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 집에서 찾은 온전한 일상

[Interview] 지속가능한 5도2촌 라이프 - 마종인 건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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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자료. 오르트 건축사사무소

 

① [Story] 삶을 지탱하는 두 번째 집 — ‘선집’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집 떠나 집에서 찾은 온전한 일상 — 마종인 건축주

③ [Architect] 집이라는 세계 — 김호중 건축가


 

떠나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집만한 곳이 없다지만 때론 익숙한 장소를 잠시 떠나와야 할 때가 있다. 삶을 온전하게 하는 것은 사회 또는 가정에서의 역할을 잘 충족하는 데에만 있지는 않기에. 개인사업을 운영하며 바쁜 날을 보내는 40대 후반의 마종인 씨가 주말엔 텃밭에 쭈그려 앉아 풀을 뽑는 이유다. 양평에 마련한 두 번째 집이 어떠냐고 묻자 가장 먼저 나온 그의 대답은 ‘불편하다’ 였지만 이야기는 ‘나를 부지런하게 만드는’ 을 거쳐 ‘새 삶을 사는 것 같은’ 으로 끝맺었다.

 

마종인씨가 두 번째 집인 ‘선집’을 둘러보고 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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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기 전 컨테이너를 두고 주말농장으로 이곳을 이용했다고요.
처음부터 집을 지을 생각은 없었어요. 은퇴 후 노년에 집을 지으려고 사둔 땅이었죠. 2016년에 토지를 매입해 1년간 땅을 정리했는데, 매입 당시에는 온통 돌밭이었어요. 텃밭의 돌담과 중정의 정원석 모두 여기서 나온 돌을 활용한 거예요. 막상 땅을 고르고 나니 욕심이 생겨서 주말농장으로 쓰기 시작했어요. 주말에만 오니까 간단히 텐트를 치고 지낼까 했는데 그때그때 접고 펴기가 너무 번거롭잖아요. 요새 텐트나 컨테이너나 가격이 비슷해서 처음엔 컨테이너를 갖다 놓았죠.

 

컨테이너는 잠시 머물 용도로는 적합하지만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겠어요.
씻고 화장실 가는 게 가장 큰 문제였죠. 건너편 마을회관에서 화장실을 사용하게 해주었는데 왔다갔다 하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어요. 간이 화장실은 냄새도 많이 나고 관리가 어려우니, 결국 화장실 딸린 30㎡짜리 농막을 생각하고 김호중 건축가를 만났습니다. 2010년 제 부모님 집과 2015년 제 사무실 인테리어를 의뢰한 적이 있거든요. 건축가가 우선 집을 작게 지을 테니 나중에 자금이 생기면 증축할 수 있도록 골조만 만들어 놓자는 제안을 하더군요. 거기에 솔깃한 거죠. (웃음)
4단계에 걸쳐 증축하고 나면 총 약 300㎡가 되는 건물에 펜션, 카페 등으로 활용할 방법까지 포함한 설계안을 보고 나니 아무래도 30㎡는 너무 좁지 않겠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140㎡로 합의를 보게 된거예요.

 

애초 생각한 예산을 초과했겠지만 덕분에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두 번째 집이 생겼네요.(웃음)
그래도 주말에만 오는 세컨드하우스인데 건축가에게까지 의뢰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주말주택이라도 집은 집이니까요. 집이라는 게 잠깐 머물고 마는 곳이 아니잖아요. 제 자식에게도 물려줄 수 있도록 튼튼하게 짓고 싶었어요. 덕분에 내구성이 좋고 특별한 관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노출콘크리트를 쓴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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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에게 어떤 요구를 했나요?
사실 요구랄 것이 없었습니다. (웃음) 디자인은 김호중 건축가에게 온전히 맡겼죠. 저는 그저 비 안 새고 따뜻하고 튼튼하고 난방만 잘되는 집을 지어달라고만 했어요. 그런데 막상 너무 낯선 디자인을 가져온 거예요. 저 같은 일반인에게 익숙한 집은 네모반듯한 구조잖아요. 아파트에서는 안방에서 부엌까지, 현관에서 침실까지 동선이 짧은데 이 집은 그렇지 않아요. 계속 돌아다닐 수밖에 없죠. 처음에는 왜 집을 이렇게 지어야 하냐, 너무 불편하지 않겠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건축가는 이 넓은 땅에 꼭 네모나게만 지어야 하냐며 서로 답답해했죠.(웃음)
고민이 됐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척 만족스러워요. 아파트처럼 지었다면 땅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집은 만날 수 없었겠죠. 집 주변 곳곳에 있는 자투리 공간들도 마음에 들어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가 가득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주방이요. 양쪽에 큰 창이 있어 활짝 열려 있거든요. 주방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창 너머로 텃밭과 중정의 식물,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요. 언제든 손쉽게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는 중정도 무척 마음에 듭니다.

 

좋아하는 공간에 대해 듣다 보니 이 집에서의 하루가 궁금해지는데요. 인터뷰 마치고 친구분들과 고구마 캐고 식사 한 끼 할 예정이라고요. 혼자 또는 가족, 친구와 있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혼자 있으면 저는 계속 돌아다녀요. 일거리가 계속 눈에 보이더라고요. 지은 지 2~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아요. 힘들지만 집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잘한 조경은 대부분 제가 식물 하나하나를 심고 가꾼 결과입니다. 디딤석 깔기 같은 힘든 일은 친구들 데려와서 같이 하곤 하는데, 덕분에 다들 허리가 나갔죠. (웃음)
보통 토요일 아침에 이곳으로 모여 다 같이 텃밭 일하고, 밥 먹고, 스크린 골프 치러 가곤 합니다. 가족과 함께 오면 주로 저녁에 바비큐 파티하면서 먹고 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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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하우스에서의 시간은 막연히 유유자적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상 휴식과는 거리가 멀었네요. 가족들은 이 집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주변에 함부로 세컨드하우스 짓지 말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해요. (웃음) 못 쉬거든요. 그래도 운동 삼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집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친구든 가족이든 편히 쉴 수 있으니까요. 사실 집을 짓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드니 처음엔 아내가 반대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보다 더 많이 이용해요. (웃음) 주로 아내는 평일에 친구들이랑 드라이브할 겸 이곳에 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가죠. 코로나19 유행 시기와 맞물려 집이 완공되어 더 자주 찾게 된 것도 있어요. 여기만큼 안심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도 없었죠.

 

사실 세컨드하우스를 지을 여윳돈이 있으면 자산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도심 속 건축물에 투자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경제적 가치와 비견할 만한 이 집의 가치를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지만 특히 남자들은 동굴에 찾아 들어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잖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2015년 즈음 사업을 하며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지방 출장을 다녀오며 문득 쉴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들과 동떨어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그런 곳이요. 지금 사는 아파트도 전세거든요. 집값이 올라가도 그 돈이 다 제 것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당장 팔 수도 없을뿐더러 내야 하는 세금만 더 늘 뿐이죠. 퇴직 후 50~60대 들어 이런 집을 장만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어려울 것 같아요. 오히려 경제적으로 활동할 때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장만해야 더 열심히 일해서 빚도 갚죠. (웃음)
이 집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사는 느낌이 들어요. 서울에서 양평을 오가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그마저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TV 보면서 놀기만 하면 답답하고 아내랑 싸우기만 하잖아요. (웃음) 드라이브할 겸 와서 농사일 하면 운동도 되고 좋아요. 친구들과 함께 한 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화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가족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도 들고요. 아이들도 여기 오면 서울에 있을 때보다 훨씬 움직임이 많아져요. 

 

이 집에서의 시간이 자녀들에게도 좋은 경험의 토대가 되어주고 있겠군요.
사실 아이들은 농사일을 별로 안 즐거워해요.(웃음) 그렇지만 나중에 많이 생각 날 거예요. 처음에 텃밭에서 지렁이가 나오면 무서워하기만 했는데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어요. 저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농사일 시키면 싫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요.


이 집에서 쌓은 추억이 많겠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보다는 친구, 가족과 모여 있는 시간 자체가 좋은 것 같습니다. 다름 아닌 ‘여기서만 만들 수 있는 추억’이 하나하나 쌓여 나가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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