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세계

[Architect] 나를 인식하는 집 - 김호중 건축가
©BRIQUE Magazine
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자료. 오르트 건축사사무소

 

① [Story] 삶을 지탱하는 두 번째 집 — ‘선집’ 공간 이야기
② [Interview] 집 떠나 집에서 찾은 온전한 일상 — 마종인 건축주

③ [Architect] 집이라는 세계 — 김호중 건축가


 

김호중 건축가는 ‘모든 공간은 그것이 크든 작든 하나의 세계’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건축 작업을 수행한다. ‘선집’처럼 남다른 형태의 집은 공간에 대한 그만의 철학이 있기에 가능했다. 좋은 세컨드하우스이기 이전에 좋은 집이기를, 좋은 집이기 이전에 좋은 공간이기를 전제하는 본질적 태도에서 만들어진 집의 가치는 독특한 외관에만 있지 않다. 그보다는 ‘내가 이곳에 있다’는 인식,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을 살리는 데 있다. 이러한 집에서 삶은 비로소 하나의 여정이 되어 간다. 

 

김호중 건축가 ©BRIQUE Magazine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오르트 건축사사무소는 조병수건축연구소에서 실무를 익힌 건축가들이 모여 만든 사무소입니다. 최혜은 소장과 홍석경 소장이 사무소를 설립했고 나중에 제가 합류했죠. 저는 조병수건축연구소를 나온 후 2009년부터 BIM 기반의 건축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해오며 틈틈이 건축 설계를 해 왔습니다. 설계 작업은 법적 요건을 충족하며 주어진 기간 내 완수해야 하는데, 항상 제가 만족할 만큼의 많은 사유와 에너지를 쏟지 못해 아쉬웠어요. 그래서 기술 서비스 제공과 설계를 병행하되 주어지는 가능성과 기회가 충분한 프로젝트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집도 제게 그런 프로젝트였죠.

 

건축주가 처음에 의뢰한 집은 작은 농막이었다고요. 어쩌다 지금과 같은 집을 설계하게 됐나요?
건축주와 함께 현장에 간 적이 있는데 땅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건축적으로 좋은 공간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무척 커 보였죠. 면적이 넓어 30㎡짜리 건물만 짓기는 아쉬울뿐더러, 건축가로서의 열망이 발동해 과감한 제안을 해본 거죠. 약 1000㎡ 땅에 걸맞은 건축물을 디자인하되 건축주가 자금적 부담을 느낄 수 있으니 4단계에 걸친 건설 계획을 제시했죠. 공사 기간을 늘린 것이 아니라 한 단계만 거쳐도 완성되는 집인 동시에 향후 증축의 여지를 남겨둔 형태로 설계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시간을 길게 본 거죠. 지금의 선집은 2단계까지 지어진 상태예요. 건축주가 원한다면 추후 확장될 수 있죠. 다 지어졌지만 동시에 덜 지어진 집인 셈입니다.

 

주변 풍경을 무척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집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지의 어떤 면이 특히 마음에 들었나요?
부지에 대한 첫인상은 ‘광활하다’였어요. 도로부터 뒤편의 산까지 펼쳐진 너른 평지를 보자 마치 흡입될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죠. 요즘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활짝 열린 땅이었달까요. 빽빽한 도시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평활함이란 참 귀한 것이니까요. 양옆 부지에 작은 건물들이 있었지만 조망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건물을 높이거나 창 또는 담장을 높게 두는 방법으로 이 집에서 자연만 보이게 할 수 있었죠. 이러한 대지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고 싶었습니다. 이 땅이라는 세계 안에 또 다른 세계, 즉 건축물이라는 고립된 무언가를 만들어 그것이 저 멀리 있는 자연으로까지 무한히 확장되어 보이는 느낌을 주고자 했습니다. 인피니티 풀의 원리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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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점이 이 집을 흥미롭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중정에 서서 멀리 있는 산을 보고 있으니 마치 그 산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더라고요. 선집은 주말에만 이용하는 세컨드하우스인데요. 설계 시 주말주택이라는 점을 특별히 고려했나요?
건축주의 취미인 농사를 뒷받침하는 크고 작은 외부 공간과 창고를 제외하고는 주말주택이라 특별히 고려한 점은 없어요. 건축주는 튼튼하고 난방만 잘 되면 된다며 무척 기본적인 요구를 했고, 제 역할은 거기서 나아가 삶에서 쉽게 놓치는 경험을 되찾아 주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집은 편하면 그만’이라는 대다수의 생각은 아파트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죠. 하지만 사실 공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은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제가 만들어 놓은 세계(공간)에서 거주자의 생활 습관과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했습니다. 선집이 자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집, 어디서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집이 된 이유죠.

 

예측이 어려운 곳에 개구부가 나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현관과 별개로 거실, 주방에도 바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문과 창이 있죠. 거실 소파 뒤쪽에 세로로 얇고 긴 창이 있는가 하면, 중정을 향해서는 낮고 가로로 긴 창이 있더군요.
사람을 끝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일은 무척 중요합니다. 건축물에는 공기든 사람이든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숨구멍이 필요하죠. 채광, 환기뿐만 아니라 건축물 안에서의 시선과 경험을 결정하기 때문이에요. 거실 측면의 세로 창은 소파에 앉았을 때 살짝 고개를 돌려 바깥을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누가 우리집으로 오는지 굳이 나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죠. 중정을 향해 난 가로 창은 외부 시선을 적절히 차단하고 화롯불이 보일 정도로만 높이를 낮게 조정했습니다. 허리를 수그려 중정으로 나갈 수 있고, 열어둔 문 앞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중정을 보고 있기도 좋죠. 화롯가에서 막 구운 고기를 바로 받을 수도 있고요. (웃음)

 

집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가 많지만 그중 압권은 다름 아닌 나무 펜스인데요. 높고 무거워 편하게 열고 닫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그 덕에 공간이 한층 다채로워지고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풍경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옵니다.
일반적인 주택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주고 싶었어요. 드나듦의 감각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놓치는 것 중 하나죠. 저는 공간을 이동하는 행위가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손잡이가 없는 회전문은 문을 여닫는 제스처를 강조하고 그 행위를 하나의 의식(ritual)처럼 만듭니다. 완전히 닫혀 있지만 동시에 열리는 나무 펜스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지나는 터널처럼 느껴지기를 바랐어요. 나무벽을 설명할 때 저는 ‘닫힐 수 없을것처럼 열려 있다’고 표현해요. 소쇄원 광풍각의 들어열개문처럼요. 문을 닫으면 집의 모든 공간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열면 벽이 사라진 느낌이 들기를 의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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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경험을 강조하기 위함이라지만 한편으로는 펜스가 그렇게 높고 무거울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한데요.
건축은 삶의 공간이잖아요. 생경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또한 일상이 되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능과 편의만 생각하면 펜스가 없어도 됩니다. 하지만 그냥 뚫려 있다면 그만큼 경험이 제한되죠. 주방과 창고 사이 공간은 펜스를 닫으면 하나의 독립된 공간이 되는데요, 폭풍우가 치는 여름밤 그곳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바비큐를 해 먹는다고 상상해보세요. 새롭지 않나요? 위협적인 환경에서 느끼는 특별한 안온함이죠. 디자인할 때 이런 상상을 끊임없이 해요. 제가 설계를 기계적으로 못하는 이유일 거예요. (웃음)

 

실내 개별 공간끼리의 관계도 재미있어요. 침실이 거실보다 살짝 높은가 하면 작은 방의 슬라이딩 도어를 한쪽으로 다 밀면 거실의 일부가 되더군요.
1층집이지만 모든 공간을 같은 높이 선상에 놓기엔 아쉬웠거든요. 이에 침실을 필로티 구조로 만들어 1.2m 올리고, 자연스럽게 지붕 끝은 북서쪽으로 올라가는 형태가 됐습니다. 침실은 가장 내밀한 공간이기에 집의 깊숙한 곳에 둔 것이기도 해요. 한편 침실은 안쪽에 있지만 외부(도로)와 가까운데요. 이는 선형을 강조한 결과입니다. 끊임없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며 집 안에서의 경험이 하나의 여정처럼 느껴지기를 바랐습니다.

 

김호중 건축가가 생각하는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요?
질문의 폭을 넓혀 좋은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에겐 단지 따뜻하고 비를 막기 위한 도구로서의 건축이 아닌 정서적 안온함을 주고, 잊고 있던 일상 속 사소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건물을 어떤 공간으로 인식하게 하고 그 안에 있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것, 즉 좋은 건축이란 좋은 세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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