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스토어의 디자인 방법론

[Focus] 이솝의 글로벌 스토어 전략
©Aēsop
에디터. 박지일  자료. 이솝코리아

 

① 시간의 축적을 담다 – 이솝 성수
② 폐기와로 만든 바다 한가운데 – 이솝 부산
활기찬 부력의 공간 – 이솝 제주
④ 이솝 스토어의 디자인 방법론


모든 동네는 저마다 고유하다. 지형적 특성, 역사 그리고 언어가 얽혀 하나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형성된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자, 관심사 혹은 취미를 즐기는 공간인 까닭이다. 한 지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별성에 초점을 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솝은 전 세계 각기 다른 스토어 디자인을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표현한다. 단순히 콘셉트를 빌려오는 것이 아닌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의미에서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마다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이해하고 절충하는 과정에서 깊은 친밀감과 조화로움을 경험한다. 새로운 지역에 완벽하게 동화되거나 지역 특유의 소재를 탐구하는 즐거움, 해당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경험하며 얻는 유대감, 다양한 파트너들과 협업을 통해 얻는 시너지. 이렇듯 차이를 포용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은 이솝의 고유한 철학이다. 지역이 가진 특성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구현해낸 모든 스토어의 면면에는 소비자들이 오래도록 향유할 수 있는 가치를 더하고자 하는 일관성이 숨어 있다. 짐짓 직관적일 수도 있는 이솝의 전략이 지향하는 바는 결국 지역에서 잘 해내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서 잘 지내야 한다는 단순명료함과 다름 아닐 것이다. 

 

©Aēsop

 

지역의 고유한 요소를 담는 방법 

지역 이해를 위한 이솝의 노력은 스토어가 자리할 동네를 직접 찾아 발로 뛰며 그 장소만의 고유한 요소를 분석하는 데서 출발한다. 집요한 탐구는 디자인 영감으로 이어지며, 이는 곧 미술, 영화, 시, 철학을 담아내는 무드보드mood board에 반영되어 프로젝트의 의도와 원하는 공간의 온도를 은유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런던 리젠트 가Regent Street’의 스토어는 1819년 존 내쉬John Nash가 설계한 웅장한 거리 풍경의 제도화된 격식을 연상시키는 과장된 제스처를 취한다. 이솝 사내 디자인팀은 위엄있는 비율, 대칭적인 공간, 아치형 천장 등 당시의 건축적 특징을 스토어 곳곳에 오마주함으로써 200여 년 전 역사를 그대로 공간에 재현해냈다. 

영화감독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와 협업한 ‘산 로렌조San Lorenzo’스토어를 있게 한 영감의 원천은 600m 떨어진 판테온과 지역의 수호신들을 비롯한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Pier Paolo Pasolini, 알베르토 모라비아Alberto Moravia와 같은 로마 출신 위인들이다.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 스토어는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가로질러 나누는 이스트 강의 물줄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솝 사내 디자인팀은 물 위로 반짝이며 부서지는 햇살, 강물에 비춰진 흐린 하늘, 도시 스카이라인을 물들이는 선명한 황혼 등 이스트 강의 표면을 매장 내부에 관념적으로 구현해 냈다. 

 

©Aēsop

 

이솝의 미적 철학 

지역 스토어에 대한 이솝의 미적 철학은 전 세계 어디서나 두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기존 토대에 남아 있는 강점과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과도한 시각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테라스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에서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아우르는 곡선 형태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디자인된 ‘루 드 나무르Rue de Namur’스토어는 건축가 베르나르드 뒤부아Bernard Dubois와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별도의 장식은 피하고 기존 직사각형의 기하학적 구조를 활용한 현대적 외관을 통해 따뜻함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모습을 조화롭게 보여준다. 

런던의 ‘소호Soho’스토어 디자인에는 파리의 이솝 르 마레와 메르시 작업을 함께한 프랑스 스튜디오 시구Ciguë의 디자이너 6명이 참여했다. 이솝이 이전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에나멜 처리된 강철 선반에 제품을 진열했는데, 이는 고대 이집트, 페르시아, 중국 왕조 시대 때부터 사용된 전통 공예 기법에 대한 존중이자 재료의 미감과 수명을 고려한 결과다. 

 

©Aēsop

 

두 번째는 질서 있는 반복을 통해 시각적 풍요를 더하는 것이다. 이솝 디자인의 시그니처인 세심하게 정렬된 앰버 유리병들, 지금은 없지만 이솝 애들레이드 스토어 천장에 드라마틱하게 설치되었던 750개의 의료용 플라스크, 뉴욕 파크 슬로프 스토어의 벽면을 뒤덮은 23,131개의 수제 흙벽돌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루카 구아다니노와 협업한 또 다른 스토어인 ‘피카딜리 아케이드Piccadilly Arcade’는 세면대를 중심으로 기하학적으로 퍼져나가는 바닥의 석재 타일에서 이솝의 미적 철학을 드러내며, 이솝의 인하우스 디자인팀이 프랑스 남부에서 손수 제작한 15,000여 개의 벽돌과 타일로 구현해낸 ‘액상 프로방스Aix-en-Provence’의 스토어 역시 그러하다. 

 

©Aēsop
©Aēsop

 

스토어 디자인에서 영감받은 기프트 키트 

이솝은 지역의 요소를 공간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가 이를 제품 디자인에도 확장한다. 11월 출시한 기프트 키트 ‘장소의 시학’은 시그니처 스토어 디자인의 밑바탕이 된 지역과 동네를 주제로 구성했다. 지역 문화 그리고 이웃과 관계 맺는 일의 장점, 가치, 즐거움을 전달함으로써 인간 협력과 연대감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준다. ‘콘그루어스Congruous’의 키트는 ‘다운타운 LA Downtown LA’스토어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그니어스Igneous’는 시드니 ‘피트 스트리트Pitt St, Sydney’스토어의 독특한 석재 파사드를 연상시킨다. ‘프리시피터스Precipitous’는 떠들썩한 쇼핑몰 한가운데 고요한 홍콩 ‘뉴 타운 플라자New Town Plaza’를 담아냈다. ‘인더스트리어스Industrious’는 서울 ‘사운즈 한남Sounds Hannam’스토어가 전하는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Aēsop

 

첫 번째 시그니처 스토어가 문을 연 이후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이솝 스토어는 브랜드 철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공간이자, 고객 경험을 중요시하는 이솝의 가치관을 오롯이 담은 공간으로서 그 의미를 지닌다. 최근 이솝은 비콥(B Corp)인증을 통해 온전한 재생 기업으로의 변화를 꾀하는 중이다. 이는 스토어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윤리적인 지역 기반의 재료 공급과 각 매장의 내재 에너지(건축 자재의 제조에 사용된 에너지)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스토어 하나가 영구적으로 문을 닫는 경우, 기존의 가구들을 회수하고 이를 재사용하기 적합한 장소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사려 깊은 디자인이라는 문구에 의미를 더하는 과정이 아닐까. 

 

 

경험을 전달하는 이솝 글로벌 스토어 전략

글. 최재영(더퍼스트펭귄 T-FP 대표)

 

브랜드에게 좋은 공간이란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큰 질문 이며 동시에 여러 답이 존재하는 넓은 질문이다. 다양한 관점과 견해가 존재 하지만, 브랜드와 소비자의 긍정적 관계 맺음에 기여하는 공간이라는 대답 에 큰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처럼 오늘날 상업 공간은 치열한 경쟁 환 경 속에서 자신의 제품 혹은 서비스가 소비자들에게 지속해서 선택받도록 브랜드와 소비자의 긍정적 관계 맺음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과거 상업 공간이 제품 혹은 서비스 판매에 목적을 두고 있던 것에 비해 산업 고도화와 사회, 경제, 문화의 비약적 발전을 이룬 오늘의 상업 공간은 방문자 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까지 그 목적이 확장됐다. 소비자들이 기능 과 가격뿐만 아니라 브랜드가 제공하는 다양한 무형의 가치를 주된 구매 기 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 평가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브랜드가 제공하는 공간 사용자 경험이다.

 

©Aēsop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Spatial User eXperience Design)이란 사용자 와 공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감각을 자극하고 교감을 유도하여 공간 사용자 니즈를 충족시키는 총체적 경험 디자인이다.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사 용자에게 자신이 속한 공간이라는 매체를 감성적으로 만족시켜 친밀감을 가 지게 만듦으로써 이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기억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수행 한다. 즉 특정 공간이 사용자에게 긍정의 장소로 기억되도록 만들어주는 것 이다. 이처럼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적용된 공간에서는 사용자와 공간 의 상호작용이 일어나 더욱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즉 공간 사 용자 경험 디자인은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기대와 요구에 심리적 만족을 이끌어 내는 주요한 공간 디자인 방법론이자 전략이다.

 

©Aēsop

 

이솝은 2003년 호주 멜버른에 만들어진 최초의 시그니처 스토어를 시작으 로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을 선구적이고 지속해서 실천해오고 있다. 이솝 스토어 디자인 특징으로 설명되는 ‘지역(성)에 대한 애정과 집착’, ‘총제적 감 각의 구현’이라는 두 개념 역시 이러한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솝 스토어의 건축적, 현상적 설계에 대한 근거, 즉 이솝 스 토어 디자인 전략의 핵심이 바로 치밀하고 섬세하게 고안된 공간 사용자 경 험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방문자에게 웰컴 티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더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국가와 지역 그리고 디자이너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방문한 2017년 런던 첼시 이솝, 2018년 교토, 2019년 가 나자와 그리고 올해 다녀온 베를린, 밀라노, 도쿄 이솝 스토어의 기억은 대체 로 비슷했다. 지역성에 기반한 공간 디자인과 감각적 경험 설계에 앞서 이솝 글로벌 스토어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전략)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이솝 스토어가 여럿 존재하며 글로 벌 스토어와 판매 제품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해외 여행 시 이 솝 글로벌 스토어를 꼭 들러야 하는 장소로 선정한다. 이솝의 오래된 전략이 여전히 강력하고 유효하다는 것의 방증 아닐까. 이솝이 그동안 쌓아온 시간 과 경험의 누적을 바탕으로 더 깊고 풍성한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을 선보 이길 바란다. 이솝의 진화를 응원한다.

 

<브리크brique>는 이솝Aesop과 파트너십을 맺고 이솝의 주요 매장과 공간 디자인 전략을 네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솝의 브랜드 철학과 기업 가치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공간과 브랜딩 전략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홈페이지.
www.aesop.com/kr

SNS.
@aesopskincare

 

You might also like

당신이 앉는 모든 순간

공간을 넘어 일상을 빛내는 조연, 시디즈 ‘올데이 체어’ 에가·버튼

원칙 위에 세운 취향의 집

[Story] ‘과학자의 집’ 공간 이야기

가장 나다워지는 우리만의 집에서

[Story] 집을 집답게 만드는 것들

평범과 비범 사이

[Story] 노말건축이 말하는 '과학자의 집'

공간의 표정, 경험의 온기

[What’s your Flavor] ② 워프앤우프

브랜드라는 세계

[What’s your Flavor] ① 서비스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