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 속 감각을 여는 호텔

[Stay here] ④ 온전한 쉼을 경험할 수 있는 ‘이제 남해’
©Kiwoong Hong
에디터. 김지아  사진. 홍기웅  자료. 더퍼스트펭귄

 

머무는 공간이자 장소를 뜻하는 오늘날의 ‘스테이stay’는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안한다. ‘여행’과 ‘집’,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재고하기를 요청받는 과정에서 스테이의 맥락은 폭넓게 재편되는 중이다. 브리크는 이번 특집에서 공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야기가 명확한 여러 스테이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각 공간에서 건축가, 디자이너, 운영자가 제안하는 바는 결국 변화하는 동시대의 생활 양식과 닿아 있다. 자연 속에서의 휴식, 자발적 고립, 일과 생활, 스포츠와 문화 활동, 유려한 건축 공간에서의 비일상적 경험까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스테이의 궤적을 살피는 일은 이 시대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과 다름 아닐 것이다.

 

Stay here
① 오늘의 여인숙 – 삼화 여인숙 
② 완벽한 고립의 시간 – 의림여관 
③ 세 가지 사색의 공간 – 서리어
④ 고요함 속 감각을 여는 호텔 – 이제 남해
⑤ 숲속 진정한 나를 마주하다 – 아틴마루
⑥ 호텔과 글램핑 사이 – 글램트리리조트
⑦ 일과 쉼이 공존하는 곳 – 오-피스제주
⑧ 꼭 하룻밤만큼의 예술 – 다이브인 인사
⑨ 여기가 내 집이었으면 – 어 베터 플레이스


 

묵색 바다를 마주한 육지 끝자락
남해의 동쪽 삼동면에는 물이 들고 나는 얕은 해안가를 따라 낮은 건물들이 드문드문 자리한다. 그중 갯벌로 잘 알려진 금천마을 인근 도로에서 펄이 있는 방향으로 한 발짝 더 깊숙이 들어서면, 환대하듯 천천히 열리는 문 너머로 바다를 향해 고요히 선 건물이 시선을 끈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비어 있던 모텔 건물을 한층 부드러운 인상으로 리노베이션한 호텔 ‘이제 남해’다. 대부분의 바닷마을이 그렇듯 목적 없이 지나가다 들르기엔 외진 곳일뿐더러 도로에서도 한발 물러서 있어 이곳엔 그 흔한 자동차 소음도 없다. 바다와 육지를 자유로이 오가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 물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그윽한 생동의 흔적만이 유일하다. 그렇게 이제 남해는 땅이 만들어낸 선명한 풍경으로부터 시작됐다.

 

©Kiwoong Hong

 

새로운 감각을 통한 감응의 시간
이토록 고요한 곳에서 공간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멍하니 객실에 앉아 물이 지나가는 자리를 지켜보는 일만으로 휴식이라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이는 바다를 낀 각지의 숙박시설이 저마다의 오션뷰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설득력이 부족한 콘셉트였다. 이에 따라 디자이너는 대지가 이루는 고유한 적요의 풍경에 다시금 집중했다. 고요한 환경은 각종 소음으로부터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기에 좋은 조건이다. 감각을 하나둘 열어가는 과정에서 그간 놓쳐 왔던 마음과 새롭게 조우할 수 있고, 이내 그 마음을 움직여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곧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다. 그렇게 ‘감각을 열어 감응을 이끌어낸다’는 주제는 이제 남해의 주요 콘셉트가 되었다. 대지나 구조의 맥락을 주로 살펴 설계를 끌어가는 일반적인 접근에서 나아가 공간에 담길 콘텐츠까지 적극적으로 고민한 결과다. 호텔과 같은 상업시설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건축 공간뿐 아니라 브랜딩과 운영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아는 운영자와 디자이너는 세 요소에 나란히 비중을 두고 작업했다.

 

©Kiwoong Hong
©Kiwoong Hong
©Kiwoong Hong

 

땅을 닮은 건축
기존 건물은 ㄱ자와 ㄴ자의 형태가 합쳐진 ㄷ자를 이뤘다. 신축이 아닌 리노베이션인 이상 형태에 큰 변화를 주기는 어려웠고, 복잡했던 조형을 정리하는 일이 우선시됐다. 이에 더해 어느 방향으로 건물을 개방하고 차단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했다. 일차적으로 객실의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해 중정 방향으로는 닫힌 인상을 취했다. 그럼에도 마주하는 이들로 하여금 답답한 느낌을 주지 않도록 상층부 벽면에는 벽돌을 하나하나 쪼개 쌓아올려 작은 여백을 품은 패턴을 더했다. 이를 통해 빛이 내리쬘 때 벽체의 소재들이 반사되면서 자연스러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또한 울퉁불퉁한 표면은 마치 잘게 바스러진 자갈의 질감을 연상시키면서 촉각적 매개로 기능한다. 외장재용 벽돌은 최대한 땅과 어우러지도록 마주한 갯벌과 가까운 색으로 골랐다. 그리고 비어 있던 중정에는 대나무를 심어 바람정원을 조성했다.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과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감각의 확장으로 이어질 것을 염두에 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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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만큼 넓은 외부 공간
객실은 1층부터 3층까지 총 18개 실로 구성됐다. 각 방마다 배치와 구성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살리고자 한 부분은 바로 실내와 실외의 연결이다. 면적과 구조 등 이미 정해진 내부 요소를 고려했을 때 이곳이 객실로서 가질 수 있는 이점은 바깥과의 연결에 있었다. 이에 1층 객실은 전면 외부 테라스를 둔 구조로 계획했고, 2~3층은 복층과 옥탑을 활용한 구성을 취했다. 특히 1층은 외부 공간을 두면서 프라이빗한 독채 숙소처럼 다른 투숙객과 마주치지 않는 독립적인 동선을 갖게 됐다.

 

©Kiwoong Hong

 

감각을 위한 섬세한 장치들
모든 객실은 편백나무 욕조를 갖추고 있다. 스파가 호텔이나 스테이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긴 했지만, 이제 남해의 스파가 다른 이유는 한 객실 내 욕실과 테라스 공간에 각각 다른 두 개의 욕조를 설치했을 뿐 아니라 별채에 노천탕까지 추가로 마련해 명백한 콘셉트로서의 스파를 계획했기 때문이다. 편백을 택한 이유는 나무의 향을 보다 짙게 끌어들이고, 젖은 나무를 만졌을 때의 생경한 촉감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 연장선에서 객실 외부 테라스에 ‘불멍’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개별 화로대를 만들었는데, 불의 온기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화염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살피며 불이 주는 원초적인 힘을 상기시키고자 한 의도다.

 

©Kiwoong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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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은 최대한 톤을 정제해 담백하게 정리하고 자연의 고요한 환경과 감각을 열어주는 장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더한 것이 있다면 배경처럼 나지막이 걸려있는 사진인데, 이는 디자이너와 사진가가 직접 남해 일대를 돌며 수집한 남해의 장면들이다. 이 공간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조명이나 의자, 카펫 같은 소품들이 아니다. 다만 사진을 통해 공간이 자리한 맥락인 남해의 이야기를 묵묵히 전하고자 했다.

 

©Kiwoong Hong
©Kiwoong Hong
©Kiwoong Hong

 

“숙박객으로부터 받은 인상 깊은 후기는 ‘바쁘다’는 의견이었다. 욕조도 다양하게 경험해야 하고, 밥도 두 번이나 먹어야 하고, 산책도 해야 하니 1박 2일이라는 짦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의도한 건 일상적 의미에서의 분주함이라기보다 그간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을 열어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바쁨에 가깝다.” – 최재영 더퍼스트펭귄 대표

 

©Kiwoong Hong

 

호텔이 건네는 환대의 제스처
‘감각을 열어 감응을 이끌어낸다’는 콘셉트는 공간뿐 아니라 작은 요소 하나하나에도 적용된다. 대표적으로 체크인 시 작성하는 문진표를 통해 추천하는 아로마 오일은 사소하지만 숙박객에게 섬세하게 관리받고 있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서비스의 일종이다. 이에 더해 건물 1층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남해 특산물을 활용한 조식과 석식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요소다. 나아가 이제의 로고가 박힌 생활복을 비롯해 각종 어메니티까지 자체적으로 개발함으로써 단발적인 숙박 공간이 아닌 브랜드로서의 호텔을 인지시켰다. 이제는 남해 오픈을 시작으로 경주, 기장에도 개장을 앞두고 있다.

 

©Kiwoong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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