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작당을 위한 베이스캠프

[In your Area] ⑤ 마을호텔 박우린
ⓒ©BRIQUE Magazine
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자료. 마을호텔

 

오늘날 서울 외 지역을 향한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수도권의 하위 개념(지방)으로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수도권 집중의 대안이자 매력적인 지역 문화의 기반(로컬)으로 여기는 시각이다. 지역에 대한 역설적 시선이 공존하는 이때, ‹브리크› 11호 특집 ‘인 유어 에리어In Your Area’는 지역을 누군가의 일과 삶이 전개되는 터전이자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공간을 창출하는 근거지로 바라보고자 한다.
서울의 작은 동네 또한 하나의 지역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좀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역의 전통과 문화, 자연, 심지어 결핍된 무언가를 토대로 조금은 다른 공간, 조금은 다른 문화를 일구는 크리에이터들을 조명했다. 미래 농업인들을 위한 도시를 꿈꾸는 기업인부터 문화 불모지 개척에 앞장선 건축가, 일상을 영위하는 장소로서의 도시를 문화적 유토피아로 만들고자 하는 기획자까지. 각 지역에 자리하게 된 저마다의 이유와 순탄치만은 않았던 과정, 그로 인한 변화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 

 

In your Area
① 헤테로토피아적 남해 – 헤테로토피아 최승용
② 이토록 멋진 농촌 – 진천 뤁스퀘어
③ 문화예술 불모지를 개척하다 – SOAP 권순엽, 장동선
④ 우리들의 오아시스 – 대구 미래농원
⑤ 공주, 작당을 위한 베이스캠프 – 마을호텔 박우린 

⑥ 가장 제주다운 – 재주상회 고선영
⑦ 탄화 동판에 표현한 과거와 현재, 미래 – 울산 동네가게녹슨
⑧ 지역 특색을 반영한 로컬 스폿


 

공주시는 금강교를 사이에 두고 남쪽은 구도심, 북쪽은 신도심으로 나뉜다. 구도심의 중심에는 길이 4.2km 폭 5m 안팎의 작은 하천이 유유히 흐른다. 이 제민천과 마주한 반원형의 건물을 임대해 본거지로 삼은 ‘마을호텔’은 빈집이나 공실을 임대해 지역에 필요한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로컬 기업이다. 작은 책방 ‘블루프린트북’에서 출발해 로컬 식재료 카페 ‘프론트’, 다목적 공간이자 단기 스테이인 ‘수선집’, 농가밀 베이커리 ‘오초오초’까지. 이들이 빚은 공간은 조용히 쇠락해가던 동네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마을호텔은 동명의 도시 재생 방법론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곳곳에 흩어진 기존의 지역 자원을 편의, 휴게, 숙박시설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수평적 호텔’이라고도 일컬어지며, 일반적 개념의 호텔이 장소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환경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마을호텔 전략에서는 장소성이 곧 브랜드이자 차별점이 된다. 이로써 지역민에게는 문화·편의 시설 확충과 환경 개선을, 방문객에게는 보다 생생한 지역 체험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마을호텔이 공주에 일으키고자 하는 변화는 결국 이러한 것이다.

 

제민천이 흐르는 공주시 봉황동 전경 ©BRIQUE Magazine

 

건축가 박우린은 우연한 계기로 공주에 와 건축, 도시, 부동산 분야의 친구들과 함께 마을호텔을 설립했다. 설계, 시공, 운영, 브랜딩을 넘나들며 뜻 맞는 사람들과 모여 부단히 활동한 결과, 건축사사무소와 마을호텔뿐만 아니라 농업회사법인, 공동 소유 세컨드하우스 플랫폼까지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무리한 사업 확장이 아닌 지극히 자연스럽고 즐거운 전개에 가깝다. 공주를 베이스캠프 삼아 흥미로운 작당을 펼쳐가고 있는 박우린을 만나 로컬에서의 일과 삶에 대해 물었다.

 

박우린 마을호텔 대표 ©BRIQUE Magazine

 

오전 미팅 끝나고 바로 오는 길이죠? 무척 바빠 보여요.

퍼즐랩이라는 팀을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공주 원도심을 기반으로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곳인데, 프로그램에 필요한 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어요. 원도심 내 방치된 유휴공간을 최소한의 리모델링으로 바꾸고 있죠. 마을호텔과 정식으로 협업하는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설계 업무를 맡아 진행하고 있어요.

 

공주에는 어쩌다 오게 됐나요?

디아건축사사무소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할 때였어요. 엔지니어링사에 근무하는 친구를 도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몇몇 지인과 함께 공공 사업에 제안을 넣고 있었죠. 마을 호텔 개념에 기반한 도시재생 계획안이었는데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진 않았어요. 그러다 제가 공주 공영차고지 설계를 맡게 되면서 서울과 공주를 오갈 일이 생겼고, 때마침 엔지니어링사 친구로부터 지금 저희가 운영하는 건물에 대해 알게 됐죠. 공주 출신인 친구의 아버지가 동네가 낙후되는 게 안타까워 설계를 의뢰해 지었는데 임대가 안되어 고민이라고 했어요. 마을호텔을 함께 구상한 친구들이 여길 임대해 회사를 차려보면 어떨까 하더라고요. “박우린 너 놀잖아, 네가 대표해.” 이러면서요. (웃음) 한적하고 예쁜 동네였고, 무엇보다 임대료가 무척 저렴했어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왔죠.

 

제민천을 마주한 두 건물을 임대해 (오른쪽) 사무실, 서점, 카페 그리고 (왼쪽) 스테이 및 전시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BRIQUE Magazine

 

가벼운 마음으로 와 어느새 3년이 됐네요. (웃음) 지금 살고 있는 공주는 어떤 곳인가요?

공주 봉황동은 제민천 앞뒤로 공산과 봉황산이 있는 마을이에요. 제민천 주변으로 상점이나 편의 시설이 몰려 있어 도보로 생활이 가능하죠. 경주나 전주처럼 문화재 권역이기 때문에 고도 제한이 명확해요. 개발로 인해 도시의 품이 과도하게 커질 일이 없고, 시간의 켜를 찾아 다니기 좋죠. 자본주의적으로 들리겠지만 가장 좋은 건 임대료예요. (웃음)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어쩌다 회사를 시작해볼 만큼 합리적인 편이죠.

 

책방을 여는 것부터 시작했죠? 회사 이름은 마을호텔인데 처음부터 숙박시설을 만들진 않았네요.

2019년 8월에 회사를 차리고 같은 해 11월 책방을 열었어요. 처음부터 숙박시설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는 동네에 즐길 거리가 없어서예요. 공산성이나 무령왕릉 같은 문화·관광 자원이 있지만 여기와는 거리가 있죠. 사람들을 끌어오려면 객실보다 우선 즐길 만한 것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야 동네에 관심을 갖고 마을 자체가 목적지가 될 수 있으니까요. 때마침 책방을 열고 싶어 하는 친구도 있었고요. 건설사에서 아파트를 짓다가 출판사에 들어가려고 하는 이상한(?) 장래 계획을 세우고 있길래 같이 공주로 내려왔죠. (웃음) 그렇게 책방으로 시작해 카페, 다목적 공간을 열게 됐어요.

 

동네 책방 ‘블루프린트북’ ©BRIQUE Magazine

 

현재 운영 중인 공간을 소개한다면요?

‘블루프린트북’은 독립 서점이자 출판사예요. 무인으로 운영하며 책 판매보다는 전시 도록이나 로컬 매거진 등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고 있죠. 카페 ‘프론트’는 마을호텔의 프론트 데스크이자 지역 생산물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장소로 역할하고 있어요. 하숙집과 수선집으로 사용되던 구옥을 고쳐 만든 ‘수선집’은 카페 이용객을 위한 장소이자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는 다목적 공간이에요. 스테이로도 활용하고자 추가 리노베이션을 진행해 얼마 전 마쳤죠. 오픈을 앞둔 객실은 일 단위 숙박보다 주 단위 스테이로 운영할 예정이에요. 이 동네를 즐기기엔 하루 이틀 머무는 것보다 일주일 정도 묵는 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현재 회사 인원으로는 매번 고객을 응대하기도 어려워서요.

 

1~2년 새 여러 공간을 오픈해 운영 중이에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세요.

프론트는 제가 리모델링했던 ‘무진장’이라는 카페에서 일하던 친구와 함께 꾸린 거예요. “공주라는 데가 있어. 같이 가서 카페 해볼래?” 그랬더니 냉큼 좋다더군요. (웃음) 저처럼 모험을 좋아하는 친구였거든요. 그렇게 카페는 2020년 4월 문을 열었는데 천변 노상 카페로 이름이 나 비교적 자리를 빨리 잡았어요. 동네 사람들도 자주 오고, 주말 나들이 삼아 세종이나 대전에서도 많이 찾아와요. 지금은 잠시 운영을 중단했지만 베이커리 또한 제빵 일을 하는 지인이 마을호텔에 합류 의사를 밝혀 와 시작했어요. 뚜렷한 계획 없이 친구들과 주머닛돈 모아 회사를 차렸는데 뜻하지 않게 일거리가 늘어났죠. 건축 경험이 내재된 덕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저를 비롯한 몇몇 구성원들이 건축 실무 경험이 있어서, 낙후된 빈 공간을 비교적 단기간에 높은 수준으로 개선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죠.

 

다목적 공간 ‘수선집’ ©BRIQUE Magazine

 

특별한 연고가 없는 지역인데, 정착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공주에 비교적 빠르게 안착할 수 있던 건 지역 입장에서는 저희가 ‘구매력 좋은 소비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카페와 빵집 운영에 필요한 밀가루와 요거트를 지역 농가에서 공수했고 이외 식재료도 가급적 로컬푸드직매장에서 구매했거든요. 지역 농부들과 협업해 토종 상추 씨앗과 특산 품종인 버들벼에 대한 전시를 진행한 적도 있어요. 지역 주민들이 소비자에게 생산자의 마음을 전달하려는 시도를 좋게 봐준 것 같아요. 공간 운영을 위해 지역 청년들을 고용한 것도 한몫했죠. 내 친구 또는 내 딸이 일하는 가게가 되면 지역 내에서 위상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웃음) 덕분에 지역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된 것 같아요.

 

공간 설계와 운영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잖아요. 건축가로서 업역의 전환이 어렵진 않았어요?

어려웠죠. 지금 이만큼 하는 것도 신기해요.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마을호텔에서의 3년이 제게 큰 자산으로 남았어요. 공간 운영, 재무, 브랜딩은 건축 설계만 했다면 깊게 경험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직접 설계하고 시공한 공간을 즐기는 호사도 누리고 있고요. (웃음) 사실 공주라서 가능한 일이죠. 준공 즉시 임대를 주어야 하는 서울과 달리 곧바로 수익을 내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래서 수선집이나 스테이는 공사를 마치고 한동안 저희가 사용하며 지인들을 초대하곤 했어요. 그 가운데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기도 해서, 놀면서 다음 단계로 확장되는 일도 많았죠.

 

©BRIQUE Magazine

 

마을호텔은 공간 운영 이외에 여러 다른 일을 병행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마을호텔은 표면적으로는 공간 운영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건축 설계와 출판 콘텐츠 사업이 뒷받침하고 있어요. 로컬크리에이터나 예비 사회적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사업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공간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회사가 성장하기 어려워요. 마을호텔은 2단계를 앞두고 있어요. 초창기 즉 1단계에서는 로컬의 자원을 활용해 공간을 조성하고 운영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2단계에서는 건축 설계와 콘텐츠 기획, 공간의 제품화에 집중할 계획이에요. 조만간 책방을 대관해 밤새 책을 보며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심야 책방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참새와 꽃게’라는 양조장도 준비 중이라고요. 술 빚는 건축가라면 최초 아니에요?

최초는 아니에요. (웃음) 통영에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가 있어요. 우연히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틈틈이 연구소에서 양조 기술을 배우고 있던 참이었어요. 한국에는 공주를 비롯한 도농복합도시가 많은데 어떻게 하면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에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낼지에도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러다 지역 브루어리에서 일하던 친구와 함께 모 기업에서 청년 양조인을 모집하는 사업에 지원했는데, 덜컥 선정이 됐어요. 대전 어은동에 도심 속 양조장 콘셉트의 바틀숍을 만드는 프로젝트예요. 올해 봄 양조장 설비 공간을 설계했고, 현재는 양조사 친구가 제품화를 위한 테스트 작업을 진행하는 중에 있어요.

 

공주에 오기 전엔 줄곧 서울에 있었잖아요. 서울에서의 생활이 그리울 땐 없나요?

요새 일 때문에 공주와 서울을 2~3일에 한 번씩 오가고 있는데, 오히려 균형이 맞아서 좋아요. 서울의 북적이는 분위기가 좋다가도 며칠 있으면 피곤해지거든요. 그러다 공주로 내려와 금강을 보고 있으면 그 나름대로 운치 있고 한적한 맛이 있어요. 출퇴근도 훨씬 편하고요. 현재 클리라는 기업과 함께 진행 중인 ‘마이세컨플레이스my second place’ 프로젝트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바로 이런 거예요.

 

마이세컨플레이스. 공주 유구읍에 위치한 유휴공간을 공유형 세컨드하우스로 개조했다. ©Byeonggon Shin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지방의 유휴공간을 공유 세컨드하우스로 개발해 나눠 쓰는 개념이에요. 법인을 통한 공동 소유로, 다섯 가구라면 한 가구가 365일 중 73박을 쓸 수 있죠. 소유한 지분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고요. 이동성이 향상되고 여가 시간이 늘고 있는 가운데, 오도이촌의 삶은 점차 보편화될 거예요. 자동차나 옷처럼 공간 또한 여러 개로 소유하려는 수요가 늘 거고요. 보다 많은 사람이 지역의 유휴공간을 제2의 기지로 활용해 여가를 누릴 수 있게 하고자 해요.

 

앞으로도 계속 공주에 있을 예정인가요?

공주는 저희에게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에요. 리테일 공간은 소비자들과 직접적인 접점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한편 마을호텔의 근간이 되는 건축과 출판은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장소에서 진행할 수 있어요. 이미 공주를 거점 삼아 건축과 출판 업무를 전국 단위로 수행하는 중이고, 앞으로 지역을 넘나들며 각기 다른 환경이 주는 자극을 공간과 텍스트로 풀어 나가고 싶어요.

 

‘In your Area’  전체 이야기를 담은 ‹브리크brique› vol.11 👉더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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