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건축

[story] 스튜디오인로코건축사사무소
ⓒBRIQUE Magazine
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자료. 스튜디오인로코건축사사무소

 

① 함께, 이곳에 살아가는 이유 ‘월락동 여러집’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닌— 다섯 지붕 아래 아홉 가족

③ [Architects]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건축 — 스튜디오인로코건축사사무소 


 

주택 설계는 누군가의 삶을 잘 담아내려는 마음으로 적절한 아이디어와 크고 작은 공간 요소를 선별하는 과정이다. 최선의 시도로 엮어낸 공간은 ‘완벽한 집’이라 할 순 없어도 ‘좋은 집’이라 부를 만하다. 집의 골조를 잡는 것부터 외관의 만듦새를 높이는 일, 구석진 곳을 다듬고 작은 가구를 배치하는 것까지, 월락동 여러집 곳곳엔 두 건축가의 손길이 촘촘히 배어있다. ‘원래 자리에, 제자리에’라는 뜻의 ‘인로코in loco’. 최고의 건축보다 ‘최적화된 건축’을 지향하는 이들이 만든 집에는 어떤 크고 작은 의도가 숨어 있을까?

 

ⓒBRIQUE Magazine

 

대지 경계선을 따라 건물들이 길게 늘어선 배치가 인상적이에요. 보통의 다가구주택에서 건축주의 집은 가장 높은 층에 있기 마련인데 직원주택과 같은 선상에 놓였더군요.

강승현ᅠ처음에 건축주가 제안한 형태는 일반적인 다가구·다세대주택과 다르지 않았어요. 가장 위층에 병원장 가족이 살고, 중간층에 직원들이 거주하며, 1층에는 상가가 있는 하나의 건물이었죠. 하지만 주어진 대지가 무척 넓어 높게 솟은 하나의 건물을 지으면 어색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김나운 소장이 첫 미팅부터 공간을 수직으로 쌓지 말고 수평으로 나열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모든 세대가 같은 조건에서 균등한 혜택을 누리고, 동선이 여러 개로 분리될 수 있도록요. 다소 과감한 제안이었지만 건축주의 가치관과 맞아 떨어져 빠르게 설계안을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직원들의 편의를 높이고자 한 의도도 있어요. 모든 세대가 하나의 코어(계단)를 공유하면 직원과 원장이 마주치는 상황이 잦을테니, 직원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불편하겠죠. 사택보다 하나의 커뮤니티로 보고, 집에서만큼은 직장에서의 위계를 상쇄할 방법을 고민했어요. 이로 인해 건물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분절된 것이고요.

 

직원주택도 하나가 아닌 네 개 동으로 나뉘어 있어요. 각 동은 일렬로 있지 않고 조금씩 비껴 서 있고요.

김나운ᅠ세대 간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배치예요. 수평적으로 직원주택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지 않고 여러개로 나뉜 것, 세대와 세대가 나란히 있지 않은 이유는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함이죠. 모든 세대는 수평은 물론 수직적으로도 어긋나 있어요. 스킵플로어 구조가 적용되어 현관 문을 열었을 때 다른 집이 보이지 않아요.

 

ⓒBRIQUE Magazine

 

건축주의 주된 요구사항은 무엇이었나요?

강승현ᅠ전 세대의 정남향 배치를 강조했어요. 그런데 지리산이 가장 잘 보이는 방향은 남동향이어서 고민이 됐죠. 결국 전 세대를 정남향으로 배치하되, 직원주택의 테라스를 남동향으로 틀었어요. 그래서 삼각형 모양의 테라스가 만들어지게 됐죠.

 

직원주택은 주로 어떤 점을 고려해 설계했나요?

김나운ᅠ건축주와의 두 번째 미팅 때 병원 직원들을 함께 만났어요. 특별한 요구는 없었지만 너무 낯선 형태의 공간은 아니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직원을 위한 건축주의 요구사항은 크게 두 가지였어요. 직원주택을 ‘부부와 아이들이 사는 집’과 ‘혼자 와서 사는 집’ 두 유형으로 구분하고, 자녀의 성별이 다른 가구가 있기 때문에 작더라도 방을 여러 개로 나눠야 한다는 거였죠. 이에 규격화된 아파트식 평면과 살짝 다른 구성을 취했어요. 주방과 화장실 등 물 쓰는 공간이 집 한가운데 섬처럼 놓이고 그 주변으로 회유 동선과 방이 놓이는 형태죠. 집이든 사무실이든 돌아다닐 수 있는 길이 많으면 좋다고 생각해요. 쉽게 말해 아이들 또는 반려견과 함께 ‘잡기 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랄까요. 물 쓰는 공간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으면 그 주변에 발생하는 공간의 위계가 쉽게 결정돼버리니까요.
강승현ᅠ언제 어떤 사람이 살지 모르는 임대 공간은 범용성이 높아야 해요. 따라서 수납 공간이 많고 좀 더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계획했어요. 아파트처럼 공간의 성격이명확하지 않고 모호하고 유연하죠. 이곳에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실현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평면도를 그렸어요.
김나운ᅠ한 가지 못내 걸리는 점은, 나름대로 범용성을 높였음에도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변수들이에요. 직원들의 다른 가족이 보내준 농작물을 보관하려면 냉장고가 여러 개 필요한데, 마땅히 놓을 자리가 없어 불편하다는 이야기였죠. ‘집이 사용되는 방식을 어디까지 예상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마음에 숙제처럼 남았네요.

 

1층 평면도 ⓒStudio in Loco
단면도 ⓒStudio in Loco

 

이곳의 거주자들은 매일 직장에서 마주하는 사이이기에, 공간을 통한 연결보다는 오히려 적절한 거리 두기를 할 필요가 있었겠어요.

강승현ᅠ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즉 공적 공간에서 사적 공간으로 진입하는 동선을 여러 개로 나누었어요. 주차장이 있는 입구부터 각 세대가 자연스럽게 흩어지게 했죠. 직원 세대를 위한 공용 마당과 건축주 마당 사이 단차가 있는 점도 같은 맥락이에요. 원장님이 밭일 할 때 직원들이 눈치 안 보고 놀 수 있도록요. (웃음) 스킵플로어 구조를 적용해 각각의 직원 세대를 분리한 것도 적절한 거리 두기의 일환이죠.

 

덕분에 계단실이 각 세대를 위한 외부 공간이 됐더라고요. 현관 앞 계단실을 저만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사용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어요.

강승현ᅠ외부 계단실은 ‘공용 공간의 사유화’가 이루어지는 지점이에요. 공용 공간은 누군가 일시적으로 사유화할 수 있을 때 가장 잘 활용될 수 있어요.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 공간은 사실상 아무의 공간도 아닌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한강 둔치를 예로 들어볼까요. 공공의 땅이지만 돗자리를 펴서 앉는 순간 그때만큼은 내 공간이 되잖아요. 이에 법적 치수에 맞추지 않고 최대한 여유롭게 계단실을 구획했어요. 장독대를 놓거나 택배 또는 자전거 보관소 등으로 자유롭게 활용되기를 바랐어요. 사유화가 문제가 되지 않으면서 각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는 영역으로 기능하게끔 한 거죠.

 

ⓒBRIQUE Magazine

 

건축주 집과 직원주택 모두 가능한 다락을 넣으려고 한 것 같더군요.

강승현ᅠ저희가 다락에 약간의 애정을 가진 것 같아요. ‘만들 수 있다면 만들자’는 주의죠. 다락이 주는 특유의 공간감이 있으니까요.

 

다락 천장에는 삼각형 또는 사각형의 작은 구멍이 나 있어요. 천창을 통해 은은히 드는 조각 빛이 인상적이던데요.

김나운ᅠ한 공간을 밝히는 창문이 한 개 이상이면 좋다고 생각해요. 풍경을 보기 위한 창 옆에 빛이 잘 드는 창이 있는 것처럼요. 정남향 방이나 거실이라고 해도, 어디선가 다른 빛이 들어와 조연처럼 기능하는 거죠. 천창이 다락에서의 경험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직원주택에 낸 삼각형 창의 경우, 공사 과정에서 실제보다 작게 만들어져 조금의 아쉬움은 남아요.
강승현 ‘다락스러운’ 느낌을 주고자 측창을 내지 않고 천장에만 창을 내 아늑함을 강조했어요. 평면 구조상 기하학적 변주를 주고자 한 의도도 있고요. 저희만 아는 사실이지만 직원 세대 테라스, 다락의 천창, 1층 상가의 아치 입구 모두 삼각형이에요. (웃음)

 

입구의 아치가 건물의 육중함을 누그러뜨리고 공간에 부드러움을 더하는 것 같아요. 특히 1층 입구, 모서리에 만들어진 아치가 눈에 띄더군요.

김나운ᅠ질서 잡힌 외관에 아치를 덧대어 약간의 자유로움을 부여했어요. 모든 지붕이 일제히 하늘과 사선으로 만나는 것과 대조해, 아치를 통해 집이 땅과 만나는 방식에 변주를 주고자 한 의도도 있죠.
강승현ᅠ건축주에게 아치가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건축 방식이라는 설명을 드렸지만, 솔직히 말하면 건축가로서 한 번쯤 아치를 비롯한 다양한 조적 구법을 시도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어요. (웃음) 1층 모서리의 아치는 가장 마음이 가는 디테일이기도 해요. 일반적인 아치와는 다른 형태라,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지 무척 궁금했거든요. 시공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모르타르의 접착력만으로 금방 만들어지더군요. (웃음) 물론 시공팀의 숙련된 기술도 한몫했고요.

 

ⓒBRIQUE Magazine

 

그러한 건축적 실험 정신이 줄눈에도 반영된 셈인가요? 단일한 벽돌로 구성된 집이 줄눈의 색을 달리하는 것만으로 다른 벽돌처럼 보이더라고요.

강승현ᅠ줄눈 색을 바꾸는 것은 김나운 소장의 아이디어였어요. 공사 전 줄눈의 배합을 스무가지 정도로 달리해 테스트했죠.
김나운ᅠ테스트할 때만 해도 건물의 톤이 그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어요. 대단한 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안료를 배합하는 간단한방법으로 외관에 변화를 주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건축주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직원주택과는 어떤 식으로 차별화하고자 했는지 궁금해요.

김나운ᅠ공간 구성의 차이는 반으로 자른 아보카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운데요. 직원주택은 씨앗을 포함한 단면처럼 물 쓰는 공간을 중심으로 방과 회유 동선이 있다면, 건축주 집은 씨앗을 포함하지 않은 부분처럼 중앙이 비어 있어요.
강승현ᅠ직원 세대 설계에서 공간의 범용성과 모호함에 집중했다면, 건축주 세대에서는‘눅nook’이라는 개념을 떠올렸어요. ‘동물의 보금자리’를 뜻하는데, 알코브alcove처럼 벽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려고 했습니다. 아늑하고 조용한 구석은 집을 ‘나의 집’으로 기억하게 할 만한 공간 유형이라고 생각해요. 일시적으로 나만의 공간이 생기는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죠. 준공 후 사진 촬영을 하러 건축주 집에 방문했는데, 건축주의 아들이 거실 벽 안쪽에 마련된 서재에서 인터넷 수업을 들으며 다른 편에 앉은 부모와 가볍게 대화를 나누더라고요.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개방된 곳에 있지만, 자기만의 공간에서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루어지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어요. 아파트의 경우 누군가 한 명이 거실을 점유하면 방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기가 어렵잖아요. 다른 방식의 공존, 공간을 향유하는 방식을 고민한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건축주 집 동쪽의 테라스는 실내 공간이지만 외부 공간처럼 동떨어져 있어요. 직원주택과의 분리를 강조한 용도인가요?

김나운ᅠ설계가 어느 정도 진행된 단계였는데, 북쪽으로 난 현관을 동쪽으로 변경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풍수지리적인 이유였는데, 동쪽으로는 직원주택과 맞붙어 있어 입구를 낼 수 없었죠. 그래서 동쪽 실내 일부를 야외 테라스로 만들고 북에서 동으로 꺾어 들어오는 진입을 유도했어요. 갑작스러운 요구에 의해 생긴 공간인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요. 북쪽에서 봤을 때 현관의 입구감을 강조하고 직원주택과 구분해주더라고요. 거실에서 비스듬히 보는 뷰도 색다르고, 깊숙한 공간으로 빛이 길게 들어오는 모습도 특별해 보였어요.

 

2층에는 부부와 세 자녀를 위한 네 개의 침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던데요.

김나운ᅠ부부와 세 자녀까지, 총 네 개의 침실을 한 층에 놓기로 했기에 각 침실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배치했는데, 모든 침실이 정남향이기를 바란 건축주 요구에 따라 일렬로 놓았어요. 좀 더 다양하게 구성했으면 공간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네요.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You might also like

건축에도 올드머니룩Old Money Look이 있을까?

[정해욱의 건축잡담] ⑩ 정통과 퓨전의 변증법에 관하여

스테이 창업 전, 반드시 두드려보아야 할 돌다리 ‘스테이 스쿨’

스테이 스쿨 강사진으로부터 미리 들어보는 생존 전략

일상의 웰니스 라이프 큐레이터에게 묻다

[Wellness Lifestyle] ⑧ Life Curators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Portrait] 호텔을 만드는 사람 한이경

‘왜 홀리스틱 웰니스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Interview] 상하 리트릿 CCO & 총괄 건축가 — 캘빈 싸오Calvin Tsao

짓기 전에 꼭 넘어야 할 스무고개가 있습니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 ① 서교동 카페 ‘콤파일Compile’ 황지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