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을 위한 집’ 짓기

[City, Space, People] ③ Building “House for Trees”
글 & 사진. 호찌민 시티(베트남)=전종현, 이현준  도움 & 자료. VTN Architects

 

현시대 베트남 건축을 대표하는 사람을 한 명 꼽아보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 동일한 이름을 외칠 것이다. 보 트롱 니아(Vo Trong Nghia). 도쿄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한 후 2006년 베트남 호찌민 시티에 VTN Architects를 개소한 그는 베트남의 지역성에 입각한 재료와 기술을 현대적인 방법론과 동시대적인 미학으로 재해석한 그린 아키텍처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해외에서 무수한 상을 받은 그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것은 바로 ‘녹음(green)’이다. 공간 내외부에 들여온 풍부한 녹음은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의 긴장을 내려놓고 자연에 목마른 정서를 적시며 건축적 허파 역할을 해왔다.

상업 빌딩, 대학교, 유치원, 리조트, 레스토랑, 카페, 파빌리온 등 다양한 작업 중 그의 대표작을 꼽아보라면 아무래도 ‘수목을 위한 집(House for Trees)’ 시리즈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2014년부터 수목을 위시한 온갖 녹음을 주거 공간에 적극적으로 결합한 일련의 작업들은 보 트롱 니아가 생각하는 그린 아키텍처를 인간의 삶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한 예로서,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녹음이 부족한 베트남뿐 아니라 도시라는 콘크리트 구조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주거와 자연의 상관관계에 대해 한걸음 멈추어 고민할 여지를 안긴다.

이번 호찌민 시티 취재의 주된 목적이었던 VTN Architects 방문에서는 아쉽게도 보 트롱 니아와 직접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현재 보 트롱 니아는 가족과 함께 미얀마에 거주하며 명상 수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VTN Architects를 대변하는 몇몇 인물과 마주하여 간단하게나마 ‘수목을 위한 집’ 시리즈를 화제로 올렸다. 특정 직원이 사무소를 대변할 수 없다는 내부 지침 때문에 인터뷰 사진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었고, 새롭게 지은 사옥의 모습 또한 아직 일부 공간이 미완성인 까닭에 현시점에서 공개하지 못하는 점을 미리 밝힌다. 건물 외벽에 각종 수종을 재배하며 그 지속 가능성을 탐구하는 VTN Architects의 신사옥은 그린 아키텍처를 위한 거대한 실험실과도 같았는데, 그 장관을 글로 전달하기에는 도저히 역부족이라 아쉬움이 더욱 진해진다.

 

 

Interview

 

VTN Architects가 진단하는 호찌민 시티의 주거 문제는 무엇인가?

베트남 시골 지역에서 굉장히 많은 수의 인구가 도시로 밀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과 시설이 돌아갈 수 있는 사회의 역량이 역부족인 상태다. 좁은 공간에 많은 인구가 밀집해 다닥다닥 모여사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정부가 제공하는 공동주택은 그 질이 떨어진다. 호찌민 시티 교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터라 시내로 출근할 때와 퇴근 후 교외의 집으로 돌아갈 때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유발하는 교통 체증이 심각하다. 버스가 있긴 하지만 매우 불편하고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감당이 안 된다. 아직 공사 중인 지하철이 완공되어 개통하면 그나마 조금 상황이 나아질 거란 예상을 하는 중이다.

 

인구 증가와 사회 인프라의 부재가 지속되면 결국 어떤 일이 생길까?

도시의 녹지가 없어진다. 녹지가 없으면 공기가 오염되고,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신체와 정신에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그린 아키텍처를 추구하는 이유다. 덥고 습한 기후에서 살아온 베트남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녹음과 매우 밀접했다. 밀림과 어우러지는 삶이 어색하지 않았다. 도시가 빠지게 성장하고 개발되면서 단시간에 녹음을 잃게 되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우거진 녹음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 발코니 어딘가에 작은 화분이라도 놓으면서 아스팔트로 빽빽하게 들어찬 주거 환경에 자연이 깃들길 소망한다. 우리는 공간의 구조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풍부하게 녹음을 건축물에 들이려고 노력하는데, 베트남 사람들의 이런 성정 때문에 납득이 용이한 부분이 있다.

 

‘수목을 위한 집’ 시리즈에서는 무엇을 가장 중시하는가?

우리가 처음 그린 하우스에 접근할 때는 작은 화분이나 규모가 작은 수목을 이용했다. 2014년 발표한 ‘수목을 위한 집’ 작업부터는 방향성을 점차 전환했다. 집 안에 커다란 나무를 통째로 집어넣은 거다! 우리는 이런 접근 방식이 꽤나 마음에 들었고 이후 매 프로젝트마다 커다란 나무를 집에 들여온다. 물론 건축주와 처음부터 상의한 디자인의 결과다. ‘수목을 위한 집’을 진행할 때는 주변 환경에서 취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고려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건축물은 주변과 항상 상호작용해야 한다.

만약 주변이 휑하면 그만큼 건축 내부에 녹음을 가득 들인다. 지금 우리가 있는 사무실처럼 자연광이 풍부하고 바람이 풍성하게 분다면 이런 요인을 건축물에 십분 활용한다. 예를 들어, ‘Breathing House’의 경우 사람이 붐비는 지역에 위치한 밀도 높은 건물인 점을 감안해 교차 통풍으로 통풍과 환기를 극대화했다. 한편 ‘Stepping Park House’의 경우, 바로 옆에 커다란 공원이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푸른 환경을 최대한 건물로 들이려 했다. 결국 실내에 실제 녹음이 얼마나 존재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안과 밖을 막론하고 가능한 한 가장 풍요롭게 녹음을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와 방법론을 적용한 집이 탄생할 수 있다.

 

‘Breathing House’가 있는 장소에 실제로 가보니 바로 옆 건물 외관에 설치한 식물들은 모두 누렇게 말라버렸는데, 그 집 외관만 유독 초록빛으로 싱싱해서 무척 놀랐다.

우리는 녹음을 배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지 관리를 용이하게 만들어 지속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려고 노력한다. 특별히 수종 선택에 관여하는 컨설턴트를 두진 않는다. 모든 프로젝트마다 그 집과 환경에 맞는 식생은 우리가 직접 고른다. 전문가와 협업할 때도 종종 있는데 바닷가에 짓는 리조트라 해풍에 견딜 수 있는 전문 지식이 필요한 특별한 상황이었다. 그런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우리가 직접 계획한다. 유지 관리가 쉬운 식물에 대한 지식을 쌓고 건축물에 적용하는 일도 우리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그래서 새로 지은 신사옥에서는 건물 전체를 활용해 계절과 채광, 바람과 습도에 따라 어떤 식물이 잘 자라는지 다각도로 실험하려고 준비 중이다.

 

 

‘수목을 위한 집’ 시리즈에서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 4

 

① House for Trees (2014)

 

House for Trees ⓒHiroyuki Oki
House for Trees ⓒHiroyuki Oki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베트남은 녹지를 잃어버렸다. 호찌민 시티만 해도 도시의 녹지 비율이 0.25%에 불과할 정도. 도시에서 태어난 세대들은 점차 자연과의 유대를 잃어간다. 약 15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만든 ‘House for Trees’는 VTN Architects가 진행하는 동명의 시리즈의 원형이자, 도시와 녹음 사이의 괴리를 줄여보려는 노력의 시작이었다.

도시가 잃어버린 녹지를 되돌리고 커다란 나무를 이용해 고밀도의 주거 환경에 보탬이 되는 걸 목적으로 삼았다. 콘크리트로 만든 다섯 동의 집은 지붕마다 나무를 심을 수 있어 마치 하나의 화분처럼 보인다. 토양층이 두꺼운 이런 ‘화분 집’이 확산되면 우기 때 쏟아지는 폭우를 머금어 도심의 홍수를 막을 수 있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② Binh House (2016)

 

Binh House ⓒHiroyuki Oki
Binh House ⓒHiroyuki Oki

 

고밀도 주거 지역에 녹색 생기를 불어넣는 이 집에는 3대가 거주한다. 구성원 간에 원활한 소통과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도전 과제였다. 수직으로 쌓은 공간의 지붕마다 존재하는 정원 덕분에 자연통풍과 채광이 가능해졌고, 엇갈린 개방 공간을 통해 시야를 확보하며 가족 간의 소통 가능성을 높였다.

수직적으로 변주한 공간과 적절한 프로그래밍 배치 덕분에 내부는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아도 시원한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수직 농법이 가능한 공간을 확보하고 자체적으로 채소를 경작할 수 있는 경험은 고밀도 주거지역에서 큰 혜택으로 작용한다. 노출 콘크리트, 목재, 석재 등 자연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운영과 유지에 대한 지속 가능성을 높였다. 기능과 미감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잇는 건축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③ Stepping Park House (2018)

 

Stepping Park House ⓒHiroyuki Oki
Stepping Park House ⓒHiroyuki Oki

 

호찌민 시티의 새로운 주택가에 위치한 이 집은 북쪽에 공원을 맞대고 있다. 이렇게 공공녹지가 지척에 있는 건 호찌민 시티에서 매우 드문 경우다. 그래서 공원의 녹음을 집 내부와 통합해 주변 환경을 확장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일단 3개 층에 달하는 내부 공간을 대각선 방향으로 절단해 거대한 빈 공간을 만들었다.

1층의 빈 공간은 거실로 기능하며 공원을 향해 개방돼 있고 맨 꼭대기 층은 녹음으로 덮인 가족실로 사용된다. 거대한 빈 공간을 감싸는 파사드에는 담쟁이덩굴을 덮었고, 꼭대기에는 루버를 설치해 그늘을 드리웠다. 내부의 녹음과 자연광,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진 빈 공간에 들어선 녹음과 자연광, 자연스러운 환기로 인한 바람의 움직임 덕분에 마치 숲속에 있는 듯한 경험을 전달한다.

 

④ Breathing House (2019)

 

Breathing House ⓒHiroyuki Oki
Breathing House ⓒHiroyuki Oki

 

호찌민 시티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 세장형 주택은 붐비는 인파를 거쳐 아주 작은 골목을 통해 진입이 가능하다. 극도로 밀도가 높은 지역 특성상 외부 환경을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게 핵심이었다. 건물은 전면과 후면, 그리고 윗면만 개방한 상태였다. 이를 극대화하면서 인접 건물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철망을 타고 자라는 덩굴식물로 삼면을 모두 뒤덮었다. 이 부드러운 초록층은 마치 디퓨저처럼 직사광선을 막고, 과도한 노출을 방지하면서도, 고립의 위기에서 건물을 보호한다.

내부의 벽과 벽 사이에는 서로 약간씩 비껴나가며 다섯 개의 볼륨을 연결해 ‘마이크로 보이드(micro void)’를 배치했다. 다채로운 간접광과 건물 전체를 통과하는 공기의 흐름을 유도해 좁은 공간에서 깊이 있는 공간적, 시간적 연결을 만들어낸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괄목할 지점은 계속 확장하는 메가시티의 심장부에 녹색 공간을 창조한다는 데 있다. 위험한 속도로 녹음을 잃어가는 베트남 도시에 의미 있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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