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으로 신명나게 살다

[청년, 지역에 살다] ③ 영암 허밍스테이션, 의령 홍의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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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나겸, 김리오  사진. 김리오  자료. 허밍스테이션, 홍의별곡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서울 밖의 삶. 서로 다른 이유로 새로운 도시에서의 출발을 상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막연히 그곳에만 있는 바다나 숲을 실컷 보고 싶다거나, 나아가 카페와 스테이를 운영하고 싶다는 진지한 꿈을 꾸기도 한다. 고향에 돌아가 가업을 이으려는 이들도 있다. 모두 지역에 든든한 비빌 언덕이 있는 게 아니라면 섣불리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다.

<브리크brique>는 ‘청년, 지역에 살다’ 기획취재를 통해 지역의 자연, 농업, 문화, 산업을 바탕으로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청년마을’을 조명한다. 청년마을은 행정안전부의 주관으로 전국 39개 지역에 청년들이 일정기간 머무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8개 지역의 활동과 프로그램, 거점 공간을 찾아 소개하고, 이들이 담아내고 있는 지역에서의 일상과 꿈, 비전을 주제별로 풀어냈다.

 

청년, 지역에 살다
① 자연이 일상인 마을에 살다 — 경주 가자미마을, 고흥 신촌꿈이룸마을
② 건강한 지속가능함을 만들며 살다 — 영월 밭멍, 진천 뤁빌리지
③ 주체적으로 신명나게 살다 — 영암 허밍스테이션, 의령 홍의별곡
④ 오히려 많은 기회 속에 살다 — 하동 오히려하동, 익산 지구장이마을

 


 

많은 이들이 지역에서는 문화를 접하거나 여가를 즐길 기회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회가 넘쳐흐르는 서울에서 그 모든 것을 만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드문 기회가 더욱 소중한 법. 지역색이 뚜렷할수록 대체불가한 콘텐츠가 만들어진다는 걸 이번 청년마을 기획취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의 전통문화를 발굴하는 경남 의령 홍의별곡과 예술인과 함께하는 전남 영암 허밍스테이션을 찾아가 보았다.

 

영암 허밍스테이션

 

영암여객자동차터미널 ©BRIQUE Magazine

 

영암에는 버스터미널에서 콘서트도 하고 축제도 열어버리는 청년들이 있다. 오가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버스터미널에 청년들을 불러 모아 떠들썩하게 판을 벌리는 운영팀장. 영암이라는 지역은 처음 들어봤지만 콘서트 만드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무작정 신청했다는 포항 출신 참가자. 이들은 영암 버스터미널에서 어떤 못 말리는 일들을 꾸미고 있을까?

 

허밍스테이션 김사무엘 운영팀장 ©BRIQUE Magazine

 

허밍스테이션에서는 운영팀이 초반에 프로젝트의 큰 방향성을 전달하는 정도만 개입하고 참가자들에게 대부분의 선택과 판단을 맡긴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잘살고 있는지 의문과 회의감을 느끼던 사람도 ‘자기효능감’을 갖게 된다고. 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문화마저 사라져가던 영암에서 ‘주체적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만들어 가는 사람인 만큼, 참가자들도 ‘주체적으로’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도록 그들의 개성과 역량을 존중하는 사람. 허밍스테이션의 김사무엘 운영팀장을 만났다.

허밍스테이션을 소개해 주세요.
‘허밍’으로 노래를 부를 때 성대가 가장 빠르게 떨려요. 날개 짓이 가장 빠른 새인 벌새는 허밍버드Hummingbird고요. 그처럼 청년들이 터미널에서 프로젝트를 빠르게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지역 정착을 위한 실험을 하는 청년마을이에요.

어떻게 영암에서 청년마을을 운영하게 되셨어요?
‘전라남도에서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뜻이 있었어요. 그래서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을 운영하기 전부터 전라남도에서 청년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해왔어요. 그러다가 영암을 알게 됐어요. 영암은 무화과와 달마지쌀이 유명하고 자연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청년 문화는 거의 없어요. 사람의 발길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영암이라는 지역과 영암의 버스터미널을 청년들과 함께 문화예술로 채워나간다면 멋진 도전이고 실험이라 생각해서 영암에서 청년마을 운영을 시작했어요.

 

영암여객자동차터미널 ©BRIQUE Magazine
영암여객자동차터미널 ©BRIQUE Magazine
월스테이션 ©허밍스테이션

 

버스터미널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게 정말 신기해요.
여기는 공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이지만 민간 소유예요. 그래서 영암군청 교통과와 민간 소유주를 모두 설득했죠. 청년들이 모여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하니 공간을 사용하게 해달라고요. 지역 어른들이 처음에는 왜 굳이 여기를 쓰려고 하냐고 의아해하셨지만 청년이 귀한 지역이다 보니 이제는 청년들이 오는 것만으로도 좋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이런 것들도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도 주셔요.

버스터미널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계신 거예요?
콘서트, 축제, 플리마켓 등의 행사는 1층 로비나 버스승강장이 있는 마당에서 하고 다른 프로그램은 주로 2층에서 운영해요. 2층에 있는 공간을 저희가 직접 공간을 보수하고 꾸며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 겸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어요.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천장 누수가 있었는데, 천장 전체를 고치기에는 비용이 마땅치 않고 천장을 덮어버리면 그 속에서 곰팡이가 필 게 분명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노출콘크리트로 시공하고 간접등을 써서 해결했습니다.

 

커뮤니티 공간 ©BRIQUE Magazine
커뮤니티 공간 ©BRIQUE Magazine

 

또 다른 공간도 있나요?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경운대학교 기숙사를 숙소로 사용하고 있어요. 한 번에 6명에서 12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를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마침 경운대 기숙사에 공실이 있고 비용도 합리적이라서 숙소로 선택했어요. 프로그램 참가자 중에는 차 없이 오는 분들이 많은데 프로그램 운영 공간부터 숙소까지 뛰면 1분 거리라 위치가 정말 좋아요.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나요?
청년들이 영암에 와서 영암을 직접 느껴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문화예술 프로젝트에 도전해 볼 수 있는 단기살이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하고 있어요. 볼 거리, 즐길 거리가 있어야 참가자들도 마을에 오고 주변 지역 사람들도 놀러 와서 관계인구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참가자들이 직접 콘서트를 만들어 보는 ‘노답의 칸타빌레’, 글쓰기 수업을 통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드는 ‘지우개똥 프로젝트’ 등을 운영했어요.
터미널 주차장에서 축제도 열어볼 계획이에요. 영암터미널은 저녁 7시30분이면 버스가 뜸해지거든요. 기사님들도 대부분 퇴근하시고요. 청년들이 가장 놀기 좋은 시간에 텅텅 비게 되는 터미널 공간을 활용해서 축제를 열어볼 계획이에요. 또 지역 내외부 청년들을 위한 네트워킹 파티를 만드는 ‘달달한 온도’와 영암의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는 ‘영끌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터미널의 빈 상가들을 고쳐서 예술가의 작업실 또는 창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도 운영해 볼 생각이에요.

지역민들은 마을 운영에 대해 어떤 반응이에요?
영암 지역 주민분들이 저희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도 하세요. 50대 어르신이 글쓰기 수업에 오시기도 하고 중학생들과 노래를 녹음하기도 했는데, 다들 난생처음 해보는 경험이라고 신기해하고 좋아하셨어요. 저희가 터미널에서 공연이나 행사를 열면 조용하던 터미널에 생기가 도는 모습을 좋아해 주시고 관심 가져주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현장에서 받는 칭찬은 데이터로 남기기 어려운 반면, 가끔 발생하는 민원은 데이터로 고스란히 남아서 힘이 빠질 때도 있어요. 그래도 불편해하시는 점들을 반영해서 프로그램을 보완했더니 참가자분들의 만족도가 더 좋아졌어요.

마을에 오면 어떤 것을 얻어갈 수 있나요?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고 회의감이 들 때가 있잖아요. 허밍스테이션에서는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요. 운영팀은 초반에 프로젝트의 큰 방향성을 전달하는 정도만 개입하고, 참가자들이 대부분의 선택과 판단을 하게 해요. 그렇게 했더니 참가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더라고요. 그렇게 영암에서 각자의 개성을 담은 프로젝트를 만들고 실행하면서 지역 정착의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도 있고요.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은 뭐예요?
문화예술의 황무지와 같은 곳에서 이런 활동들을 만들어냈다는 뿌듯함과 저희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주민분들에 대한 감사함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마을이 되기를 기대하세요?
청년예술가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이 와서 함께 소통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청년들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생기있는 허밍스테이션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허밍스테이션 안소연 참가자 ©BRIQUE Magazine

 

허밍스테이션 프로그램 참가자 안소연 씨를 만났다. 3곳의 청년마을에서 살아봤다는 그는 지역 살이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사람만 한가득 만났다며 웃었다. 사람으로 인해 지쳐있던 마음을 사람으로 인해 회복했다는 그. 물리치료사라는 직업 특성상 어느 지역에서나 살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마을에서 살아보며 정착 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중이라고.

허밍스테이션에 어떻게 오게 되셨어요?
처음에는 청년마을 같은 것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친구들이 가자고 해서 신청했어요. 간절했던 친구들은 떨어지고 크게 관심 없었던 저만 붙었는데 막상 가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청양, 영천, 영암 이렇게 세 곳에서 살아보게 됐어요. 물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사람들로 인해 많이 지치고 힐링이 필요했는데 청년마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까 좋더라고요. 청년마을에 같이 살았던 사람들끼리 아직도 계속 인연을 이어 나가면서 다른 청년마을 추천도 하고 있어요.

여러 청년마을 중에 허밍스테이션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콘서트를 만드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신청했어요. 저는 고향이 포항이라서 그런지 영암이라는 지역명 자체를 처음 들어봤지만 오로지 콘서트가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신청하고 왔어요. 어렸을 때 취미로 국악과 뮤지컬을 했거든요. 여기 와서 콘서트도 만들고, 원하는 노래 녹음도 하고, 영암 중학생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어요. 원래는 영암 단기살이가 끝난 다음에 제주에 한달살이 하러 가려고 했는데 여기가 너무 좋아서 다시 왔어요.

어떤 점이 좋아서 또 오게 되셨어요?
스탭분들이 제가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도록 밀어주시고, 제가 원하는 대로 잘 맞춰주신 것이 가장 좋았어요. 뭐든 여유롭게 천천히 하는 분위기도 좋았어요. 포항에 살 때는 집이 해수욕장 근처라서 늘 사람이 많고 시끄러웠는데 여기는 조용하고 자유로워서 좋아요. 영암의 가꿔지지 않은 자연도 너무 좋아요. 음식도 정말 맛있어요.

영암 정착에도 관심이 있나요?
네. 그래서 여러 마을을 가본 거예요. 물리치료사는 다른 지역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어디에 살면서 이 일을 하면 좋을지 돌아다녀 보고 있어요.

또 가보고 싶은 마을이 있나요?
익산 지구장이마을이요. 목공 프로그램에 참가해보고 싶어요.

 

영암여객자동차터미널 ©BRIQUE Magazine

 

 

의령 홍의별곡

 

홍의별곡,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의병의 발상지인 의령의 곽재우 장군이 전투 중에 피를 흘려도 적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입었다는 홍의(紅衣)와 청년들의 개성을 노래한다는 의미의 별곡(別曲)을 합친 단어라고 한다. 어쩐지 운영팀 모두의 기개와 개성이 남달랐고, 그들이 의령에서 써나가고 있는 특별한 이야기는 뿌리부터 튼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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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애별곡, 물아일체, 국힙클럽 홍의(紅衣) 등 재치 있는 이름의 공간이 가득한 홍의별곡. 그런 마을의 대장답게 장난기 가득한 얼굴과 진지한 눈빛을 모두 가진 안시내 대표를 만났다. 그는 지금 마을에 오는 청년들이 의령의 전통 자원들(도자기, 서예, 차, 천연 염색 등)에 각자의 기획을 더해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판을 벌리고 있다고. 홍의별곡을 일 욕심 많은 청년들로 가득 채워버리고 싶다며 장군과 같은 기세로 말하는 그에게, 살짝 설렜다.

 

홍의별곡 안시내 대표 ©BRIQUE Magazine

 

홍의별곡을 소개해 주세요.
홍의별곡은 의령의 전통 자원에 청년의 시각을 더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는 청년마을이에요. 저는 의령이 고향인데, 대학을 진주로 가면서 의령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지는 3년 정도 됐어요. 청년마을을 운영하기 전에는 차(茶) 명인인 어머니의 가업을 이어 사업을 했어요.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기획과 눈에 띄는 디자인이 필요했는데, 의령 내에서 해결하려니 작업물이 성에 차지 않고 비용도 너무 비싼 거예요. 그래서 함께 일할 기획자와 디자이너를 타지에서 구해 고용했죠. 그들이 계속 의령에 머무르려면 일자리 외에도 주거, 교통, 문화시설, 커뮤니티 등의 요소가 충족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의령이 고향인 청년들이 타지로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도요. 그래서 의령에서 함께 뭉쳐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공동체, 홍의별곡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어떤 공간을 운영하고 있나요?
별의별 것을 다 한다는 뜻의 ‘별애별곡’이라는 커뮤니티 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의령군에서 사용하지 않는 빈 공간을 저희에게 내주셨고, 저희가 직접 공간에 있던 집기도 정리하고 등도 갈아서 쓰기 좋게 만들었죠. 청년마을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행사도 하는 공간이에요.

 

©BRIQUE Magazine
커뮤니티 공간 ‘별애별곡’ ©BRIQUE Magazine

 

청년들이 다양한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실험 공간도 있어요. 양초공장과 칠곡목욕탕인데, 의령 주민들이 사용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공간들이에요. 특히 칠곡목욕탕은 전통을 힙하게 담아낸다는 의미에서 ‘국힙클럽 홍의(紅衣)’라고 이름 붙였어요. 지역 주민이 제공한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해 만든 사무실 ‘물아일체’와 공유 숙소 ‘마을의 지혜’도 있답니다.

 

양초공장 ©BRIQUE Magazine
양초공장 ©BRIQUE Magazine
칠곡목욕탕 ©BRIQUE Magazine
칠곡목욕탕 ©BRIQUE Magazine
칠곡목욕탕 ©BRIQUE Magazine

 

‘나케이션’ 프로그램이 정말 재미있어 보였어요. 어떻게 기획하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홍의별곡의 운영팀 완주 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획했어요. 완주 씨는 대구가 고향인데, 여기에 살면서 남보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남이 아닌 나에게로 여행을 떠나자고 이름을 ‘나케이션’ 으로 짓고, 사람과 자연에 중심을 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의령의 100년 된 소나무 숲, 신포 숲에서 명상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장암서실에 가서 서예와 수묵화도 배우고, 의령의 장인들과 창업가들도 만났죠. 10박 11일을 꽉 채운 빡빡한 스케쥴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참가자분들이 홍의별곡과 의령의 매력을 흠뻑 느끼고 가시는 걸 보고 뿌듯했어요. 저희도 10명의 친구가 생겨 좋았고요.

최근에는 ‘전통 브랜드 인턴쉽’ 프로그램을 운영하셨죠.
늘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청년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서 창업을 해도 2~3년 안에 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낡고 색도 바랜 전통의 브랜드들은 왜 망하지 않을까?’ 그 이유를 함께 찾아보자는 뜻에서 시작한 인턴쉽 프로그램이었어요. 사람들의 삶 속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가치를 증명해 온 전통 자원들. 그 자원들에 청년들이 그들만의 시각을 더해 가치를 확장시키는 스타트업 문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의령의 장인들은 그들의 이야기가 지속되길 바라고 청년들은 뿌리를 뻗어나가고 싶어 하니, 그들이 함께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의령의 전통 브랜드 중에서 청년들의 기획이 필요한 브랜드와 함께했고, 마을에 와서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한 참가자만 뽑았더니 장인과 참가자 모두 만족했어요. 참가자 6명 중 1명은 인턴쉽 했던 브랜드에 취직해서 의령에 정착까지 하게 됐어요.

또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나요?
청년들이 의령의 전통 브랜드와 공간을 활용해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전통 브랜드의 제품을 새롭게 디자인하거나 상품을 개발할 수도 있고, 빈 공간을 리모델링해서 주거 공간으로 만들거나 창업 실험을 할 수도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의령에서 새로운 도전을 통해 나만의 일을 찾고 싶거나 이미 자신만의 브랜드가 있는데 그것을 확장하고 싶은 청년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홍의별곡에 일 욕심 많은 청년들이 드글드글하길 바라요.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요. 저와 함께 산전수전 다 겪는 사람들. 미안해야 할 일은 계속 생기고,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내 욕심인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삶에 대해 분명한 가치관을 가진 동료들이 저를 앞으로 끌어주는 동력이 돼줘요. 의령군과 주민분들이 보내주시는 진심어린 응원도 힘이 되고요.

앞으로 어떤 마을이 되기를 기대하세요?
홍의별곡이 있는 거리는 500미터가 채 되지 않지만, 저희는 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이 마을의 작은 거리를 생동감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요. 또 의령에 오는 청년들이 지역의 전통 자원들을 활용해 가지각색의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홍의별곡 운영팀 허민서 씨(왼쪽), 김완주 씨 ©BRIQUE Magazine

 

홍의별곡의 운영팀 김완주 씨, 허민서 씨와의 만남은 따뜻했다. 서로가 아주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운영하며 힘들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는 사람들. 서로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확실해 보였다. 어떤 프로젝트라도 재미있게, 의미 있게 해낼 것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 분은 어떻게 홍의별곡에서 일하게 되셨어요?
여기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합천군이 고향이에요. 대학생 때부터 대구에서 살다가, 대표님과 함께 일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지난 7월에 의령으로 오게 됐어요. 의령 뉴비예요. 의령에 오니까 공기가 맑아서 좋고, 도시보다 소음이 적어서 귀도 편하고 마음도 편해요.
저는 여기가 연고지예요. 여기서 나고 자랐고, 고등학교 때 나가서 부산과 제주도에서 살다가 제대 후에 의령으로 돌아왔어요. 아무래도 고향이니까 마음도 편하고 명절 때면 친구들도 내려와서 좋더라고요. 원래는 스크린 골프 가게 창업을 했다가 그만두고 창원으로 가려고 했어요. 준비하던 중에 누나가 홍의별곡에 한번 가보라고 해서 한번 와봤다가 잡혀버렸어요. (웃음)

가장 좋아하는 홍의별곡의 프로그램은 뭐예요?
‘나케이션’ 프로그램 중에 새벽 6시에 신포숲에서 차 명상했던 거요. 그 전날에도 일이 늦게 끝나서 몸이 힘들었는데, 막상 가서 차의 연기를 보고 열기를 느끼는 명상을 했더니 스트레스가 다 풀렸어요.
저는 칠곡포차. 왜 좋았냐면, 저희도 열심히 일했지만 프로그램 참가자들도 프로젝트 만드느라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다 같이 열심히 일한 뒤에 다 같이 열심히 먹고 마시고 놀면서 푼 게 좋았어요. 삼계탕, 부추전, 부대찌개, 탕후루 등 참가자분들이랑 같이 만들어서 먹은 음식도 맛있었어요.

운영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과 가장 힘들었던 것이 궁금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았어요. 저는 스스로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어서 홍의별곡에 왔는데, 민서씨, 대표님과 같이 일하면서 배울 것이 많았거든요. 두 분이 되게 다른데, 각자 다른 배울 점을 갖고 있어요. 운영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고, 더 잘하고 싶어서 아쉬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요.
가장 좋았던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를 통해 제가 많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전에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컸는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이 많이 열렸어요. 이 일을 의미 있게 느끼는 좋은 분들이 와주셨고, 서로 허물 없이 잘 어울려 주셨어요. 저도 프로그램 스케쥴이 빡빡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는데 칠곡포차 한번 하고 나니까 피로가 다 풀렸어요.

 

홍의별곡 팀원들 ©BRIQUE Magazine

 

다른 청년마을에 가보신 적도 있으세요?
저희가 처음 만난 곳이 가자미마을이에요. 각자 면접을 본 후에 가자미마을 도킹캠프 워크숍에서 처음 만났어요. 가자미마을이 저희처럼 목욕탕 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목욕탕을 잘 꾸며서 만든 커뮤니티 공간을 보고 우리 공간은 어떻게 꾸밀 수 있을까 상상도 했고요. 또 뭐하농도 가봤어요. 뭐하농에서는 청년마을이 가지고 가야 할 가치와 방향성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뭐하농은 농사를 일상생활 가까이에 접목시킨 사례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전통을 생활 가까이에 접목시킬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보게 됐고요.

우리 마을만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 전통 자원이 정말 많잖아요. 차, 한복, 농악 등 여러 자원들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대표님이 오픈 마인드라서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얘기하는 의견들을 잘 반영해 주셔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설레고 보람찼어요.
다른 마을은 공간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데, 저희는 하나의 거리 안에 마을이 형성돼 있다는 거요. 완주 님 말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정말 다양해요. 인적 자원으로는 서예, 수묵화, 도자기, 차, 한과, 천연염색 등 장인이 많고 자연 자원으로는 신포숲, 자굴산, 수암사 등이 있어요.

앞으로는 어떤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고 싶으세요?
의령에 있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지방 정착을 위해서는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사람이 좋아서 정착했고요. 저희가 운영하는 프로그램 참가자들도 의령에 와서 연결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으면 더 쉽게 정착할 수 있을 거예요. 홍의별곡이 중심이 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그 안에서 이런저런 모임도 만들면서 청년들과 함께 재미있게 지내고 싶어요.
저는 수익을 많이 내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요. 그래서 홍의별곡을 더 크게 만들고 싶어요.

 

©BRIQUE Magazine

 

 


 

2023 청년마을 공식계정.
인스타그램 @localbegins

전남 영암 허밍스테이션.
인스타그램 @humming_station23

경남 의령 홍의별곡.
인스타그램 @hongstar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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