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다움을 찾는 여정

[Story] ‘호지’ 공간 이야기
ⓒHyosook Chin
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진효숙, 텍스처온텍스처  자료.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① 집, 나 다움을 찾는 여정 — ‘호지’ 
② [Interview] 다만 우리의 방식대로 — 건축주 김성겸, 김윤희

③ [Architects] 태도가 건축이 될 때 — 서재원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나를 있게 한 공간, 나를 있게 할 공간
어떤 공간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의 일부가 된다. 유년 시절 집에 대한 어렴풋한 잔상, 여행 중 만난 특별한 장소는 이따금 머릿속에서 소환되어 삶에 결을 더한다. 나아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주택과 펜션이 공존하는 ‘호지’는 기억 한 켠 오래 간직될 장소다. 어릴 적 집에 대한 감각을 지닌 채 살아가는 성겸과 그의 네 살배기 아들 재이에게는 물론, 특별한 하루를 위해 낯선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름 모를 방문객에게까지. 공간은 고유한 형태와 정서를 지녔다. 그 배경에는 ‘남들처럼’ 살기보다 ‘나답게’ 살기로 한 부부, 그런 그들을 위해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거처를 빚은 건축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Hyosook Chin

 

원으로 연결된 작은 마을
호지는 강릉 시내로부터 조금 떨어진 한적한 시골에 자리한다. 차로 10분만 이동하면 해변이 펼쳐지지만 넘실대는 파도와 무관하다는 듯 주변은 나직한 논밭과 산뿐이다. 세 식구가 사는 단독주택, 그들이 운영하는 세 개의 독채 숙소, 새로운 만남과 교류가 일어나는 공용 공간. 용도와 형태가 제각기 다른 다섯 채의 건물은 따로 떨어진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 지름 30m에 달하는 원형 보행로가 건물을 받치는 콘크리트 데크에 접하며 이곳만의 독특한 마을길을 형성한다.   

 

ⓒHyosook Chin
ⓒHyosook Chin

 

비우고 열어 비로소 채워지는
외곽에는 높고 두툼한 담벼락 대신 낮고 가느다란 울타리가 서 있다. 최소한의 경계는 영역을 형성할 뿐 바깥 요소를 차단하거나 집의 존재를 위시하지 않는다. 탁 트인 시야를 통해 만나는 풍경은 단조롭지만 안온하다. 짙게 초록이 솟은 파밭, 저녁 무렵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집, 가을철 황금빛으로 물드는 논. 수많은 이미지와 소음으로 점철된 디지털 세계에서 누적된 피로감이 서서히 누그러진다. 
가운데는 멀리서 보면 비어 있는 듯해도 엄연한 역할이 있다. 절기에 따라 피고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는 꽃과 풀이 있는 정원이 그것. 또한 간밤에 내린 비의 양을 가늠케 하는 웅덩이, 떨어지는 눈을 소복이 담는 그릇으로도 기능한다. 

 

의외의 장면이 만드는 가족의 집
약 33평(110.9m²)에 달하는 가족의 집은 면적 대비 풍부한 공간감을 자랑한다. 여느 주거 공간에서 접하기 어려운 장면으로 인해 체감 면적이 훨씬 넓다. 북향이지만 채광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마당 위 지붕을 파내어 보이는 하늘, 지붕 위로 솟은 ‘빛 굴뚝’ 덕분이다. 도깨비 뿔처럼 귀엽게 솟은 빛 굴뚝은 형태만 굴뚝이지 실제로는 천창으로 역할한다. 햇빛은 기다란 통로를 통해 한 번, 통로 벽에 뚫린 동그란 구멍을 통해 또 한 번 걸러져 실내로 은은한 빛을 들인다. 
천장 역시 색다른 감각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박공지붕을 기준으로 실내가 정확히 절반으로 나뉘는데, 이로써 어디서나 천장이 사선으로 떨어진다. 침대에 누워 올려다보면 기분 좋은 긴장감과 아늑함이 밀려온다.  

 

건축주의 집 ⓒHyosook Chin
건축주의 집 내부 ⓒHyosook Chin

 

효율과 감성 사이
가운데 거실을 기준으로 동쪽은 부부의 침실, 일에 집중하기 좋은 개인실, 드레스룸과 화장실이다. 서쪽은 아이 침실과 놀이방, 화장실, 주방 및 다용도실로 구획했다. 아파트처럼 효율적 구성을 취하나 흔한 LDK 구조(거실, 다이닝, 주방을 하나로 이어지는 구성)를 따르지 않는다. 벽으로 주방을 분리해 각종 기물과 음식 냄새를 차단하고 쾌적함을 유지했다. 벽에 낸 작은 한지창은 갓 만든 음식을 건네는 귀여운 상상에서 비롯된 요소. 커다란 나무 대문을 밀면 매일 다른 표정을 지닌 정원과 하늘이 기다렸다는 듯 가족을 맞이한다.    

 

ⓒHyosook Chin
ⓒHyosook Chin
ⓒHyosook Chin

 

고유한 경험을 선사하는 세 개의 숙소
세 개의 숙소는 각기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길게 난 천창이 집 전체를 가로지르는 ‘긴집’, 팔각형 중정을 품은 ‘팔각집’. 마름모꼴 천창이 특별한 빛 경험을 선사하는 ‘둥근집’. 마치 인격이라도 부여받은 듯 저마다 이름이 있는데, 괜스레 세련되고 심오하지 않아 네 살 재이도 곧잘 부른다. 모든 개구부는 프라이버시와 바깥 풍경을 고려해 적재적소에 놓였다. 스테이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통창이 없는 이유다. 의외의 지점에 절제된 크기로 놓인 창문은 빛을 디자인 요소로 적극 활용하고 실내에서의 몰입감을 높인다. 

 

긴집 ⓒHyosook Chin
팔각집 ⓒHyosook Chin
둥근집 ⓒHyosook Chin

 

 

모순과 대비의 미학
시골 마을 한가운데 놓일 터라 이질감은 최소화하되 상업 공간으로서 개성도 있어야 했다. 숙소 외관은 친근하면서도 생경하다. 창고, 비닐하우스, 원두막 등 시골이나 들판에서 흔한 건물을 재해석했으나 엄격한 비례와 대칭을 따랐기 때문이다. 대비와 모순을 끌어안은 건축은 그 특성을 뚝심 있게 끌고 나가 마침내 저만의 정체성으로 구축한다. 골강판 지붕을 떠받친 노출콘크리트에 벽이 주는 투박한 인상과 달리, 내부는 목재로만 마감되어 온화한 기운이 감돈다. 높은 천장과 대칭 구조에 비해 가구는 이상하리만치 낮고 비정형적이다. 여기에 어디선가 흐릿하게 들려오는 농기계 소음과 새소리까지. 생경함 끝에 찾아오는 발견의 묘미가 곳곳에 서려 있다. 

 

긴 집 내부 ⓒHyosook Chin
긴 집 내부 ⓒtexture on texture
팔각집 중정 ⓒHyosook Chin
팔각집 내부 ⓒHyosook Chin
둥근집 내부 ⓒHyosook Chin
공용 공간 ⓒHyosook 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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