보인다. 너른 창을 통해 시각적 개방감을 더했을 뿐 아니라, 동선을 이리저리 흩어놓아 한눈에 읽을 수 없는 공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드톤으로 매끄럽게 마감된 침실에는 툇마루를 연상케 하는 단 위로 포근하고 깨끗한 침대만이 놓였다. 이는 평상에 앉았다 눕듯 풍경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휴식할 수 있도록 마련한 최소한의 가구이자 구성이다.

 

ⓒJaeyo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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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휴식을 유도하는 배치
간결한 객실 구성은 욕실과 주방을 분리한 독특한 배치에서 비롯됐다. 숲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간 자리에 놓인 욕실은 전면 통창을 통해 자연 속에서 고요히 목욕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프로그램 측면에서 목욕이 침실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해 두 공간에 비슷한 면적을 할애했다. 또한 나뭇결을 닮은 육각형의 타일 패턴은 바깥 풍경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면서도 실내에서는 침실과 욕실을 공간적으로 구분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Jaeyoun Kim

 

실외에 배치한 주방 또한 밀도 높은 휴식을 위한 장치다. 일반적으로 숙박시설의 경우 대체로 주방이 내부에 딸려 있다. 편의를 염두에 두면 자연스러운 계획이지만 종종 프로그램이 뒤섞이며 공간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더구나 줄곧 같은 공간에 머무르며 요리와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일련의 과정은 어쩌면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지속할 수밖에 없다면 공간의 적절한 분리를 통해 새롭게 경험할 수 있다. 의림여관은 침실과 욕실, 주방을 분리함으로써 각 공간에 명확한 성격을 부여하고, 마침내 게스트가 더욱더 질 높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Jaeyo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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