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위로를 얻는 스테이

[Insight Talk] ② 노경록 지랩Z-Lab 대표
©Hyeonki Yoon
에디터. 정경화  사진. 윤현기  자료. 지랩 Z-Lab

 

<브리크brique>를 빛낸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하는 ‘브리크 인사이트 토크Brique Insight Talk’, 그 첫 번째 만남이 지난 4월 29일(토)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렸습니다. 국내 공간 씬의 변화를 주도하는 4명의 크리에이터가 ‘공간으로 읽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주제로 그간의 경험과 식견을 펼쳐주었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를 브리크 웹미디어 독자들께 소개합니다.


2023 Brique Insight Talk

① 통합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 – 최재영 더퍼스트펭귄 대표
② 쉼과 위로를 얻는 스테이 – 노경록 지랩 대표
③ 공간, 모든 것을 연결하다; 주택부터 카페, 사옥까지 – 김창균 유타건축 대표
④ 서비스센터가 하는 브랜딩 이야기 – 전수민 서비스센터 대표

 

지랩의 핵심 가치: 토탈 디자인

 

노경록 지랩 대표 ©BRIQUE Magazine

 

지랩은 공간과 장소를 기반으로 브랜드를 만드는 디자인 그룹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토탈 디자인입니다. 스테이가 투숙객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일관된 아이디어가 중요합니다. 디자인이나 마케팅, 운영 어느 하나만으로는 아이디어가 일관되게 지켜지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건축 혹은 인테리어만 하고 나머지는 전문가나 클라이언트에게 맡기기보다는 부족하더라도 전 과정을 소화하는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생각에 ‘토탈’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현재 지랩에서 디자인하고 스테이폴리오가 운영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스테이를 지스테이라는 네이밍으로 구분하고 있는데요. 각자의 분야에서 발생하는 이슈를 함께 개선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이려 합니다.

이제 스테이라는 단어가 대중화되었습니다. 스테이폴리오를 시작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스테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공간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장소를 스테이라 할 수 있겠고요. 단어 자체가 머문다는 뜻이니 그것이 주는 안정감이나 특별함이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작업을 하면서 스테이가 갖추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저희만의 기준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담긴 네 가지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BRIQUE Magazine

 

와온, 오래된 장소를 다시 짓는 마음

 

와온(2019)은 1960~70년대에 지어진 제주 돌집을 고쳐 지은 스테이입니다. 함덕리는 대부분 관광지로 변모한 다른 마을에 비해 아직은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돌집도 꽤 남아있습니다. 다만 이곳에도 개발이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고, 저희 또한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으로서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Byunggeun Lee
 

오래된 공간을 다시 짓는 프로젝트를 할 때, 목표가 본래의 장소성을 유지하는 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이 공간이 지닌 매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파악하고, 어느 선까지 살릴 것인지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는 것입니다. 특히 스테이는 사람이 하루를 온전히 머무는 곳이기에 안전, 단열이나 난방 같은 쾌적성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합니다. 원형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남길 수 없으며, 라이프스타일과 기능에 맞추어 철거할 부분은 과감하게 제거해야 하죠.

 

건축: 기존의 장소에서 남긴 것

사실 이러한 장소는 예전에는 건축가가 바라보지 않던 공간이었어요. 고쳐 짓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을뿐더러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죠. 오히려 스테이라는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옛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 경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가치를 갖게 되고,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사이트를 처음 방문했을 때 오랫동안 버려진 돌집이 주는 생명력과 묘한 안정감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어떤 원칙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고 도면화할 수도 없는, 사람이 만들었지만 본래부터 타고난 것처럼 굉장히 자연스러운 공간이 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마루나 흙벽이 주는 토속적인 분위기, 따뜻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비례 등을 살리기로 했습니다.

 

©Byunggeun Lee
©Texture on Texture

 

콘텐츠: 테라피

이곳에서의 시간이 단순히 하루 머무는 활동으로 끝나지 않고 치유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테라피’로 남기를 바랐어요. 테라피에 대해 여러 조사를 하면서 단순히 케어를 받는 과정만이 아니라 치료를 받기 전과 그 이후에 릴렉스하는 단계까지 세 가지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아이디어로 삼았습니다. 투숙객을 환대하고, 테라피를 받고, 휴식하는 세 개의 존을 배치하고 안락한 전이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투숙객은 이곳에서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둔 듯한 장소에서 머물며 스스로 치유의 과정을 경험합니다. 따뜻한 차, 온탕과 같은 콘텐츠가 공간의 색감, 질감과 어우러져 제주 시골집의 온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Texture on Texture
©Texture on Texture

 

얼마 전에 와온을 다녀왔는데 식물이 자라서 생명력이 더욱 느껴졌습니다. 건축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의 때를 얻고 낡게 되지만, 자연은 오히려 더 안정화되고 풍부해집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조경에 더욱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옥 에세이 서촌, 한옥을 다루는 것에 대하여

 

한옥 에세이 서촌(2020)은 서촌 한옥을 리뉴얼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앞서 소개한 와온 같은 작업은 버려진 돌집을 이용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좋아하지만, 한옥은 훨씬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한옥 전문가입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죠. 그래서 때로는 저희 작업에 대해 ‘너무 일본스럽다거나 중국스럽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고, 어디까지가 원래 있던 것이고 무엇이 새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문화재를 복원하는 접근보다는 공간이 지닌 원형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동시에 지금의 시대상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한옥을 짓는다는 관점으로 작업했습니다. 

 

©Texture on Texture
 

건축: 로컬리티와 정체성의 공존

문화재에 가까운 한옥이 많은 북촌과 달리 서촌에는 1930~60년대, 지금으로 치면 집장사가 대량으로 지은 집이 많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들이 짓다 보니 비례나 규격이 유사합니다. 이러한 한옥이 집단을 이루면서 문화재가 되었고, 서촌만의 골목 풍경을 만들었죠. 그 분위기를 이어 가면서 지역성을 지키고, 한편으로는 이 집만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해 도시가 다양성을 갖도록 했습니다.

이곳은 본래 ㄱ자형 한옥이었는데,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중정을 메워 거실로 만든 상태였어요. 서촌에는 이렇게 바뀐 도시 한옥이 매우 많습니다. 정원, 화장실도 다 실내 공간이 되어버린, 불법 건축물인 셈이죠. 이를 원래의 배치인 ㄱ자형으로 복원하고 정원을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Texture on Texture

 

콘텐츠: 환대의 공간, 사랑채

환대라는 콘셉트는 클라이언트가 제안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해외 업무 때문에 출장이 잦았는데, 문화적, 경제적으로 발전한 도시일수록 환대의 문화가 발달했음을 느꼈고, 그 문화 속에서 사람들이 친밀감을 갖고 교류하면서 발생하는 시너지가 도시를 더욱 성장시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문화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고 하였죠. 그 결과 환대라는 콘셉트가 탄생했습니다.

전통 건축에도 환대의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채입니다. 사랑채는 집주인이 손님을 맞이하고, 글이나 그림을 주고받으며 식견을 나누고, 때로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기도 하는 곳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재력가나 양반일수록 환대의 문화가 강했죠. 사랑채의 기능을 섬김, 교류, 풍류 세 가지로 정의하고, 이를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디자인했습니다.

 

©Texture on Texture
©Texture on Texture

 

라운지는 첫 번째 공간이라 특히 중요했습니다. 투숙객이 대문을 열고 정원을 거쳐 라운지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끊이지 않고 연속되도록 설계했고, 누군가가 맞이하지 않더라도 환대받는 느낌이 들도록 두 사람만을 위한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또 하나의 핵심은 의자인데요. 클라이언트분이 평소 좋아하던 라운지체어를 직접 제안하셨어요. 유명한 북유럽 디자이너의 가구인데, 의자가 놓인 모습만으로도 환대하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Texture on Texture
©Texture on Texture
©Texture on Texture

 

북유럽 의자나 벽난로 같은 현대적 요소로 채워져 있지만 의자에 앉아서 바라보는 정원과 한옥의 풍경은 매우 한국적입니다. 이렇게 상반되는 요소가 모여 편안한 쉼에 집중하는 현대의 장소가 완성되었습니다.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잔월, 마을의 장소성이 녹아든 스테이

 

잔월(2021)은 제주 한림읍 명월리에 스테이를 짓는 프로젝트입니다. 관광지가 되지 않은 마을이었고 신축 작업이라 마을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지에 대해 고민이 컸습니다. 마을 어귀에는 명월리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장소가 있고 오래된 팽나무 군락이 자리합니다. 그 역사성을 청풍명월이라는 키워드로 녹여 보기로 했습니다.

 

©Janwol

 

콘셉트: 청풍명월, 바람과 나무, 달빛이 어우러지는 집

리뉴얼 프로젝트는 투숙객이 장소가 품은 이야기를 상상할 여지가 많습니다. 그러나 새로 짓는 스테이는 고유한 요소가 없으니, 새것이 주는 편리함은 있지만 장소만의 이야기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신축 프로젝트에서는 주변 환경이나 대지의 형태, 길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Janwol
 

이 땅은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장소였고, 커다란 나무가 여럿 있었습니다. 나무를 통해 본래의 장소성을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기존의 나무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땅의 특이한 형상에 대응해 건물을 배치했습니다. 그래서 완성된 형태가 독특하죠. 각각의 채들이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고민해 배치하고, 나무 사이로 지붕이 넘나드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시각적으로 열려 있으면서 그 사이로 바람이 넘나들며 청풍명월의 의미들을 되새기도록 했습니다.

 

©Janwol
©Janwol

 

문제는 대지를 여러 번 실측했음에도 막상 건물을 앉혔더니 나무가 휘어져서 지붕에 걸렸어요. 건축주와 고심한 끝에 결국 나무 대신 지붕을 잘라냈는데, 그것이 프로젝트의 성공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Janwol

 

잘 안착한 나무는 그늘을 돌려주고, 향이나 조명 같은 요소, 다도 같은 콘텐츠는 청풍명월을 즐겼던 조상들의 풍류를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달빛이 드리워진 나무 그늘에서 스파를 즐기는 행위가 정점입니다.

 

©Janwol
©Janwol
©Janwol

 
 

스테이 느릇: 함께 만드는 건축

 

마지막으로 스테이 느릇은 요즘 진행 중인 작업입니다. 제주 보롬왓에서 농업 기반의 농원을 운영하는 회사의 스테이를 짓는 프로젝트인데요. 여기에는 그동안 스테이를 작업하면서 했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춘천에 위치한 오월학교를 작업하면서 함께 하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많이 느꼈습니다. 홀로 있는 경험만 쉼과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닐 텐데 서로 만나고 소통하는 것으로 같은 가치를 전할 수는 없을지, 스테이에서는 어떻게 그러한 경험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Z-lab

 

클라이언트 회사는 농업, 상생, 공존을 비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직접 땅을 갈고 농업을 지속해 온 곳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가치에 의미를 둔 스테이라면, 커뮤니티도 녹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를 바탕으로 호스트와 게스트, 자연과 함께하는 경험이 있는 스테이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스테이 느릇을 비롯해 지금 준비하는 여러 프로젝트가 내년쯤 완성될 텐데요. 그때 지금처럼 또 한 번 소개해 드릴 자리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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