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정경화 글 & 자료. 재귀당 건축사사무소
주택에서만 산 남편, 아파트에서만 산 아내
어느 날, 나와는 정반대로 차분한 성향의 부부 한 쌍이 주택설계를 의뢰하기 위해 찾아왔다. 남편은 평생 주택에서만 살았고, 아내는 한 번도 주택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건축주의 메일을 받고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프로젝트임을 직감했다.
“아파트 생활은 일견 편해 보이지만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고층에서 보이는 탁 트인 공원 전망은 금세 지겨워지고, 주차는 편리하지만 엘리베이터는 귀찮습니다. 어릴 때부터 단독주택에서 사는 것에 익숙했던 데다 쉽게 나갈 수 있는 외부 공간이 없어서인지 넓은 공간임에도 답답함을 자주 느꼈어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고부터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아내와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편하게 어울릴 공간이 많지 않다. 각자의 집이나 키즈 카페, 놀이터가 전부인데,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그것마저도 어려워졌다. 부부는 아이가 안전한 집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아파트 생활을 멈추고 단독주택을 짓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삶도 그들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 중 하나였다.
“주택에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어 기대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해요. 그런데도 용기를 낸 것은 아이에게 좀 더 좋은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시부모님과 각자의 생활을 지키며 함께 사이좋게 사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컸어요. 생각 끝에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좋은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결혼과 출산으로 갑작스럽게 환경이 변하면서 저 자신을 잘 돌보지 못했는데, 아이가 더 자라고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나면 좀 더 스스로를 아끼고 건강을 돌보고 싶어요. 체력이 허락한다면 집도 열심히 가꾸고 싶고요.
따로 또 함께, 가족이 공존하는 주택 만들기
공사비를 비롯한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해 전체 규모는 60평을 넘지 않아야 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필요할 때는 모든 가족이 쉽게 모일 수 있으면서도 시부모님과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동선과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다가구주택 같은 단독주택을 설계해야 했다. 그리고 주택 생활이 처음인 아내를 위해 안전과 프라이버시 확보가 중요했다.
대지는 단독택지의 경계에 위치한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성돼 최근의 택지보다는 여유가 있지만, 약간만 벗어나도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선, 이미 도시화가 끝난 동네이다. 주변의 주택이 대부분 존재감 강한 모습이었기에 조금은 차분한 표정이 어울렸다. 담장이 건물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계획해 구성 요소를 줄이고 건축주의 성향과 닮은 차분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위쪽의 매스는 중정에서 빛의 움직임, 시간의 변화가 강하게 느껴지도록 거친 재료로 마감했다.
소음도 중요한 이슈였다. 층간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콘크리트 구조를 제안하고 측면에도 완충재를 충분히 설치했다. 1층에는 부모님 공간과 공용 공간을, 2층에는 부부와 자녀의 공간을 배치했는데, 가장 소음이 심한 2층의 아이 방과 늦은 시간까지 활동하는 가족실은 1층의 부모님 방과 수직적으로 가장 먼 곳에 두었다.
또 한 가지는 하나의 현관을 사용하되 현관을 지나 바로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두고 따로 문을 설치했다. 소음을 차단하고, 늦은 밤에도 잠든 부모님께 피해를 주지 않고 편하게 배달 음식을 주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현관에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는 ‘카페’ 같은 공간을 두었다. 이곳은 마당을 향해 열려 있어 외부에서도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온 가족이 모이고 때로는 아이와 친구들이 모여 놀거나 부부가 쉬기도 하며, 늦은 시간에는 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소유헌(逍遊軒)은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서 착안해 지은 이름이다. 소(逍)에는 어른들에게 느긋하게 마당을 거닐며 평안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유(遊)에는 아이에게 소풍 온 듯한 행복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다. 부부와 그 가족에게 잘 어울리는 집이자 이름이다. 이름대로 부모님에게는 편안한 시간을, 아이에게는 즐거운 시간을, 부부에게는 안정된 여유를 즐기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