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삶을 향해

[Story] ‘서프 하우스’ 공간 이야기
ⓒYoon, Joonhwan
에디터. 김지아  사진. 윤준환, 윤현기  자료. 드로잉웍스

 

① 밀려오는 삶을 향해 — ‘서프하우스’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다음 주는 양양에서 — 박병준, 황미란 건축주
③ [Architects] 자연스러운 건축 — 드로잉웍스 


 

파도를 찾아서
파도를 찾아 떠난 이들이 마침내 집을 지었다. 해변을 지척에 두고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인 작은 땅을 찾아 말이다. 서핑을 취미로 둔 건축주 부부가 양양 죽도해변에 다다른 건 동해 해안도로를 따라 여행하던 2년 전이었다. 우연히 정박한 해변은 젊은 서퍼들로 가득했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자유롭고 여유로운 풍경에 이끌려 양양에 제집처럼 드나들다 결국 세컨드하우스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Yoon, Joonhwan

 

둥글게 흐르는 시간
언제든 홀홀히 떠날 수 있는 삶을 지향하기에 집은 가벼워야 했다. 둘 것이라곤 서프보드 두 대만이 전부지만 동시에 반려견을 위한 집이므로 마땅한 여백을 갖춰야 했다. 바닷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에 곧은 돌처럼 놓인 집에서 그들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도시에서의 시간이 선형이라면 바다를 마주한 두 번째 집에서의 그것은 파도를 닮아 있을 터. 다만 똑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매일 다른 파도를 맞이하기 위한 집, 서프 하우스를 찾았다. 

 

파도를 닮은 집

 

바야흐로 서핑의 도시
설악산과 동해를 품은 양양은 예로부터 산 좋고 물 좋은 도시로 알려졌다. 인구 2만 8천여 명의 소도시이지만 풍부한 관광 자원으로 양양을 찾는 이들은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양양이 달라졌다. 국내 서핑 여행지로 급부상하면서 젊은 세대가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서핑을 계기로 사람들이 모여들며 식당과 카페, 숍 등이 들어서고 고령화로 지역 발전에 한계가 있던 도시에 비로소 활기가 돌게 됐다. 서핑 문화가 견인한 변화는 단순히 관광 활성화에 그치지 않고 인구 유입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핑하기 좋은 해변 일대로 서퍼들의 주거지가 하나둘 형성되어 갔다. 아울러 이 같은 지역 활성화의 배경으로 교통 인프라의 개선도 빼놓을 수 없다. 2018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향상되고 주택 공급이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양양은 서핑을 중심으로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Yoon, Joonhwan

 

산과 바다를 지척에 둔 땅
서프 하우스가 자리한 양양 죽도해변 일대는 서핑 문화를 선도해 온 지역인 만큼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대나무가 많은 섬 죽도를 사이에 두고 2km의 백사장이 길게 펼쳐진 채 인구해변과 나란히 놓인 이곳은 울창한 숲과 더불어 각양각색의 펍, 서핑숍, 카페 등을 통해 고유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그 모습에 매료되어 양양을 찾는 빈도가 점차 늘어난 건축주 부부는 어느덧 현지인들과 친분을 쌓게 되고, 죽도해변 서측에 위치한 툇골 마을을 택지로 개발한다는 소식에 대지를 매입했다.

대지는 해변에서 한발 물러나 동측을 제외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열려 있는 동측에서도 도로에 가려져 바다는 보이지 않고 인접 대지에 들어설 건물까지 고려했을 때 뷰가 그리 좋은 위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비교적 넓은 땅에 나지막이 산이 자리해 일조량이 풍부한 편이었고 진입도로가 전용으로 구획되었다는 이점이 있었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땅 위로 쏟아지는 무언의 빛과 얼마간 예측 가능한 주변 건물들의 자태. 그 틈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 설계의 시작점이었다. 

 

©BRIQUE Magazine

 

바람이 지나는 세 개의 마당
대개 단독주택은 도로에서 진입하면 메인 마당이 있고, 대지 끝으로 건물이 붙어 있는 구성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해당 대지는 자연녹지지역에 속해 대지의 20%만 건축 행위가 가능했다. 나머지 80%를 적절히 활용할 방법을 고민한 끝에 세 개의 마당을 구성했다. 진입 마당을 지나 주 출입구로 들어서면 중정을 만나고 중정 전면의 주방을 경유해 안뜰에 도달한다. 이러한 배치는 자연환경과의 접점을 늘리도록 유도한다. 실내외가 동떨어진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도 바깥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외부와 접할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어디서든 산과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자연에 둘러싸인 땅이자 도심 속 정주하는 집과는 구분되는 휴식을 위한 두 번째 집이기 때문이다. 

 

ⓒYoon, Joonhwan
ⓒYoon, Joonhwan

 

비일상적 삶의 공간
세컨드하우스이자 게스트하우스를 염두에 두고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의 요구사항은 단순했다. 부부가 사용할 방과 게스트가 머물 공간, 공용 주방을 갖춘 집을 원했다. 간결한 바람은 건물 내외부에 그대로 반영됐다. 가령 단출한 2층 구성이 그 뜻을 내비친다. 4층까지 건축이 가능한 대지임에도 적정한 쓰임을 고려해 두 개 층에 그쳤다. 1층은 주방과 게스트룸, 2층은 부부 전용실이다. 매일같이 머무는 공간이 아니기에 방은 최소한의 기능만 충족하도록 계획했다. 실외에 독립적으로 배치한 주방은 세컨드하우스의 비일상성과 특수성을 고려한 모험적 장치다. 도시를 벗어나 다른 삶을 향유하는 데 목적이 있는 세컨드하우스는 편리함에 초점을 맞춘 공간이 아니므로 방과 주방이 붙어 있지 않아도 무방하다. 중정과 안뜰 사이 일종의 경유지로 놓인 주방은 자연과 만나는 길이자 타인과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능한다. 

 

ⓒYoon, Joon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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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퍼를 위한 세심한 배려
중정에는 서프보드 거치대와 모래를 씻어낼 수 있는 샤워 수전이 비치되어 있다. 건축가 역시 서핑을 취미로 즐긴다는 점이 설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 크고 무거운 서프보드를 개인 공간에 보관하기엔 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거치대를 외부에 설치했다. 또한 실외에 샤워 수전을 배치하되 겨울철 동파에 대비한 설비를 거쳤다. 수전은 디자인을 고려해 콘크리트에 매입하여 간결하게 정리했다. 

 

ⓒYoon, Joonhwan

 

파도를 입은 입면
바다 인근의 건축은 염분에 유의해야 한다. 내구성과 유지 관리에 용이한 마감재를 선택해야 건물이 환경으로부터 비교적 온전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해안가에서는 주로 돌, 콘크리트, 알루미늄 등 원재료를 사용하는데, 단일한 소재의 질감을 고려한 끝에 노출콘크리트를 적용했다. 다만 주변 환경에 다소 이질적인 매끄러운 마감 대신 빼곡한 나무숲의 줄기나 파도의 넘실대는 불규칙한 선형을 담아낼 수 있는 패턴을 만들었다. 토목용 거푸집을 활용해 20mm 폭과 높이의 삼각 줄이 수직으로 이어지도록 구현했다. 울퉁불퉁한 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다 자연스러운 변화를 담아낸다. 자연환경으로부터 어쩌지 못하는 흔적을 거칠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재료의 패턴과 깊이는 빛에 따라 다양한 입면을 만들어낸다. 빛을 받을 때 그림자가 생기는 면과 아닌 면 사이의 시간차가 발생하면서 매시간 맺히는 빛에 따라 건물의 인상이 달라진다. 

 

ⓒYoon, Joon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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