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집

[Interview] 소설가의 집 짓기 프로젝트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지아  사진. 김재윤, 윤현기  자료. 백에이어소시에이츠

 

① 작고 단단한 성 — ‘소설가의 집’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나를 닮은 집 — 소설가의 집 짓기 프로젝트

③ [Architects]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 백에이어소시에이츠

 


 

삶의 목표를 시계열로 두는 것을 좋아한다는 소설가 루돌프 제이케이 씨는 계획하는 일을 즐긴다. 언제까지 또는 언제가 되면 무언가를 해보자는 계획이 그에게는 곧 삶의 원동력이다. 늘 목표한 ‘때’가 있었기에 때마다 주저 없이 선택하곤 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소설을 발표했고 땅을 찾아 집을 지었다. 소설을 즐겨 쓰고 가끔 그림을 그리지만 동시에 여의도 금융인 이기도 하다. 이곳과 저곳을 넘나들며 파도를 타는 듯 보이지만 성큼성큼 목표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그가 마침내 당도한 집을 만났다.

 

 

‘소설가의 집’ 건축주, 루돌프 제이케이 ©BRIQUE Magazine

 

소설가가 지은 집은 처음이에요.
어떤 일이 본업이고 부업인지 구분하기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웃음) 서커스라는 제목의 첫 소설을 발표했고 지금은 두 번째 소설을 다듬고 있어요. 동시에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어떤 직업을 가진 누군가로 살기보다 삶을 사유하고 이를 따라 뻗어가는 시간을 향유하고자 합니다. 집을 짓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집 짓기를 ‘프로젝트’로 표현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어디서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와 직결되는 질문이지요. 아파트나 오피스텔처럼 일률적인 공간은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적정한 나이가 되면 생각한 집을 짓고 그곳에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죠. 사람마다 삶에서 목표하는 바가 다를 테지만 집을 짓는 일이 제게는 일종의 해결해야 할 과업이었던 셈입니다. 그 생각을 지속하다 보니 집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됐습니다.

 

집을 짓기 전 바라던 집의 모습이나 이상향은 어땠나요?
주택 프로젝트의 이상향은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집을 지을 생각으로 다양한 지역을 탐사하고 실제로 토지 매입도 했습니다만, 결국 서울의 공간이 우선이었습니다. 그 집은 거창하고 클 필요가 없었어요. 녹지를 곁에 두고 도심 접근성, 특히 출퇴근이 편한 곳이 고려사항이었죠. 대지는 열 평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작다면 작은 대지 위에 견고하고 알찬 4층 공간을 배치했죠. 지금 보시는 이 집이 바로 마음에 그리던 이상향에 가깝습니다.

 

©Jaeyoun Kim

 

원하는 집의 모습이 명확했던 만큼 건축가를 찾을 때도 나름의 기준이 있었을 듯합니다. 백에이어소시에이츠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집의 형태와 기능을 마음속에 구체화하고 있었기에 그 계획을 보다 나은 현실로 구현해 줄 건축가가 필요했습니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공동의 행위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만나본 건축가 중 많은 이들이 소통을 거부하는 편에 가까웠습니다. 건축주의 니즈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는 건축물은 비단 그 결과가 외형적으로 멋지더라도, 이름이 알려진 건축가의 작업이라 할지라도 의도가 분명한 건축주에게는 곤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 면에서 백에이어소시에이츠는 매우 든든한 동료였습니다. 비슷한 나이 또래로 열정이 가득했고 건축 과정에서 그들의 책임감은 기대를 넘어서기도 했죠. 경제적으로 좀 더 풍요로운 지출이 가능했더라면 아마 더 큰 마법을 부렸을 이들입니다.

 

실제로 집 짓는 과정을 경험해 보니 어떤가요?
결과적으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웃음) 주변의 많은 이들이 묻더군요. 집 짓는 일이 어땠는지를요. 안 해봤고 몰랐기 때문에 그 용감함으로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하곤 합니다. 원하는 집을 지어 흡족하고 행복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많은 이에게 추천하고 싶지만 동시에 말리고 싶기도 하죠. 집을 짓는 일은 매우 구체적인 주관이 있는 이에게 적합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건축가를 신뢰하고 모두 맡겨야 하죠. 어느 쪽이든 건축주에게 달렸다고 봅니다. 성향의 차이이기도 할 테고요. 다음 집은 좀 더 여유로운 공간에 자연에 보다 녹아든 집을 지어 보고 싶습니다. 수직적 레이아웃의 즐거움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수평적 레이아웃의 풍요로움도 누릴 수 있는 곳으로요. 그래서 제 매일의 일상, 그러니까 자본을 모으는 노동의 행위가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실현하고 싶은 대상이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존재하니까요.

 

집을 짓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나요?
새로운 글을 쓰고 또 다른 집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죠. 틈날 때마다 작업을 하는 편이기에 출근하기 전, 자기 전에 주로 글을 씁니다. 작업실인 4층에는 천창과 골목을 내다보는 남측 창이 있습니다. 천창은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어 희망과 위로를 줍니다. 남측 창은 마치 관제탑처럼 든든하고 여유로운 기분을 만들죠. 물론 옥상으로 나가는 창도 참 좋습니다.

 

건축주의 첫 번째 소설 ‹서커스› ©BRIQUE Magazine

 

이 집에 살면서 느낀 불편함도 있나요?
딱히 없습니다. 혹자는 주택 관리의 어려움을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이는 어떤 주택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기 마련이죠. 게다가 처음부터 충분히 튼튼하고 구체적으로 목적한 집을 짓는다면 그 목적 자체가 건축주 본인의 주관의 반영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파생되는 어려움은 스스로에게 어려움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이 집이 가진 대부분의 특징은 장점이 됩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선호하죠. 그 배경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제게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마치 지하철의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앉아 편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단독주택, 특히 스스로 의도한 주택은 그렇지 않죠. 그 반대입니다. 온전히 자신의 것이죠.

 

집이란 어떤 공간이어야 한다고 보나요?
집은 본인의 가치관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요. 본인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된다면 무엇보다 좋겠죠. 기능적으로는 견고하고 말썽을 부려서는 안 될 겁니다. 따라서 담백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사치스럽고 스스로에게는 편안하고 익숙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공간이 훌륭한 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집은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작가님을 닮은 이 집은 ‘좋은 집’인가요?
너무도 명백하게 그렇습니다. (웃음) 시간으로 환산한다면 아마 수백 시간 이상을 고민한 결과일 거예요.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움직이는 동선까지 고려하고 싶었던 것은 숨기지 못할 비밀이고 까탈스러움이죠. 건축가가 그만큼 고민해 줄 수 있을지 매일같이 안달이 날 정도였죠. 결과적으로 제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그들이 보완해 주면서 지금의 만족스러운 결과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다음 집을 생각하고 있을 테죠.
시간이 날 때마다 또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여전히 집을 그립니다. 전혀 다른 모양의 집이죠. 일상의 전투에서 돌아온 나를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지켜줄 집이 바로 이 서울 집이라면, 그다음 집은 시외에 위치할 집입니다. 그 집은 앞서 말한 바닷가에 있을 수도 또는 한국이 아닌 전혀 다른 나라에 위치할 수도 있습니다. 대지의 모양, 날씨, 일조량 등 주변 환경에 따라 구체적인 모습은 변하겠지만 제게 필요한 다음 집의 속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삶의 자세를 구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집을 그리곤 합니다. 집을 제도하거나 디자인하는 작업은 매우 흥미롭고 즐거운 유희입니다. 때로는 하루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집은 제게 참으로 큰 의미입니다. 삶의 일부이거나 목적이거나 기반이거나 그 어디쯤에서 모든 것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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