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서 시작해, 우리가 투영되는

[Be Curated] ③ 일상에 색깔을 입히는 큐레이션 숍 ‘TWL’
ⓒBRIQUE Magazine
에디터. 정경화  사진. TWL, 윤현기  자료 제공. TWL

 

‘큐레이션curation’은 과거 미술관, 박물관에서만 사용하던 용어였다. 하지만 수많은 정보와 상품에 노출되는 지금, 큐레이션이라는 말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널리 쓰인다. 큐레이터는 더 이상 학예사만을 뜻하지 않으며 큐레이션의 대상 역시 예술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뉴스, 책, 음악, 소품, 공간, 심지어 사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압도하는 정보 과잉으로 인해 모든 것이 필터링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남다른 안목과 뾰족한 취향으로 일상의 속 더 나은 선택을 제안하는 이들을 만났다. 콘텐츠를 선별해 맥락과 가치를 부여하는 그들에게 큐레이션이란 ‘크리에이션creation’이다. 밀도 높은 취미이자 비즈니스 수단, 또 다른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다. 무분별하게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그들이 구심점으로 삼은 것은 무엇일까. 온오프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써내려간 고유한 이야기들을 통해 일상 속 더 나은 선택, 나다운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Be Curated
① 시간이 쌓이며 더욱 공고해지는 세계 — 더레퍼런스
② 머물고 싶은 순간 — 리플레이
③ 나에서 시작해, 우리가 투영되는 — TWL
④ 가장 예술적이면서 동시에 대중적인 — 라이카시네마
⑤ 전시와 공간이 함께 짓는 이야기 — 피크닉
Life Curators
My Space Museum

 


스튜디오 fnt의 디자이너 김희선과 길우경은 큐레이션 숍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기 전인 2012년, 두 사람의 취향으로 ‘좋은 일용품’을 소개하는 숍 TWL을 열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things we love)’이라는 이름은 그들의 생각을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드러낸다. 일상을 잘 영위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브랜드는 다른 이들의 일상과 만나 더 큰 열매를 맺는다. 그들에게 큐레이션은 각자의 취향을 드러내는 방식이자 다른 이들과 조우하는 매개체다. 

 

길우경 TWL 공동 대표(좌), 김희선 TWL 공동 대표(우) ⓒBRIQUE Magazine

 

스튜디오 fnt에서 디자이너로 일해 오다 함께 TWL을 설립했어요. 어떤 계기로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길우경 평소에 더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일에 치여 여유 없이 사는 일상에서 한 끼라도 정성껏 차려 먹는 시간이 행복을 주잖아요. 거기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김희선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바쁘게 일하다 보면 일상은 금방 뒷전이 돼요. 독립하면서 드디어 나만의 공간에서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됐는데, 원하는 만큼 애정을 쏟을 시간이 없고 막상 기회가 생겼을 때 사용할 도구도 부족하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일로 했다기보다는 ‘나라는 혹은 우리라는 사람이 삶을 더 재미있고 충실하게 살고 싶은데, 그러려면 뭐가 필요할까?’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물이자 집합체가 TWL입니다. 그때의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요. 

 

2019년에는 핸들위드케어를 열며 업역을 좀 더 넓혔어요.

김희선 TWL은 다양한 제품이 한데 섞여 있다 보니 많은 물건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와요. 그중에서도 공들여 만든 차 도구나 예술과 일용품의 경계에 있는 공예품을 조금 더 오롯하게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 있었으면 했어요. 작가가 손수 만드는 작품이 많으니 숍의 형식으로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고, 수집가의 작은 방 같은 장소에서 전시의 형태로 소개하면 어떨까 상상하며 브랜드를 구상했습니다. 
길우경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을 하나 구입해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두고 힘들 때나 슬플 때 보면서 위안을 얻을 때가 있잖아요. 핸들위드케어는 그런 경험을 고객에게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말씀대로 TWL이 숍이라면, 핸들위드케어는 작가의 스튜디오나 갤러리처럼 느껴집니다. 두 브랜드는 무엇이 다르고, 또 얼마나 비슷한가요?

김희선 TWL의 띵스things에는 일상의 도구라는 관점이 담겨 있어요. 저마다의 일상이 모두 다른 것처럼 가볍고 캐주얼한 스타일부터 침착하게 정돈된 디자인까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요. 반면에 핸들위드케어는 내 물건이지만 조금 정중하게 대해야 할 것 같고 실제로 관리하기도 쉽지만은 않은, 작품에 가까운 것을 다룹니다. 모두가 그 가치에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소중하고 사적인 선호도가 높은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길우경 저희가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고르다 보니 비슷한 결이 있지 않을까 해요. 사람이 공통점이 되는 거죠. 대개는 대기업에서 대량 생산한 제품보다는 가족 회사나 소규모 공방에서 좋은 재료로 열심히 제작한 것이고요. 만든 사람의 가치가 많이 녹아 있습니다. 

 

ⓒTWL

 

맞아요. TWL의 큐레이션에는 두 분의 관점이 가장 많이 반영되었을 것 같아요.

김희선 큐레이션의 기준이 뭐냐고 물으면 ‘그냥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말해요. 때로는 일을 핑계 삼아 우리가 가졌으면 좋겠다 싶은 물건을 찾는 방편이 되기도 했고요.(웃음) 멋진 설명은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운영할 수 있었던 귀한 토대입니다. 
길우경 예나 지금이나 그 마음 하나로.(웃음) TWL은 모든 것이 저희 위주였어요. ‘이런 물건을 쓰고 싶은데 없네. 왜 한국에서는 아무도 판매를 하지 않는 거지?’에서 시작했거든요. 지금은 그때와 취향이 달라지고, 생활도 바뀌었죠. 그런 변화도 자연스레 묻어나요. 이를테면 아이가 생기면서 관련 제품에 관심이 늘다 보니 어린이전이라는 기획전이 탄생한 것처럼요. 

 

타깃으로 삼는 인물이 있나요?

김희선 뚜렷하게 타깃을 정한 적은 없어요. 다만 저희처럼 살림도 하면서 일도 하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아요. 집에서의 생활도 잘해 나가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많지 않은 저희 또래의 사람들이요. 이런 것에도 제 모습이 투영되는 거죠. 

 

브랜드의 입점 여부를 결정할 때는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확인하나요?

김희선 좋은 작업에 대한 기준은 굉장히 여러 가지잖아요. 저희는 오히려 만드는 이가 좋은 사람인지를 봐요. 어떤 제품을 판단할 때 물건과 사람의 총합으로 봅니다. 바른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 담담하게 작업한 결과물이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소장할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하고, 그 사람을 응원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담아 소개합니다. 
길우경 오리지널리티도 중요해요. 요즘에는 브랜드가 워낙 많아서 더 꼼꼼하게 확인합니다. 

 

물건 자체보다 작업하는 사람에 많은 관심을 두는 것 같아요.

김희선 브랜드를 오래 운영하면서 제작자분들과 한두 번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소통을 해왔어요. 그분들의 작업이 변화하고 브랜드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끼는 즐거움이 굉장히 크더라고요. 이런 것이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경험하는 기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로 작업을 하시다가 접는 경우에는 너무 아쉽죠. 구입한 손님의 입장에서는 허탈하기도 할 테고요. 그래서 되도록 저희와 함께하는 작가분들이 오랫동안 작업을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BRIQUE Magazine

 

마치 갤러리에서 작가를 찾아 나서는 듯한 마음이네요. 해외의 새로운 브랜드도 폭넓게 소개하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발굴하나요?

길우경 두 가지 일을 하다 보니 항상 시간에 쫓겨요. 희선 실장님은 식물과 고양이를 키우고 저도 육아를 하니 일상도 정말 바빠요. 자기 전이나 화장실 갈 때 틈틈이 찾아보고, 괜찮은 것이 있으면 디엠으로 아무 말 없이 링크만 서로 보냅니다. 대답이 없으면 별로구나 생각해요.(웃음) 
김희선 작가분들이 서로 소개해 주기도 하고, 관심이 있으니 항상 눈여겨봅니다. 식당에서 식사하거나 출장 갔을 때 누군가의 집 테이블에 놓인 물건도 주의 깊게 살펴보고요. 풀이 돋아나듯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그중 어떤 풀pool이 내 취향인지 재미있게 탐색합니다. 

 

그럼 언제 쉬어요?

김희선 저희의 일이 퇴근하면 오프가 되는 직업은 아니에요. 은근히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할 때도 많고요. TWL은 어찌 보면 남들이 취미로 할 법한 것을 일로 승화시킨 거라서 다 ‘내 탓이오’라는 마음으로 감내합니다. 여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길우경 10여 년을 이렇게 해오다 보니 습관처럼 됐고, 이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비싼 취미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TWL은 종로구 연건동에, 핸들위드케어는 한남동에 자리해요. 각각 어떤 계기로 이 장소를 택하게 되었나요?

김희선 처음에는 숍을 열 생각은 없었고 사무실을 옮길 장소를 알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했어요. 1년 넘게 장소를 물색했는데, 느낌이 좋아서 계약해 버렸죠. 창경궁이 근처에 있고 살짝 도심에서 벗어난 조용하고 호젓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사실 숍의 기준으로 본다면 단점인데 말이죠. 
길우경 TWL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던 터라 핸들위드케어는 입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서울 어느 곳에서 와도 너무 멀지 않은 곳이었으면 해서 지도를 놓고 중심부부터 살펴봤어요.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인데, 길가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좋은 일용품, 그리고 공예품이라는 주제에 맞춰 공간에 특별히 차이를 둔 부분이 있다면요.

김희선 TWL은 숍이지만 주방과 바 테이블이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합니다. 저희가 실제로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이나 몇 년 동안 사용한 물건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클래스나 워크숍을 하면서 제품을 써보는 경험도 함께 나누었으면 했고요. 
길우경 핸들위드케어는 작품을 전시하는 장소이지만,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 가구가 있는 방의 모습이에요. 작품이 추상적인 전시품이 아니라 공간에 놓였을 때 어떤 모습일지 자연스럽게 상상해 볼 수 있었으면 해서 소담한 크기의 방으로 계획했습니다. 

 

ⓒT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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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은 제품의 선정만큼이나 이를 보여주는 방식도 중요합니다. TWL은 기획전의 형식으로 제품을 새롭게 조합해 선보이는 경우도 많아요.

길우경 숍의 위치가 외떨어져 있다 보니 항상 비슷한 물건을 똑같이 배치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여기까지 오게 하는 것이 맞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기획전의 형식을 도입하게 됐어요. TWL은 일상의 물건을 소개하기 때문에 계절이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계절이 바뀌면서 생활에 변화를 주니까요. 이런 것도 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정도의 작은 시도로 시작해서 10년에 걸쳐 남길 것은 남기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어요. 봄에는 식물전, 5월에는 어린이전 등 시기마다 고정적으로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희선 봄과 가을에는 춘우장과 만추장을 열어요. 이 기획은 당시 샘플이나 B급 제품, 저희가 예전에 샀다가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꽤 있어서 ‘조그맣게 마켓을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마침 숍 옆에 주차장이 있고 벽돌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분위기도 괜찮았어요. 우리만 하면 심심하니까 다른 브랜드도 초대하면서 알음알음 열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헤어질 때 ‘가을에도 또 하는 건가요’ 하면서 만추장이 생겼고, 지금까지 매년 이어오게 됐습니다. 

 

ⓒTWL

 

판매를 위한 제품 소개에 그치지 않고 제작자나 사용자와 관련된 다채로운 콘텐츠를 제작해 의미를 확장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마치 잘 만들어진 웹진을 보는 듯했어요.

김희선 두 웹사이트 모두 저널이라는 코너를 따로 두고 콘텐츠를 소개하고 있어요. 핸들위드케어는 전시라는 고정된 형식이 있어서 그에 맞춰 작품전 소개, 작가 인터뷰를 준비합니다. 반면 TWL은 좀 더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발행해요. 브랜드나 작가를 집중해 소개하는 코너를 운영하고, 어떤 주제를 정해 큐레이션한 제품을 소개하기도 하고요. 요리 레시피, 도구 관리 방법, 물건을 구입하기 전후에 알아두면 좋은 팁 같은 정보도 전달합니다. 다만 저널처럼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로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이 처음에는 나름 새로운 시도였지만, 이제는 보편적인 방식이 됐어요. 저희보다 잘하는 곳도 많고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해요. 요즘에는 텍스트라는 형식 자체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요?

김희선 영상도 고민하고, 텍스트도 종이보다는 스크린 베이스가 많아졌으니 그에 최적화된 형식도 생각해 보고요. 마찬가지로 잘 꾸며진 정지된 이미지가 갖던 위상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어요.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식의 변화는 디자이너로서 숙제이기도 하고 재미있게 보는 관심사여서, 걱정하기 보다는 재미있게 제안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 합니다. 

 

최근 리빙 분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워요. 10년 동안 운영해 오면서 그 변화를 체감하나요?

길우경 일단 연령대가 굉장히 낮아졌어요. 예전에는 30대 이상은 되어야 저희가 판매하는 컵에 관심을 가졌는데, 요즘에는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예쁜 잔에 담아 먹고 싶어 해요. 또 브랜드를 처음 시작한 2012년에만 해도, 그릇을 사러 가면 백화점에서 전부 같은 디자인으로 4인이나 6인 세트를 골랐어요. 지금은 개개인의 취향에 맞게 잔도 그릇도 다양하게 구입합니다. 한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서도요. 정말 큰 변화예요. 마치 컬렉터처럼 일상의 물건을 고르고, 그 물건에 나를 투영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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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지금의 시대에 큐레이션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어요. 무엇이 큐레이션을 완성도 있게 만들 수 있을까요?

김희선 큐레이션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기준을 갖고 잘 모으는 거라고 봐요. 단편적인 키워드로 고르다 보면 오히려 뻔하고 재미없을 수 있어요.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이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다양하잖아요. 한 명의 인격체에 가까운 인물을 기준으로 모아서 어떤 취향의 복합체가 될 때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큐레이션 숍도 그런 의외성이 가치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양질의 제품을 알아보는 시선을 키우기 위해 어떤 연습을 하면 좋을지 조언을 전한다면요.

길우경 나를 들여다보는 훈련이 필요해요. 남이 한다고 따라 하는 것은 나에게 기쁨을 주지 않거든요. 남이 좋은 것 말고 내가 좋은 것을 알아야 내가 기쁜 순간을 찾을 수 있습니다. 
김희선 집들이하지 말아라?(웃음) 사람들이 물건을 한 번에 가장 많이 살 때가 독립하거나 결혼해서 집이 생겼을 때예요. 대접은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으니까 급하게 사죠. 그러면 좋은 것을 사기가 어려워요. 시간이 촉박하니 많이 알려졌거나 검증된 제품을 고르게 되고, 그러면 다른 이들의 취향을 따라가게 됩니다.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실수할 시간도 주면서 하다 보면 나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어요. 
길우경 저희도 예전에 샀던 물건 중 절반은 버렸어요. 하지만 실패는 실패가 아니에요. 시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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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행복해지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어요. 이곳을 연 후로 더 행복해졌나요?

길우경 그런 것 같아요. 제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어요. 다들 성공하고 싶고 계속 뭔가를 좇아 치열하게 살아요. 그러다 보면 평소에 화가 많아지고요. 저도 굉장히 바쁘게 살고 성격도 급해요. 하지만 내가 내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지더라고요. 물건 하나를 사용하더라도 그 시간이 나에게 주는 편안함과 행복감을 오롯이 느끼며 10여 년을 지내다 보니, 어떤 물건을 좋아하는 것이 명품 가방처럼 고가의 제품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어요. 그 기분이 좋습니다. 
김희선 잘 만들어진 물건에는 배울 점이 많아요. 예를 들어 그냥 컵만 주면 ‘마셔’지만, 잔 받침에 올려 건네면 ‘드세요’가 되잖아요. 이렇게 사소한 요소만 더해져도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 다구를 살펴보면, 차는 뜨겁지만 받침은 차가운 주석을 소재로 사용해 온도의 대비가 느껴져요. 내려놓을 때 나는 소리에는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개념이 스며 있고요. 물론 일상에서 이런 부분을 모두 의식하지는 못할 테죠. 그렇더라도 잘 만든 물건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거기서 오는 배움이 있어요. 공예품을 소개하게 된 계기도 같은 이유에서였어요. 예를 들어 공장에서 생산되는 그릇은 표면도 색감도 똑같아요. 그런데 저희가 소개하는 제품은 같은 모델도 전부 생김새가 조금씩 달라요. 그 점 때문에 판매가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것에 익숙해지고 나면 다 똑같이 생긴 물건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어색해요. 똑같은 사람이 두 명 있으면 무서운 것처럼요. 사물의 독자성이 갖는 멋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TWL과 핸들위드케어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김희선 사실 저희도 숍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가 많지 않아요. 심지어 입어 봐야 하는 옷조차도 온라인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오프라인 공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돼요. 그냥 물건을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 되어야 할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해요. 이에 대한 답은 앞으로 더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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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L
Things We Love(@twl_shop)는 공동대표들의 취향으로 좋은 일상생활 도구를 모아놓은 큐레이션 공간이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자리하고, 이 도구들을 통해 고객들의 일상생활이 더 좋아졌으면 하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핸들위드케어(@twl_handlewithcare)는 공예 작가들의 차 도구나 조심스레 일용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술품을 전시 형태로 소개하는 공간이며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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