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 겐고, 그가 건축을 지속하는 방식

에디터. 윤정훈 자료. 나무생각

 

“건축은 죄악이다.” 건축가 구마 겐고의 말이다. 그는 저서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에서 1970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오사카만국박람회를 가득 채운 과시적인 건축물들을 회상하며 “건축은 죄악이라고 통감했다”고 밝힌다. 그때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당시 했던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말과 함께.

건축에 혐오감을 가졌던 소년은 아이러니하게도 건축가가 됐다. 그러나 건축을 공부하고 사무실을 열어도 ‘어떤 건축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요원했다. 노출콘크리트와 기하학으로 표상되는 모더니즘 건축, 그 위에 자리잡고 앉아 “잘난 척이나 하는” 건축가들에 대한 불만은 여전했으니까. 이러한 반反의 정서는 구마 겐고를 건축 밖의 건축으로 이끌었다. 변치 않는 콘크리트 대신 연약한 나무로, ‘남루한 건축’과 ‘반反기하학’이라는 도발적인 철학으로, 작고 낮고 느린 건축을 지향한다는 뜻의 ‘삼저주의’로 말이다.

 

<이미지 제공=나무생각>

 

반反하는 건축
초창기 설계작 ‘기로산전망대’는 구마 겐고가 가졌던 건축에 대한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는 하나의 실마리로서 소개된다. 당시 신예 건축가였던 구마 겐고는 일본 에히메현의 오시마 섬 꼭대기에 눈에 띄는 기념물을 세워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하지만 이미 그 자체로 아름다운 풍경에 전망대를 세우는 일은 그 자체로 모순에 가까웠다. 구마 겐고는 고민 끝에 전망대를 지워버리기로 결심한다. 이른바 “건축을 소거하고 자연을 되찾”기로 한 것. 그 결과 산 정상에 숨은 듯 조성된 ‘매장된 형태의 전망대’가 탄생한다.
이렇듯 구마 겐고의 건축은 어딘가에 자꾸 반反한다. 2002년 중국 베이징에 세운 ‘대나무집’은 건축가들의 완벽주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신에 정면으로 부딪힌 타협의 결과물이며, 2020년 도쿄올림픽 국립경기장은 ‘폐쇄된 상자’를 추구하는 20세기 건축에 대한 정반대의 표현으로 주변 숲을 향해 활짝 개방된 형태로 조성한 건축물이다.

 

<이미지 제공=나무생각>
<이미지 제공=나무생각>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한정된 도면과 모형으로 승부를 겨루는 공모전이라는 게임 안에서 ‘관계’의 미묘함을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건축물이 그 장소에 완성되고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에 부각되는 것은 ‘관계’다. ‘관계’가 멋지게 디자인되면 건축물과 강하게 연결될 수 있고, 건축과 그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다. (294쪽)

 

<이미지 제공=나무생각>
<이미지 제공=나무생각>

 

모든 나라의 기술자들에게 일본식 정밀도를 강요한다는 데에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각 장소에는 그에 어울리는 방식이 있고 각각 자신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자신의 방법, 자신의 정밀도로 작품을 만들어왔다. 거기에 해외의 유명 건축가가 찾아와 이런 재료를 사용해서 이런 정밀도로 작품을 만들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건축은 기본적으로 그 장소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함께 만들어야 비로소 건축이 그 장소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탄생한다. 그 대지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148쪽)

 

지치지 않는 비결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에는 무엇보다 긴 시간 지치지 않고 오래 건축을 해온 구마 겐고만의 비결이 담겨 있다. 그가 밝히는 ‘꾸준히 달릴 수 있는 주법의 비밀’은 바로 삼륜차 같은 형식으로 안정을 유지하는 데 있다. 소설 집필에 있어 장편과 단편이 갖는 장점이 다르기에 두 가지를 병행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려, 대규모 프로젝트와 소규모 파빌리온을 균형 있게 진행하는 것이 건축가에겐 좋은 보완이라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오랜 시간 구마 겐고를 지탱해온 세 번째 바퀴는 글쓰기다. 많은 자본과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건축물은 소설과 달리 많은 불순물이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일흔을 앞둔 세계적인 건축가가 책을 통해 밝히는 글쓰기의 의미는 “잡음투성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의미 있게, 오랫동안 지속해온 한 어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구마 겐고
1954년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났다.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이며, 작고, 낮고, 느린 삼저주의로 안도 다다오 이후 일본 건축의 한 축을 받치고 있다. 1979년 도쿄대학 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 객원연구원을 거쳐 1990년에 구마겐고건축도시설계사무소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20여 개 국가에서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다. 1997년 ‘모리부타이 도요마마치 전통예능전승관’으로 일본건축학회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에 ‘물/유리’로 미국건축가협회 듀퐁 베네딕투스상을 받았다. 2001년 ‘돌미술관’으로 국제석재건축상을 수상, 2002년 ‘히로시게미술관’을 비롯한 목재 건축으로 ‘스피릿오브네이처 국제목재건축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네즈미술관’으로 마이니치예술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 ‘산토리미술관’, ‘대나무집’, ‘아오레나가오카’, ‘브장송예술문화센터’, ‘국립경기장’,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나, 건축가 구마 겐고》 《삼저주의》 《작은 건축》《나의 장소》 등이 있다.


도서명.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

지은이.
구마 겐고

옮긴이.
이정환

출판사.
나무생각

판형 및 분량.
145×210mm, 372쪽

가격.
3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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