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최성우 객원 글 & 자료. 아틀리에 이치 Atelier ITCH
처음 만난 건축주는 새로운 집을 짓는다는 설렘이나 기대감이 아닌 크게 지쳐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된 집을 매입해 부푼 마음을 안고 디자인과 공사를 직접 진행했지만, 1년 이상 진척이 없이 시간만 보냈기 때문이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 우리가 처음으로 마주한 현장은 수직과 수평이 맞지 않고 기준도 없이 목상(木狀)이 마구잡이로 세워져 있는 상태였다. 이미 예산의 상당 부분을 소비했고, 공간의 구획 또한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이어서 건축주는 완성만 되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에게 초기의 설렘을 되찾아 줄 수 있는 공간, 그들과 닮은 공간을 기획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건축주 부부의 일상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평범하지만 다정하고 아기자기한 삶을 사는 이들이라 느껴졌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내의 작가 활동명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흔한 김씨 성에 어딜 가든 한 명 쯤은 만날 흔한 이름이라 ‘흔흔’이라 활동명을 정했다고 했다. 평범한 일상과 기분, 소소한 것들을 특별하게 여기고 기록하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꾸밈 없지만 담담하고 다정하게 일상을 담아내는 집, ‘노멀하우스Normal House’를 계획하게 됐다.
노멀하우스가 위치한 서울 미아동 주택 골목은 오래된 집들이 비좁게 붙어 있는 동네다. 집들은 서로 경계가 없이 옆집과 지붕과 통로를 나눠 쓰고 있고, 기울어진 전봇대와 늘어진 전깃줄이 골목을 따라 휘감고 있다. 작은 정원을 감싸는 담장은 외부 벽면과 함께 간결하고 담백한 형태와 컬러로 정리해 주변 골목과 대비돼 집이 도드라져 보이도록 했다. 더불어 출입구의 천장을 덮는 금속이 담장을 따라 얇게 연결되도록 해 기와지붕과 담장의 경계를 날렵하게 정리, 주변과 대비되는 인상을 갖도록 했다.
담장을 넘어 내부로 들어오면, 두 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좁은 골목으로 채광이 넉넉히 확보되지 않았지만, 마당과 마당을 바라보는 창으로 햇빛이 충분히 들어 왔다. 처음 현장에 방문했을 때, 마당 면적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위치에 패널로 만든 창고가 있었다. 수납 공간 확보를 위한 목적이라 판단했지만, 집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절반 이상으로 줄어 들게 되어 과감히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대신 해당 위치에 담장보다 높은 나무를 두어 햇빛을 받고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정원을 확보했다. 주택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작은 마당 덕분에 부부는 많은 화분을 관리하는 ‘식집사’로서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시작했다.
실내에서 가장 중요하게 계획한 지점은 넓은 주방과 다이닝 공간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한 넓은 주방, 지인들을 자주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넓은 다이닝 공간이 필요했다. 거실의 가장 긴 벽면 전체를 주방 공간으로, 바로 맞은편에 긴 다이닝 공간을 두어 함께 요리를 준비하고 식사를 즐기는 부부의 일상이 잘 담기길 바랐다. 길고 넓은 주방 공간의 확보는 쾌적한 조리 환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수납 공간이 충분히 확보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