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으로 충분한’ 삶을 위한 공간

UDS가 전하는 ‘무지 호텔’ 이야기
ⒸNacasa & Partners Inc.
글 & 사진. 도쿄(일본)=김윤선  자료. UDS, Ryohin Keikaku

 

지난 4월, 도쿄 긴자에 무지호텔(MUJI HOTEL)이 문을 열었다. 2018년 선전과 베이징에 이어 무지(MUJI)가 세 번째로 만든 호텔이다. MUJI는 1980년 일본에서 설립돼 가구와 의류, 문구, 식품 등 생활 전반에 걸친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이름에 걸맞게 ‘상표가 없는(무인 無印), 좋은 물건(양품 良品)’을 통해 ‘이것으로 충분하다(This is enough)’는 브랜드의 철학을 전파해 왔으며, 특유의 단순하고 간결한 디자인 덕분에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다.

생활용품을 만드는 브랜드가 호텔을 열었다고 하면, 누군가는 의아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2004년 이미 레디 메이드(Ready-made,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조립하도록 나온) 주택인 ‘무지 하우스(MUJI HOUSE)’를 선보여 브랜드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한 MUJI가 그들의 철학을 응축할 수 있는 또다른 공간인 호텔 사업으로 그 경계를 확장해나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MUJI에게 호텔은 단순히 숙박시설이 아니라, 브랜드의 제품과 그들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더 나아가 브랜드의 ‘세계관’을 고객에게 마음껏 선보이는 일종의 ‘쇼룸’과도 같은 공간일테니까.

그렇다면 이 거대한 쇼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이것으로 충분한’ 삶과 공간은 호텔에서 대체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브리크 brique>는 MUJI HOTEL을 설계한 UDS에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기로 했다. UDS는 MUJI HOTEL 베이징과 긴자를 설계하고, 운영까지 맡고 있는 일본의 건축사무소로, 호텔을 비롯한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강남의 카푸치노 호텔과 강원도 정선의 파크로쉬 리조트를 설계했고, 내년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새로운 호텔을 오픈할 예정이다.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4월의 끝자락, 도쿄 하라주쿠에 위치한 UDS의 사무실에서 디자인 분야를 총괄하고 있는 나카하라 노리토 부사장(CCO : Chief Creative Officer)을 만났다.

 

나카하라 노리토 부사장을 UDS사무소에서 만났다. ⓒBRIQUE Magazine

 

무지호텔이 중국 선전과 베이징에 이어 도쿄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왜 ‘긴자’였을까.

긴자 인근의 유라쿠초 지역에 18년간 운영해 온 MUJI 본점이 있었다. 이 본점을 현재 자리로 이동하면서, 건물 상부에 호텔을 함께 기획하자는 제안을 MUJI로부터 받았다. 긴자 지역은 ‘비싸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고, 도쿄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넘버원(No.1)’ 상권으로 불리우는 곳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MUJI에서 플래그쉽 스토어와 일본에서의 첫 MUJI HOTEL을 오픈하는데 적합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지난 4월 문을 연 무지호텔 긴자 ⓒBRIQUE Magazine

 

호텔 설계에서 베이징과 긴자의 차이점이 있었다면?

호텔에서 추구한 컨셉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Anti-gorgeous, Anti-cheap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저렴하지도 않은)’이다. 기본적으로 이 컨셉을 가지고 설계하되, 지역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개성을 살리는 식이다. 중국 선전에 있는 MUJI HOTEL 또한 우리가 설계하지는 않았지만, 기본 컨셉은 이와 동일하다. 

 

그런데 긴자는 ‘Gorgeous’의 끝판왕 이미지이지 않나. (웃음)

지금 긴자*의 어느 건물에 들어가도 값비싼 물건은 차고 넘친다. (웃음) 하지만 MUJI가 말하는 ‘Anti-gorgeous, Anti-cheap’에는 비싼 물건이 아니어도 마음이 따뜻하고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전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가나이 마사아키 MUJI 회장의 말씀을 빌자면, 옛날에는 가격이 비싼 물건을 고급이라고 치는 분위기가 지금보다 강했지만, 이제는 가격보다도 그 분위기나 공간감이 주는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해졌다. 가격이 기준점이라기 보다는 고객이 느끼는 기분이 더 중요해진 거다. 이는 MUJI의 핵심 가치인 ‘이것으로 충분하다’와도 상통한다.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긴자에 위치한 무지호텔 ⓒBRIQUE Magazine

 


*긴자  ‘은화를 만드는 거리’라는 뜻을 가진 도쿄의 유명 번화가로 도쿄의 첫 백화점이 들어선 곳이다. 도쿄에서 가장 비싼 거리, 상류층의 거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최신 부티크와 고급 백화점이 거리를 메우고 있어 일본의 고급스러운 쇼핑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호텔 설계에서 MUJI의 핵심 요구사항이 무엇이었는지.

‘Anti-gorgeous, Anti-cheap’이라는 컨셉을 공간으로 구현하는 것. 너무 화려(gorgeous)하지도, 너무 저렴(cheap)하지도 않은 그 중간의 지점을 공간에서 표현해달라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우리는 건축 재료에서 그 지점을 찾고자 노력했다. 나무, 흙, 돌, 원단 등의 자연 소재를 쓰고, 재료의 가짓수를 최대한 줄이고자 했다. MUJI에는 특히 오크우드(Oak Wood)가 사용된 제품들이 많아서, 나무의 자연스러운 톤을 살리기도 했다. 설계하면서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가 “디자인 ‘Too Much’ 하게 하지 말아요”다. (웃음) 결국 모든 것이 디자인되어야 하지만 디자인하지 않은 것처럼, 너무 과하게 디자인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객실 Type A ⒸNacasa & Partners Inc.
객실 Type G ⒸNacasa & Partners Inc.
객실 Type I ⒸNacasa & Partners Inc.

 

호텔에서의 경험이 MUJI 제품의 소비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주문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다. MUJI의 상품을 체험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만드는 것 또한 MUJI HOTEL 긴자의 목적이자 과제였다. 일례로 긴자 지점에 쓰인 세면대와 욕조는 기성 제품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디자인한 제품으로 베이징 지점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는데,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고 반응이 좋았다. 현재 상품화를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품화를 검토 중인 세면대와 욕조 ⒸNacasa & Partners Inc.

 

설계에 있어 난관이나 제한 사항이 있었다면?

호텔이 있는 7층부터는 원래 오피스로 계획된 공간으로, 도로에 면한 쪽에만 창문을 낼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객실은 실마다 반드시 창문이 있어야 하지 않나. 모든 객실이 창문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객실 평면을 폭이 좁고 안으로 깊은 형태로 구획해야 했다. 마치 ‘장어’가 들어가서 잘 법한 공간처럼. (웃음)

너비가 좁은 방은 특히 평면 계획상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래서 수전 부분을 방 안쪽에서 엇갈리게 배치하는 등 디자인에 세부적인 조정이 필요했다. 이전에 교토에서 수행한 프로젝트 중에 ‘칸라 교토(Kanra Kyoto)’라는 호텔이 있는데 그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설계할 때 꽤 애를 먹었는데 당시의 경험으로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겨서 이번에 큰 도움이 되었다.

(왼쪽부터) 객실 TYPE D, G, E. 대지와 건물의 제약 조건때문에 폭이 좁고 안으로 깊은 객실로 설계했다. ⒸMUJI

 

일본에는 좁고 깊은 형태의 땅이 많아서인지 MUJI HOTEL 객실과 같은 세장한 평면 형태를 가진 건물이 많은 것 같다.

특히 교토에 그런 땅이 많은데, 옛날에는 도로에 면한 출입구 쪽의 폭이 넓을수록 땅이 비쌌다고 한다. 그래서 좁고 깊게 분할해서 여러 사람이 토지를 나눠 갖게 된 거다.

 

한국 사람들은 좁고 깊은 공간보다는 최대한 외부에 많이 통하는 공간을 선호한다. 아파트 역시 베이*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확실히 ‘콤팩트(Compact)’한 공간을 선호하는 편이고, 그에 익숙하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기후 탓이기도 하고. 일본과 한국의 기후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일본에는 한국과 같은 온돌 문화가 없기 때문에 겨울철에 특히 더 춥다. 너무 추워서 창문이 없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웃음) 일본이 고속 성장을 해오면서 획일적인 평면을 가진 주택들 -이를테면 한국에도 많은 복도식 아파트 같은- 이 많이 보급되었는데, 이미 거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더 이상 발전시키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베이(Bay) 발코니를 기준으로 건물의 기둥과 기둥 사이 공간 중 햇빛이 들어오는 공간을 말한다.


 

특별히 담고자 한 가치가 있다면?

1~6층까지 저층부에는 MUJI 매장이 있고, 6층 일부~10층까지 고층부는 호텔로 구성되어 있는데, 교차점인 6층을 MUJI의 세계관과 UDS가 생각하는 가치를 담는 핵심 공간으로 기획했다. 우리가 공간 설계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역성(Locality)’이다. 특히 호텔 공간 설계에 있어서는 손님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MUJI HOTEL 역시 지역 주민에게 열려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과 갤러리, 손님과 지역 주민이 모두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MUJI에 적극적으로 제안해 계획했다. 6층은 어느 곳보다도 MUJI와 많은 논의를 거쳐 탄생된 공간이다.

 

호텔부(6~10층) 공간 구성 다이어그램 ⓒUDS
6층 디자인 서적 라이브러리와 살롱은 호텔 손님뿐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 열린 공간이다. ⒸNacasa & Partners Inc.
정기적으로 전시와 행사가 열린다. ⒸNacasa & Partners Inc.
모두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BRIQUE Magazine

 

지역 주민 외에 ‘타깃 고객’이라고 할 만한 대상이나 특정한 이미지가 있었는지?

긴자에 있어서 비싸고 고급스러운 호텔이 아니라, 긴자에 오는 전 세계 사람들 누구나 머물 수 있는 가격대의 호텔을 만들자는 취지가 있었다. 그에 대한 실행 방침이 365일 동일한 가격에 객실을 판매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호텔이 성수기, 비수기 등 시즌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판매한다. 하지만 MUJI HOTEL은 처음부터 균일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건 베이징도 마찬가지다. 또한 호텔 예약 대행사이트에서는 객실 예약이 불가능하다. 오직 MUJI HOTEL 웹사이트에서만 예약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가격 정책은 누구의 제안이었나?

MUJI의 제안이다. 실질적인 호텔 운영은 UDS에서 맡고 있기 때문에, 시즌마다 가격에 차등을 두는 것이 사실 우리에겐 더 이익이다. (웃음) 하지만 MUJI는 호텔도 하나의 ‘상품’이라는 개념으로 가격을 변동하지 않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그에 동의했다.

 

6층에 위치한 로비 데스크 ⒸNacasa & Partners Inc.

 

UDS는 공간 기획, 설계, 운영을 겸하는 회사다. 기획과 설계는 비슷한 결이지만 운영은 전혀 다른 문제일 것 같은데.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나?

기획(planning)-설계(design)-운영(operation)의 균형이 중요하다. 보통은 기획과 설계가 완료되면 운영하는 회사에 바통터치를 한다. 하지만 기획과 설계에서 의도한 부분들이 운영 측에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고, 이렇게 되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획-설계-운영을 엮어서 운영하는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이 프로젝트, 이 공간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이 공간의 주인이다’라고 생각하는 주인 의식, 내가 이 공간을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거다.

보통 설계가 끝나면 그 이후의 문제점에 대한 피드백이 제대로 안된다. 잘못된 부분에 대한 요청이 있으면 고칠 수는 있지만, 실제 운영과 사용에 대한 이야기의 전달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획과 설계, 운영이 함께 이루어지면 공간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도 상당부분 수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클라스카 호텔을 비롯해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호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최근의 호텔 설계에서 어떤 변화를 느꼈는지 궁금하다.

2003년에 클라스카 호텔을 설계하면서 우리가 일본에서 제일 처음 만들어낸 개념이 바로 ‘라이프스타일 호텔(Lifestyle Hotel)’이다. 당시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라이프스타일이 우리 삶 전반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2003년에 문을 연 도쿄의 클라스카 호텔 ⓒUDS

 

호텔 설계에서 우리가 계속해서 유지해 오고 있는 가치는 호텔이 사람이 머무르는 장소를 넘어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다만 이제는 많은 사람과 기업들이 ‘라이프스타일’에 가치를 두고 그것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어서, 마치 유행처럼 비슷한 컨셉들이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만의 확실하고 강한 컨셉으로 다른 호텔과 차별화된 공간을 계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지호텔의 층별 공간 구성을 잘 나타낸 일러스트레이션 ⓒMUJI

 

 


도움주신 분들 조장환, 임아영, Masayo Hattan, Eriko Kojima (UDS) | Aya Nishimura (Ryohin Keikaku) | 고현정 (br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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