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일상인 마을에 살다

[청년, 지역에 살다] ① 경주 가자미마을, 고흥 신촌꿈이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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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나겸, 김리오  사진. 김리오  자료. 가자미마을, 신촌꿈이룸마을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서울 밖의 삶. 서로 다른 이유로 새로운 도시에서의 출발을 상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막연히 그곳에만 있는 바다나 숲을 실컷 보고 싶다거나, 나아가 카페와 스테이를 운영하고 싶다는 진지한 꿈을 꾸기도 한다. 고향에 돌아가 가업을 이으려는 이들도 있다. 모두 지역에 든든한 비빌 언덕이 있는 게 아니라면 섣불리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다.

<브리크brique>는 ‘청년, 지역에 살다’ 기획취재를 통해 지역의 자연, 농업, 문화, 산업을 바탕으로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청년마을’을 조명한다. 청년마을은 행정안전부의 주관으로 전국 39개 지역에 청년들이 일정기간 머무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8개 지역의 활동과 프로그램, 거점 공간을 찾아 소개하고, 이들이 담아내고 있는 지역에서의 일상과 꿈, 비전을 주제별로 풀어냈다.

 

청년, 지역에 살다
① 자연이 일상인 마을에 살다 — 경주 가자미마을, 고흥 신촌꿈이룸마을
② 건강한 지속가능함을 만들며 살다 — 영월 밭멍, 진천 뤁빌리지
③ 주체적으로 신명나게 살다 — 영암 허밍스테이션, 의령 홍의별곡
④ 오히려 많은 기회 속에 살다 — 하동 오히려하동, 익산 지구장이마을

 


 

도시를 떠나 지역에 살아가는 이들은 입을 모아 공기부터 다르다고 전한다. 숨쉬는 소리조차 선명한 자연, 그 안에서 청년들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푸른 바다가 매력적인 경북 경주 가자미마을과 온통 광활한 초록빛으로 물든 전남 고흥 신촌꿈이룸마을을 찾아가 보았다.

 

경주 가자미마을

 

경주 감포 바닷가 ©BRIQUE Magazine

 

경주는 여러 번 가봤지만 경주 바다는 처음이다.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황리단길에서 차로 40분을 달리면 조용한 바닷마을 감포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들리는 부드러운 파도 소리, 바위틈에 콕콕 박힌 성게가 훤히 보이는 투명한 바다와 그 위로 시원하게 뚫린 하늘을 보며 경주에 이런 풍경도 있구나 생각했다.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 인터뷰 장소로 가기 위해 언덕을 오르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푸른 바다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꼭 이곳에 잘 왔다 인사를 보내는 것처럼.

 

 

가자미마을 김미나 대표 ©BRIQUE Magazine

 

감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에서 가자미마을 김미나 대표를 만났다. 마을에 다녀간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바다가 그리울 때, 지쳐서 쉬고 싶을 때,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할 때 가자미마을을 생각해 줬으면 한다는 그. 멀리 여행을 떠나도 돌아갈 곳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니까, 멀리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집이 되어주고 싶다 말하는 그의 눈은 감포 바다의 윤슬처럼 빛났다.

가자미마을을 소개해 주세요.
가자미마을은 경주의 작은 어촌마을 감포에 위치한 청년들의 실험 공동체예요. 지역 주민들에게 익숙한 것으로 마을 이름을 짓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가자미마을로 지었어요. 감포의 거의 모든 가게에서 가자미를 팔고, 봄에는 마을 구석 구석에서 가자미를 널더라고요. 가자미의 ‘미’에는 4가지 의미를 넣었어요. 맛(味), 멋(美), 미래(未來), 나(me). 그래서 가자미마을은 감포의 맛과 멋과 미래와 나 자신을 찾는 마을이에요.

어떻게 경주에서 가자미마을을 만들게 되셨어요?
경주가 고향이에요. 20대 때 경주를 떠나 경기, 대전, 인도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시 경주로 돌아왔어요. 돌아오면 다른 삶을 살 줄 알았는데, 막상 돌아오고 보니까 떠나기 전과 똑같더라고요. 당시 제가 운영하던 인도 커리집에서 만난 친구들과 공통적으로 했던 이야기가 심심하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들과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아이디어를 모으다가 ‘마카모디 프리마켓’을 만들게 됐어요. 마카모디는 ‘모두 모여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예요. 그 커뮤니티를 시작으로 ‘마카모디’도 만들고, 마카모디에서 만들던 커뮤니티 비즈니스에 이어서 청년마을까지 하게 됐어요.

가자미마을이 있는 감포는 어떤 곳이에요?
경주는 신라 천 년의 이야기로 유명한 관광지잖아요. 그렇지만 감포는 100년간의 근현대사가 훨씬 더 많이 남아있는 곳이에요.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도 많고, 적산가옥, 목욕탕, 돌창고 등 시간이 멈춰있는 공간들이 많아요. 또 감포는 오래된 어촌마을의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갖고 있는 곳이에요. 밤에 감포항 등대에 불이 켜지고 오징어 배가 들어오면 항구가 정말 예뻐요.

 

경주 감포 바다 ©BRIQUE Magazine

 

어떤 공간을 운영하고 있나요?
100년 된 목욕탕을 활용해 만든 커뮤니티 센터 ‘1925 감포’가 있어요. 목욕탕, 아궁이, 간판, 사물함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살려서 공간을 만들었는데, 왜 공사를 하다 말았냐는 주민분들도 계세요. (웃음)
원래는 시내에 사무실이 있었어요. 사진 촬영하러 감포에 왔다가 우연히 멋진 돌창고를 발견한 거예요. 공간 주인을 수소문하다가 마을에서 마을의 미래를 고민하시는 주민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저희 얘기를 듣고 돌창고는 개인 주택의 지하창고니까 거기보다는 과거 감포의 가장 중심이었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목욕탕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리고 ‘함께 가는 길’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저희가 공간을 3년 동안 무상임대 받도록 도와주셨어요.

공간을 준비하면서 공간에 남아있던 거래 장부, 여권 등 온갖 문서를 아카이빙했는데, 오픈하고 보니까 더 많은 이야기가 튀어나왔어요. 주민들이 오셔서 옛날에 목욕탕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바다에서 일하다가 체온이 떨어진 머구리(잠수부)들이 체온을 올리러 왔던 곳이라서 ‘사람을 많이 살린 곳’이라는 얘기, 옛날에 엄마 손 잡고 목욕하러 왔던 곳에 이제는 손녀 손 잡고 커피 마시러 온다는 얘기도 듣고요. 그래서 저희 공간의 부제가 ‘기억을 담는 목욕탕’이에요.

 

커뮤니티 센터 ‘1925 감포’ ©BRIQUE Magazine
커뮤니티 센터 ‘1925 감포’ ©BRIQUE Magazine
커뮤니티 센터 ‘1925 감포’ ©BRIQUE Magazine

 

최근에 전촌 해변에 ‘가자미 플로깅센터’도 오픈했어요. 원래 오리고기를 팔던 깍지집이라는 식당 건물이에요. 근처에 전촌용굴이라고 SNS에서 사진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 있는데, 여행객들이 단순히 소비하고 쓰레기를 남기고 떠나는 것 이상의 지속 가능한 여행을 고민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여기에 플로깅 센터를 만들었어요. 센터에는 플로깅 프로그램 통해 참가자들과 함께 모으고 정리한 병뚜껑, 씨글라스, 낚시용품 등의 새활용 자원들, 플로깅 도감 ‘도감포’, 플로깅 맵 등이 전시되어 있어요. 이전 기수 참가자들이 남겨둔 새활용 자원들은 다음 기수 참가자들이 굿즈 제작에 활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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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 플로깅센터 ©BRIQUE Magazine
가자미 플로깅센터 ©BRIQUE Magazine

 

어떤 프로그램이 있나요?
가자미마을은 프로젝트별로 함께 일할 크루를 모아서 운영해요. 작년에는 가자미에서 ‘미’의 첫 번째 의미인 감포의 ‘맛(味)’에 대한 프로젝트인 소셜다이닝 프로그램 ‘가자미식탁’과 팝업 식당 ‘가자미식당’을 진행했어요. 올해는 두 번째 의미인 감포의 ‘멋(美)’에 집중해서 감포의 멋있는 공간들을 소개하는 ‘가자미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이 감포의 반짝이는 것들을 발견하고, 먹고 사는 것까지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기획했어요.

 

‘가자미 여행사’ 프로그램 ©가자미마을

 

사운드스케이프 프로그램이 정말 특별해 보였어요.
참가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으면서도 지속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특별한 아이템을 찾다가 사운드스케이프*를 생각해 낸 거예요. 마침 멘토로 활동할 사운드 엔지니어도 주변에 있었고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교통방송에서 함께 사운드북을 제작하고 싶다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런데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도 연락이 와서 함께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싶으시대요. 그래서 지금 모두 함께 감포의 소리를 담고 있어요. 제작이 끝나면 장애인 학교에도 보내고, 라디오에도 보낼 예정이에요.

*사운드스케이프: 소리를 뜻하는 ‘sound’와 풍경을 뜻하는 ‘landscape’의 합성어. 파도 소리, 풀벌레 소리 등 특정 환경에서 나는 소리를 채집해 활용하는 것

 

사운드스케이프 프로그램 ©가자미마을
사운드스케이프 프로그램 ©가자미마을

 

또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계세요?
저희는 연말에 ‘가자미 위크’라는 행사를 해요.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고, 시상식도 여는 행사예요. 마을 주민이 아니더라도 행사에 오면 저희가 한 해 동안 만든 여행 상품들을 체험해볼 수 있어요. 올해는 감포에서 여행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주민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관광 포럼’도 함께 할 예정이에요.
워케이션 프로그램 ‘도킹캠프’도 계속 운영할 예정이에요. 1박 2일 또는 2박 3일 일정으로 3~5명까지 신청하시면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는 바다뷰 숙소를 제공해 드려요. 저희가 만든 프로그램들을 체험해 보실 수도 있어요.

 

감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공유 숙소 ©BRIQUE Magazine

 

프로그램을 통해 경주로 11명이 이주했다고 들었어요. 그분들은 경주에서 어떤 일을 하세요?
우리나라에서 체리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 경주인 거 아세요? 두 명의 친구가 경주체리빵 브랜드 ‘1936체리’를 만들고 황리단길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배리삼릉공원’에 취업해서 굿즈 파는 친구들도 있고, 구도심에서 환경과 여성 인권을 주제로 한 서점 ‘너른벽’을 운영하는 친구, 펜션 하는 친구, 귀농귀촌한 청년들을 인터뷰하는 전업 유튜버 ‘도시에서 온 총각’까지 있네요.
경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창업이 어렵지 않다는 장점이 있어요. 임대료가 비싸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그렇지만 아무래도 참가자 친구들이 창업을 결심하는 가장 가장 큰 이유는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체리빵의 경우에도 주민 단체 ‘함께 가는 길’에서 체리 농사를 하면서 체리 와인 만드는 회장님께서 참가자 친구에게 체리로 뭔가 해보라고 먼저 제안하고 기반이 돼주셨거든요. 그 친구가 상품 개발 후에 협업할 사람이 필요할 때도 가자미마을 프로그램 참가자들 중에서 파트너를 찾았고요. 먼저 창업한 같은 기수 친구들이 ‘언니도 내려와’하며 부추기기도 해요. 그렇게 기댈 구석이 있으니까 경주가 고향이 아닌 친구들이 경주까지 내려올 수 있는 거겠죠.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은 뭐예요?
저희 팀원들과 함께 즐겁게 일하는 거요. 부귀영화를 위해 하는 일도 아니고, 동네에서 욕을 먹기도 하는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실험하고 꿈을 이루는 일을 같이 해나가고 있다는 데서 의미를 느껴요. 앞으로도 계속 이들과 함께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마을이 되기를 기대하세요?
바다 보고 싶을 때 생각나는 마을, 지쳐서 쉬고 싶을 때 생각나는 마을, 뭔가 해보고 싶은데 혼자 하기 어려울 때 같이 해보자고 말해줄 수 있는 마을이요. 멀리 여행을 떠나도 돌아갈 곳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잖아요. 그렇게 돌아올 수 있는 집이 되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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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마을을 운영하는 ‘마카모디’의 김종률 디자이너는 경주 토박이다. 그에게 감포는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놀러 왔던 휴양지. 바로 그 감포에 타지 사람들이 모여 프로그램에 진정성 있게 참여하고, 열심히 활동해서 결과물까지 내는 모습이 그에게는 신기하고 대단하게 느껴졌다고. 자연을 좋아해서 경주를 좋아한다는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작업물로 감포 바다가 가득 담긴 가자미마을 프로그램 포스터를 꼽았다.

 

가자미마을 김종률 디자이너 ©BRIQUE Magazine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경주에서 디자인하는 김종률입니다. 가자미마을에서 쓰는 이름은 나무예요. 나무를 좋아해요. 푸른 것, 생명력 있는 것과 나뭇잎과 풀잎의 반짝임도 좋아해요. 그래서 그런 풍경을 많이 볼 수 있는 경주를 좋아하고요. 본명이 특이해서 소개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나무는 알아듣기 쉬운 이름이라는 것까지도 좋습니다.

나무님에게 경주는 어떤 지역이에요?
저는 경주 토박이에요. 서울도 마카모디에서 일하다가 처음 가봤을 만큼 경주에서만 살았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주에 사는 청년들은 놀거리가 없어서 대구로 넘어가서 놀았어요. 그런데 몇 년 사이에 경주에 멋있는 기획자분들이 많아지면서 문화행사나 놀거리가 많다는 게 느껴져요. 감포는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의 휴양지가 있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여름마다 가족들과 휴가 갔던 곳, 해돋이 보러 갔던 곳이에요. 그 기억들 때문에 커서는 일부러 혼자 찾아가 보기도 하고요. 바다가 보고 싶을 때 가는 곳이기도 하고요.

마카모디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셨어요?
경주에 있는 회사 중에 디자인할 수 있는 곳을 찾았어요. 당시에 저는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동네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알게 된 분이 마카모디를 알려주셨어요. 마침 마카모디에서도 디자이너를 찾고 있어서 운명처럼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세요?
가자미마을 관련해서는 프로그램 포스터와 카드뉴스 만드는 일을 주로 하고 있어요. 가장 마음에 드는 작업물은 최근에 만든 가자미 여행사 가을 편 포스터예요. ‘바다’라는 운영팀 친구와 함께 전촌해수욕장에 가서 사진을 찍고 디자인해서 만들었어요. 그동안은 주로 제가 찍히는 입장이었는데, 찍는 입장이 돼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그 외에는 지역 카페의 로고, 폰트, 캐릭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원래는 기획된 내용을 디자인하는 일을 했어요. 입사 전에는 포트폴리오도 겨우 만들 만큼 경험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 직원 개인의 능력치를 존중하고 더 끌어올릴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이제는 조금씩 기획을 넣어 브랜딩도 해보고 있어요. 감사하게 생각해요.

프로그램을 통해서 마을에 오는 분들을 보면 어떠세요?
처음에는 부러웠어요. 여기에 와서 이렇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냈다는 것과 떠나올 수 있는 용기도 부러웠어요. 저는 계속 이곳에 있던 사람이니까요. 참가자들이 만든 사운드스케이프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때는 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타지에 와서 프로그램에 진정성 있게 참여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결과물까지 내는 모습을 보면서 반대 입장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분들은 첫 기수분들이에요. 감포항 등대에 산책하러 자주 가시더라고요. 저는 해본 적이 없는 행동이거든요. 그래서 신기하기도 했고, 일과 후에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 나누고 하루를 털어버리는 모습이 참 돈독해 보였어요.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도 말이에요. 그런 게 청년마을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루일과는 어떻게 되세요?
출근, 퇴근, 잠이에요. 영상 콘텐츠를 보면서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를 상상해 보기도 하고요. 쉬는 날에는 사진 찍으러 나갈 때도 있어요. 그렇게 모은 감포의 풍경 사진들이 ‘1925 감포’에도 전시되어 있어요.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브랜딩을 더 배워나가고 싶어요. 기획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공부도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태백 광광스토리지 대표님의 온라인 수업을 듣고 포스터를 만들어봤는데 재미있었어요. 또 제가 자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데, 자연을 영상에도 담아보고 싶어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영상처럼요. 경주의 자연과 어울리는 음악으로 영화 사도의 OST인 ‘꽃이 피고 지듯이’를 추천할게요. 한번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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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신촌꿈이룸마을

 

고흥 신촌꿈이룸마을 전경 ©BRIQUE Magazine

 

마을을 찾아가는 길, 넓게 펼쳐진 짙은 초록색 산과 쨍한 연둣빛 논이 벌써 마음을 사로잡는다. 인터뷰 장소인 신촌꿈이룸센터 앞에 도착해 커다랗고 건강한 나무들과 아름다운 하천까지 보고서는 다음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은 언제일까 궁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고흥 생활의 가장 큰 이점으로 탁 트인 자연이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꼽는 대표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고흥의 자연이 좋아서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 휴학까지 하고 다시 고흥에 내려와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는 참가자. 그들은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 속 마을에서 어떤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을까?

 

신촌꿈이룸마을 정지영 대표 ©BRIQUE Magazine

 

신촌꿈이룸마을 정지영 대표는 마을에 오면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냐는 질문에 ‘사람’이라고 답했다. 마을 이장이기도 한 그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그냥 놀다가는 것이 아니라 고흥에서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안을 한다고.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참가자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는 그의 진심이 얼마나 통했을까 생각하던 때, 사무실에서 마주친 프로그램 참가자가 그를 “아부지”하고 불렀다.

신촌꿈이룸마을을 소개해 주세요.
신촌꿈이룸마을은 자연, 동물과 함께하는 치유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마을이에요. 지난 10년간 마을에 정착한 10여 명의 청년들이 앵무새체험장, 행복마굿간, 미술교실, 목재공방, 요리공방, 수석공방 등을 창업해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어요. 청년마을 사업을 통해 새롭게 마을에 들어오는 청년들은 로컬 정착 선배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과 일거리 실험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휴식과 여유를 즐기는 동시에 고흥 정착의 가능성도 확인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신촌꿈이룸마을이 있는 고흥은 어떤 곳이에요?
나로호 발사로 유명한 고흥은 ‘지붕없는 미술관’이라는 슬로건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지역이에요.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나로우주센터, 소록도, 녹동항, 거금도 등이 있는데, 최근에는 남열해돋이해수욕장이 서핑의 성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청년들이 찾아오고 있어요. 서남해권에서 서핑을 할 수 있는 곳은 딱 세 군데, 태안, 거제, 그리고 고흥 뿐이거든요. 저도 환기가 필요할 때는 바다로 서핑하러 가요. 또, 고흥에도 제부도처럼 물 때가 맞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우도’라는 섬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우도의 석양을 고흥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생각해요.

 

프로그램 참가자들 ©신촌꿈이룸마을

 

고흥 생활의 가장 큰 이점은 뭐예요?
저는 도시의 네온사인이 너무 싫었는데, 고흥은 다 파래서 좋아요. 탁 트인 자연이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 편안함이 가장 큰 이점이라고 생각해요. 도시에서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 걱정도 덜 하고 지내고요. 이곳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아쉬운 점도 없어요. 시골에 살면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놀 줄 아는 사람들은 도시에서도 잘 놀고, 시골에서도 잘 논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고흥에서 청년마을 사업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고향이 고흥이에요. 울산, 제주, 광주, 서울, 일본까지 객지 생활을 오래 하다가 부모님이 계신 고흥으로 돌아온 지 10년 됐어요. 마을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공부방, 어르신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진전, 마을 축제 등을 열었더니 지역민들의 반응이 아주 좋더라고요. 그 흐름을 타고 관광두레 PD 활동과 청년마을 사업까지 하게 됐어요. 고흥에 오기 전에는 포장마차 알바부터 시작해서 식당, 바까지 서비스 업을 오래 했어요. 마을 사업도 서비스를 받는 대상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일이니까 서비스업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아름다운 고흥 라이프를 만들자’는 의미의 ‘아.고.라. 솔루션’이라는 팀을 만들어 청년마을을 운영하고 있어요.

어떤 공간을 운영하고 있나요?
한옥으로 된 공유 숙소를 운영하고 있어요. 마을에서 청년들이 활동한다고 하니 주민이 무상으로 제공해 주신 한옥을 청년들이 원하는 만큼 머무르며 고흥을 알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시골 생활의 낭만을 즐길 수 있도록 한옥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창호지까지 그대로 살려서 리모델링했어요. 실제로 참가자들이 우리 숙소의 시골집 감성을 좋아해 주고, 인스타그램에 올린다고 사진도 많이 찍어가요. 집을 빌려주신 분도 좋아하세요. 사람이 살지 않던 낡은 빈집에 청년들이 들어와 살면서 집이 깨끗해지고 더 살기도 좋아졌다고요. 청년마을 사업을 통해 집을 빌려줬는데 오히려 혜택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신 거죠. 이 이야기가 주변에 알려져서, 추가로 계약하게 된 숙소도 몇 군데 있어요.

 

오래된 한옥을 최대한 보존해 만든 공유 숙소 ©BRIQUE Magazine
오래된 한옥을 최대한 보존해 만든 공유 숙소 ©BRIQUE Magazine

 

숙소 마당에 텃밭이 여러 개 있는데, 원래는 옆집 아주머니께서 집주인 허락을 맡고 텃밭을 쓰고 계셨어요. 어머니들은 빈 땅을 가만히 못 두고, 뭐라도 수확해서 먹어야 하거든요. 그러다가 저희가 들어간다고 하니까, 이제 텃밭을 못 쓰게 됐다고 아쉬워하셨어요. 그렇지만 상의 끝에 텃밭을 나눠쓰기로 결정하면서 좋게 해결된 일도 있었어요. 지금은 배추랑 유기농 옥수수가 자라고 있습니다.

 

공유 숙소와 텃밭들 ©BRIQUE Magazine

 

또 다른 공간으로는 꿈이룸센터가 있어요. 마을의 창고가 있던 곳에 커뮤니티 센터를 지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 겸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어요. 주변 경치가 좋으니까 창을 크게 만들려고 했는데, 건물 안이 훤히 보이면 어른들이 편하게 휴식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논의 끝에 창문은 크게 만들되 썬팅을 진하게 하기로 합의를 봤죠. 주민들이 와서 쉬시기도 하고, 마을 총회도 열고, 에어로빅 수업도 열고,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어요.

 

커뮤니티 센터 ‘꿈이룸센터’ ©BRIQUE Magazine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크게 창을 낸 꿈이룸센터 ©BRIQUE Magazine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크게 창을 낸 꿈이룸센터 ©BRIQUE Magazine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나요?
7월에는 고흥의 사람들과 일자리를 알아보는 단기살이 프로그램 ‘나만의 포레스트’를 운영했어요. 일주일에서 보름의 기간 동안 퍼머컬쳐, 로컬 예술, 고흥의 밥상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8월에는 플로깅트립을 컨셉으로 한 3박 4일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청년들이 고흥의 산, 들, 바다를 여행하며 쓰레기를 줍고 고흥을 깨끗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지금은 청년들이 고흥에서 최대 3개월까지 장기 체류하며 고흥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거리를 실험해 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유자, 석류 등 고흥의 식재료를 활용해서 팝업카페를 운영해 보는 ‘고흥 떳!다방’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어요.

마을에 오면 어떤 것을 얻어갈 수 있나요?
사람이요. 우리 마을에 오는 친구들과 저는 처음에는 참가자와 운영자의 관계로 시작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나고 친구들이 떠나면 마음이 헛헛할 만큼 정이 들어버려요. 저는 마을에 오는 친구들이 즐겁게 지내다 가는 것도 좋지만 그냥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를 바라요. 그래서 친구들과 진솔한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제안을 많이 해요. 그 때문인지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안부 연락을 주거나 마을에 다시 돌아오는 친구들이 많아요. 실제로 8월 말부터 5명의 친구가 3개월 살기를 하고 있는데, 그중 3명은 7월에 단기 살이로 왔다가 다시 돌아온 친구들로, 저와 함께 청년마을 운영에 필요한 일들을 기획하고 있어요. 저는 다른 친구들도 언제든 원할 때 마을에 다시 놀러 오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관계들이 지속되기를 바라요.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은 뭐예요?
재미예요. 새로운 친구들을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고, 마을에서 좋아해 주시는 일들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농담하고, 장난도 치면서 재미있게 일하고 있어요. 제가 못하는 부분은 인정하고,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위임하기도 하면서요.

앞으로 어떤 마을이 되기를 기대하세요?
청년들이 다양한 프로그램과 일자리 실험을 통해 꿈을 이루고, 그 과정을 함께 하는 주민들도 행복한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신촌꿈이룸마을 남승희 참가자 ©BRIQUE Magazine

 

신촌꿈이룸마을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좋아서, 프로그램이 끝난 뒤 서울에 돌아가 휴학하고 다시 마을에 내려왔다는 참가자 남승희 씨.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냐고 물어보니 고흥의 자연, 마을 프로그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았다고 답한다. 여기서는 매일 아름다운 자연, 하늘, 구름을 볼 수 있다며 웃는 모습에 ‘부럽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떻게 신촌꿈이룸마을에 오게 되셨어요?
저는 서울에 사는 대학생인데, 2년 전에 제주도 청년 농부 캠프에서 알게 된 분이 신촌꿈이룸마을을 추천해서 오게 됐어요. 여름 방학 때 프로그램 참가자로 왔다가 이 마을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좋아서 휴학을 하고 마을에 다시 돌아와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어요.

어떤 점이 좋아서 휴학까지 하고 다시 마을에 오셨어요?
저는 자연을 좋아하는데 사람의 흔적이 묻지 않은 고흥의 자연이 너무 좋았어요. 고흥의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배우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닌 시간도 기억에 많이 남았고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는데 저를 막내딸처럼 대해주신 운영진분들이 좋았어요. 그래서 여기서 더 살아보고 싶어서 휴학을 하고 마을에 다시 인턴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인턴으로 어떤 일을 하세요?
고흥 여행 상품과 마을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다른 인턴들과 함께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관광두레 PD님께 피드백도 받고, 현장 답사를 나가기도 하고, 마을 생활을 사진, 영상으로 담아서 인스타그램에 홍보하는 릴스를 만들기도 해요. 저의 시선으로 본 고흥 생활에 대한 글도 써서 발행할 예정이에요.

퇴근 후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세요?
일주일에 한 번씩 풍물놀이를 배우고 있어요. 지난 번에는 북을 두 시간 동안 쳤는데, 아직 기술이 부족해서 팔이 아프기도 했지만 재미있었어요. 남열해돋이해수욕장에 가서 서핑도 하고, 숙소 마당에 불 피우고 불멍도 해요. 날이 좋을 때는 별 보러 산책도 나가는데, 지난번에는 은하수도 봤어요.

졸업 후에 아예 내려오고 싶은 생각도 있나요?
네. 저는 로컬 생활이 도시 생활보다 저에게 더 잘 맞는다고 느껴요. 그래서 지방 정착에도 관심이 있어요. 일단 인턴 일을 하면서 고흥에서 뭘 해서 먹고 살 수 있을지 찾고, 운전도 배워서 다시 오고 싶어요.

우리 마을에는 어떤 분들이 오면 좋을까요?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여기서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매일 볼 수 있어서 좋아요. 특히 하늘과 구름이 너무 예뻐요. 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에요.

 

©BRIQUE Magazine

 

 


 

2023 청년마을 공식계정.
인스타그램 @localbegins

경북 경주 가자미마을.
인스타그램 @gajame_village

전남 고흥 신촌꿈이룸마을.
인스타그램 @dreams_come_true_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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