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가 건축이 될 때

[Architects] 서재원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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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진효숙, 텍스처온텍스처 자료.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① 집, 나 다움을 찾는 여정 — ‘호지’ 
② [Interview] 다만 우리의 방식대로 건축주 김성겸, 김윤희

③ [Architects] 태도가 건축이 될 때 — 서재원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서재원 소장의 건물을 보고 있노라면 양가적 감정이 교차한다. 진중하면서도 장난스럽고, 묘한 기시감이 들면서도 일순간 낯설다. 보이고 느껴지는 것 너머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이러한 독특함은 분명한 태도에서 기인한다. 그 태도는 일련의 과정 중에 만들어진다. 일견 정답처럼 보이는 수많은 사례, 일반적이라 불리는 기준에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들을 하나씩 더해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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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진행 배경이 궁금합니다. 건축가 입장에서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요? 
서재원 땅과 삶에 대한 건축주의 겸손한 태도가 개인적으로 와 닿았어요. 1천 평 되는 땅에 많이 욕심 내 이것저것 넣으려고 하지 않았죠. 다섯 건물을 비슷한 형태가 아니라 각기 다르게 설계하길 원했어요. 그러면 공사비가 늘어난다고 하니 그럼 규모를 조금 줄여도 괜찮다하더군요. 

 

집인 동시에 상업 공간이죠.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면적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좋았을 텐데요. 
그럴 만한 프로젝트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시골에 들어서는 건데 요소가 많으면 쉬는 느낌도 덜하고 오히려 공간의 수준이 낮아질 것 같았죠. 보통 시골에 가면 많이 꾸미고 다니지 않잖아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고 그저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죠. 도시의 욕망을 갖다 놓을 거라면 굳이 시골에 지을 필요가 없었어요. 그건 나쁜 건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건축 설계뿐만 아니라 조경, 가구, 그래픽 등 디자인 과정 전반을 디렉팅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이었나요? 
시골만의 경험을 살리되 시골집의 단순한 재현은 아니어야 했어요. 농부가 짓는 창고가 가진 분위기, 그 특유의 솔직함은 제가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건축가이기에 따라해서도 안 되고요. 다만 그런 개념 가진, 그러한 태도에 기반한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곳에서 일어날 경험 전반을 다룰 필요가 있었어요. 공간뿐 아니라 조경, 가구, 소품, 그래픽디자인을 하나로 아울러야 했죠. 건축주와 협의를 거쳐 제가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본 팀들에게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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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로서 무엇을 중점적으로 살폈나요?  
전체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했어요. 건축, 조경, 가구, 그래픽이 하나로 뭉쳐 시너지를 내되 개개의 캐릭터는 잃지 않기를 원했죠. 그래서 건축주, 파트너들과 대부분의 미팅을 함께 진행해 나갔습니다. 

 

공간의 콘셉트는 어떻게 도출됐는지 궁금합니다.  
사이트를 보자마자 콘셉트가 바로 떠올랐어요. 바닷가에서 좀 떨어져 있지만 너무 깊은 산속도 아닌, 전형적인 시골인 점이 좋았어요. 허리춤까지 올라온 풀들이 만드는 장면이 무척 아름다워서 그 상태 그대로 두어도 좋을 정도였죠. 너무 많은 이미지로 지쳐 가는 요즘 같은 때에 위안이 되는 풍경이었어요. (뒤를 가리키며) 저기 붙은 스케치가 그날 그린 거예요. 실제 지어진 것과 거의 흡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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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가운데를 비운 채 다섯 건물을 원형 보행로로 연결했어요.
마을길처럼 구불구불한 동선을 낸다면 그 역시 시골 마을의 재현에 그치고 말아요. 키치kitsch해져버리는 거죠. 자갈이나 나무껍질 밟으며 가는 길을 내는 건 시골에 대한 기만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어요. 따라서 원이라는 기하학적 도형을 두었습니다.

 

건물과 보행로는 땅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져 있어요. 어떤 의도인가요?
본래 이 땅에 있던 가냘픈 풀들을 보다가 들판 위 무거운 콘크리트가 떠 있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마침 지면은 도로보다 살짝 낮았는데,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판스워스 하우스Farnsworth House’가 홍수로 잠겼을 때의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와 같은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건물로 들어갈 때 돌아가는 불편함이 예상됐을 텐데요.  
꼭 보행로를 통해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아래 정원으로도 지나갈 수 있습니다. 다만 수용 가능한 불편이라고 생각했어요. 여기 오는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 마음의 여유는 있을 것 같았달까요. 실제로 그렇게 많이 돌아가는 거리도 아닐뿐더러, 회전하는 경험도 고려한 결과예요. 보행로 높이(600~700mm)와 폭(1200~1350mm) 역시 너무 낮거나 두껍지 않게끔 세심히 정했습니다. 두 명이 나란히 가기엔 다소 좁아요. 한 명이 앞서면 그 뒤를 다른 한 명이 따라가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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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은 어때야 한다고 봤나요? 
제한된 면적에 여러 개의 건물을 넣어야 했기 때문에 집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구성했어요. 전원생활을 위해 강릉에 왔으니 외부와 많이 연결된 집을 생각했죠. 넓지 않아도 계속 새로운 것을 마주하기를 바랐어요. 굴뚝 모양 천창으로 어스름하게 때론 직사광선으로 드는 빛, 거실 앞 안마당에 눈이 쌓여 만드는 장면, 비스듬한 천장 각도가 주는 긴장감··· 살아가며 발견하는 것들이 많을 집입니다. 

 

굴뚝처럼 생긴 천창이 인상적이에요. 굴뚝이어야만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심미적으로도 시공적으로도 굴뚝 형태가 적합했어요. 박공지붕의 두 지붕면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기에 그대로 천창을 내면 유리를 반으로 쪼개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랐을 겁니다. 또한 의외의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호지의 모든 건물은 ‘어디서 본 것 같으면서도 본 적 없는 것 같은’ 형태를 취해요. 가령 집에 난 세 개의 굴뚝은 공장 건물의 굴뚝 환기구를 연상시키죠. 

 

호지의 모든 건물은 하나의 오브제 같아요. 비닐하우스나 창고 등 시골에서 흔히 보는 건물 형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요. 
시골에서 흔히 보는 건물에 착안했지만 1:1 대칭이 아닌 유추 관계가 성립하길 의도했어요. 외에도 팔각정, 게르(몽골의 전통 가옥), 우유갑 등 일상에서 흔히 보는 것들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공사하는 분들은 타이타닉, 나무토막, 피아노 등으로 불렀다네요. 연상되는 것이 많을수록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좋은 것 같아요. 실은 대칭, 기하학 같은 건축적 이론에 근거하지만 사람들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혹은 기시감이 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texture on tex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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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 집과 숙소는 외관은 비슷하지만 내부는 사뭇 달라요. 기준을 설명한다면요?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목재로 된 숙소는 디자인적 개성이 뚜렷해요. 첼로와 같은 현악기 또는 나무의 몸통 속에 들어온 것 같죠. 다만 집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마주하기에는 조금 답답하고 금방 싫증 날 수 있으니까요. 흰 벽을 배경으로 두되 목재, (바닥의) 대리석, 콘크리트 등의 요소를 적절히 섞었어요. 기둥 보 구조는 의도적으로 드러낸 거예요. 가리고 감출 게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곳곳에, 그것도 의외의 지점에 놓인 개구부 역시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저희 사무실을 봐서 알겠지만 자연광이 충분히 드는 것을 선호해요. 유행처럼 번지는 간접 조명은 지나치게 세련되고 불필요한 공사가 따라서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좋은 공간 경험이 간접 조명이나 마감의 완성도에 달려 있진 않다고 생각해요. 지나치게 꾸미려는 태도, 과도한 욕망의 투영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장님에게 좋은 집이란 어떤 것일까요? 
극단적인 예를 들면 좋은 건축은 농부가 짓는 헛간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기술과 재료로 짓는다는 점에서요. 건축가로서 그러한 겸허한 태도를 견지하려고 해요. 내 집을 짓는다면 가장 나답게,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짓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물론 그것이 집 장사의 집과는 달라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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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여타 스테이와의 차별화를 위해 신경 쓴 점은 무엇인가요?
사실 호지의 인테리어는 크게 특별하지 않아요. 다만 저는 제 방식대로, 건축을 통해 확실히 차별화하고 싶었어요. 여기서 말하는 건축이란 배치나 형태예요. 천장이 그 예죠. 다른 펜션에 비해 높고 모양도 특이해 흔히 경험할 수 없는 공간 볼륨입니다. 감사하게도 ‘이런 데는 본 적이 없다’며 의도를 알아봐 주는 후기가 꽤 많아요. 스케일 역시 일반적이진 않아요. 보통 출입문의 높이는 2,100mm인데 호지는 1,900mm 정도이고,  창은 높고 커야 좋다지만 의도적으로 시선보다 낮춰 아래를 보게 한 것도 있습니다. 창 모양은 정사각형에 가까운데, 이는 건물의 방향성이 흩트리고 장난감처럼 보이게 합니다. 제 프로젝트를 볼 때 드는 이상한 느낌은 바로 이 같은 낯선 비례에서 비롯합니다. 설계할 때 얇고 긴 형태를 피하는 편이에요. ‘이런 게 아름다운 건축이야’라고 가르치고 제한하는 것 같거든요. 얇고 길면 일단 멋있어요. 그런데 길고 얇게 하지 않으면서 멋있게 하는 건 쉽지 않아요.

 

씨오엠C.O.M.이 설계한 가구의 스케일감 역시 예사롭지 않아요. 어떤 가구를 의뢰했나요? 
사과 박스를 가져다 해체해 다시 만든 것 같은, 얼기설기한 형태의 가구를 의뢰했어요. 높이 역시 의도적으로 낮게 설정했죠. 펑퍼짐하고 눌린 듯한 가구로 인해 사용자가 느끼는 공간의 볼륨은 더욱 늘어나게 됩니다. 다만 의자의 경우 바닥과 가까운 느낌이 불편할 수 있으니 앉는 부분을 넓히는 식으로 보완했어요. 

 

ⓒtexture on tex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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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호지가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나요? 
사용자에게 좋은 추억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부부는 물론 아이에게도요. 어릴 때의 기억이 앞으로를 크게 좌우할 거거든요. ‘옛날에 엄마 아빠 강아지랑 이런 집에 살았다’ 이런 기억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더불어 제 작업을 통해 너무 한 방향으로만 쏠린 건축에 생각할 거리를 던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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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원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소장 
단국대와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진아건축도시에서 11년간 실무를 경험하며 SK 플래닛 판교 사옥, 한국 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백년관 등의 디자인을 총괄했다. 2013년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무소를 개소한 이래, 현대 한국 사회의 다면적 상황을 긍정적 포용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로 인한 부조화와 조화, 구축과 비구축, 합리성과 비합리성, 풍자와 농담 등의 모순적 병치를 통해 한국 사회의 동시대성과 가능성을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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