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를 감각하는 찻자리, 초심헌

[Wellness Lifestyle] ② 김용재 청년청담 대표
에디터. 최성우  사진. 곽신  자료. 김용재

 

‘웰니스wellness’는 몸, 마음, 정신이 조화를 이룬 최선의 상태인 ‘웰빙well-being’에 도달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한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인지, 웰니스를 키워드로 내세운 활동과 제품, 서비스가 넘쳐난다. 하지만 웰니스는 단기간에 소비되는 트렌드가 아니다. 오래 지속되어야 할 문화,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요소가 바로 ‘웰니스 라이프스타일Wellness Lifestyle’이다.

건강하고 균형있는 삶을 추구하는 웰니스 라이프스타일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먹거리로 치유와 회복을 이야기하는 사람, 명상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고 가꾸는 사람, 자기만의 호흡으로 즐기며 달리는 사람, 요가를 통해 중심을 잡고 매일 수련하는 사람,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제철 음식과 차를 나누는 사람.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살아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웰니스 라이프스타일이 멀리 있지 않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Wellness Lifestyle
① 오직 나를 위한 러닝 — 김성우 마인드풀러닝 스쿨 코치
② 계절의 변화를 감각하는 찻자리, 초심헌 — 김용재 청년청담 대표
③ 나의 몸은 내가 먹은 것으로부터 — 황효진 인성물산 대표
④ 몸을 도구로 쓰는 명상, 요가 — 신지혜 나투라 프로젝트 대표
⑤ 나를 발견하고 힘껏 감싸 안는 삶 — 최소연 들을리 소향 대표
⑥ 노No무리 라이프, 주체적인 농촌 생활 — 오남도 · 정광하 꽃비원 대표
⑦ 자극 대신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 — 경서윤 마인드풀니스 명상안내자
⑧ Life Curators 8인

 


 

김용재 씨의 본캐는 국제기구인 유엔세계협회연맹 아시아태평양지역 수석담당관으로, 유엔이 정한 지속가능 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를 알리고 미래세대가 동참할 수 있도록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 활동을 진행하는 일을 한다. ‘부캐는 청년들이 차를 매개로 소통하고 차문화를 전파하는 커뮤니티 청년청담을 운영하고 있다

부캐가 오히려 강렬하게 발화해 무엇이 본캐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차와 식물에 진심인 용재 씨. “내 집에서 계절감을 느끼며 차를 마시고, 제철 음식으로 한 상 차려 가족들, 다우들과 나누는 것이 웰니스가 아닐까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나이답지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바쁜 일상 중에서도 차 한잔 나누는 일을 놓치지 않고, 30년째 차를 즐기고 있는 김용재 대표를 만나기 위해 그의 찻자리가 있는 초심헌에 발을 내디뎠다. 

 

©BRIQUE Magazine

 

차와 식물이 받쳐주는 일상 

 

요즘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제가 곧 마흔이 되는데요. 요즘이 제일 바쁜 것 같아요. 삶의 균형이 흔들린다고 느껴질 정도로요. 저로서도 굉장히 이례적인데요. 그렇다고 번아웃이나 공황장애를 겪지는 않았어요. 차와 책이 제 중심을 잡아줘 그런 것 같아요. 그 가운데에는 초심헌이 있죠. 

 

초심헌이라면, 지금 저희가 이야기 나누고 있는 이곳인가요? 

. 맞아요. 보통 초심헌이라고 말씀드리면, “그래, 초심을 지키는게 중요하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여기서의 초심풀 초草자와 마음깊어질 심深을 써요. 고려시대 이규보의 한시에서 착안했어요. 우거진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 속세를 떠나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죠. 제게는 마음 속의 집이에요. 차를 마시고 있는 바로 이 장소가 초심헌이자, 저희집이 곧 초심헌이에요. 
본래 방 한 칸을 다실로 꾸미고, 차를 마셨어요. 그 안에서 식물도 키우고 있었는데, 겨울이 되니 추워서 쉼을 얻을 수 없더라고요. 다구를 들고 나와서 거실을 점거하게 됐죠. 결혼하기 전, 마포에서 혼자 살 땐 집 전체가 차와 관련된 물건들로 가득했어요. 그때는 집과 초심헌이 일체였다면, 지금은 물리적 한계를 두고 있지 않고 제 마음 안에 자리잡은 공간이 되었어요. 

 

이규보 한시 
涼風吹暑去 紅樹尙交加
入夢唯鄕曲 嬰心是國家
草深蘭更馥 霜重菊猶花
世味初嘗鼎 悠哉且飮茶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물리치고, 
오만 숲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니, 
꿈꾸는 것은 오직 고향 마을이요, 
맘에 걸리는 것은 바로 국가일세. 
풀이 무성하니 난초는 더욱 향기롭고, 
서리 짙으니 국화는 오히려 피었네. 
세상 맛을 이제 처음 보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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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 공간을 한정 지을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해요. 초심헌을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으실까요? 

이렇게 설명해보면 어떨까요? ‘공간, 시간, 인간모두 사이 간間자가 들어가거든요. 시간은 때와 때의 사이를, 공간은 비어 있는 공기 사이를,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말해요. 이 세 가지 사이에서 살아가다보면, 때로는 소모되기도 해요. 제게 이 세 가지를 이어주고 균형을 잡아주는 연결고리가 바로 차와 책이에요. 차와 책이 있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사람을 만나요. 쉬면서 소모된 부분을 채우고 일상의 중심을 잡아가는 공간이 바로 저에게 초심헌인거죠.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루틴, 습관이 있으신가요? 

어렸을 적부터 식물을 좋아해 중학교 1학년 때 15가지의 허브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 키우는 식물 개수가 그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퇴근 후 식물과 시간을 보내는 거에요. 식물은 키우기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반려동물과 비슷해요. 지금 물이 부족한지, 햇볕이 더 잘 드는 곳에 있어야 하는지, 온도는 적합한지 관찰하는 게 필요해요. 
동백꽃 필 무렵인 겨울에는 동백이, 여름에는 파초가 찻자리에 더해지면서 계절감을 함께 느낄 수도 있죠. 말라 있던 흙 사이로 물이 스며들 때 들려오는 소리에 힐링이 되기도 하고요. 잎이 노랗게 변하거나 시들해질 때면 마음이 쓰이기도 해요.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제겐 이 순간 만큼은 모든 신경과 긴장으로부터 스위치가 꺼져요. 요가, 명상, 운동을 통해 경험하시는 분이 있다면, 저는 식물이 연결고리가 되어 주고 있어요. 

 

가족들과도 차를 자주 드시나요?

제가 방에서 나와 거실로 찻자리를 옮긴 후부터 가족 간의 저녁 시간 루틴이 됐어요. 제가 피곤해서 차를 우리고 싶지 않은 날에도 어머니가 오늘 차 안 마시냐며 먼저 이야기해 주세요. 덕분에 가족 모두 둘러 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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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즐거움 

 

커피나 다른 음료도 많은데, 차는 다른 것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커피보다 차는 호흡이 조금 더 긴 것 같아요. 커피를 마시면서 한 시간 정도 대화를 한다면, 차는 두세 시간, 또는 그 이상 마시며 대화가 가능해요. 긴 호흡이 필요할 때,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자리는 차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차는 혼자 즐길 때와 여러 사람과 마실 때의 차이가 있나요? 

8세기 무렵 중국의 육우가 집대성한 차에 관한 고전인 다경茶經에 따르면, 차는 혼자 마시거나 두세 명이 함께 마시는 것까지는 차를 마신다고 보고, 그 이상 인원이 되면 그냥 즐기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여기서 마시는 것의 의미는 호흡과 조그만 변화까지 온전히 집중하는, 일종의 명상에 가까워요. 그 맥락을 이어오고 있는 흐름 중 하나가 일본의 다도라고 볼 수 있어요. 여럿이 함께 마시는 것을 선현들이 단순히 즐기는 것으로 평가한 이유는 차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많아지면 집중력이 흩어지고, 차를 우려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게 되거든요. 결국 차의 맛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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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대해 조예가 정말 깊으신 것 같아요. 차는 언제 처음 접하게 되셨나요? 

1994,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님을 따라 전라남도 선종 사찰 답사를 갔을 때였어요. 한 아주머니가 바구니에 바리바리 다구를 싸오셔서 우연히 그분과 차를 마시게 되었어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차 마시는 시간이 내겐 너무 의미 있고 좋아서 갖고 왔어라는 그분의 말씀과 그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어요. 덕분에 저도 차에 대해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었죠. 

 

차와의 만남이 정말 빨랐네요. 그럼 그때부터 정기적으로 차를 마시기 시작했나요? 

우선 차에 관한 책을 보기 시작했죠. 당시 대원사에서 나온 포켓북 시리즈 중 다도라는 책을 보고 흉내내면서 차를 마셔봤고요, 1997년 경주 옥산서원에 갔을 때 어머니께서 사주신 다기 세트가 제 첫 차도구였어요. 그때 제가 살 수 있는 제일 귀하고 비싸고 좋은 차는 태평양 오설록의 억수였고요, 제가 키운 허브를 말려 만든 민트차를 집에 오시는 손님들께 내드린 기억이 있어요. 
2022년 첫 책 출간 후, 북토크를 했는데 친구 어머니께서 제 중학생 때의 일화를 들려주시더라고요. 저희 집을 방문한 친구와 친구 어머니를 못 가게 하고 계속 차 우려서 권했대요. 그때부터 이미 진심이었나봐요.(웃음) 

 

 

차를 마시는 청년들 

 

중학생때부터 차에 진심이었다니 정말 놀라워요. 커뮤니티 청년청담은 어떤 모임인가요? 

2014년부터 함께 차를 마시고 소통을 하는 작은 모임으로 시작해, 20165월부터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식 모임으로 전환했어요. 그게 바로 청년청담이에요. 청년들이 편안하게 소통하고 차를 경험하고 하는 자리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다양한 차를 비교해서 마셔보는 경험도 차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깊어지는 데에 매우 중요해요. 혼자서는 여러 종의 차를 사는 것도 부담스럽고, 한번에 소비할 수도 없어요. 커뮤니티가 있다면 가능하죠. 자연스럽게 매월 그 시기에 맞는 차를 선정해 다양한 종류의 차를 함께 마셨어요. 5월은 한국, 중국, 일본의 녹차 11가지, 6월은 일본 말차 8가지, 7월은 중국 의방 지역의 햇 보이차 6가지, 그 이후에는 백차, 오룡차, 홍차 등 매월 다른 종류의 차를 대략 80여 종을 마셔봤더라고요. 

찻자리의 테이블은 나무로 된 것이 좋고요. 한잔의 차를 우리기 위해 필요한 물도 준비해야죠. 물을 끓이기 위한 탕관은 금속으로 된 것, 찻잔은 흙으로 빚은 도자기, 물을 끓이고 도자기를 굽기 위해서는 불이 빠질 수 없죠. 결국 차 한잔 마시는데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가 필요하고, 그걸 주제로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셔 찻자리를 가졌어요. 워터 소믈리에와 일곱 가지 생수로 우린 차를 비교해 보고, 금속 공예가와 함께 구리탕관, 주석 탕관, 은탕관에 물을 끓여 비교해서 마셔보았죠. 

6세기 즈음 이미 차를 우리기에 좋은 물에 대한 정리는 완성돼 있었어요.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고 우리가 몸으로 체득하는 것과 책으로 익히는 건 완전히 다르잖아요. 참고로 차를 우리는 데에 적합한 물은 삼다수, 백산수를 추천해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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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새로운 프로그램의 커뮤니티로 변모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주제를 정하나요? 

저희는 한 달에 한 번 20명씩 모여 찻자리를 가지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어요. 매달 같은 멤버는 아니고, 신청을 받았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종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한옥 무계원을 대관해 찻자리를 가질 계획을 세웠죠. 전시와 공연을 진행하면 대관비를 50% 할인해 준다는 정보를 듣고, 청년청담 멤버들의 다구를 모아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다관 전시를 열었어요.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거문고 수석연주자 선생님을 모셔서 연주를 들으며 차를 마시는 큰 문화행사를 주최하기도 했죠. 2018년 가을에는 규모를 키워 삼청동 이음더플레이스를 대관해 도예 전공 학생들이 전시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해 주고, 한중일 차를 경험할 수 있는 멋진 찻자리도 마련했었죠. 막상 청년청담 멤버들은 차 한잔 마시지 못하고 스태프 역할만 했다는 점에서는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해외 교류도 했다면서요. 덴마크 코펜하겐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2018년 제가 일본 도쿄 출장 중에 사쿠라이 배차 연구소라는 찻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바테이블에 앉아 오마카세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백인 여성분이 눈에 띄었어요. 서양인이 명상하듯 차에 푹 빠져들어 마시는 모습이 신기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더니 덴마크에서 오셨고 동아시아 차를 북유럽에 수입하며 코펜하겐에서 공간도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허브차를 수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는 애국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국 차 역사와 문화에서 대해서 강의를 해드렸죠. 이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천, 여주, 경주 백암요 장작가마 불 때는 것부터 하동 차밭 투어, 한국 차문화를 연구해오신 박동춘 선생님과 대화 시간까지 주선했죠. 그분이 코펜하겐 컨트리하우스에 초청해 주셨어요. 가보니 스케일이 남다르더라고요. 캐슬castle, 진짜 성이었어요. 

 

코펜하겐에서의 경험을 좀 나눠주세요. 

코펜하겐 대성당과 로열 코펜하겐 본점 옆 골목에 위치한 찻집 싱 테후스Sing Tehus’에서 한국 차 문화를 알리는 행사를 진행했어요. 청년청담 멤버 11명과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으로 고려청자를 재현한 도예가, 거문고 수석연주자, 한의사, 전통 다식을 만드는 셰프 등이 참석해 우리나라 차문화를 알렸죠.

1000년 전에 중국의 송나라, 한반도의 고려,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는 떡차를 갈아서 가루차를 격불擊拂*해 마시는 차문화를 즐겼었죠. 고려는 그 시기 비색 청자 기술을 완성해서 차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재현한 청자에 차를 담아서 설명했어요. 동아시아의 차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서 개성있게 발전해온 맥락을 조명함으로써 한국 차문화의 특색과 매력을 강렬하게 전달했어요. 


*격불擊拂
말차를 만들때, 다선(말차채)을 빠르게 움직여서 거품을 내는 것.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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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감을 느끼며 사는 게 웰니스 

 

웰니스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좀 특이하긴 했죠. 식물 좋아하고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지내서 또래와 다르게 나물 반찬도 좋아했고요. 어머니께 아주 구체적으로 세발나물 먹고 싶어. 묵나물 먹고 싶어를 외치던 어린이였어요. 저는 제철에 나오는 음식은 꼭 먹어야 했어요. 꽃게 나오는 철에는 살아 있는 꽃게를 쪄야 하고, 송이버섯과 능이버섯 철이면 바로 주문해 두고요. 지금도 며칠 뒤에 송이버섯이 도착할 거에요. 먹는 것에 진심이에요. 제 입에서 뭐 먹고 싶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매우 좋지 않은 상태라고 할 정도죠.(웃음) 

 

이미 삶 속에 웰니스가 스며들어 있어 보여요. 스스로의 언어로 웰니스를 정의해 주신다면요? 

저는 지속가능한 미래와 발전이라는 화두로 강의를 하고 캠페인을 하고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실천하게 하는 동력은 어떤 구호나 당위가 아니라 감성적이고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웰니스, 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재정적으로 넉넉한 것만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고 살아가는 것 그 자체에서 얻는 만족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에서 느끼지 못했던 계절감을 용인으로 이사온 후부터 확연히 느끼고 있어요. 초록으로 우거져 있던 창 밖의 산이 붉게 물들고, 또 조금만 지나면 잎이 다 떨어져서 앙상해져요. 집에서 키우는 식물도 마찬가지에요. 10월이 되니 동백의 꽃봉우리가 맺히기 시작했거든요. 빨간 꽃이 필 때가 되면 겨울이 온 거예요. 파초가 우거지고 풍란이 피면 여름이죠. 그 계절감은 꽃을 통해서 알 수 있어요. 우리가 탄소 발자국을 적게 하기 위해 제철 음식을 먹는다고 하는데, 사실 제철에 나는 먹거리가 제일 맛있고 건강에도 좋아요. 제가 정의하는 지속가능한 웰니스는 계절감을 느끼고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돌이켜 보니까 제가 추구하던 삶이 그런 거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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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계절감은 어떤 점이 있나요? 

차도 마찬가지죠. 차 수확의 계절은 봄이에요. 장흥 보림사에서 청태전이라는 차를 오래 전부터 만들어 왔어요. 그 차를 만드는 평화다원에 계신 할머니가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차꽃이 벌들에게 마지막 밥을 준다. 차는 벌들에게 마지막 밥을 주는 나무야라고요. 
차꽃이 제일 늦게 펴요. 10월이면 딱 피는 계절이에요. 가을이면 낙엽지고 이제 모든 게 끝날 시기잖아요. 이때 꽃이 피는 나무는 차꽃밖에 없어요. 보통의 과실류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차는 꽃이 피고 바로 열매가 맺히는 게 아니라 내년 이맘때 맺혀요. 열매와 꽃이 같이 맺혀 있는 실화 상봉수라고 해요. 1년이 걸려서 열매가 맺혀요. 그래서 충분히 꿀을 수확하지 못했던 벌들이 겨울잠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꿀을 차꽃에서 수확한다는 얘기를 할머니께서 하셨던 거죠. 의식적으로 명상을 하거나 식생활을 조절하지 않아도 계절이라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통해 만족감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걸 누리려면 여건이나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시간 여유, 재정적인 여유가 없이는 어려울 수 있어요. 여유에 대해서 말씀하시니 떠오르는 게 있는데요. 제 후배가 가끔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보자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하늘 사진을 찍어서 올려요. 각자가 가질 수 있는 여유의 한계가 있을텐데, 이 친구는 하늘을 보는 걸로 여유를 찾는거죠. 

 

마지막으로 처음 차를 접하는 분들께 차를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면요. 

차 종류를 비교해 보면서 마셔보라고 말씀드려요. 다구를 먼저 마련하는 것보다 차 마시는 행위 자체에 흥미를 갖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사실 다구는 머그컵만 있어도 충분해요. 나에게 맞는, 취향에 맞는 차를 찾는게 우선이죠. 마시다 보면 와인과 마찬가지로 자신과 맞지 않는 종류를 발견하게 돼요. 좋은 차를 좋은 다구로 우렸는데 물이 나빴을 수도 있죠. 똑같은 다구 두 개를 놓고, 차를 다르게 하거나 물을 다르게 해서 비교하는 형태로 차를 드셔보세요. 그러면 무조건 두 가지 중 하나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기억으로 남아요. 그러면서 재미가 생기거든요. “! 확실히 수돗물보다 생수가 낫네. 확실히 나는 녹차보다는 홍차가 맞는 것 같아. ~ 확실히 나는 뜨거운 물로 했을 때보다 약간 식힌 게 나은 것 같아.” 이런 것들이 생기면서 사람의 호기심과 탐구심이 작동하게 돼요. 
가속도를 붙이는 방법은 같이 마실 사람을 만드는 거예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혼자 먹다 보면 그저 그렇게 느끼고 시들해질 수 있죠. 차를 함께 즐기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삶 아닐까요. 

 

 

김용재
정치학을 전공하고 국가 간 평화로운 공존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진로를 모색해 현재 유엔세계협회연맹 서울사무국 수석담당관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총괄하고 있다. 가천대 창업대학 초빙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어린 시절부터 식물 키우기와 차 마시기가 삶의 큰 영역을 차지해 차를 통해 사람과 소통하고 충전하고 성장해온 경험으로 청년 차문화 커뮤니티 청년청담을 이끌고 있다.

 

‘Wellness Lifestyle’ 전체 이야기를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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