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과 비범 사이

[Story] 노말건축이 말하는 '과학자의 집'
©BRIQUE Magazine
에디터. 윤정훈  사진. 노경, 윤현기  자료. 노말건축사사무소

 

① 원칙 위에 세운 취향의 집 — ‘과학자의 집’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가장 나다워지는 우리만의 집에서 — 정의헌, 백성혜 건축주

③ [Architects] 평범과 비범 사이 — 노말건축사사무소 


 

평범하다는 뜻의 ‘노멀normal’에서 알파벳 r을 빼면 ‘노말nomal’이 된다. 이를 이름으로 삼은 노말건축사사무소(이하 노말건축)는 평범함을 통해 비범함에 닿고자 한다. 다양성의 시대에서 평범과 비범을 가르는 기준은 명확치 않으나 최소한의 보편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공간을 보통 수준보다 뛰어나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하나의 집을 만듦에 있어 노말건축이 유일하게 고수하는 원칙은 건축주와의 소통. 밀도 높은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과학자의 집에는 집에 대한 건축주의 세심한 요구 사항, 이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더해진 건축가의 설계적 해법과 감성이 얼기설기 엮여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함은 없지만 치열한 고민이 응축된 이 집을 제법 비범하다고 해도 좋을 이유다.

 

(왼쪽부터) 이복기, 최민욱, 조세연 노말건축 소장 ©BRIQUE Magazine

 

프로젝트의 시작이 궁금해요. 건축주와는 어떻게 만났나요?

최민욱ᅠ2년 전 건축주로부터 메일을 받았어요. 본격적인 설계 의뢰를 하기도 전이었는데, 건축주의 성향이 대번 드러나는 내용이었죠. ‘연두네 집짓기’라는 제목의 프레젠테이션에 요구 사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어요. 대지 면적과 용적률, 층고 제한과 같은 정보부터 집을 짓기로 한 동기, 예산, 가족 구성원의 성격은 물론 시간대별 일과와 생활 패턴까지. 공간별  층고나 비치할 기물의 치수뿐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토대로 직접 스케치한 평면도까지 수록돼 있었죠.

 

©Kyung Roh
©Kyung Roh

 

프로젝트에 관한 글에서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건축주와 함께하는 과정에 달려 있다고 했죠.

최민욱ᅠ집은 한 번 지으면 수십 년은 사니까 거주자의 생활 패턴이 잘 녹아 들어가야 해요. 따라서 충분한 소통이 필요하죠. 건축주의 요구 사항은 크게 두 가지였어요. 부산에 사는 부모님과 서울에 사는 건축주 가족이 함께 살게 된 만큼 ‘따로 또 같이’ 있을 수 있는 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집의 쾌적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에 대한 충분한 고려였죠. 그래서 패시브 설계와 관련한 연구 자료를 주고받는 일도 많았어요. 저희가 그간 진행해온 어떤 프로젝트보다 많은 소통이 이루어진 프로젝트예요.
조세연ᅠ좋은 집에 대한 기준은 프로젝트마다 달라요. 건축주가 좋은 집의 기준을 정확한 수치와 근거에 두고 있다 보니, 단순히 감성적인 접근만으론 충분하지 않았죠. 과학자의 집에는 다름 아닌 그 건축주에게 좋은 집은 무엇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단순한 의견 교환이 아니라 설계안을 두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있었다고요.

최민욱ᅠ주고받은 메일이 300여 통에 이르러요. 책 한 권 낼 정도죠. (웃음) 구성원의 생활 패턴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공간 크기를 센티미터 단위로 제안하거나, 건축물의 실질적 성능을 확인하는 방식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어요. 시뮬레이션을 통해 도면상 기밀, 열교에 취약한 부분을 찾고 시공 전 현장에서 테스트 목업을 수차례 진행했어요. 외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은 시공 후 기밀 테스트를 별도로 실시했고요. 반대로 디자인에 있어서는 건축가의 의지를 많이 존중해주었죠.
이복기ᅠ건축주가 설계안에 직접 의견을 표시하는 영상을 보내오기도 했어요. 전체 면적에 비해 넣을 공간이 많아 드레스룸이나 화장실을 최소 치수로 계획했는데, 나름의 근거를 들어 다른 의견을 제시한 거죠. 수용할 부분은 수용하고 반박할 부분은 반박하며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지하 1층 평면도 ©NOMAL
지상 1층 평면도 ©NOMAL
지상 2층 평면도 ©NOMAL
단면도 ©NOMAL

 

패시브 설계에 준해 설계된 집이에요. 일반 주택과 어떻게 다른가요?

최민욱ᅠ처음부터 패시브 하우스를 계획한 건 아니고, 건축주와 이야기 나누다 패시브 건축에 가까워진 프로젝트예요. 재료나 창호 크기 등에 제약이 있어 한국패시브건축협회에서 정한 기준을 모두 따르진 않아 인증을 받진 못했으나 실질적으로 집을 쾌적하게 만드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죠. 외벽에 석재를 걸 때 일반 자재를 사용하면 열교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열교 차단 트러스를 썼어요. 더불어 환기 및 공기질 확보를 위한 전열교환기, 내부 블라인드보다 채광 및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유리한 EVB를 설치했죠. 바깥과 연결된 모든 구멍은 기밀 테이프로 마감했고요. 따라서 단열성과 기밀성이 한 단계 더 높아요. 육안으론 일반 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속은 완전히 다른 셈이죠.

 

다이어그램 ©NOMAL

 

패시브 설계 시 놓치기 쉬운 미적, 정서적 요소는 디테일로 해결했다고요.

이복기ᅠ단열성을 높이려다 보니 외벽 두께가 800mm에 이르렀어요. 보통 주택보다 200mm가량 더 두꺼운 거죠. 사실 건축주가 패시브 얘기를 꺼냈을 때 조금 걱정됐어요. 공간 구성이나 재료 선택에 있어 일정 기준을 따라야 해서 정형화된 디자인이 많거든요. 조 소장이 이런 부분에 특히 민감해요. (웃음) 따라서 패시브 하우스 특유의 고정된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노력했어요. 외관에 깊이감을 더하고자 창을 더 깊숙이 밀어 넣고 석재부의 볼륨과 비례를 조정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최민욱ᅠ열관류율 등 건물의 성능을 높이려면 일반적으로 자재가 두꺼워질 수밖에 없고 사용 가능한 종류도 한정적이에요. 이로 인해 생기는 둔탁함이나 모난 부분을 보완하고자 두꺼운 창틀과 EVB를 마감재 안으로 숨겨 눈에 띄지 않게 디테일을 고안하거나 역으로 디자인 요소로 풀어내는 방식도 택했어요.

 

외관 디자인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나요? 한옥이 연상되기도 하던데요.

최민욱ᅠ한옥을 의도한 건 아니에요. 주변에 워낙 개성 강한 주택이 많아 풍경이 중구난방인데, 단지 정중앙에 놓일 집이 단정한 덩어리처럼 보이길 바랐어요. 건축주도 화려함보다는 깔끔함을 선호하는 성향이었고요. 여기에 패시브 설계의 중요 요소인 처마를 디자인 요소로 풀다 보니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된 거예요.

 

©BRIQUE Magazine

 

따로 살던 가족이 다시 모인 만큼 요구 사항이 적지 않았겠어요.

최민욱ᅠ두 가족의 명쾌한 공존은 저희가 가장 많이 고민한 이슈예요. 지하와 마당을 공용 공간으로 두고 1층과 지하에 각각 현관을 마련했어요. 부부와 부모님이 별개의 거실과 주방을 갖길 원해서 주어진 면적을 보다 치밀하게 풀어내야 했죠. 할머님은 주방에서 손녀가 마당에서 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고, 당구가 취미인 할아버님은 집안에 당구대를 두길 원했죠.
조세연ᅠ할아버님의 바람은 당구대 하나였는데 차지하는 면적이 굉장했죠. (웃음) 테이블뿐 아니라 플레이하기 위해 주변 공간을 더 비워야 했어요. 그 바람에 지하가 좁아졌지만 뿌듯했던 건 다시 찾아갔을 때 당구를 치고 계셨다는 거예요. 그렇게 만들었는데 안 치시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는데. (웃음)

 

대지 여건 상 불가피한 지하를 가족 공용 공간이자 매력적인 진입 공간으로 활용한 점이 돋보여요.

최민욱ᅠ개개인의 여러 취미를 아우르는 동시에 다 같이 이용하고 쉬는 공간으로 쓰고자 적절한 수치를 찾는 데 힘썼어요. 실내에서는 물론 집으로 들어올 때도 지하가 지하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바랐죠. 대문에서 현관까지 길지 않은 통로이나 목재 마감과 천창을 더해 어두움을 상쇄시키고자 했어요.

 

©Kyung Roh
©Kyung Roh

 

노말건축에게 이 프로젝트는 어떤 의미인가요?

최민욱ᅠ저희도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됐죠. 그동안 디자인적으로는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기술적인 부분을 이렇게까지 깊게 고민하진 않았거든요. 새로운 바탕이 하나 만들어진 셈이에요.
조세연ᅠ비슷한 질문을 최 소장과 이 소장에게 한 적 있어요. 저희가 해오던 프로젝트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자원, 기술이 투입됐으니까요. 그때 최 소장이 말하더라고요. 모든 집이 이 정도로 지어질 필요는 없지만 앞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본으로 삼을 부분이 있었다고요.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것들을 적용해 또 다른 좋은 집, 좋은 건축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예정입니다.

 

©BRIQUE Magazine

 

‘과학자의 집’ 전체 이야기를 담은 ‹브리크brique› vol.12 👉더 알아보기

ⓒBRIQUE Magazine

 

You might also like

건축에도 올드머니룩Old Money Look이 있을까?

[정해욱의 건축잡담] ⑩ 정통과 퓨전의 변증법에 관하여

스테이 창업 전, 반드시 두드려보아야 할 돌다리 ‘스테이 스쿨’

스테이 스쿨 강사진으로부터 미리 들어보는 생존 전략

일상의 웰니스 라이프 큐레이터에게 묻다

[Wellness Lifestyle] ⑧ Life Curators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Portrait] 호텔을 만드는 사람 한이경

‘왜 홀리스틱 웰니스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Interview] 상하 리트릿 CCO & 총괄 건축가 — 캘빈 싸오Calvin Tsao

짓기 전에 꼭 넘어야 할 스무고개가 있습니다

[다시 만난 브리크의 공간] ① 서교동 카페 ‘콤파일Compile’ 황지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