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예술적이면서 동시에 대중적인

[Be Curated] ④ 예술영화상영관 ‘라이카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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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자료 제공. 라이카시네마

 

‘큐레이션curation’은 과거 미술관, 박물관에서만 사용하던 용어였다. 하지만 수많은 정보와 상품에 노출되는 지금, 큐레이션이라는 말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널리 쓰인다. 큐레이터는 더 이상 학예사만을 뜻하지 않으며 큐레이션의 대상 역시 예술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뉴스, 책, 음악, 소품, 공간, 심지어 사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압도하는 정보 과잉으로 인해 모든 것이 필터링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남다른 안목과 뾰족한 취향으로 일상의 속 더 나은 선택을 제안하는 이들을 만났다. 콘텐츠를 선별해 맥락과 가치를 부여하는 그들에게 큐레이션이란 ‘크리에이션creation’이다. 밀도 높은 취미이자 비즈니스 수단, 또 다른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다. 무분별하게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그들이 구심점으로 삼은 것은 무엇일까. 온오프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써내려간 고유한 이야기들을 통해 일상 속 더 나은 선택, 나다운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Be Curated
① 시간이 쌓이며 더욱 공고해지는 세계 — 더레퍼런스
② 머물고 싶은 순간 — 리플레이
③ 나에서 시작해, 우리가 투영되는 — TWL
④ 가장 예술적이면서 동시에 대중적인 — 라이카시네마
⑤ 전시와 공간이 함께 짓는 이야기 — 피크닉
Life Curators
My Space Museum

 


스마트폰 하나면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접할 수 있는 요즘, 선택을 바라는 수많은 콘텐츠가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우리 주변을 배회한다. 1 분 이내의 짧은 영상을 넘기는 일이 삶을 그럭저럭 위무하는 지금, 영화관이라는 장소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오직 영화만을 위한 공간에서 하나의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하는 시간, 그 영화를 제안한 누군가의 정제된 기준에 있을 테다.

2021 년 연희동에 문을 연 ‘라이카시네마’ 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영화관’을 지향한다. 일정 기준으로 선별한 영화로 라이카시네마가 제안하는 것은 대단한 철학 또는 깨달음이 아니다. 그저 다른 경험과 재미다. 그 다름은 근거 없이 유의미하다고 해도 좋다. 다름에서 비롯된 미세한 파동이 누군가의 삶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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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시네마는 연희동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독’ 에 속한 극장이죠. 공간이 만들어진 배경이 궁금해요.

스페이스독을 설립한 이한재 대표가 공간 전체를 총괄하고, 저는 이사로서 영화관을 운영을 맡고 있어요. 이한재 대표는 연희동 토박이인데 동네에 문화 공간이 있으면 하는 바람에 공간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라이카시네마, 2층은 카페 궤도 연희, 3~4층은 오피스예요. 우주에서 연희동에 불시착했다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우주 정거장 같은 공간을 계획했고, 영화관 이름은 최초로 우주에 보내진 강아지 ‘라이카’에서 빌려왔습니다. 영화관은 애당초 건물을 세울 때부터 예정돼 있었죠.

 

라이카시네마 이전부터 꾸준히 영화 일을 해왔죠. 계기가 있었나요?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과로 진학했기 때문에 영화 일을 하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어요. 영화 제작 현장에서도 일을 해봤는데 저와는 잘 맞지 않더라고요. 그보다 영화 산업 관련 사무직에 종사하고자 수입사, 투자 배급사로 이직했는데 회사가 코로나19 로 폐업을 맞았어요. 그러던 중 이한재 대표의 제안을 받아 라이카시네마로 오게 됐습니다.

 

영화관 운영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요?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 (웃음 ) 영화관 업무를 도와주면 된다고 해서 왔는데 그냥 공사장 상태인 거예요. 극장 이름도 당연히 미정이었고요. 영화관은 공연장과 달리 물리적 요건을 갖추기만 하면 끝이 아니에요. 스크린이랑 좌석이 있다고 해서 영화관으로서 인정받는 게 아니라는 거죠. 산업 특성상 지켜야 할 법규가 무척 여러 가지예요. 그러한 조건들을 갖추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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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부터 지금까지 라이카시네마의 큐레이션을 총괄하고 있죠. 투자배급사와 수입사에서 일할 때와 지금 업무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수입사는 영화를 한국으로 수입해 국내에서 개봉시키는 역할을 해요. 투자배급사는 기획, 제작, 배급 전반에 관여하고요. 극장을 운영하는 지금은 프로그래머로서 배급사와 커뮤니케이션하며 상영할 영화를 받아오고 있어요. 상영작을 직접 고른다는 점에서 영화사에 있을 때보다는 관객과 더 소통한다는 느낌이 강하죠. 이전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받아온 영화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여줄지가 관건이에요.

 

영화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대단한 방법이 있진 않고 홍보를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희 관객 대부분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라이카시네마의 정보를 확인하기 때문에 인스타그램 업로드에 보다 집중하고 있습니다.

 

© Laika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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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게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취급하는 몇몇 극장들이 있죠. 다른 예술영화관과는 어떻게 차별화하고자 했나요 ?

많은 곳으로 영화를 보러 다니며 느낀 건데, 시설이 노후한 예술영화관이 무척 많았어요. 상영이 주 목적이고 인테리어를 신경 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죠. 영화관에 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되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브랜딩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단순한 예술영화관보다는 SNS 에 자랑할 만한 ‘힙한 공간’이길 바랐죠. 실제로 저희 영화관에는 시네필보다 공간 자체에 매력을 느껴 가벼운 마음으로 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또 영화를 보러 왔는데 무엇보다 상영 시설이 좋아야죠. 멀티플렉스만큼의 경험치 조달이 가능하도록 관람의 가치를 높이는 시설을 마련하고자 했어요. 국내 예술영화관으로서는 유일하게 돌비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관객층을 타깃으로 설정했는지 궁금합니다.

연세대, 홍익대, 이화여대, 서강대 등 주변에 대학교가 많아 20 대 초반을 주 타깃으로 정했습니다. 실제 극장을 찾는 90% 이상의 관객이 20대일 정도로 평균 연령이 낮아요. 애당초 주차장을 갖추지 못하는 환경이었어서 연령을 낮게 설정한 것도 있죠. 타깃의 선호도를 고려해 다른 예술영화관보다 퀴어, 다양성,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영화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다양한 스마트 기기, OTT 서비스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는 때입니다. 오늘날 영화관의 역할과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기술적으로 영화를 처음 발명한 건 에디슨이지만 세계 영화사에서 최초 영화 탄생의 기점은 1895년 파리 그랑 카페에서의 상영이에요. 제겐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야말로 진정한 영화라는 신념이 있어요. OTT 콘텐츠도 영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때이지만 여전히 극장에서 함께 보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OTT에서 서비스하는 작품이어도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어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도 꽤 있고요. 그리고 OTT 엔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있잖아요. 큐레이션을 통해 ‘지금 이 영화를 경험하라’ 는 제안을 던지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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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시네마의 상영작 선정 기준이 궁금해요.

라이카시네마는 문화관광체육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는 예술영화전용관이에요. 위원회가 인정한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를 연 60%이상 상영해야 하는 일차적 기준이 있죠. 일반 상업영화도 상영할 수는 있으나 저희의 색과 맞지도 않고, 다른 멀티플렉스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요. 예술영화를 다루지만 어렵게 가진 않으려고 합니다. 영화를 잘 알거나 크게 관심 없어도 한 번쯤 궁금해서 오는 곳이 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어려운 영화를 다루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관객 기준에서 생각하려고 해요. ‘이걸 틀면 사람들이 보러 올까?’ 이 질문이 항상 우선이죠. 어렵더라도 좋은 영화를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저는 프로그래머지 영화학자가 아니니까요.

 

구체적인 편성 및 상영 절차는 어떠한가요?

프로그래머로서 상영하고 싶은 영화를 고르고, 해당 영화의 배급사에 상영 문의를 합니다. 기준은 특정 시기, 개봉일, 기획전 등 여러 가지예요. 다가올 여름을 고려해 6월에는 ‘에릭 로메르 여름 영화 기획전’을 진행했습니다. 감독의 다양한 작품 중 여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위주로 편성했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2022) 개봉 당시 감독의 전작을 모아 기획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 Laika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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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시네마의 브랜딩 의도와 잘 부합하는 기획전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었을까요?

작년 처음으로 진행한 에릭 로메르 감독 특별전인 것 같습니다. 저희 관객의 취향에 잘 맞아 떨어지겠다 싶어 수입사에 직접 요청해 상영했죠. 지적 허영심을 추구하는 소비층에 부합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영상미가 워낙 뛰어나 굿즈로도 많이 소비되고 있고, 프렌치 시크를 잘 보여주기도 하고요. 내용보다 영화 자체가 갖는 이미지에 대한 관심에 주목한 것이죠. 다른 극장에서도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상영한 바 있지만 저희 극장에서 유독 반응이 좋았어요. 감각적이면서도 문화적 시선을 끌어 올려주는 영화가 저희 관객에게 잘 소구되는 것 같습니다.

 

오렌지필름과 함께 진행한 단편 영화 기획전 ‘오, 쇼츠!Oh Shorts!’ 도 흥미로운 시도로 기억합니다.

한국 독립 단편영화에 대한 장벽을 낮추고 싶어 진행한 기획전이에요. 러닝 타임이 짧은 단편영화는 한 번에 서너 편씩 묶어 상영하는 것이 보통인데요, 꼭 그렇게 해야 하나 싶었어요. 10분짜리 한 편만 보고 갈 수도 있는데 말이죠. 티켓 가격을 편당 삼천 원으로 정했는데, 결과적으로 한 편씩 보고 가는 관객들이 많았어요. 라이카시네마에 와보고 싶었는데 두 시간짜리 영화는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잘 소구된 거죠. 가벼운 경험 차원에서 기획한 일인데 감사하게도 많은 관객이 찾아주셨어요.

 

그렇다면 흥행 여부와 관계 없이 개인적으로 뜻 깊은 기획전은 무엇인가요?

개관 1주년 기념 빔 벤더스 감독전이 기억에 남네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감독인데 한국에서 상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거든요. 한국에 배급사가 없어서 주한독일문화원과 독일에 있는 빔 벤더스 문화재단에 협조를 요청했고 자막 작업까지 저희가 다 진행해서 의미가 남달라요. 특히 ‘파리, 텍사스’ (1987) 는 제 인생 영화예요. 길 위의 사람들이 겪는 여정을 담았는데 외로움과 쓸쓸함이 잘 드러나 있거든요. 큐레이션할 때 제 취향보다는 관객의 눈높이에서 보려고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관객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뿌듯함이 남았습니다.

 

개별 작품이 하나의 주제로 묶여 큐레이션됐을 때 더 힘을 갖는 것 같아요. 이처럼 주제 자체가 의미 있던 기획전은 어떤 게 있었을까요?

작년 진행한 여성 감독 기획전이요. 근래 한국 독립영화 신에서 여성 감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여성의 삶을 잘 다뤄주고 있어서요. 또 저희 극장을 찾는 관객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될 지점도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90년대생 젊은 여성 감독의 영화들은 퀄리티와 트렌디함을 두루 갖추고 있어 독립영화에 대한 편견도 줄여주리라 생각했죠. 다만 온라인상 반응에 비해 극장을 실제로 찾은 관객은 예상보다 적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라이카시네마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보여주는 데는 충분히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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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극장에서 잘 다루지 않는 생소한 개봉작도 우직하게 상영하고 있어요. 그중 예상 외로 호응이 좋았던 작품이 있나요?

대부분 저조해요. (웃음) 극장만의 힘으로 한 영화를 이례적으로 성공시키는 건 어려운 일 같아요. 다만 계속 시도하고는 있어요. 제목부터 생소해도 좋은 영화라는 판단이 들면요. 최근 개봉한 ‘라이스 보이 슬립스’ (2023)도 이러한 차원에서 선정한 작품이죠.

 

상영작 선정만큼이나 이를 보여주고 알리는 방식도 중요하겠어요. 인스타그램을 주 소통 채널로 활용 중인데, 라이카시네마의 콘텐츠 업로드 기준은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게시물은 깔끔하고 통일성 있게 가려고 해요. 피드에서부터 브랜드의 이미지가 드러나면 좋겠다 싶어 초기부터 템플릿을 규격화하고 브랜딩 전략 수립 때 선정한 오렌지색을 키 컬러로 쓰고 있죠. 텍스트에는 기본적인 정보를 담되 임팩트 있는 문장을 넣으려고 합니다. 제가 일일이 영화에 대한 평가나 카피를 떠올리는 건 효율적이지 않으니 영화 속 문장이나 평론가들의 리뷰를 인용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또는 바람을 들려준다면요.

오렌지필름과의 단편영화 기획전처럼, 가능한 협업을 자주 해 색다른 기획전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현재는 ‹돈 패닉› 매거진과 함께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어요. 지역주민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할인도 꾸준히 진행할 예정이고, 졸업영화제나 감독 데뷔 행사도 진행하고 싶습니다. 라이카시네마가 가장 대중적인 예술영화관,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해요. 기존의 예술영화관들이 소구하는 전문성은 인정하지만 진입장벽이 다소 높은 느낌이 있으니까요. 더 많은 사람이 예술영화가 어렵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상업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와 뿌듯함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라이카시네마Laika Cinema

연희동에 위치한 예술영화 상영관 라이카시네마(@laikacinema). 이곳은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에게 하나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공간을 구성하고 관객들의 눈높이를 주시하며 큐레이션 한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길이가 짧아지는 콘텐츠 시장의 흐름 속에서 ‘가장 대중적인 예술영화관’을 지향하며 공간의 의미를 지키며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Be Curated’  전체 이야기를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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