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담는 그릇

[Space] ‘문도방 주택’ 공간 이야기
ⓒBRIQUE Magazine
에디터. 장경림, 김지아  사진. 이동웅, 윤준환  자료. 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

 

담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들 비어 있는 상태, 그 자체로 형태적 완결을 이루는 두 물체가 있다. 바로 그릇과 건축이다. 만든 이의 표현 방식과 쓸모에 따라 그 모습이 다채롭다. 하지만 존재한다고 하여 제 역할을 다한 것은 아니다. 두 물체의 본질은 ‘담음’이라는 실용성에 있다. 같은 그릇이라도 어떤 음식을 담느냐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며, 같은 집이라도 누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비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채우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의미가 된다. 그릇과 건축은 채워야 비로소 그 쓸모를 다한다.

 

ⓒYoon, Joonhwan

 

‘문씨가 도자기를 만드는 방’이라는 뜻을 담은 도자기 공방, ‘문도방’을 오랜 시간 운영해 온 건축주 부부는 성남 분당에 집을 지었다. 단순히 집만 지은 것은 아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꿈꿀 법한 공간을 실현했다. 집과 공방을 한곳에 두고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갤러리를 더해 이상적인 공간의 결합을 이루었다.

도예가 가족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문도방 갤러리 & 주택(이하 문도방 주택)은 지은 이와 사는 이의 성향처럼 수려하고 담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물도 도자기도 화려함으로 치장하기보다 기본에 가장 충실하다. 하지만 선과 면의 변형을 통해 그 존재를 은근하게 드러낸다. ‘집’이라는 큰 그릇을 빚어낸 건축가는 그저 외피를 만들어낸 것이라며,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가능성과 이야기는 사는 이의 몫이라고 말한다.

도예가가 사는 집, 어떤 곳일까?

 

ⓒBRIQUE Magazine

 

자연과 도심의 경계에 터를 잡은 문도방 주택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결코 단조롭지 않다. 기능을 달리하는 세 공간이 층층이 쌓인 이 건물은 회색 벽돌의 고유한 형태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기본의 색을 쓰면서도 위트를 잊지 않는 문도방의 그릇처럼 이 집 역시 문도방의 방식을 따랐다. 기본에 충실해 존재가 선명한 집, 문도방 주택의 면면을 살펴본다.

 

두 겹의 지역


분당구 금곡동
문도방 주택이 위치한 분당구 금곡동은 ‘계획도시 분당’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에서 비켜나 있다. 행정구역상 신도시 분당에 속하지만, 계획도시 범위 밖에 있어 도심의 외곽에 해당하는 셈이다. 대지의 주변으로는 단독주택과 카페, 갤러리가 그 나름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외곽이면서도 질서를 흩트리지 않는 건축물들이 비교적 정돈된 형태로 모여 정온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자연과 도심 사이에 위치해 생활에서 발생하는 요구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Yoon, Joonhwan

 

층층이 쌓아 올린 집


입체적 매스
주거와 공방, 갤러리가 결합된 다기능 건물인 만큼 공간을 나타내는 매스 역시 입체적이다. 입체적 매스가 주는 리듬감은 건물의 얼굴인 입면에서부터 드러난다. 박공지붕의 형태와 이형으로 쌓인 사선면의 벽돌은 집에 고유성을 부여하고 있다. 자칫 상투적일 수 있는 박공지붕이 이형쌓기 된 벽돌과 만나 질서의 변주를 만들어냈다.

 

단면도 ⓒSOLTOZIBIN ARCHITECTS

 

독립된 공간을 위한 장치
기능을 달리하는 세 공간이 한 장소에 모인 이 집에서 건축가의 화두는 모아진 공간을 다시 분리하는 일이었다. 지하의 공방, 1층의 갤러리, 2층의 주거 공간은 각각 다른 문을 갖는다. 세 공간을 잇는 공통의 계단은 없다. 개별 공간으로 진입하는 동선 역시 구분해 거주자와 방문객의 동선이 겹칠 일이 없다. 독립된 각 영역이 완결된 자기 구성력을 갖도록 층을 구분하고, 동선도 분리했다.

 

ⓒBRIQUE Magazine

 

작지만 온전한 시퀀스
입구에서 왼편 계단으로 내려가면 지하에 위치한 공방이 있다. 공방으로 들어서기 전 거치게 되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는데, 바로 선큰sunken 공간이다. 지하이지만 자연광을 들이는 이 공간은 작업 공간으로 진입하기 전 경험하는 일종의 통로로, 작지만 온전한 시퀀스가 되어준다.
도로로부터 약 80㎝ 높은 위치에 놓인 수공간 역시 연결과 분리의 기능을 갖는다. 높이 차에 의해 자연스레 외부와 분리되는 수공간은 서로 다른 두 영역을 구분하면서 징검다리를 통해 다시 연결한다. 방문자는 물 위의 징검다리를 건너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한다.

 

가변적 구성


변화에 대응하는 건축

공방이 위치한 지하와 갤러리가 위치한 1층은 철근콘크리트구조, 주거 공간인 2층과 다락은 목구조를 적용했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주거 공간이 갖는 유동성에 주목했다. 지금은 주거의 기능으로 쓰이는 상부층이 훗날 확장된 갤러리나 작업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뒀다. 이에 벽식 전통을 따르는 경골목구조와 기둥과 보로 이루어진 중목구조를 혼합해 2층과 다락 공간을 계획했다. 중목구조로 이루어진 공간은 벽을 털어 비워내면 다른 공간으로 유연하게 전이될 수 있다.

 

ⓒBRIQUE Magazine

 

층고를 이루는 방식
갤러리 공간의 개방감을 위해 1층의 층고는 가능한 한 높였다. 그릇을 둔 40평대의 공간이 빼곡해 보이지 않고 시원한 인상을 주는 것은 높은 층고 덕이다. 다만 1층의 높이 때문에 2층 주거로 가는 계단이 많아졌는데,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반 층 높이의 포치porch를 계획했다. 현관으로 들어가기 전 미리 약간의 계단을 둬 주거 공간으로 향하는 심리적 부담감을 덜고자 한 것이다.

 

ⓒYoon, Joonhwan

 

생활의 레이어


40평대의 합리적 구성

주택의 면적 역시 약 40평으로, 단독주택으로서는 그리 넓지 않은 평수다. 단순한 기본 평면에 복도와 거실, 안방과 아이 방을 계획했다. 그 이상의 것을 구성하면 어느 쪽으로든 면적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에 2층 거실과 다락에 수납 공간을 만들어 용이하고 합리적인 수납이 가능하면서도 넓은 거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작지만 알맞게 구성된 다용도실과 다락에서 이어지는 데크 공간은 생활의 그늘을 걷어준다. 데크는 건축 면적에는 포함되지 않으면서 실외 공간에서 빨래를 널어 말릴 수 있는 실용적인 공간이다.

 

ⓒBRIQUE Magazine

 

두 얼굴의 창
대지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거실의 창 구성은 문도방 주택의 매력 요소다. 분당 도심을 향하는 수평창과 자연을 향하는 코너창을 좌우로 배치했다. 도심 방향으로는 신도시를 상징하는 빌딩과 고층 아파트, 자연 방향으로는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산이 제각기 풍경을 이루고 있다.

 

ⓒBRIQUE Magazine

 

아이들의 놀이터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사는 집인 만큼 아이들을 위한 구성이 돋보인다. 낮은 층고의 다락은 주로 아이들의 놀이터로 활용되는데, 이곳에서 아이들의 방이 계단을 통해 연결된다. 다락 한편에는 2층 거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마련되어 있다. 아이가 부모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다. 욕실에 설치한 수영장 형태의 넓은 욕조도 두 아이의 몫이다. 한정된 공간의 요소들을 활용해 아이와 공간, 부모와 아이가 보다 적극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Yoon, Joonhwan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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