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과정 속에 있다

[Interview] 푸하하하프렌즈와 나눈 집에 관한 대화들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윤선  사진. 최진보, 노경  자료. 푸하하하프렌즈

 

푸하하하프렌즈를 1년 만에 새 사무소에서 다시 만났다. 아직도 루키 같은 신선함과 특유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데, 어느덧 개소 8년 차를 맞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설계하며 종횡무진으로 바쁘게 활동하는 그들에게 촉망받는 젊은 건축가의 삶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여전히 ‘과정 속에 있다’는 웃음기 충만했지만 어딘지 꽤나 미더운 대답이 돌아왔다. 푸하하하프렌즈와 건축가의 일과 삶, 그리고 집에 관해 짧은 대화를 나눴다.

 

(왼쪽부터) 윤한진 소장, 한승재 소장, 한양규 소장 ⓒBRIQUE Magazine

 

내년도 신입사원 뽑는데 130여 명이 지원했다면서요? 엄청난 인기군요.

윤한진 지금 열 명이 함께 일하고 있는데, 이렇게 직원이 많아질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학고방 같은 데서 셋이 라면이나 끓여 먹고 있을 줄 알았는데. (웃음)
한승재 첫 2년 정도는 돈을 거의 못 벌었어요. 퇴직금 까먹으며 살다가 3년 되는 해 겨우 소득이 생겼죠.
한양규 사무소에 대한 야망이랄까. 솔직히 그런 것도 없었어요.
윤한진 너 우리 셋 중에 야망 제일 커. 이상한 게 제가 야망이 크다는 오해가 좀 있어요.
한승재 한진이는 눈을 항상 부리부리하게 뜨거든요. 그 눈 때문에 야망이 가득 차 보여요.
윤한진 단지 캐릭터일 뿐이죠. 실제론 양규의 야망이 엄청나요. 얘는 인정을 안 해.

 

세 분이 같은 회사 출신이죠. 회사에서 만나 친해졌나요?

윤한진 저와 승재는 입사 동기였고, 양규는 저희보다 1년 선배였어요. 승재가 빠른 83년생. 양규는 그냥 83년생. 저는 84년생. 한두 살 터울인데, 승재하고는 동기라서 친구 먹었죠.
한승재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양규 선배, 저 회사 그만두려고요.” 했더니, “승재 씨, 진짜 그만두려고요? 그럼 어차피 그만둘 거니께 그냥 말 편하게 혀.” 그랬어요.
윤한진 그러고 3년 더 다녔지. 양규는 회사도 선배고 저보다 나이도 한 살 많았지만, 승재랑 제가 친구니까 저랑도 친구 됐죠, 뭐. 예전에 일하다가 진짜 크게 싸운 적이 있어요. 그전까지 한 번도 나이로 언쟁한 적은 없었는데, 그때 양규가 “이 어린눔의 시키가.” 이러더라고요. 끽해야 6개월 차이인데!
한양규 그게 되게 상처였구나? 자, 이제 다른 얘기, 좋은 얘기하죠. (웃음)

 

대화에 웃음이 끊이질 않네요. ‘푸하하하프렌즈’라는 이름도 그렇고, 세 분에게 막연히 유쾌함이나 엉뚱함, 혹은 친근함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한양규 저희끼리 엄청나게 싸우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덜 그래요. 서로 좀 편해졌어요.
윤한진 번갈아 가면서 두 명이 짝을 이뤄 공격하고 한 명은 당하고 있는 구도가 한동안 있었죠. (웃음) 정작 셋만 있으면 되게 웃기지는 않아요. 관객이 한 명쯤은 필요해요.
한승재 무턱대고 웃긴 코드를 기대하며 저희를 찾는 사람도 많았어요.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니 화를 내더라고요. 이름처럼 재미있게 하자는 생각은 하지만 마구 들이대거나 무례하게 구는 걸 참거나 반기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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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취재 때 본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라는 글귀가 적힌 액자가 인상적이었는데, 새로운 사무실에도 여전히 걸려있네요. (웃음) 지금도 여전히 과정 속에 있나요?

윤한진 액자는 사실 길에서 주웠어요. 뭐가 되든 간에 공개 투표를 해서 1등을 하는 걸 써서 걸어 두자고 직원들과 다 같이 공모를 했었죠. 승재랑 저는 장난처럼 막 썼고. 양규는 뭐더라, 길에 문이 없다?
한양규 대도무문(大道無門). ‘큰길에는 문이 없다’라는 뜻이지. 윤한진 그렇게 해서 SNS에서 공개 투표를 했는데 김학성 팀장이 가져온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았어요. 왜인지는 정말 아직도 모르는데,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한승재 걸어 놓고도 구박했죠. 너무 진지하다고. 완전 별로라면서. (웃음)
한양규 좀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재미로 한 건데, 마치 저희의 정신처럼 돼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한승재 나는 저게 이미 우리의 정신이 됐다고 봐. 우리를 설명해 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윤한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훈 같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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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 풍경 ⓒBRIQUE Magazine
사무소 풍경 ⓒBRIQUE Magazine

 

정지돈 작가는 세 분을 도형에 비유했더군요. 윤한진은 세모, 한양규는 네모. 그리고 한승재는 동그라미. 절대로 셋이 함께 일을 하지 않는다면서요?

윤한진 한 사람이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농밀한 이야기를 진득하게 펼쳐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협업을 하지 않아요. 허락 없이는 간섭은 물론이고, 도움조차 줄 수 없어요. 불가침이죠.
한양규 예외는 있어요. 일 년에 한 번 정도 현상설계에 참가하는데, 의견이 일치되어야만 진행해요.
한승재 모든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엔 에너지 소모가 커요. 좋은 결과가 나오지도 않고요. 어설프게 뜻을 합치는 게 오히려 개성을 말살시킨달까.
윤한진 초반에는 셋이 같이했어요. 그때 서로가 너무 다른 걸 알았죠. 일은 진척이 안 되고, 감정싸움만 했어요. 어설프게 훈계하고 도와주는 것 또한 서로에게 큰 도움이 안 돼요. 지금은 철저하게 각자 일을 하되, 서로 칭찬만 할 수 있어요. 다른 건 금지예요. (웃음)

 

합리적인 비판도 안 되나요? (웃음)

윤한진 절대. 절대 안 돼요. 오로지 칭찬만 가능해요. 아, 승재가 양규를 칭찬하는 건 금지되어 있어요. 승재가 양규 프로젝트를 칭찬하면 그 프로젝트는 백발백중 무산되거든요. (웃음)
한승재 아이디어가 정말 좋길래 멋있다고 했더니 갑자기 클라이언트한테 전화가 와요. 영화 ‹트루먼 쇼›처럼.
한양규 그렇게 세 개 프로젝트가 연속으로 취소됐죠. (울음) 일종의 징크스예요.

 

아마 그래서 각자의 에너지가 더 제대로 발산되는 거겠죠. 성향이나 생활 태도도 다 다를 것 같아요.

한승재 우선 저는 유연한 사고를 한다는 게 장점이고요. (웃음)
윤한진 양규한테는 그게 단점이지. 양규는 다 정해줘야 해요. 예를 들어 승재가 “그림은 형광펜으로 그려야지.” 하면서 그림을 그리면 양규는 “아, 쟤는 형광펜으로 그림을 그리는구나.” 해요. 그러다 승재가 생각이 바뀌어서 연필로 그리고 있으면 당황하죠. “그림은 형광펜으로 그린다며.”
한양규 비유가 정말 적절하네.
한승재 양규는 항상 계획과 준비가 철저해요. 자기의 계획에서 벗어난 일들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야 해요. 양규가 현장에서 실측하면 딱 맞아요. 심지어 2028년까지 미래 계획도 다 정해져 있어요. 다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윤한진 둘 다 성향이 아주 분명한데, 저는 딱히 그런 게 없어요. 스스로 생각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게 싫지만은 않아요.
한승재 다시 형광펜 얘기로 비유하면 제가 “그림은 역시 형광펜이 아니라 연필로 그리는 게 좋아.”라고 하면, 한진이는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하면서 형광펜이든 연필이든 그 순간 자기 손에 쥐어져 있는 것으로 마구 그려요. 동물로 비유하자면 ‘벌꿀오소리’인데, 자기보다 큰 동물도 습격해요. 어느 영상에서 봤는데 독 있는 코브라를 잡아먹고 기절했다가, 일어나서 다시 코브라를 먹더라고요. (웃음) 아무튼 일도 빠르고, 잘하고. 막 벌려 놓고, 수습하러 다니는 스타일이죠.

 

일하는 방식은 어때요?

한양규 이미지를 믿지 않아요. 실제 대입했을 때 안 맞기 십상이거든요. 수치화된 게 가장 정확하고 편해요. 컴퓨터 작업보단 손으로 도면을 그려보는 걸 좋아해요.
한승재 컴퓨터 툴을 다루는데 능숙한 편이라 모델링을 많이 해봐요. 실제 모습처럼 만들어 검토해보죠.
윤한진 저는 모형을 정말 많이 만들어요. 승재가 아침마다 몰래 버리지만요. (웃음) 각자 노트를 봐도 다른데, 양규는 아주 정갈해요. 심지어 플래너도 써요. 항상 생각을 정돈하고 발전시켜서 그걸 노트에 옮기죠. 승재는 노트에 (이렇게) 알 수 없는 이상한 그림을 많이 그려요.
한승재 이 그림은 며칠 전 꿈에 나온 장면인데요. 염소 고기를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중략)
윤한진 저도 그냥 닥치는 대로 써요. 지금 보니 뭔가 활용해보겠다는 의지가 없는 노트네요.

 

한승재 소장의 노트 ⓒBRIQUE Magazine
한양규 소장의 노트 ⓒBRIQUE Magazine
윤한진 소장의 노트 ⓒBRIQUE Magazine

 

노트에서 성격이 보이는 듯해요. (웃음) 저도 갑자기 비유가 떠올랐어요. 세 가지 맛 아이스크림이요. 셋 다 맛있는데, 하나라도 없으면 서운한···

한승재 그럼 정해주셔야 해요. 누가 딸기 맛인지 초코 맛인지, 바닐라 맛인지.
일동 (웃음)

 

ⓒBRIQUE Magazine

 

프로젝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볼게요. 그간 주택 설계를 많이 해왔어요. 설계를 하며 느낀 변화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밀양 ‘상남자의 집’은 윤한진 소장님 아버지 댁이죠. ‘세컨드 하우스’인가요?

윤한진 아버지만을 위한 산골짜기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에요. 원래 어머니와 함께 사시는 집은 한 시간 거리에 따로 있어요. 이전부터 아버지는 항상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셨어요. 어딘가에는 작게라도 마련해두셨죠. 그러다 이번에 제대로 ‘플렉스’ 하셨어요. (웃음)
흔한 시도는 아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남자든 여자든, 결혼해서 가족이 있든 없든, 사람은 자기만의 영역이 필요한 법이잖아요. 그게 방의 형태이건, 아예 집의 형태이건 간에. 나이가 들면서 그 욕구가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저도 아내와 아들이 있지만, 집에서 제 공간을 조금이라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밀양 한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상남자의 집 ⓒKyung Roh

 

아버지께서는 그곳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세요?

윤한진 그냥 가끔 가시는 것 같아요. 일주일에 이틀 정도? 솔직히 뭘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재밌었던 건 설계할 때 요구 조건이 되게 비상식이었어요. 가스레인지는 업소용으로, 담배 피워야 하니까 대형 환풍기가 필요하다고 하셨고요. 어차피 혼자 있을 거니까 방도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욕실은 아주 크게 해달라셨고요. 그런 요구들이 무척 생소했는데, 작업을 다 하고 나서 보니까 집은 원래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내 마음대로’ 하는 거.
그동안 누군가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만 살다 보니까 건축가인 제가 오히려 머리가 굳었더라고요. 아버지는 아파트에 살아보신 적도 없고, 시골 사람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있어요. 여태껏 살아온 모든 집을 다 직접 지으셨죠. 생각해보면 어릴 적 기억 속에 집 구조가 굉장히 특이했어요. 주방에 가려면 방 두 개를 통해 가야 하는 집도 있었죠. (웃음)

 

밀양 상남자의 집 내부 공간 ⓒKyung Roh
밀양 상남자의 집 ⓒKyung Roh

 

‘괴산27호’도 공간 구성이 독특해요. 시골에 있는 집인데도 마치 도시의 집 같은 폐쇄적인 모습이죠.

한양규 서울을 떠나 제주를 거쳐 괴산에 정착한 가족이에요. 아내는 선생님, 남편은 플랜트 설계를 하시던 분인데 지금은 거기에서 다른 사업을 하세요. 두 자녀가 있는 젊은 부부인데 서울 생활에 지쳤다고 하셨죠. 막연히 서울에서 벗어나면 사방에 바깥 풍경이 보이는 개방적인 공간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곳은 전혀 다른 제스처를 취하고 있어요. 바깥으로 낸 창이 별로 없고 내부에 중정을 두어 안으로 열린 집이거든요.
시골이지만 동네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며 사는 건 도시와 마찬가지예요. 시골이든 도시든 사는 사람의 생각과 성향이 중요하죠.

 

괴산27호 ⓒKyungsub Shin
괴산27호 내부 중정 ⓒKyungsub Shin

 

제주도 ‘코끼리 잠’은 집 겸 스테이 공간이에요. 일생에 한 번 집 짓기도 어려운데, 건축주가 두 번이나 집을 지으셨다면서요?

한승재 건축주 취미가 집 짓기예요. (웃음) 보통 건축주가 집 짓는 걸 경험하면 힘들어서 두 번 다신 못하겠다고들 해요. 그런데 이분들은 두 번이나 집을 짓는다니 놀라웠죠. 첫 번째 집도 제주에 있었는데 최페레이라 건축가가 설계했고, 이 집처럼 집 겸 스테이로 운영하다가 매도했대요. 신기한 건 그렇게 집을 짓고 나중에 파는 과정에서 수익이 난다더군요.

 

코끼리잠 ⓒKyung Roh

 

건물은 보통 감가상각으로 값어치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건 새로운 이슈네요. 아무래도 건축가가 설계한 집은 그 가치가 쉽게 떨어지지 않나 봐요.

한승재 물론 건축가의 작업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치지만, 기본적으로 스테이 운영을 잘해서겠죠. 이 집도 몇 년 후에 팔고 또 새로 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웃음) 그래서인지 건축주가 특별한 요구 사항이 별로 없었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새로운 집을 짓고 그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걸 즐기는 느낌이랄까. 집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의 접근이죠.

 

요즘 사람들은 단순히 멋지고 잘 지은 집보다도 자기만의 생각과 대안을 찾는 것 같아요.

한승재 선택지가 많아진 것 같아요. 건축주가 원하는 걸 말하기 이전 단계에 그걸 가장 효과적으로 해줄 수 있는 건축가를 찾는 일도 가능해졌고요. 건축주가 직접 예민한 감각으로 짚어내죠.
윤한진 예전에는 건축주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잘 취합해서 실질적인 형태로 구현하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전문가로서 새로운 제안을 해주길 기대하는 건축주도 많아졌어요.
한양규 집을 단일 용도로 활용하지 않고, 임대 수익을 고려한다는 점도 큰 추세죠. 지금 설계 중인 집도 저층은 임대 공간으로 만들고 있거든요. ‘집 안에 골목’도 그렇고요.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자본을 합쳐서 짓기도 하고요. 건축주가 집을 짓기 위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 같아요.

 

집 안에 골목. 건축주의 주택과 더불어 원룸, 근린생활시설을 함께 지었다. ⓒKyung Roh

 

마지막 질문이에요. 좋은 집이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한양규 계속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집이요. 사실 모든 집은 다 좋은 집인데 그 집이 나랑 맞지 않아서 안 좋은 집이 되는 것 같아요. 전세든 매매든, 아파트든 주택이든 상관없이 오랫동안 살고 싶은 집이라면 그게 나에게 좋은 집이죠.
윤한진 대답하기 어렵네요. 집은 너무 개인적인 공간이라. 어쩌면 많은 사람이 아파트에 사는 것도 이해가 돼요. 어떤 집에 살고 싶냐고 하면 쉽사리 답하기가 어려워요. 오히려 ‘래미안’ 살래, ‘자이’ 살래? 하면 선택이 쉬운데. (웃음)
허가 방에서 설계한 집이든,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든 집 짓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인 것 같아요. 그런 배려가 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한승재 공원 같은 집이요. 공원은 어떤 틀 안에 있지도 않고, 그저 펼쳐져 있죠. 집도 공원처럼 뭔가를 정의하려고 하지 않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공간이길 바라요.

 

집 안에 골목 현관 ⓒKyung Roh

 

‘집 안에 골목’ 전체 이야기 담은 <브리크brique> 종이잡지 vol.5

©BRIQUE Magazine

*책 자세히 보기      https://magazine.brique.co/book/vol-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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