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모든 것을 연결하다

[Insight Talk] ③ 김창균 유타건축 대표
©BRIQUE Magazine
에디터. 현자연 인턴  사진. 윤현기  자료. 유타건축

 

<브리크brique>를 빛낸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하는 ‘브리크 인사이트 토크Brique Insight Talk’, 그 첫 번째 만남이 지난 4월 29일(토)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렸습니다. 국내 공간 씬의 변화를 주도하는 4명의 크리에이터가 ‘공간으로 읽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주제로 그간의 경험과 식견을 펼쳐주었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를 브리크 웹미디어 독자들께 소개합니다.

 

2023 Brique Insight Talk

① 통합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 – 최재영 더퍼스트펭귄 대표
② 쉼과 위로를 얻는 스테이 – 노경록 지랩 대표
③ 공간, 모든 것을 연결하다; 주택부터 카페, 사옥까지 – 김창균 유타건축 대표
④ 서비스센터가 하는 브랜딩 이야기 – 전수민 서비스센터 대표

 

 

단절된 공간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일상

 

김창균 유타건축 대표 ©BRIQUE Magazine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들은 사실 똑같이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방과 복도로 이뤄졌죠. 그래서 아파트뿐 아니라 호텔, 학교, 병원, 군대, 심지어 감옥까지도 같은 구조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형태는 많은 인원을 편리하게 관리하고 감시하기 편한, 효율적인 공간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다보니 여기서 감성, 즐거움,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죠. 공간은 사고를 지배하는 측면이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 중2가 무서워서 북한이 남침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죠. 그 중에서도 노란색 학원 버스를 타고 다니며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학생들이 가장 강력하다고 하던데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전세계에서 가장 획일화된 사고를 갖고 있는 집단이라는 걸 빗대한 말한 겁니다. 전국의 학생이 어떻게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겠어요. 저는 그들이 사는 공간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을 생성하는데에 건축가가 일조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반성을 해보곤 합니다.

‘상상할 여지가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저와 유타건축의 목표입니다.

 

©BRIQUE Magazine
정연두 작가의 ‘상록타워’. 개성 넘치는 개인이 왜 같은 거실, 같은 공간에 살아야 하는가를 꼬집는 작품 <자료제공=김창균>

 

공간의 연결

 

유타건축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을 꼽으라면 ‘정情’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신념 같은 것입니다. 공간과 공간이 연결되고, 사람과 사람이 눈 맞추는 좋은 공간, 정이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 골목길의 평상입니다. 평범한 골목길에 평상 하나만 두었을 뿐인데, 마을사람들의 행동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죠. 어린이들이 평상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아주머니들이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이 평상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 셈이죠. 

 

평범한 골목길에 평상을 두고 난 뒤 생긴 일 <자료제공=김창균>

 

두 번째 사진은 덴마크에 있는 집인데요, 건축사무소 BIG가 설계한 ‘VM하우스’입니다. 뾰족뾰족한 발코니가 보기에도 멋진 디자인이죠. 그런데 이 발코니 덕분에 해가 뜨는 날이면 집집마다 거주자들이 햇볕을 쬐러 나와요. 서로 오랫만에 이웃에게 인사도 하고, 근황을 나누는데 거리낌 없는 문화의 기반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발코니가 자연과 이웃과 소통의 역할을 하는 ‘VM하우스’ <자료제공=김창균>

 

마지막은 덴마크의 외레스타드 고등학교입니다. 이 학교의 목표는 대학진학률, 좋은 성적처럼 ‘숫자’에 있지 않아요. 이들은 “우리는 학생들이 프로듀서이자 커뮤니케이터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합니다. 직업이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획하고 다른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 자체가 목표라는 거죠. 이처럼 지향하는 바가 다르니, 필요한 공간도 다릅니다. 그래서 이런 공간이 태어난 거죠. 또 이렇게 재미있는 공간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독특한 생각과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덴마크 ‘외레스타드 고등학교’의 중심 계단 <자료제공=김창균>

 

이같은 사례들의 핵심이 뭘까요? 바로 ‘접속’입니다. 우연한 만남이 생겨야 사건이 발생하고 그들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죠. 그럼 건축가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경계와 공간

 

단독 주택

집을 지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먼저 자신의 욕망을 파악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왜 집을 지으려하는지,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공간은 무엇인지를 살펴야하죠. 간혹 친구나 제 3자의 조언에 휘둘리는 경우를 보는데, 그 분들은 꼭 나중에 후회합니다.

유타건축이 제안하는 좋은 공간은 먼저 자연과 맞닿는 면을 넓히는 것입니다. 단절된 실내의 모습은 항상 같을 수 밖에 없지만, 자연은 시시각각, 또는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연과 맞닿는다는 것은 같은 가격으로 더 많은 풍경을 갖는 걸 의미한기도 합니다. 

그 다음엔 눈맞춤입니다. 가족이 어느 공간에 있더라도 접속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건축적 어휘를 사용해야 합니다. 방과 방을 연결한다든지, 층과 층을 계단과 미끄럼틀로 잇기도 하죠. 키워드는 눈맞춤이지만, 다양한 대안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건축주가 선택하기 때문에 결국 집주인을 닮은 건축이 탄생하게 됩니다.

‘아이가 아토피가 있어서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주세요’, ‘직업이 소방관인데 아들이 소방서에 놀러왔다가 봉타는 것에 재미가 들렸어요’, ‘친구와 캠핑을 자주 하고 싶어요’ 등과 같이 아주 구체적인 욕망이 있을때, 건축가는 더 좋은 설계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김천 동그란집 ©Yoon, Joonhwan
운양동 캐빈 하우스 ⓒnarsilion
포천 p-house

 

상가 주택

상가주택은 건물주 상당수가 수익을 올리는 데 목적이 있어 임대세대를 위해 발코니를 내어주거나, 복도를 넓히는 등에서 보수적입니다. 전용면적이 줄어들면 손해가 나고, 경제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음의 두 사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임대인을 위한 거주환경을 고려해 외기를 접할 수 있는 발코니를 넣고,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도록 복도를 넓혔죠. 월세가 다른 집에 비해 높았지만 공간의 질을 알아본 임차인들이 줄을 섰던 사례입니다. 더 좋은 공간을 창출하는 일이 오히려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좋습니다. 또 법규상 용적률에서 오히려 더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이천 각설탕집 ⓒSehwon Park
ⓒUtaa Company
수원 더스퀘어 ⓒSehwon Park
ⓒUtaa Company

 

사옥

사옥을 보통 네모반듯하게 짓는 이유는 에너지 효율 평가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이 좋은 것이 꼭 사용자에게 높은 만족도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정량적인 평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인간은 정성적인 존재라, 비록 난방비가 더 나온다하더라도 자연과 맞닿은 공간이 많거나 발코니와 테라스가 있다면 만족감이 높습니다. 이것은 사옥에서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청담동 ‘라이트큐브’
유타건축이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는 중곡동 ‘도시다반사’

 

카페

카페는 커피가 맛있고, 좌석이 편안한 것도 중요하지만 최근에는 사진에 예쁘게 담기는 것이 더 중요해졌죠. 사진에 잘 담을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주어진 환경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 지에 달려 있습니다.
유타건축이 주로 하는 설계가 주택이기 때문에 상업공간은 맡기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잘 만들어진 주택을 보시고 다른 용도의 일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상 공간의 중심을 접속에 두기 때문에 더 많은 만남, 더 많은 자연을 품은 공간을 만드는 것은 상업공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도 역시 더 좋은 공간은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한다는 경제적 원리가 작동합니다.

 

영종도 카페 ‘미음’
여수 모이핀2
여수 모이핀1
당진 LoLo ⓒHanul Lee

 

어린이 공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아이들의 눈높이가 제일 중요하죠. 과학관이라고, 학교라고 해서 공부에 도움되는 이론을 늘어놓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어린이는 뛰어놀아야 합니다. 다만 놀 때 놀더라도, 놀이가 끝나고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을 남겨 놓는 것이 중요하죠. 모든 놀이의 끝은 하나로 이어져야 합니다. 해답을 내는 과정에서 누가 더 빨리 답을 찾나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 공간은 설계합니다.

 

과천 국립과학관 ‘감각 놀이터’ (리모델링 전)
과천 국립과학관 ‘감각 놀이터’ (리모델링 후)
수송초등학교의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

 

공공 프로젝트

정문이라고 해서 문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휴게공간이라고 해서 의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의 정문은 학생들을 반기는 것이고, 휴게공간은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죠. 공간의 목적에 집중하다보면 더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비록 경제적이지 않고, 하나의 정답이 아닐지라도 모두의 개성을 존중하고 새로운 답안을 제시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작업합니다. 덕분에 서울시립대 교문 같은 결과물이 나왔죠. 

 

서울시립대학교 교문 ‘Blurring Boundary’
서울시립대 휴게공간 ‘Rest Hole’

 

질의 응답

 

Q1. 개인적으로 브랜딩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고, 10평 정도 작은 공간이라 큰 공사를 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제약이 많은 공간에서 책방과 카페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연결이나 적극적인 공감이라는 관점에서 어떤 거를 더 신경쓰면 좋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A1. 이미 두 개의 프로그램을 연결한다는 키워드가 있으시네요. 연결을 통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기획을 이미 하고 계신 것 같아요. 다만 크기만 10평 남짓한 거에요. 현장을 봐야 알겠지만 가로, 세로뿐 아니라 높이까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확인해보세요. 또 공간을 사용하는 측면에서도 ‘여기는 이렇게 쓸거야’라고 단정짓지 마시고 중간에 접점을 유연하게 한다던지, 조금의 변형으로 공간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사실 실현되기 위해서는 전문가와 마감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발전시켜야 하지만, 고민을 하다보면 충분히 원하시는 걸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최근에 한 작업 중에 미용실인데 손님을 한 명만 받는 미용실을 설계한 적 있습니다. 손님이 TV만 보면서 기다리는 게 싫다고 하셔서 화면 대신에 자연을 볼 수 있는 협소한 미용실을 만들어 드렸어요. 원하시는 바가 명확하다면 충분히 자금과 협의가 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Q2. 단독주택 예비건축주입니다. 공사를 진행하다보면 총단가가 결국에 처음 얘기한 예산보다 많이 초과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건축주는 어떤 것을 확인해야할까요?

A2. 사실 건축주의 예산에 최대한 맞추는 게 직업적인 예의이죠. 다만 현장 상황의 변동성이라는 것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처음 제시한 예산대로 진행하는 것이 어려운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대신 유타건축은 그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대안을 굉장히 많이 준비합니다. 초기에 건축주와 굉장히 많은 대안들을 같이 검토하면서 스스로 어떤 결과물을 원하는지 정의합니다. 그러니 건축주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건축가가 설계를 진행할때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지, 그러면서 부족한 걸 채우면서 완성도를 높이는지 확인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Q3. 건축설계를 전공한 학생입니다. 그동안 좋은 건축주란 ‘돈이 많은 건축주’라고 생각했는데요, 소장님이 작업하시기에 좋은 건축주는 어떤 사람인가요?

A2. 본인의 생각이 뚜렷한 건축주가 좋은 의뢰인이죠. 친구들 말에 귀가 팔랑이다보면 안됩니다. 그거는 그 사람의 욕망인거지 본인의 욕망이 아니거든요. “내 현관은, 내 주방은 이랬으면 좋겠어”를 조금 더 본인 스타일대로, 공간을 사용할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으면 좋겠어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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