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여인숙

[Stay here] ① 현대적인 감성을 더한 ‘삼화 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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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지일  사진 및 자료. 라이프이즈로맨스LIIR 

 

머무는 공간이자 장소를 뜻하는 오늘날의 ‘스테이stay’는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안한다. ‘여행’과 ‘집’,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재고하기를 요청받는 과정에서 스테이의 맥락은 폭넓게 재편되는 중이다. <브리크brique>는 이번 특집에서 공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야기가 명확한 여러 스테이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각 공간에서 건축가, 디자이너, 운영자가 제안하는 바는 결국 변화하는 동시대의 생활 양식과 닿아 있다. 자연 속에서의 휴식, 자발적 고립, 일과 생활, 스포츠와 문화 활동, 유려한 건축 공간에서의 비일상적 경험까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스테이의 궤적을 살피는 일은 이 시대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과 다름 아닐 것이다.

 

Stay here
① 오늘의 여인숙 – 삼화 여인숙 
② 완벽한 고립의 시간 – 의림여관 
③ 세 가지 사색의 공간 – 서리어
④ 고요함 속 감각을 여는 호텔 – 이제 남해
⑤ 숲속 진정한 나를 마주하다 – 아틴마루
⑥ 호텔과 글램핑 사이 – 글램트리리조트
⑦ 일과 쉼이 공존하는 곳 – 오-피스제주
⑧ 꼭 하룻밤만큼의 예술 – 다이브인 인사
⑨ 여기가 내 집이었으면 – 어 베터 플레이스


 

삶의 애환이 담긴 공간
여행하는 사람이 쉬었다 가는 곳. 여인숙은 그 이름처럼 터미널 근처나 도심 속 골목 깊숙한 곳에서 오랜 시간 낯선 객客들의 휴식처가 되어 왔다. 그러나 상권의 침체와 줄어든 숙박객, 모텔과 호텔 등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에 밀려나 어느덧 낡고 오래된 과거의 유산이 되어 이제는 본래의 기능도 희미해진 채 그 원형만 근근이 유지해나가고 있다. 둘이 눕기엔 좁은 쪽방, 공동화장실과 세면장, 연탄 난방, 삐걱대는 대문과 손으로 눌러쓴 듯한 명패. 여인숙의 풍경은 이제 적잖은 이들의 추억 한 갈피를 장식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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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여인숙의 부활
강원도 춘천시 근화동 작은 골목 안에 위치한 ‘삼화 여인숙’은 1972년부터 2021년까지 반세기 동안 수많은 이방인의 보금자리로 사람들의 애환을 함께 해왔다. 한때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뛰어든 젊은 예술인들의 아지트로 잠시 쓰이기도 했지만, 다시금 빈집으로 남아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졌다. 춘천에서 ‘스테이 한량’을 운영하는 건축주는 인근에 스테이 2호점을 준비하던 중 삼화 여인숙과 우연히 마주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색 바랜 간판이 그저 좋았다고. 자그마치 50년이나 운영되었던 공간이 흔적도 없이 방치되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 그는 이곳을 현대적 감성을 더한 스테이로 재조성하기로 했다. 애당초 2호점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 대신, 리노베이션을 하되 삼화 여인숙의 이름과 기억은 그대로 이어나가기로 했다. 작고 소박한 공간은 그 자체로도 마음에 들었지만, 오래도록 이방인에게 환영받던 이곳이 여행자로 하여금 새로운 추억을 쌓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한다면 이 또한 삼화 여인숙의 이야기이자 역사나 다름없겠다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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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것과 남길 것, 공간의 변화
과거의 여인숙은 대부분 ㄱ자 혹은 ㅁ자 형태에 최소한의 면적으로 이루어진 객실 여러 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공간을 작게 분할한 것이다.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복도를 중심으로 여러 객실이 위치하고, 방 하나에는 한두 명의 인원이 머물며 외부에 마련된 공용 세면대와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공간 구성이다. 삼화 여인숙의 평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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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를 담당한 라이프이즈로맨스는 디자인 단계에서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선택해야 했다. 사실 고치거나 버려야 할 것이 대다수였고, 남길 수 있을 만한 거라고는 형태뿐이었다. 즉 외형만 살린 채 여인숙의 실질적 원형을 어떤 방식의 언어로 풀어낼 것인가가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새롭게 디자인한 삼화 여인숙은 기존의 ㅁ자 형태는 유지한 채 건물 가운데에 중정을 품은 모습으로 거듭났다. 객실이 있던 공간은 본채로, 공용 세면실이 있던 공간은 별채로 각각 구분하고 본채의 작은 방들은 모두 허물었다. 대신 공간마다 다른 쓰임을 부여해 이를 긴밀하게 연결했다. 문패를 통해 객실 번호를 구분해주던 문짝은 제거하고 그 자리에 중정을 내다볼 수 있는 통창을 설치했다. 본채에는 침실과 주방, 다이닝, 거실과 청음실을 배치하고, 별채에는 수공간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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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디자인하고, 이곳에서 새롭게 만들어질 추억과 그 속에서 피어날 이야기들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축적된 시간과 기억을 현재의 언어로 재해석해 삼화 여인숙이 오래도록 지역과 함께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했다.” – 허슬기, 라이프이즈로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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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실과 수공간
삼화 여인숙이 제공하는 주된 프로그램은 청음실과 수공간이다. 운영자는 스테이의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청음실을 꼽았는데, 오랜시간 직접 수집해 온 LP판이 삼화 여인숙만의 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디자인 단계에서 청음실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어졌다. 객실이었던 작은 방 하나는 빈티지 오디오와 LP판을 비롯해 소품과 아트북, 조명 등을 품은 청음실로 변모했다. 커다란 문을 열어두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주황빛의 램프에서 퍼져나오는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음악과 독서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다. 별채의 공용 세면대가 있던 곳은 ‘물을 쓰는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이어받아 바깥을 내다보며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자쿠지 공간으로 구성했다. 맞은편 조경을 마주볼 수 있게끔 수공간의 높이는 마당과 동일하게 낮추었다. 물속에서 빛을 반사하며 일렁이는 물결과 바람에 흔들리는 풀을 바라보며 잠시 이곳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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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숙으로서의 아카이브
운영자가 수집해 온 감각적인 소품들과 LP판, 조명 등의 요소는 삼화 여인숙의 재탄생에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 공간 곳곳에 배치됐다. ‘아카이브’를 콘셉트로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 아닌,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공간을 추구한 의도다. 이에 더해 디자이너는 디터 람스의 오디오 sk6와 허먼 밀러의 임스 체어를 비롯, 빈티지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하는 제품들을 추가로 배치했다. 새로 추가된 아이템은 모두 운영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제품들과 나란히 둘 때 이질감이 없는 것들을 기준으로 선별했다. 소품과 가구뿐만 아니라 사이니지와 공간 안내서 등 세부적인 시각 디자인까지 세심하게 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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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낭만, 낭만, 낭만
삼화 여인숙에는 건물이 위치한 춘천의 특징이 주요하게 녹아있지 않다. 자연 친화적이거나 로컬 프로그램을 강조하는 스테이도 아니다. 그저 이전의 여인숙이 가진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스테이로 재탄생시켰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공간을 설계한 디자인 스튜디오의 이름처럼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낭만’이다. 지친 여행객이 몸과 마음을 달랜 방이었던 청음실에 앉아 신중히 엄선한 LP를 감상하며 아트북을 읽는 즐거움. 이는 지난한 일상을 떠나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한 작은 사치이자 오늘의 여인숙이 줄 수 있는 위로와 낭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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