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도쿄에서 산다는 것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플랫한 라이프스타일의 도시
ⓒBRIQUE Magazine
글 & 사진. 도쿄(일본)=김윤선  자료. UDS

 

언제부턴가 우리에겐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이 화두다. 어떤 사전에서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개인이나 가족의 가치관 때문에 나타나는 다양한 생활 양식, 행동 양식, 사고 양식.’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개인의 삶을 움직이는 가치관이 만들어내는 삶의 패턴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사전적 의미나 추상적인 표현을 가져다 쓰지 않아도, 이미 우리 곁의 모든 것이 라이프스타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라이프스타일이란, 셔츠를 고르는 패션 취향이자 주말의 시간을 운용하는 방법이며, 때로는 지중해식 샐러드를 만드는 나만의 레시피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어떤 도시, 그리고 어떤 집에 사는가’다. 우리가 사는 공간을 이해한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머무는지가 곧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살며, 일하고 있는 UDS의 나카하라 노리토 부사장이 전해준 도쿄의 거주 환경과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서울과 닮은 듯 다른 도시, 도쿄의 어느 도시생활자의 삶을 느껴보자.

 

UDS의 나카하라 노리토 부사장 ⓒBRIQUE Magazine

 

전 세계가 라이프스타일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이다. 도쿄는 어떠한가.

물건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급’이라는 게 옛날에는 단순히 ‘물건’이었다면, 지금은 ‘체험’이 될 수도 있고, 자기가 대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고급을 받아들이는 개념이 변했다고 할까. 옛날에는 긴자에 산다고 하면, 그 사람은 비싼 물건을 소유하고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고급스러운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 역시 고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차이와 다양성을 느끼고 존중하는 것이 지금 도쿄의, 나아가서는 일본의 라이프스타일인 것 같다.

 

도쿄에서 일하는 UDS의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한다면?

UDS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것을 지향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원이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어떤 프로젝트가 생겼을 때, 누군가 “이 부분을 해보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하고 싶으면 해 보세요”라는 답이 가능한 회사다. 어떤 과정이 있을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 분명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이 UDS의 철학이자 라이프스타일이다.

 

도쿄 하라주쿠에 위치한 UDS 일본 사무소 ⓒBRIQUE Magazine
사무소 내부 풍경 ⓒBRIQUE Magazine

 

한국에서도 몇몇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일본과 비교해 어떤 차이점을 느꼈는지.

서울 강남의 카푸치노 호텔(Hotel Cappuccino)과 강원도의 파크로쉬 리조트(Park Roche Resort & Wellness)를 설계했고, 내년에는 서울 가로수길에서 안테룸 호텔(Hotel Anteroom) 오픈을 앞두고 있다. 내가 느낀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은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이다. 일본은 여러 가지 콘텐츠가 있어서 콘텐츠를 이어가면서 하나로 보이게 하는 것을 잘한다. 일본 사회는 대체로 콘텐츠가 많을수록 좋은 아이템,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에 비해 콘텐츠가 적고 하나의 강한 컨셉을 내세운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카푸치노 호텔의 로비 ⓒUDS
‘어반 라이프스타일’ 컨셉을 지향하는 카푸치노 호텔의 객실 ⓒUDS

 

이유가 뭘까.

아마도 현대의 일본 사회는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이 강한, 개인주의가 기반이 된 비교적 플랫한 사회이고, 한국은 개인보다는 사회의 위계 질서를 중요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에서 대형 회사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위에서 정하면 그것으로 간다’는 식이었다. (웃음) 처음에는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심플하게 정리되더라.

 

강원도 정선의 파크로쉬 리조트 ⓒUDS
파르로쉬 리조트 로비 ⓒUDS

 

도쿄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다. 보통 어떤 집에 살고 있나?

서울과 비슷한 점이 많다. 도쿄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맨션*이나 아파트에 많이 살고, 도시 외곽이나 고급 주거지로 갈수록 단독주택이 많다. 도쿄 사람들은 확실히 역 근처의 집을 선호한다. 서울 사람들보다 자동차를 많이 갖고 있지 않은데다 주택 내에 주차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주차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을 사거나 빌릴 때 자동차 소유 여부가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그러다 보니 역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발달했고 역에 가까울수록 집값은 비싸진다. 최근에 도쿄의 아자부라는 지역에 분양 목적의 초고급 맨션을 설계했는데 놀랄만한 가격에 분양되었다.

 

사람들로 붐비는 지유가오카(自由が丘)역 근처. 도쿄는 특히 역 중심으로 생활권이 발달해있다. ⓒBRIQUE Magazine
지유가오카 주거 지역의 하교 시간 풍경 ⓒBRIQUE Magazine
시부야의 주거 지역 풍경 ⓒBRIQUE Magazine
시부야의 주거 지역에 위치한 한 맨션 ⓒBRIQUE Magazine


*맨션(Mansion) 일본에서는 공동주택을 흔히 맨션이라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고급 분양 아파트에 붙이던 이름으로, 본래 큰 저택을 의미하지만 공공의 공동주택에 호화로움을 연상시키기 위한 호칭으로 사용했다.


중규모 이상의 단독주택이 많은 고급 주거지로 불리는 덴엔초후 지역 ⓒBRIQUE Magazine

 

도시생활자들이 주거에서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뭘까.

한국에서는 집을 리노베이션하거나 직접 수리도 많이 하지 않나. 사는 사람의 개성에 맞게 집을 고쳐 쓰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처럼 빌린 집을 리노베이션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는 ‘전세’라는 게 있어서 집을 나갈 때 돈을 돌려받지만, 일본에서는 주거비를 내면서 사는 빌린 집을 다시 돈을 들여 리노베이션하는 경우가 극히 적다. 또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개발업자가 짓는 집이 많은데 그 디자인에 거의 변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건설 논리와 경제성에 따라 만들어진 표준적인 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건축가로서 슬픈 현실이다.

 

ⓒBRIQUE Magazine

 

다양성이 없는 점이라고 보는 건가?

일본에는 ‘하우스 메이커(House Maker)’라고 이미 유닛(Unit)으로 계획되어 있는 주택을 판매하는 회사가 있다. 몇 가지 종류의 집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거기에 옵션을 추가하는 거다. 여기에서 옵션이란 방의 개수와 외장재의 색깔 정도다. 건축가에게 집을 의뢰하면 당연히 다른 집과 전혀 똑같은 집이 나올 수가 없는데, 여기에서는 기계적인 방식으로 옵션만 다른 똑같은 집들을 계속해서 공급한다. 이 집들은 어떤 다양성도 갖지 못하고, 다양성이 없으니 재미도 없다.

UDS의 창업 후 첫 프로젝트였던 ‘코퍼레이티브 하우스(Cooperative House)’는 일종의 협동조합 주택으로, ‘개성 있는 맨션이 없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다. 똑같은 집에서 탈피하고자 집마다 사는 사람이 하고 싶은 것들을 전부 반영해서 설계했다. 그래서 13가구의 집이 정말 다 제각각이다. 평면 계획은 물론이고 심지어 창문 크기도 다 다르다. (웃음) 

 

코퍼레이티브 하우스(Cooperative House),1993 ⓒUDS
ⓒUDS

 

‘코퍼레이티브 하우스’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은 어떠한가? 최근 한국에서는 젊은 층 사이에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코리빙(Co-Living)*이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새로운 시도보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이대로가 편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 많은 것 같다. 일본 역시 젊은 층에게 최근 셰어하우스의 인기가 높아졌다. 1LDK(1Bed Room, Living Room, Dining Room, Kitchen)로 구성된 작은 방에서 혼자 살던 사람들이 요즘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공간을 필요로 하고, 함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코리빙(Co-Living) Cooperative와 Living의 합성어. 공유 공간과 개인 공간을 갖춘 건물에서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주거 형태


2018년에 완공한 ‘노드 그로스 쇼난다이 (Node Growth Shonandai)’ 프로젝트는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쇼난다이역 근처에 위치한 학생 기숙사다. 이 곳은 우리가 기획, 설계부터 운영까지 맡아 하는 주택인데, 학생들이 함께 성장하기 위한 환경과 지역사회를 위한 모임 장소를 제공한다는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공용 공간은 학생들 간의 의사소통을 장려하는 곳으로 각 방에 진입할 때 부엌과 세탁실 등 공용 공간을 거쳐 가도록 설계한 점이 특징이다.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쇼난다이역 근처에 위치한 학생 기숙사 ‘노드 그로스 쇼난다이 (NODE GROWTH SHONANDAI)’ ⒸMizuki Matsushita
스탠다드 타입 룸 ⒸMizuki Matsushita
화장실과 욕실을 공유하는 공유 타입 방으로 구성된 9~10층 평면도 ⒸUDS
10층에 위치한 공용 주방. 공용 공간은 학생들 간의 의사소통을 장려하는 곳이다. ⒸMizuki Matsushita

 

‘좋은 집’과 ‘좋은 주거공간’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사츠마 센다이시(Satsumasendai City)에 설계한 스마트 하우스를 소개하고 싶다. 이 집은 차세대 에너지 기술을 사용해 다음 세대가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새로운 디자인에 접목해 마을 주민에게 제안한 모델 하우스다. 육각 형태의 평면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집 한가운데에 정원이 있다. 정원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가구가 설치되어 있어서 이 가구를 상황에 따라 벽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사는 사람에 맞춰서 움직이기만 하면 원하는 용도와 사이즈에 맞게 변경이 가능한 거다. 또한 집 안에 정원이 있어서 나무와 같은 ‘유기질’의 변화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유기질의 움직임이 공간에 생동감을 더한다.

 

사츠마센다이(Satsumasendai City)에 있는 ‘스마트 하우스(Smart House)’ ⒸWatanabe Shinichi
스마트 하우스 내부 ⒸWatanabe Shinichi
스마트 하우스 배치도 ⓒUDS
가구로 공간 구획에 변화를 줄 수 있다. ⓒUDS

 

예를 들어 부부가 있으면 시간이 흘러 아이가 태어나서 셋이 되고, 아이가 커서 출가하면 부부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이렇게 시간이 흐르거나 상황에 따라 집에 사는 사람이 변하지 않나. 사는 사람의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가변성(Flexibility)’이 있는 공간이 좋은 주거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기질’을 가까이할 수 있는, 자연과 통하는 집. 계속해서 성장하고, 계절감도 느끼게 해주는 유기질, 외부 공간과 자연스럽게 통할 수 있는 집이야말로 좋은 집이 아닐까.

 

 


도움주신 분들 조장환, 임아영, Masayo Hattan, Eriko Kojima (UDS) | 고현정 (br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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