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라는 세계

[What’s your Flavor] ① 서비스센터
©Suman Chun
에디터. 김지아  사진. 전수만, 한정우, 윤현기  자료. 서비스센터

 

‹브리크brique› 12호 특집은 맛의 세계 이면에 자리한 ‘맛의 공간’을 다룬다. 먹고 마시는 일은 이제 생존보다 경험 차원에서 더 빈번히 다뤄지고 있다. 소위 SNS 핫플레이스라고 불리며 인기몰이를 하는 곳이 대개 카페나 음식점이듯, 오늘날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F&B가 견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일상을 환기하는 동시에 오감을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식음 경험은 취향과 소비의 정점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식당과 카페가 쏟아지고 있는 지금, 정교한 기획을 바탕으로 소비자의 이목을 끌고 자생력 높은 공간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 맛을 직접 내진 않지만 맛을 한껏 끌어올리는 장소와 분위기, 나아가 서비스까지 설계하는 공간 기획자들이다. 요식업이라는 바탕에 운영자 또는 브랜드의 개성, 독특한 세계관, 콘셉트에 맞게 정제된 각종 디자인 요소를 조화롭게 버무려 고유한 경험과 가치를 선사하는 이들의 작업은 새로운 브랜드가 탄생하는 과정에 가깝다. 공간이 음식의 맛에 주는 영향은 미미하나 총체적 경험의 만족도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그 전략을 유심히 지켜볼 만하다. 저마다 다른 색깔로 누군가의 취향을 저격하며 F&B 신scene에서 주목받고 있는 크리에이터들과 공간을 소개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맛있다고 했던가. 이제 공간의 맛을 음미해볼 차례다.

 

What’s your Flavor
① 브랜드라는 세계 — 서비스센터
② 공간의 표정, 경험의 온기 — 워프앤우프
③ 맛을 더하는 풍경 — 스튜디오 스토프
④ 장소성에 기반한 내러티브 — 논스페이스
⑤ 공간이 브랜드가 될 때 — 디노바
⑥ 마중물이 되는 건축 — PDM 파트너스
⑦ 차茶를 마주하는 시간 — 오설록 크리에이티브팀
#멋과 맛이 있는 F&B 스폿

 


나날이 정교해지는 F&B 분야에서 브랜드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더는 맛만 있어서도 안 되고 훌륭한 인테리어만이 능사는 아니다. 소비자의 기준이 높아짐에 따라 두루 완벽할 것이 요구되고는 한다. 소위 잘하는 브랜드는 무엇 하나 허투루인 법이 없다. 공간에 놓이는 기물부터 매장에 흐르는 음악, 심지어는 SNS 피드까지 섬세하게 관리해 브랜드를 만들어 간다. 소비자와 브랜드의 접점을 면밀히 살펴 겹겹이 레이어를 더해가는 일이 곧 브랜딩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센터’는 브랜딩을 기반으로 공간을 쌓아가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하나의 브랜드를 관통하는 일련의 언어를 구축하는 일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브랜딩부터 그래픽 디자인, 공간 디자인, 비즈니스 컨설팅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영역을 넘나들며 브랜드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자처한다. 이들의 목표는 단순히 공간을 잘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브랜드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을 구현하기까지 총체적인 과정에 함께하며 궁극적으로는 브랜드의 자생을 이끄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부산 버거숍, 카페 베르크로스터스, 경주 스펑크커피 등 전국구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공간 브랜딩을 진행했는가 하면 동네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카페와 레스토랑도 다수 디자인했다.

 

“브랜드에서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콘셉트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커뮤니티화하는 일이 필요해요. 브랜드와 고객 사이 유대감을 어떻게 형성하고 관계를 확장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야 하죠. 한번에 많이 파는 게 아니라 한명에게서 얼마나 오래 팔건지에 대한 관점을 가져야 해요. 결국은 이게 F&B 업의 본질이라고도 생각하고요.” — 고혁준 서비스센터 디자인 디렉터

 

(왼쪽부터) 고혁준 디자인 디렉터, 배재희 아트 디렉터, 윤산희 그래픽 디자이너, 전수민 비즈니스 디렉터 ©BRIQUE Magazine

 

멤버 네 분이 인터뷰를 함께 진행하는 건 처음이라고요.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전수민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후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더퍼스트펭귄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했어요. 당시 회사에 다니면서 개인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인천의 한 카페를 브랜딩하는 일이었죠. 로고 디자인뿐 아니라 인테리어, 음악, 주문 방식, 유니폼 등 전반적인 영역을 두루 경험하며 재미를 느꼈어요. 결과 역시 성공적이었고요. 그 일을 계기로 독립 후 서비스센터를 개소해 현재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습니다.
고혁준 마찬가지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사용자 경험과 디자인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죠. 서비스센터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 중입니다.
배재희 팀에서 유일하게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에요. 처음에는 텍스트 기반의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하다가 현재는 브랜딩과 디자인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일까지 아우르며 아트 디렉터로 근무하고 있어요.
윤산희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서비스센터에 입사했어요. 디자이너이자 리서처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카페 스톤앤워터 ©Jungwoo Han
카페 스톤앤워터. 돌과 물이라는 정형과 비정형에서 단서를 찾아 텍스트 기반의 브랜딩 작업을 진행했다. ©Jungwoo Han

 

일반적인 디자인 스튜디오와 달리 브랜딩을 중심으로 공간과 서비스 전반을 기획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전수민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기획하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일을 해요. 그 과정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죠. 브랜드 전략 수립부터 BI/CI 그래픽 디자인, 공간 디자인, 운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어요. 그 중심에 브랜드가 있다는 게 서비스센터만의 차별점이죠. 단순히 어떤 로고나 공간을 디자인해 달라는 식의 의뢰는 받지 않아요. 브랜드를 전개해가는 맥락에 중점을 두고 해당 브랜드의 성장을 이끄는 일을 목표 삼고 있어요. 여타 디자인 스튜디오와 관점이 다른 부분도 거기 있을 거예요. 독창적인 그래픽 결과물이나 매끄러운 인테리어, 시공의 마감이 포트폴리오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함께한 브랜드들의 성장이야말로 스튜디오의 유의미한 포트폴리오죠.

 

카페 스톤앤워터 ©Jungwoo Han

 

부산 버거숍을 시작으로 다채로운 F&B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F&B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나요?

전수민 초반에는 F&B 프로젝트가 작업의 80~90%일 정도로 많았어요. 지금은 60% 정도 되는 것 같고요.
고혁준 F&B 프로젝트의 양이 줄진 않았는데 다른 작업이 그만큼 늘었어요. 특히 앞서 전개한 F&B 공간을 보고 의뢰하는 경우가 많죠. 스테이나 병원, 리테일 등 다른 영역에도 같은 식의 접근을 적용해 보고자 해요.

 

F&B 프로젝트만이 갖는 특징은 무엇일까요?

고혁준 F&B는 다른 분야에 비해 오너의 역량이 브랜드를 이끌어나가는 데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많아요. 저희에게 의뢰하는 클라이언트가 대부분 소규모 사업자인 점을 감안할 때 대다수의 경우 오너가 그 브랜드의 가장 뛰어난 테크니션이죠. 예를 들면 바리스타 출신인 클라이언트가 직접 카페를 열고 싶어 찾아오거나 조직에 소속되어 일하던 셰프가 독립해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자 의뢰하는 경우예요. 제한된 공간과 예산 안에서 본인이 가진 스킬을 발휘할 사업을 계획 중에 있는데,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도움을 받고자 저희를 찾는 거죠. 두 번째는 클라이언트의 캐릭터예요. F&B 비즈니스에서는 클라이언트가 가진 스킬 못지않게 그 사람의 개성이 중요해요. 거대 자본을 투자받는 게 아닌 이상 많은 브랜드가 소규모로 꽤 오랫동안 운영을 지속해야 하는데, 그 경우 오너가 고객을 직접 대면하게 되죠. 그래서 클라이언트의 개성과 이야기를 브랜드에 녹여낼 방법을 다각도로 고민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이 부분이 다른 분야와 구분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예컨대 오너가 곧 테크니션인 사업이 아니라면 개인의 개성이 비즈니스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Soomin Chun
송도 레스토랑 나이스타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D-7 카운트다운›에 등장하는 레스토랑 조리실 입구의 ‘Make it Nice’라는 문구에서 영감을 받아 나이스타임이라 이름 붙였다. 서비스센터는 공간 기획 및 디자인을 맡았다. ©Soomin Chun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네요. 그렇다면 클라이언트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전수민 기본적으로 브랜딩과 디자인을 수행하는 스튜디오이지만, F&B 비즈니스에 있어서는 일종의 부트캠프 역할을 해요.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단계에 개입하죠. 많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다 보니 나름의 기준이 생겼어요. 우선 우리의 이야기나 제안을 들을 준비가 된 분들과 작업해요. 대부분의 경우 미팅에 앞서 클라이언트에게 서면 인터뷰지를 제공하는데, 철학적인 질문을 비롯해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포함되어 있죠. 이 프로세스를 통해 두 가지를 알 수 있어요. 바로 질문에 대한 클라이언트의 생각과 기한 내에 작성하는 추진력이에요. F&B 비즈니스는 전략과 디자인 못지않게 클라이언트의 실행이 중요하거든요.

고혁준 우리 일이 단순히 디자인만 제안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착수할 때 어느 정도 관점의 합의도 필요해요. 어떤 분들은 사업을 레저처럼 생각하기도 하는데, 반대로 절박한 경우도 있어요. 그렇기에 프로젝트를 잘했다 못했다의 기준을 합의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가 건네는 다양한 질문들 가운데 딱 한 가지만 대답할 수 있어도 된다고 봐요. 프로젝트 성공 기준에 대한 클라이언트의 견해죠.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업에
대한 관점을 파악할 수 있거든요. 이따금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답변을 받기도 해요. 그럴 경우 비교적 낮은 견적의 프로젝트일지라도 진행할 수밖에 없죠. 같이 한번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요. 클라이언트를 선택할 때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그 사람과 만들고 싶은 이야기나 이미지가 선명히 그려질 때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부산 전포동 프리윌피자 ©Suman Chun

 

그렇게 진행한 프로젝트 중 유독 인상 깊은 작업이 있다면요?

배재희 지금 사용하고 있는 컵이 ‘스톤앤워터’라는 카페에서 제작한 애플리케이션인데요. 스톤과 워터, 즉 돌과 물이라는 정형과 비정형에서 단서를 찾아 콘셉트를 발전시켰어요. 어떤 공간에 머물고 싶으면서도 한없이 흐르고 싶어 하는 양면성을 담아내고자 했죠. 텍스트 기반의 브랜딩 작업을 진행했는데, T.S.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와 정형화된 언어 체계를 가진 사전의 형식을 활용해 카페에 사용되는 개념을 재해석하는 텍스트를 만들었어요. 예컨대 이 카페에서는 커피를 어떻게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을지 고민한 거죠. 공간 자체가 포토제닉하진 않아 이곳만의 개성을 각인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어요.

윤산희 서비스센터에 합류하고 처음 맡은 부산 ‘프리윌피자’가 떠올라요. 작업에 앞서 비교적 긴 리서치 기간을 가졌는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한국에서 피자집이라고 하면 미국식 레트로풍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잖아요. 거기서 한 끗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해석이 필요했어요. 당시 멤버들과 놀러 갔던 레코드 바에서 우연히 네이티브 아메리칸 오브제를 보게 됐는데, 이거다 싶은 거예요. 너무 전형적인 미국의 이미지가 아닌, 네이티브한 분위기의 서부 이미지라면 차별화를 꾀할 수 있겠다 판단했죠. 그렇게 리서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예술작품을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이미지를 발견했어요. 특정 부족에서는 완벽하게 짠 러그 가장자리에 의도적으로 흠집을 내거나 대조되는 컬러로 얇은 라인을 수놓는 풍습이 있다고 해요. 러그를 만드는 사람이 완성된 러그에 갇혀 있지 않고 다음 작업을 이어 할 수 있도록 작은 에너지를 더하려는 뜻에서요. 바쁘게 변화하는 부산 전포동에서 프리윌피자가 휴식과 도약의 힘을 주는 공간으로 자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미국 서부 지역의 작은 선술집을 모티프로 공간 곳곳을 구성했죠. 굵직한 가구부터 동선 배치, 조명, 다채로운 이미지를 품은 오브제, 컨트리 음악, 메뉴에 이르기까지 명확한 콘셉트 아래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한 셈이에요.

 

부산 전포동 프리윌피자. 미국 서부 지역의 작은 선술집을 모티프로 공간을 구성했다. 문을 열면 마주하는 무수한 액자들을 통해 원주민과 카우보이 문화가 뒤섞인 다채로운 서부의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다. ©Suman Chun

 

많은 F&B 공간이 획일화되어 가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 속에서 차별화를 꾀하는 스튜디오만의 접근 방식이나 전략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고혁준 아무래도 리서치 과정에서 많은 힌트를 얻어요. 이미 있는 공간을 참조하기보다 콘셉트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는 편이죠. 책이든 영화든 미술작품이든 폭넓게 들여다보고 깊이 파고들어요. 물론 리서치 기간이 충분하다는 전제하에서요. 프리윌피자의 경우 클라이언트에게 한 달간의 리서치 기간을 요청했어요.

전수민 어떤 면에서는 그 일이 영화배우가 배역을 부여받고 준비하는 과정과도 닮아있어요. 배우가 노숙자 역할을 맡게 되면 실제로 노숙도 해 보고 그 삶을 경험하기 위해 여러 준비 과정을 거치잖아요. 스튜디오도 마찬가지예요. 클라이언트에게 어울리는 색은 저마다 다르고, 우리는 거기에 맞는 색을 내야 하죠. 그런데 어디선가 비슷한 걸 보고 적당히 얼버무려 표현하는 방식은 죄책감이 커요. 그러지 않기 위해 좀 더 진정성 있게 접근하려 하죠. 네이티브 아메리칸 콘셉트를 염두에 뒀을 때도 그 문화에 조예가 깊은 분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관련 서적과 영화 등 콘텐츠를 멤버별로 나누어 보고 와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브랜드라는 배역에 몰입해 실제로 살아보고 경험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요.

배재희 다만 우리가 찾은 걸 우리만 좋아해서는 안 되잖아요. 리서치 중간중간 클라이언트와 공유하는 과정을 거쳐요. 콘셉트 구상 배경부터 구체적인 계획까지 논의하며 점점 전략적으로 좁혀가죠. 한 마디로 클라이언트를 우리가 제안하는 세계관에 끌어들이는 거예요. 단순히 서비스센터가 오브제를 여기 놓으라고 했으니 놔야지, 이 음악을 틀라고 했으니 틀어야지 식의 접근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봐요. 우리의 제안과 클라이언트의 뜻이 공명할 때 비로소 시너지를 낸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멋진 옷이 아니라 알맞은 옷을 입혀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적절한 톤앤매너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해요.

 

스펑크 성수 ©Soomin Chun

 

콘셉트가 명확한 브랜드나 공간이 사업성을 담보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스튜디오가 추구하는 가치와 사업성 사이에서 타협해야 했던 경우도 있나요?

고혁준 프로젝트 전개에 있어 핵심은 브랜드의 성장을 이끄는 일이에요. 아무리 독창적일지언정 사업성과 이어지지 않는 아이디어는 순수 예술에 불과할 뿐이죠. 클라이언트가 예술을 하겠다고 그 비용을 지불하는 게 아니잖아요. 항상 그런 관점을 견지하려 해요. 반짝이는 콘셉트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리서치 과정에 들이는 품만큼이나 고객의 경험, 사업적 이윤을 중요시 여기며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전수민 그런 관점이 서비스센터가 다른 스튜디오와 구분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공간을 구성하는 측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는 여느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처럼 좋은 가구와 비싼 조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됐죠. 예를 들어 카페에 의자가 40개 필요한데 디자인만 고려한다면, 50만 원짜리 의자를 배치하자고 제안할 수 있어요. 근데 사업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한 잔에 5천 원인 커피를 파는데 한 테이블에 그 값의 의자를 사용하는 게 최선의 선택인가 반문하게 되는 거죠. 더욱이 예산이 제한적이라면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클라이언트가 어떤 결과를 위해 비용을 지불했는데 원금 회수도 안 되는 구조로 디자인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스펑크 성수. 일본의 바지 브랜드 NEAT와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두 브랜드가 단절되지 않도록 벽이나 문을 만들어 막지 않고, 뚫려 있는 통로를 통해 서로 다른 매장을 찾은 손님들이 자연스레 건너 브랜드를 구경하고 경험하도록 했다. ©Soomin Chun

 

브랜드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있군요.

고혁준 경험이 쌓이다 보니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수민 님이 해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어요. 요즘에는 공간과 브랜드를 같이 만들 때 원하는 이미지로 박제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픈 전 근사하게 꾸려진 공간을 촬영하고 그 상태만을 기억하는 거죠. 실제 고객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다양한 사람이 공간을 메워요. 기대했던 그림이 아닐 수 있죠. 그런데 어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는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구성된 순간만을 기억하고 만족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 순간을 위해 모든 화력을 집중했으니까요. 그런 프로젝트를 몇 번 경험한 끝에 브랜드와 공간의 자생력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브랜드 역시 진화하는 생물처럼 바라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죠. 처음부터 이상적인 모습에 도달하진 못하더라도 브랜드의 콘셉트를 보여줄 정도만 된다면 차근차근 운영하며 목표한 바를 향해 나아가면 돼요.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위해 스튜디오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전수민 일반적인 의미의 서비스센터는 쓰던 게 고장 났을 때 고치러 가는 곳이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완수한 후에도 브랜드를 케어하는 애프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운영하며 어떤 부분이 미흡했는지 파악하고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함께 찾아가는 거죠. 또 하나는 자가 정비가 가능한 브랜드를 위해 시작부터 일종의 훈련을 제안하는 서비스예요. 우리가 가진 경험 안에서 계속 조언을 건네는 거죠. 예를 들면 경기도 외곽에 있는 카페 여덟 군데를 알려주고 방문 후기를 나눈다거나 디자이너가 추천한 공간에 방문해 좋은 이유를 살핀다거나 하는 식이죠. 공간뿐 아니라 운영에 있어서도 어떤 행사를 기획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직접 계획해 줄 수도 있지만 방향만 제시하고 실제로 기획하게 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본인 브랜드를 객관화할수있고어떤식으로발전시킬수 있을지도 고민하게 되거든요. 자가 정비를 위한 일종의 DIY 키트인 셈이에요.

 

카페 스톤앤워터 ©Jungwoo Han

 

빠르게 변화하는 F&B 시장에서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고혁준 지나치게 트렌드를 좇기보다 소수의 팬덤을 탄탄히 구축하는 일이 앞으로의 F&B 산업에서 더 중요해질 거라고 봐요. 예를 들면 피자는 어느 동네에서나 먹을 수 있죠. 커피 역시 마찬가지예요. 어떤 음식이 귀해서 특정 가게를 방문하는 경우는 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이 가게에서 음식을 먹어야만 하는 명분을 줘야 하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이 가게는 내 캐릭터에 맞아, 라는 인상을 심어줘야 하는 거죠. 그 가게들이 주는 인상이 너무 트렌드에 부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소규모 브랜드의 경우 트렌드에 있어서는 큰 회사를 이길 전략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작은 브랜드를 좋아해 주는 소수의 충직하고 강한 팬덤을 구축하는 역량이 중요하죠. 그 연장선에서 브랜드에서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콘셉트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커뮤니티화하는 일이 필요해요. 브랜드와 고객 사이 유대감을 어떻게 형성하고 관계를 확장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야 하죠. 한 번에 많이 파는 게 아니라 한 명에게서 얼마나 오래 팔 건지에 대한 관점을 가져야 해요. 결국은 이게 F&B 업의 본질이라고도 생각하고요.

전수민 초반에 작업한 프로젝트의 경우 소위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공간도 더러 있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트렌드를 좇으려는 생각은 점점 더 안 하게 되는 편이죠. 혁준 님이 얘기한 대로 작은 브랜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를 따라가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클라이언트한테도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도시 전체에서 사랑받는 것보다 동네에서 사랑받는 게 더 중요해요.

 

카페 스톤앤워터 ©Jungwoo Han

 

보통 디자인 스튜디오는 프로젝트마다 크든 작든 스튜디오만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기 마련이죠. 서비스센터가 작업한 프로젝트에는 다만 브랜드가 남아 있을 뿐이네요. 이에 대해 아쉬움은 없나요?

전수민 다분히 의도한 부분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어요. 브랜드를 좋아하는 팬들의 자리지, 우리가 가로채서는 안 되는 공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공간을 디자이너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방문하는 건 디자이너 입장에서 감사한 일이지만 동시에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니에요. 우리가 만든 공간이 단순히 누가 만들어서, 새로 생겨서 방문하는 일회적인 성격이 짙은 공간으로 소비되지 않기를 바라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 자리에서 천천히 이야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고혁준 디자이너로서도 그런 식의 후방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 게 유익해요. 한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화됐을 때 그걸 기대하고 의뢰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비슷한 류의 기대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주는 게 편하잖아요. 그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디자이너로서 기획하는 능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문제가 다 다른 것처럼 해결책 역시 다를 수밖에 없는데 비슷한 대안을 제시하면 일종의 종합 감기약 같은 게 돼버리는 거죠. 서비스센터는 좀 더 맞춤형 처방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우리의 인장이 흐릿하면 흐릿할수록 더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 같고요.

 

부산 전포동 프리윌피자 ©Suman Chun
부산 전포동 프리윌피자 ©Suman Chun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나요?

전수민 계속해서 클라이언트와 함께 성장하는 회사로 나아가고자 해요. 결국에는 우리가 만들었던 브랜드들의 합이 서비스센터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될 거예요.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아도 축적된 작업 결과가 곧 서비스센터를 가리키겠죠. 처음엔 ‘펜타그램’ 같은 디자인 스튜디오가 롤모델이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미국의 유명한 액셀러레이터 같은 팀으로 성장하기를 목표 삼고 있어요.

고혁준 다만 그 일을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전개하려는 거죠. 영국의 한 스튜디오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일은 희망을 시각화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사업을 시작할 땐 누구나 다 희망이 있죠. 현실에 맞닥뜨려 많이 부서지긴 하지만 그 희망을 최대한 잘 조직해서 현실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우리의 일이에요. 그런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이자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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