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를 위한 소수의 건축

[Architects] 고석홍, 김미희 소수건축사사무소 소장
©BRIQUE Magazine
에디터. 윤정훈  사진. 노경, 윤현기  자료. 소수건축사사무소

 

① 집, 도시의 여백이 되다 — ‘티루프’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일상의 질서를 재편하는 법 — 사소하지만 작지 않은 변화

③ [Architects] 다수를 위한 소수의 건축 — 고석홍, 김미희 소수건축사사무소 소장


 

물리적으로 도시를 이루는 최소 단위가 건물이라면, 하나의 건축물은 회화에서 작은 붓 터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건축사사무소(이하 소수건축)의 고석홍, 김미희 소장은 건물 하나가 갖는 영향력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크든 작든, 너른 대지에 들어서든 굽이진 골목에 들어서든. 스스로를 단지 건물을 세우는 사람이 아닌 도시를 구성하는 사람으로 여겨서다. 그저 그런 일상의 풍경에 일조하지 않고자 매번 땅의 고유한 맥락에서 출발한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한다. 이는 거창한 사명감이나 고상한 철학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저 어떤 식으로든 건물을 마주할 누군가를 이따금 떠올릴 따름이다.

 

김미희(왼쪽), 고석홍 소수건축사사무소 소장 ©BRIQUE Magazine

 

소수는 다수의 반대말이기도, 수학 용어이기도 하잖아요. 어떤 뜻인가요?
김미희ᅠ숫자 소수예요. 계속해서 발견되고 1과 자신만으로 나뉜다는 속성을 갖죠. 소수처럼 독자성을 지니되 1이라는 공통성을 공유하는 건축을 하고자 붙인 이름이에요. 발음도 쉽고요. (웃음)
고석홍ᅠ건축주와 장소가 지닌 고유한 성질을 찾으려는 의지의 표현이에요. 소수는 암호 시스템 등 사회적으로도 중요하게 쓰이는 숫자 체계라, 사회적 역할도 수행하는 건축가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담겼죠. 그래서 저희 전화번호는 물론 홈페이지 url에도 2357이 들어가요. 물론 비밀번호로는 안 씁니다. (웃음)

 

각종 규제의 영향을 받는 도심 속 건축물을 여럿 설계해왔죠. 일련의 조건을 만족하며 나름의 디자인을 구현하는 건 쉽지 않은 일 같아요. 소수건축만의 설계 기준이 있을까요?
고석홍ᅠ저희만의 기준이나 디자인의 언어를 앞세우기보다 땅에 맞는 건축을 보이려고 해요. 땅마다 고유한 지문地紋이 있기 때문에 모든 건물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도시에는 비슷비슷한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죠. 이에 대응하고자 대지 형태, 법규, 건축주의 성향, 주변 환경,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 땅만의 무언가를 찾아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 편이에요.

 

예전 인터뷰에서 건축주의 삶과 집에 대한 고민을 듣다 보니 스스로 카운셀러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죠(‹브리크› vol.5 참조). 이번 건축주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고석홍ᅠ집이 너무 오래돼 더 나은 환경에 살면서 수익까지 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해왔어요. 가족들이 자칭 집돌이, 집순이라더군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을 즐긴다면 ‘어떻게’ 머무는지가 중요하죠. 결국 머무는 공간이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해 건축주 주택을 3개 층으로 구성했어요.
김미희ᅠ다락, 복층 상층, 복층 하층. 이렇게 나뉘어요. 건축주가 생각한 주인 세대는 5층 하나와 다락 정도였는데 아무래도 부족해 보여 4층 일부를 두 딸의 방으로 제안했죠. 4층에 예정된 임대 공간을 하나 줄여야 해서 설득이 필요했지만 이 정도는 돼야 좋은 주거를 누릴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대신 임대 주택 하나하나의 질을 높여 차별화를 꾀했고요. 각기 다른 평면의 원룸이 그것이죠. 

 

1인 가구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다섯가지 타입의 임대 세대를 구성했다고요.
고석홍ᅠ원룸부터 1.5룸, 투룸까지 있어요. 슬라이딩 도어가 있어 공간 활용이 자유로운 유형, 테라스가 없는 대신 내부가 좀 더 널찍한 곳도 있죠. 테라스는 일종의 여지로써 남겨둔 외부 공간이에요. 화분을 두거나 부족한 수납 공간을 보충하고 빨래를 너는 등 필요에 맞게 사용되기를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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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더라도 바로 곁에 나만의 외부 공간이 있으면 생활의 결은 한층 달라질 테죠.
고석홍ᅠ서울에 소규모 공동주택을 설계할 땐 특히나, 집안에서 바깥과 바로 연결될 수 있는 테라스를 두려고 하는 편이에요. 송파구에 모든 원룸이 조그만 테라스를 갖춘 다가구주택을 설계한 적이 있어요. 6평 정도밖에 안 되는 원룸이어서 당시엔 건축주가 면적을 아쉬워했는데, 지금은 세입자들이 그 공간을 무척 좋아한대요. 효율적이지 않아도 ‘저런 데가 임대가 잘 되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1인 주거 환경도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봐요.

 

임대 수익을 위해 또 어떤 것을 고려했나요?
고석홍ᅠ주변 환경을 분석해 타깃을 분명히 했어요. 천호대로 주변에는 병원과 큰 회사들이 많아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일반 원룸보단 조금 큰 10~13평의 공간을 구성했죠.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좋은 집에 살고자 하는 수요가 높아진 건 사실이에요. 예전에는 단순히 크기로 공간의 수익성을 가늠했다면, 지금은 프로그램과 시설, 건물의 브랜딩이 못지않게 중요해졌죠. 사실 상가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명확한 출입구 분리예요. 근생과 주거라는 두 용도가 섞일 때 거주자가 불편한 상황이 생겨선 안 되거든요. 티루프는 근생 출입구가 전면에 하나, 2층 측면에 하나로 총 2개예요. 거주자 출입구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안쪽에 두었죠. 아무리 작은 건물이라도 코어(계단실 및 엘리베이터)가 하나면 문제가 발생해요. 이런 게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최소한의 수익성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어요. 말하자면 공실이 안 생기는 거죠.
김미희ᅠ대형 주상복합건물은 거주자의 사생활 보호 등을 위해 주택 출입구를 분리하는 지침이 법적으로 명시돼 있어요. 그런데 그보다 작은 규모에서는 의무 사항이 아니죠. 주거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장치인데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대지 여건상 계획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요.

 

건물 앞 조경이 눈에 띄어요. 작고 사소하더라도 가로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할 거라 생각해요.
김미희ᅠ조경 덕분에 주민들이 건물을 친근하게 여기더라고요. 지나가다 꽃이 심긴 흰 벽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동네가 살았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며 건축주가 뿌듯해하더군요.
고석홍ᅠ티루프가 위치한 곳은 이면도로예요. 대로변에는 가로수나 공개공지 등이 있지만 이면도로의 가로 환경은 개개인에게 달려 있죠. 공공을 위한 작은 정원의 사례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지붕까지 외벽과 같은 재료를 사용했어요. 박공지붕이라 시공에 어려움이 따랐을 텐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고석홍ᅠ패널링된 콘크리트 벽돌을 사용했어요. 금속을 먼저 댄 다음에 타일을 붙이는 방식이죠. 티루프 북쪽으로는 고층 건물이 여럿 들어서 있는데요, 거기서 내려다보면 지붕이 곧 입면이나 다름없어요. 사실 공사 전 예산이 다소 초과돼 지붕을 금속으로 바꾸는 걸 고민하기도 했어요. 하자 발생률도 적고 공사가 훨씬 수월하거든요. 그랬더니 건축주와 시공사가 절대 안 된다며 오히려 저를 설득하는 거예요. 건축주는 금액을 좀 더 부담할 테니 확신이 있다면 그대로 진행하자고 이야기했고요. 우여곡절 끝에 준공하고 건물을 멀리서 찍은 사진을 보는데, 순간 아차 싶었어요. 이 길에서 보이는 것만 생각하는 데 그쳤던 거죠. 어딘가에서는 이 건물의 지붕만 볼지도 모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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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건축의 프로젝트를 쭉 살펴보면 유독 건물이 들어설 때 거리 풍경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김미희ᅠ저희가 짓는 건물은 대개 복잡한 도시 환경에 위치해요. 그래서 단일 재료로 심플한 디자인을 구현하려고 하죠. 건물을 새로 지음으로써 도시에 여백을 만들려는 의도랄까요. 좁고 복잡한 골목에 놓인 큰 건물이라도 그저 친근하고 담백한 담장처럼 인식됐으면 했어요. 한 건물이 있기까지 무척 다양한 이해관계가 발생하는데, 그런 것들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좋은 건축물이 만들어진다고 봐요. 건축주 개인의 의견뿐만 아니라 도시 혹은 공공 차원의 의견을 수용할 사람은 사실 건축가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민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그 도시 또는 길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건축주에게 많이 전달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건축주가 이기적이어서 도시를 고려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단지 도시와 공공의 관점에서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니까요. 그 과정에서 의견이 갈리기도 하고 수용되기도 하지만 되든 안 되든 계속 제안은 하는 것 같아요. (웃음)
고석홍ᅠ티루프는 동네 사람들도 관심을 많이 갖는 건물이에요. 길 가다 멈춰 벽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지나가며 한 번씩 쳐다보곤 하죠. 긍정적인 현상이에요. 왜 이런 건물이 들어섰을까 궁금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도시를 향해 저마다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죠. 서울에는 50평~100평 내외의 작은 필지가 많은 비중을 차지해요. 이러한 작은 개체 하나하나가 좋아져야 결국 도시가 긍정적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해요. 

 

작은 개체가 나아져야 도시가 좋아진다는 말, 당연하지만 새삼 중요하게 들리네요.
고석홍ᅠ티루프 설계의 표면적 목적은 건축주 가족의 삶과 노후 대비에 있죠. 개인의 욕구와 지역을 이롭게 만드는 요소 간 접점을 찾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클라이언트의 삶, 건물의 수익성, 동네, 건축적 가치를 모두 고민해 결과물을 내놓고자 하죠.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도 항상 미약해 보여요. 우리의 제안이 정말 도시에 어울리는 것일까, 사람들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하고요. 늘 저희를 따라다닐 고민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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