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밝은

[Space] ‘달리는 집’ 공간 이야기
ⓒHanul Lee
에디터. 김지아  사진. 이한울, 윤현기  자료. 재귀당 건축사사무소

 

고유한 삶으로부터
집을 짓기 위해 수많은 집을 참조 삼아 둘러보다 보면 본래 짓고자 했던 집이 무엇인지 되레 잊고 만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공간인 주거 영역에서조차 타인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다시 선명해질지 모르지만, 더해진 잡념으로 시야가 도무지 환해지지 못할 땐 이야기를 통해 욕망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이때 이야기는 건축가와의 대화일 수도 있고, 가족과의 대화일 수도 있다. 나와 우리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로부터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집이라는 형식이 있다.

원주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던 김남웅 씨와 김현정 씨 부부, 그리고 세 자녀. 이들이 집을 짓게 된 계기는 막내아들이 겪고 있는 발달장애의 치유에 있다. 활동적인 아이의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주말주택을 고려해 설계를 의뢰했으나 건축가와의 대화를 통해 막내와 가족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온전한 집을 그리게 됐다.

 

ⓒHanul Lee

 

밝은 집
창문이 유난히 많아 여기저기로 볕이 드는 집에서 다섯 식구는 웃음이 많아졌다. 창을 통해 빛뿐 아니라 시선 역시 교차하기 때문일까. 마당과 중정, 실내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달리는 막내 지호와 자기만의 방이 생긴 두 딸, 아파트식 평면에 없던 공간 구성으로 소통과 여유를 얻은 건축주 부부까지. 달리는 집은 다섯 식구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마침내 그들을 향해 가닿은 집이다.

 

ⓒHanul Lee

 

자연과 가까운 집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섬강이 흐르고 나지막한 소군산이 자리한 원주의 북쪽 동네 ‘호저’. 달리는 집이 위치한 원주시 호저면은 북원주IC와 가까이 있어 차로 이동하면 시내까지 약 20분가량 소요되는 위치에 있다. 크고 작은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여느 도시와 달리 농경지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택지가 점차 조성된 덕에 이곳 주민들은 자연을 한껏 가까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택지에 자리 잡은 달리는 집은 이제 막 들어서고 있는 주택들과 나란히 호저의 새로운 풍경을 이루어가고 있다.

 

ⓒHanul Lee

 

중정과 마당이 있는 단층주택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단층
택지 중에서도 건폐율과 용적률의 조건이 좋은 땅이었기에 중정을 가진 형태의 단층주택이 가능했다. 주로 이층집인 주변 주택들과 달리 단층으로 구성된 이 집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초반에 이웃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이었다고. 단층주택은 다층주택에 비해 관리가 용이하다. 여러 층이 아닌, 한 층에서 정해진 공간을 관리하고 청소하는 일은 확실히 유지보수에 드는 품이 덜한 축에 속한다. 또 바깥으로의 접근성이 좋아 자연에서 느긋한 전원생활을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막내 아이가 자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집의 역할이었으므로 이들에게 단층주택은 옳은 선택이었다.

 

1층 평면도 ⓒJaeguidang Architects

 

돌고 돌아 만나는 동선
이동이 편리한 단층은 평면 배치과 동선 구성에 특히 더 세심한 설계를 필요로 한다. 달리는 집의 동선은 막내 아이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했다. 아파트식 평면을 지양하고 아이가 실내에서도 활발히 움직일 수 있도록 비교적 긴 동선을 취했다. 이는 막내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거실 대신 중정을 중심으로 개별 방을 배치해 동선은 중정을 감싸는 형태가 됐다. ㅁ자를 닮은 동선에서 가족 구성원은 돌고 돌아 만난다.

 

ⓒHanul Lee

 

중정이 안겨준 시간
처음 주말주택 용도로 면적이 작은 집을 의뢰받았을 때 중정은 주된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정에서 노는 아이와 실내 어느 공간에서든 아이를 지켜볼 수 있는 부모의 모습을 상상한 끝에 중정을 중심으로 공간을 배치하는 설계안을 완성했다. 중정은 안과 밖을 자연스레 연결해 일상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을 뿐 아니라, 이벤트를 위한 공간으로도 종종 활용된다. 건축주 부부는 여름이면 지인들을 불러 중정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평상인 듯 앉아 수박을 먹는다. 단풍나무 한 그루가 곧게 서 있는 그늘진 중정에서.

 

ⓒHanul Lee

 

감각을 일깨우는 요소

 

반복되는 좁고 긴 창
좁고 긴 창을 반복적으로 내어 내부 공간에 빛이 군데군데 들도록 했다. 큰 창으로 넓게 들어오는 빛은 공간을 한순간 밝힐 뿐, 작은 창으로 여러 그림자를 내며 드는 조각 빛보다 선명하지 않다. 창문을 통해 막내 아이에게 빛에 대한 감각을 안겨주고자 했다. 시각과 촉각, 청각을 또렷하게 감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이의 치유에 도움이 되리라는 추측에서다. 중정을 향해 난 창은 실내 어디서나 바깥을 살필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Hanul Lee

 

촉감을 위한 벽과 바닥재
막내 아이의 방에는 촉각을 경험하며 놀이할 수 있는 기구가 벽과 천장에 설치되어 있다. 실내에서 클라이밍을 할 수 있는 알록달록한 암벽 패널과 나무로 만들어진 구름사다리가 바로 그것이다. 촉각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를 고려해 놀이와 연관지었고, 이를 공간에 구현했다. 한편, 맨발로 공간을 드나드는 아이를 위해 바닥재는 최대한 안전한 것으로 골랐다. 중정 바닥을 이루는 데크재는 이페Ipe라는 최고급 목재로, 아이가 안전하면서도 다양한 촉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Hanul Lee

 

밝은 색과 짙은 색의 대비
짙은 색을 선호한다는 건축주의 의견에 따라 실내 마감재로 쓰인 자작나무에 알콜 스테인을 칠했다. 알콜 스테인은 주로 가구 제작에 활용되고, 가구가 아닌 실내를 이루는 요소에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원하는 색의 구현을 위해 시공사가 현장에서 이를 직접 진행했다. 노출 서까래와 윈도우 시트 등이 착색이 적용된 부분이다. 짙은 색감의 목재와 화이트 톤의 벽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느낌을 더하는 가운데, 건식 세면대 타일은 밝은 노란색을 입혀 대조적이면서도 화사한 분위기를 더한다.

 

ⓒHanul Lee

 

가족을 위한, 가족에 의한

자기만의 방
아파트식 평면에서는 다섯 식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각자의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초등학생, 중학생인 두 딸은 어느덧 자기만의 방을 갖길 원했고, 이 같은 독립된 공간은 자녀들뿐 아니라 부부에게도 요원한 것이었다고. 중정을 제외한 공간의 평수는 50평대로 주택치고 그리 넓은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밀조밀한 구성을 통해 두 딸에게 각자의 방을 갖게 하고, 부부에게는 다락과 넓고 쾌적한 부엌을 선사해 가족 구성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평면이 탄생했다.

맞춤형 공간, 맞춤형 가구
가족의 욕구를 적극 반영해 공간을 구현한 후 사용성과 심미성을 고려해 가구를 선정했다. 공간이 맞춤으로 짜인 만큼, 그 안을 이루는 가구 역시 맞춤형으로 건축가와 함께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다. 거실에 있는 선반 형태의 책장과 각종 수납공간, 주방 싱크대 등은 현장에서 맞춤형으로 제작했다. 공간의 결을 해치지 않을 형태와 생활의 낱낱을 고려해 가구를 디자인하고 배치한 결과 이질적인 요소 없이 조화로운 집으로 거듭났다.

 

ⓒHan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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