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다워지는 우리만의 집에서

[Story] 집을 집답게 만드는 것들
©BRIQUE Magazine
에디터. 윤정훈  사진. 노경, 윤현기

 

① 원칙 위에 세운 취향의 집 — ‘과학자의 집’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가장 나다워지는 우리만의 집에서 — 정의헌, 백성혜 건축주

③ [Architects] 평범과 비범 사이 — 노말건축사사무소 


 

2층 거실 책상에 앉아 자석 놀이를 하는 아빠와 아이의 상기된 목소리가 할머니가 있는 1층 거실까지 잔잔히 울려 퍼진다. 같은 시각 할아버지는 지하에서 당구를 치거나 TV를 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집의 진정한 가치는 짓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난다고 했던가. 외피에 가려진 뼈대부터 창, 욕실, 천장과 같은 인테리어 요소, 크고 작은 기물까지. 한 지붕 아래 느슨하게 연결된 가족의 집엔 구성원 개개인의 사소하지만 확고한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물리적으로 집을 이루는 것은 건축 자재이지만 집을 집답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그러한 것들일 테다. 구석구석 나를 닮은, 가장 나다워지는 집을 통해 엿본 가족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백성혜(왼쪽), 정의헌 건축주 ©BRIQUE Magazine

 

소개를 부탁드려요. 두 분 모두 기초 과학 연구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고요.

백성혜ᅠ기상청 산하 연구기관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기상예보를 위한 한국형 수치 예보 모델을 개발하는 업무로, 쉽게 말해 자연 현상을 수치적으로 풀어내는 일이에요.
정의헌ᅠ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 둘 다 물리학을 전공했고 외국 유학 중 만나 2015년 한국에 들어왔죠.

 

한국에 들어와 어떤 집에서 살았나요? 집을 짓기로 결심한 이유가 궁금해요.

백성혜ᅠ아파트에 살며 이 집을 짓기까지 세 번 이사했어요. 집은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짓고 싶었어요. 2016년쯤 협소주택을 알아봤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더라고요. 결국 포기했죠. 그러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니 부모님과 함께 살면 어떨까 싶었어요. 부모님은 손주랑 같이 지내니 좋고, 저희로선 아이를 봐주실 수 있으니까요.
정의헌ᅠ외국에서 오래 살아 그런지 아파트가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지내며 집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부모님은 이전에 해운대에 살아서 너른 마당을 원했는데 기존의 주택 중엔 마땅한 게 없어 직접 짓게 됐습니다. 이 일대는 택지의 4분의 1만 건축할 수 있어 자연히 마당이 넓은 편이었죠.

 

©Kyung Roh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불편할 거란 걱정은 없었어요?

백성혜ᅠ주위에서 걱정했지만 시부모님과 오래 알고 지냈기에 같이 살아도 좋겠다 싶었어요. 오히려 든든해요. 아이를 두고 외출해도 걱정이 안 되고, 야근하고 늦게 들어오면 식사도 챙겨주셔서 친부모님과 살던 때도 생각나요. 모시고 산다는 생각은 안 들고 다만 가족이 확장된 느낌이에요.


노말건축에겐 어떤 계기로 설계를 의뢰했나요?

정의헌ᅠ평생 한 번 짓는 집인 만큼 저희 의견을 많이 개진하고 싶었어요. 설계 스타일이 너무 확고한 중견 건축가보다는 유연하고 젊은 건축가가 소통하기 좋겠다 싶었죠. 디테일이나 마감에 있어 완성도도 높아 보여 설계를 의뢰했어요.


어떤 집을 바랐나요?

정의헌ᅠ외관상 홀로 돋보이기보다 은은히 개성이 드러나는 집이면 했습니다. 저희와 부모님 공간을 충분히 분리하되 신발 신지 않고 편히 오가는 구조, 자유롭게 만나는 공용 공간, 외출 후 바로 손을 씻는 미니 세면대, 넓은 욕실 등을 바랐죠. 상대적으로 주방과 침실은 작아도 괜찮고 거실은 테이블과 칠판을 둘 정도면 충분했어요. 어머니는 수납 공간이 많고 큰 주방을 원해서 저희와 구성이 달라요. 연두가 성인이 돼도 불편함 없게끔 아이 방의 층고를 높게 요청했습니다. 복층 구조로 지어 어릴 땐 놀이 공간으로 쓰다 크면 침대를 둘 수 있도록요.
백성혜ᅠ2층 거실 천장이 설계안보다 더 높았으면 해서 우물천장에 박공지붕을 요청했어요. 유럽에서 경험한 높은 천장을 이 집에도 구현하고 싶었거든요. 계획상 천장 높이는 지금보다 20cm 더 낮았죠.

 

©Kyung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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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 사항이 무척 다양하고 전문적이었어요. 사전에 어떤 정보를 참고했는지 궁금해요.

정의헌ᅠ단독주택 건축 관련 책을 많이 읽었어요. ‹집짓기 바이블›, ‹주거해부도감›, ‹최고의 집을 만드는 공간 배치의 교과서› 등을 참고했는데, 도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죠. 층고, 복도 폭, 계단 규격 등의 수치 정보도 인터넷상에서 많이 알아보고, 브리크매거진 웹진이나 핀터레스트에서 외관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을 살폈어요. 이 모든 내용을 집짓기에 능동적으로 반영한 건 아니고 건축가의 제안을 이해하고 피드백을 주는 데 참고한 수준이었습니다.

 

패시브 하우스를 바란 계기가 있을까요? 살면서 편의를 체감하는지요.

정의헌ᅠ건강에 대한 우려가 있었어요. 저는 천식을, 연두는 비염을 앓고 있거든요. 예전 살던 아파트에서 연두 방이 북향이었는데 곰팡이가 자주 생겼어요. 집짓기 관련해 여러 이슈를 찾다 단열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건물 골조나 내부에 곰팡이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상의 끝에 노말건축에서 한국패시브건축협회로부터 기술 컨설팅을 받아 상세 설계해 반영해주었습니다. 지난 5월에 이사 와 아직 체감하는 효과는 없어요. 올 겨울을 지나봐야 알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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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과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요. 이 집만의 스마트 시스템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정의헌ᅠ주요 조명에 디밍 기능을 넣으려고 한 것이 시작이었어요. 이탈리아에서 살던 집에 디밍 조명이 있었는데, 국내에선 비용 부담이 컸죠. 대신 스마트 조광기를 알게 됐고 시공하며 스마트 스위치를 허브가 있는 방식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어요. 바빠서 미처 설정을 못해뒀는데 일단 모든 조명과 블라인드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상에서 제어가 가능합니다. 조만간 세팅을 구상 중인 것은, 저녁 6시쯤 불을 켜면 차츰 시간에 따라 색온도와 밝기가 낮아지는 거예요. 사전에 조명 모드를 설정해 언제든 바꿀 수도 있고요. 블라인드의 내림 정도나 슬릿 각도가 자동으로 바뀌게 하려고 합니다. AI 스피커와 연동해 목소리로도 제어 가능한데 이건 언제 세팅할지 모르겠네요. (웃음) 거주자의 사용 패턴을 학습해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하는 구글 네스트도 달았어요. 겨울철 패시브 하우스가 과열되는 경우가 빈번한데 그때 도움이 된다더군요. 물론 디자인적으로 예쁜 것도 큰 이유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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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만족스러운 공간은 어디인가요? 집을 짓고 나서 느낀 변화를 나눠준다면요.

백성혜ᅠ정원이랑 선큰 공간이 좋고, 세면대와 화장실도 마음에 들어요. 건식이라 발이 젖거나 욕실화로 갈아 신지 않아도 되거든요. 세면대 옆에 창이 있는데 주말 아침에 햇빛 받으며 세수하면 하루를 더 잘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정의헌ᅠ주중에 수업이 없을 땐 지하나 2층 거실에서 근무를 해요. 집을 카페처럼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어서 이번에 커피머신도 새로 하나 장만했죠. (웃음) 아이 키우는 부모로서 층간 소음에 대한 걱정도 덜었습니다. 종종 저녁에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어 좋고요.


2층 거실 칠판의 용도가 궁금한데요.

정의헌ᅠ제 전공이 이론물리학인데 수학에 가까워 계산할 일이 많아요. 그때 칠판을 쓰죠. 보통은 앉아서 일하지만 무언가를 구상할 땐 칠판에 써 두고 봐야 생각이 잘 나더라고요. (웃음)
백성혜ᅠ아파트에 살 때부터 칠판은 계속 있었어요. 사실 인테리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건축가가 조금 난감해하기도 했어요. 커다란 초록색 칠판이 너무 눈에 띄니까요. 그래도 칠판만은 포기할 수 없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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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는 집에서 보통 뭐 하며 놀아요?

백성혜ᅠ블록 놀이랑 인형 놀이 많이 하고, 마당에 마련한 모래 놀이터에서도 자주 시간을 보내요. 공간이 다양하고 마당이 있으니 아이가 놀기 좋아요. 최근 회사 동료 가족들이 놀러와 마당에서 보물찾기랑 수건돌리기 하면서 놀았거든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집에 안 가려고 하더라고요. (웃음)

 

지하에선 가족의 취미를 엿볼 수 있었어요.

백성혜ᅠ제 취미가 조금 다양한 편이에요. 피아노, 뜨개질, 서예, 재봉틀 등 손으로 부지런히 이것저것 하는 걸 좋아해요. 연두와 함께 미술 활동을 하려고 작은 미술실도 마련했죠. 당구대는 아버님이 매일 사용하세요. 마침 어제도 친정 부모님이 왔다 갔는데 계속 당구만 치다 가셨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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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에게 이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정의헌ᅠ공들여 집을 짓다 보니 집의 공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돼요. 잘 지은 집은 사람보다 더 오래 가잖아요. 저희 좋으려고 여러 면에서 욕심을 냈지만 그만큼 오래 이 자리를 지킨다면 사회 공동체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백성혜ᅠ집은 내가 있을 수 있는 공간 중 가장 편안하고 마음에 드는 곳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지금 집은 제 동선과 생활 패턴이 반영된 맞춤복에 가까워요. 그래서 좋아요. 저를 닮은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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