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탱하는 두 번째 집

[Story] ‘선집’ 공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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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자료. 오르트 건축사사무소

 

① [Story] 삶을 지탱하는 두 번째 집 — ‘선집’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집 떠나 집에서 찾은 온전한 일상 — 마종인 건축주
③ [Architect] 집이라는 세계 — 김호중 건축가

 


 

 

결국, 살아갈 공간을 마련하는 일

공기 좋고 전망 좋은 곳에서 가족, 친구와 함께 보내는 유유한 시간. 주말주택이 선사하는 삶의 여유다. 도시 생활과 전원 생활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세컨드하우스는 도시 사람들의 로망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교외에 또 다른 집을 장만하는 일에는 꼭 장점만큼의 단점이 따른다. 부지 물색, 설계사 선정 등 집 짓기라면 응당 따르는 어려움은 기본이거니와 어찌저찌해 집을 지었다고 해도 오가는 번거로움에 끊임없는 관리가 동반된다. 갈수록 발길이 뜸해져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러기에 세컨드하우스는 더 ‘잘’ 지어야 한다. 입지나 비용만큼 공간의 형태가 중요하다. 현재와 앞으로의 삶을 담는 공간이라는 집의 본질적 가치가 더욱 담겨야 한다. 기거하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세컨드하우스 또한 결국 ‘나의 집’이기 때문이다. 세컨드하우스의 진정한 가치는 그 또한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데 있다. 삶의 골조가 되는 일상을 뒷받침하는 것이 첫 번째 집이라면, 두 번째 집은 생활을 영위하느라 소진된 에너지와 삶의 균형을 되찾고 일상에 필요한 힘을 축적하는 곳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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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집에서 만나는 나

‘선집’은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주말주택이다. 서울에 사는 건축주 마종인 씨는 토요일이면 평소보다 더 부지런히 몸을 일으킨다. 아침 5~6시에 아파트에서 차를 끌고 나서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두 번째 집으로 향한다. 매주 이곳을 찾아 각종 작물과 정원 식물이 심긴 텃밭에서, 화롯가의 장작불 앞에서 제2의 일상을 보낸다. 때론 혼자, 때론 가족과 함께, 때론 20년 이상 우정을 쌓은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인다. 이러한 생활이 가능한 이유는 도심과의 근접성도 한몫하지만 그것만으로 주말마다 이곳으로 오게 하는 이유를 온전히 설명할 순 없다. 그를 양평으로 이끄는 동력은 공간 그 자체에도 있다. 보편적인 주거 공간이 따르는 공식을 벗어나는 선집에는 그동안의 생활 공간에서는 얻을 수 없던 무엇이 있다. 새로운 공간 경험, 그로 인해 발견하게 된 또 다른 ‘나’와 한층 풍요로워진 삶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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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집은 건축주의 본가가 있는 서울 노원에서 약 40km 떨어진 양평 용천리에 위치한다. 주변 풍경은 흔한 근교 시골 마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북쪽과 남쪽에 계절 변화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높다란 산이 있고, 오래되고 남루한 주택과 최근에 지어진 주택이 듬성듬성 놓여 있다. 수려한 자연과 어수선한 교외 풍경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선집은 유독 눈에 띈다. 육중한 콘크리트 몸체에 높은 나무 벽이 더해진 집의 한쪽은 도로를 향해 성큼 튀어나와 있고, 다른 부분은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 도로 정면에서 봤을 때 단번에 집의 모양을 헤아리기도 현관문을 찾기도 쉽지 않다. 생김새부터 이용 방식까지 무엇 하나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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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막에서 선형 주택으로

집은 대지에서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를 차지한다. 가운데에는 중정을, 동쪽에는 작은 텃밭을 둔 채 말이다. 생김새는 또 어떠한가. 좌우가 반전된 ㄱ자의 선형 주택이다. 처음 의뢰한 집은 작은 농막에 불과했다. 주말농장으로 쓰던 농지에 컨테이너만 둔 것이 불편해서였다. 건축가와의 상의 끝에 기왕 공사를 하는 김에 좀 더 넓은 집을 짓기로 했는데, 막상 받아든 도면을 받고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줄곧 아파트에서 살며 집이란 자고로 난방 잘 되고 튼튼하면 그만이라 믿어온 이에게는 너무나 낯선 형태였던 것. 잠깐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그 또한 잠깐일 뿐, 흔쾌히 집의 모든 디자인을 일임했다. 시골 부모님 집과 사무실 공간을 맡긴 적 있는 믿음직한 파트너였기에 가능한 결정이기도 했다.

 

1층 평면도 ⓒoort architects

 

여러 갈래로 펼쳐진 일상의 궤적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의 경우 반듯한 사각형 가운데 거실이 자리하고 그것을 구심점으로 주방과 화장실, 침실 등이 놓이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 선집은 개별 공간을 사각형 안에 테트리스하듯 응집하는 대신 침실(안방), 거실, 작은 방, 주방 등을 한 줄로 배치했다. 덕분에 안방은 주방에서 멀찍이 떨어졌고, 현관 이외에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구가 여기저기에 생겨났다. 한마디로 아파트에서보다 많이 그리고 다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집이 되었다.

 

 

거실 ©BRIQUE Magazine
거실에는 중정을 향해 작은 창을 두었다. ©BRIQUE Magazine

 

주방 쪽에는 텃밭, 중정, 창고로 나갈 수 있는 세 개의 창호가, 거실에는 허리를 숙여 중정으로 나갈 수 있는 창과 북쪽 자투리 텃밭으로 난 출입문이 있다. 이뿐이랴. 공간 이용에 대한 일반적 사고방식을 깨는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두었다. 창고 벽에 ‘빌트인’된 사다리를 타고 올라 지붕 위를 유유히 거닐거나, 침실 쪽 발코니의 나무 펜스를 활짝 열어젖혀 한적한 동네 풍경을 가장 내밀한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이 집에서만 가능한 경험이다.

 

텃밭이 한눈에 내다 보이는 주방 ©BRIQUE Magazine
침실로 오르는 계단 ©BRIQUE Magazine
침실과 테라스 ©BRIQUE Magazine

 

효율과 기능만 따르지 않는 이 같은 구조는 집에서도 다채로운 공간 경험이 가능함을, 그래서 삶이 조금은 더 흥미로워질 수 있음을 알려주고자 한 의도였다. 정형성을 탈피한 구조 덕에 외부 공간도 중정, 텃밭, 작은 화단 등으로 쪼개졌다. 이 여러 개의 자투리 땅은 막연히 큰 하나의 땅보다 관리가 한결 수월하다.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텃밭©BRIQUE Magazine

 

개방과 폐쇄의 미학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벽인 동시에 문으로 기능하는 커다란 나무 펜스다. 도로와 중정 사이, 중정과 후정(텃밭) 사이, 침실과 도로 사이 총 네 개의 나무 펜스가 있다. 집 바깥에서 현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중정, 후정으로 가는 방법은 이 ‘열리는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도로에 있는 첫 번째 나무 펜스를 밀고 들어가면 어느새 어수선한 바깥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별천지가 나타난다.

 

파이어 피트가 있는 중정 ©BRIQUE Magazine

 

가운데 납작한 ‘파이어 피트fire pit’가 있어 원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중정이 그것으로, 삼삼오오 둘러앉아 캠프파이어, 바비큐 파티, ‘불멍’을 즐기기 제격이다. 회백색의 콘크리트 벽을 향해 프로젝터를 틀어 놓고 불을 쬐는 가운데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건축가가 추천하는 중정 활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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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과 중정을 연결하는 펜스 ©BRIQUE Magazine

 

펜스는 닫아두면 나무 틈으로 겨우 빛이 들 정도로 폐쇄적이지만 활짝 열었을 때의 개방감 또한 상당하다. 마치 애당초 벽이 없는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나무 펜스가 소쇄원 광풍각의 들어열개문(문짝을 위쪽으로 들어 올려 들쇠에 얹어서 여는 창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나무 펜스의 역할은 안팎의 경계를 허무는 데 있다. 이는 정해진 기준과 경계를 넘나드는 설계자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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