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고민을 ‘경쾌하게’ 풀어내는 법

배려가 낳은 새로운 시도, ‘여름 무지개’
ⓒInkeun Ryoo
에디터. 박종우  자료. 요앞 건축사사무소 YOAP Architects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오른 지붕과 선명한 색감. 이 집을 처음 본 순간, 눈에 확 들어온 요소였다. 이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던 에디터의 눈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궁금했다. 이런 집을 지은 이들은 어떤 건축가일까?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렇게 지어졌을까? 대전의 다가구주택, ‘여름 무지개’를 설계한 요앞 건축사사무소의 류인근, 김도란 소장에게 이 집의 탄생과 설계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Inkeun Ryoo

 

3대가 함께 살아갈 집

 

“연로한 부모님을 위해,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주는 집을 짓고 싶었어요.”

지붕에 비치는 그림자의 모양이 무지개를 닮아 지어진 집 이름, ‘여름 무지개’. 집 이름이 유독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건축주의 사연과도 관련이 있었다. 
건축주는 장성한 4남매 중 막내아들로, 연로하신 부모님과 부모님을 모시고 살 누나 가족이 함께 살 집이 필요했다.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누나의 가족까지 함께 사는 집. 요즘에 보기 드문 삼대가 함께 사는 집인 셈이다.
건축가들은 노부모의 건강을 고려한 설계에 많은 신경을 썼다. 건축주와 소통하며 서로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밝은 이름과 함께 따뜻한 배려가 돋보이는 디자인을 완성했다.

 

여름 무지개의 건축 모형 ⓒBRIQUE Magazine

 

 

다 함께 그리고 편안하게

 

“핵심 컨셉은 수평으로 긴 집이었죠.”

위로 기다란 집 대신 옆으로 기다란 집. 기차나 컨테이너를 연상시키는 이 집의 독특한 외형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배려하기 위해 탄생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겨우실 부모님을 생각해, 건축가들은 수평 형태로 길쭉한 주택을 설계했다. 거기에 햇볕이 잘 드는 남쪽에 부모님과 누나 가족이 살 집을 배치했다.

정면도. 집이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다. ⓒYOAP Architects
ⓒInkeun Ryoo

 

널찍한 복도 폭과 엘리베이터도 제안했다. 이 집은 비교적 낮은 3층 건물이다. 그런데도 엘리베이터 설치를 권유한 것은 연로한 부모님을 위해서였다. 1층짜리 건물이 아닌 이상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피할 수 없으니, 엘리베이터로 그 부담을 최소한 줄이자는 것이다.

엘레베이터가 반영된 설계 단면도 ⓒYOAP Architects

 

채광과 환기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설계 단계에서 각 세대의 거실과 안방에서 확실히 채광과 환기가 가능하도록 고려했다. 창을 많이 쓰지 않으면서도, 빛이 들어오는 각도를 계산해 최대한의 채광 효과를 노렸다. 또한 부모님과 누나 가족들이 사는 2층 안방마다 테라스를 두어 환기와 채광은 물론, 경치를 보며 지친 일상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찾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다이어그램 ⓒYOAP Architects
ⓒInkeun Ryoo
ⓒInkeun Ryoo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만 누나 가족의 독립성도 필요했다. 이를 위해 각자의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세대를 분리해, 가족 사이 적정한 거리감도 확보했다. 그 뿐 아니다. 훗날 휠체어를 탈지 모를 부모님을 위해 휠체어가 회전해도 무리가 없는 폭넓은 복도, 도면에는 없지만 유사시 응급 상황을 대비한 비상 통로까지 마련해 넣었다. 이 집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미래의 삶까지 꼼꼼하고 고민한 깊이가 엿보이는 지점이다.

2층 평면도 ⓒYOAP Architects
ⓒInkeun Ryoo
휠체어가 움직여도 충분한 여유공간이 있는 복도 ⓒInkeun Ryoo

 

 

새롭게 그리고 경쾌하게

 

“물이 지붕 아래로 흘러내리거나 가스관 같은 것들을 안 보이게 만들고 싶어, 지붕을 바깥으로 올려 해결했습니다.”

건축가들은 집에서 살아갈 가족의 삶을 고려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스타일도 놓치지 않았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지붕이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지붕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집 근처를 지나가는 이들을 한눈에 사로잡을 만한 독특한 지붕. 기능성과 스타일,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셈이라 할 수 있다.

 

ⓒInkeun Ryoo
ⓒInkeun Ryoo

 

보는 이에게 성당 내부를 연상시키는 아치형 기둥도 이 집만의 특징이다. 건물 주차장에 으레 존재하는 기둥에도, 건축가들은 조금 더 새로운 느낌을 줄 방법을 고민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 바로 사원이나 궁전의 복도, ‘회랑(回廊)’을 떠올리게 만드는 아치형 기둥이다.

 

ⓒInkeun Ryoo
ⓒInkeun Ryoo
ⓒInkeun Ryoo

 

집 안으로 들어오면 다채로운 빛깔을 뽐내는 경쾌한 색감도 빼놓을 수 없다. 노란색과 빨간색, 연두색 등 을 사용한 복도가 대표적인 예. 다양한 색의 사용은 지루한 일상을 환기시키고, 매일 보는 집을 몇 번이고 새롭게 느끼도록 만든다.

 

ⓒInkeun Ryoo
ⓒInkeun Ryoo
ⓒInkeun Ryoo

 

무지개색 현판도 건축가들의 작품이다. 현판 디자인은 건축주가 전문 디자인 업체에 별도로 맡기거나, 상업 건물이 아니면 거의 진행하지 않는다. 설계사무소도 현판 디자인은 업무 영역이 아니다. 그런데도 직접 디자인한 이유를 묻자, 하고 나면 기분이 좋은 ‘일종의 서비스’라고 답했다. 집 이름이 적힌 현판을 디자인해 붙이고 나서야 프로젝트 하나를 마무리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화사한 노란 바탕에 경쾌한 느낌의 흰 글씨가 쓰인 우편함 역시 이들의 작품이다.   

 

요앞 건축사사무소에서 직접 디자인  현판 ⓒInkeun Ryoo
여름 무지개의 우편함 ⓒInkeun Ryoo

 

 

관습을 의심한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건축가들 사이에선 건물에 색을 쓰는 게 거의 금기시되어 있어요(웃음). 그걸 한 번 의심해보는 거죠.”

에디터가 집에 다양한 색을 사용한 이유를 묻자, 류인근 소장이 답했다. 기존의 건축계는 오랫동안 건축물에 색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왔는데, 자신과 동료들은 그 오래된 ‘관습’을 의심하며 건축 설계와 디자인 작업에 임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의심하는 것은 색의 사용뿐만 아니다. 여름 무지개의 아치형 기둥, 독특한 지붕 모양, 수평 형태의 다가구라는 개념 역시 거주자를 생각하면서도 기존 건축계의 관습을 의심하며 고민한 데서 나온 결과물이다. 사용자를 위한 배려와 끊임 없는 의심이 그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낸 셈이다.

 

붉은 벽돌과 흰 외벽이 대조를 이루는 여름 무지개 ⓒInkeun Ryoo
류인근 소장이 집의 형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BRIQUE Magazine

 

 

실험과 실생활, 그 사이의 ‘교집합’

 

“우리도 좋고, 건축주도 좋은 ‘교집합’을 찾고 싶어요. 문장으로 풀어보자면, ‘초대할 수 있는 집’.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막바지에 이르러 에디터가 류 소장에게 ‘좋은 집’에 대한 본인만의 정의를 묻자, 잠시 뜸 들인 뒤 이처럼 대답했다. 건축적인 실험과 사용자의 편의성 사이. 새로운 시도를 하지만, 동시에 건축주도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만족할 수 있는 집. 그래서 자신 있게 친구나 애인, 이웃을 초대할 수 있는 집. 그런 집이 류인근 소장이 생각하는 ‘좋은 집’이었다. 
집의 기능성과 실험적인 시도, 그 사이에서 교집합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들. 이들의 고민이 새로운 ‘좋은 집’을 만들 다음 순간을 기대해본다.

 

김도란 소장(왼쪽)과 류인근 소장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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