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이자 소우주

[People] 행복으로 달리는 집
ⓒBRIQUE Magazine
에디터. 김지아  사진. 이한울, 윤현기

 

가을볕이 쬐는 어느 일요일 오후, 원주의 한적한 동네에 들어서자 주택들 사이로 고즈넉한 집이 시선을 이끌었다. 초등학생, 중학생인 두 딸과 그보다 더 어린 막내아들, 그리고 부부가 함께 사는 이 집은 막내 지호를 위한 ‘달리는 집’이었다가 마침내 가족 모두가 함께 ‘행복으로 달리는 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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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주말주택 용도로 설계를 의뢰하셨다고요. 어떤 계기로 집을 짓게 되었나요?

김남웅 저희 가족은 이 집으로 오기 전에 아파트에 살고 있었어요. 그러다 막내 아이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게 되면서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워낙 활발하고 에너지가 많은 아이이다 보니 드넓은 자연에서 뛰어놀게 해 주면 좋겠다 싶었어요. 처음에는 대안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건축이 아닌 농막 형태의 이동식 주택을 고려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알아보니 평수가 너무 작아 다섯 식구가 쉴 공간으로는 적합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계속 땅을 보러 다녔어요. 가족 모두 원주에서 생활하고 있어 이 지역을 떠날 수는 없었고, 아이의 치유를 위한 목적이니 또 너무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 건축하기 좋다는 택지를 원주에 얻게 됐죠.

재귀당 건축사사무소에 설계를 맡긴 이유가 궁금해요.

김남웅 처음에는 조급한 마음에 설계와 시공을 함께하는 곳에 의뢰하고 맡기려 했어요. 그런데 계속 고민이 되는 거예요. ‘아 이분들한테 집을 지으면 지나가다 보는 평범한 집들처럼 그저 그런 집이 되겠구나’ 하고요. 그래도 우리가 목적한 바가 있는데, 좀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면 그 선택지를 고르는 편이 낫겠다 싶었어요. 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다가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유튜브에서 ‘건축술사’라는 영상을 봤는데, 상당히 유익하고 재밌더라고요. 그때 박현근 건축가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설계를 할 때 동기부여가 되는 건축주와 작업하기를 좋아한다고요. 그 말이 인상 깊어 직접 상담을 의뢰했고, 설계를 재귀당 건축사사무소에 맡기게 됐죠.

 

ⓒHanul Lee

 

구체적으로 어떤 집을 원하셨어요?

김남웅 우선 이 집은 막내 아이를 위한 집으로 시작되었으니 그 아이에게 좋은 집을 짓고 싶었어요. 그래서 박 소장님께 막둥이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좋아라 하는 놀이가 무엇인지 찬찬히 설명드렸죠. 그리고 아이 못지않게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을 아내에게도 편한 집이 될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 외에는 두 딸이 각자의 방을 갖길 원해서 아이들 방은 다 따로 있었으면 했고, 가족이 다 같이 모여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야외 공간에 대한 바람도 있어 상담 과정에서 함께 말씀드렸죠.

 

남편분의 요구사항은 따로 없었나요? (웃음)

김남웅 가족에게 좋은 집이 저에게도 좋은 집이죠. 다만 가끔 혼자 티비 보고, 회사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제게도 필요했는데, 아무래도 단층집이다 보니 1층에 그런 공간을 만들기가 어려웠어요. 그 덕에 다락이 제 아지트가 되었고요. (웃음)

 

ⓒHanul Lee

 

부엌이 유난히 넓은 것 같아요.

김현정 이전에 있던 아파트는 33평이었는데, 평수에 비해 주방이 좁았어요. 상부 장이 없는 넓은 주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주방을 이렇게나 넓게 만들어주셨죠. (웃음) 거실과 자연스레 연결되기도 하고,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제 공간이 넓어진 느낌이라 만족스러워요.

 

아이를 위한 집으로 설계한 만큼 아이를 위한 요소가 돋보여요.

김현정 처음에 이사 왔을 때는 사실 좀 힘들었어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집을 지어 왔는데,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 있던 터라 동선도 새삼 길게 느껴지고 방도 괜히 좁은 것 같았거든요. 또 바깥의 담을 아이가 타고 넘어가는 일이 생기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죠. 처음 한두 달은 적응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지내다 보니 지금은 동선에도 익숙해지고, 실제로 자연과 가까이하며 많이 좋아지고 있는 막내를 보면서 집을 지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더 자주 해요.
김남웅 얼마 전에 막내가 학교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면서 부모와도 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실내에서도 공간이 분리되어 있고, 바깥으로는 자연과 접할 수 있는 중정이 있으니 그 답답함이 확실히 덜하더라고요.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 일을 계기로 주택의 장점을 확실히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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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했어요.

김현정 동생을 워낙 좋아하고 아껴 두 딸도 어쩌면 많은 것을 양보하고 온 셈이에요. 그래도 원하는 각자의 방을 얻었으니 전반적으로는 만족해하며 지내요. 다만 학교와 멀어져 교통편이 불편해지기는 했어요. 아침저녁으로 버스 시간을 다 맞춰 다녀야 하니까요.
김남웅 아파트에 살 때는 걸어 다닐 수 있었으니까 학원 마치고 밤에 친구들도 자연스레 만나고 하는 일이 그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이었을 텐데 그런 점이 아쉽기는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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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의 생활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김남웅 아무래도 좀 부지런해졌죠. 아파트에서 지낼 때는 그냥 일어나서 멀뚱히 있다가 씻고 출근하잖아요. 여기서는 일어나면 그 전날 모아놨던 분리수거부터 하고, 마당도 한 번 쓸고 회사에 가요.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마당을 쓰는 그 일이 나름의 환기가 돼요. 주말에는 풀도 깎고, 잡초도 뽑죠. 주택에서는 뭔가를 하려고 하면 이렇게 일이 한도 끝도 없이 많아져요. 그 덕에 움직이는 범위가 늘어났어요. 그러면서 얻는 에너지도 분명 있는 것 같고요. (웃음)
김현정 남편이 바깥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안에서 제 할 일은 정해져 있어 큰 변화라고 할 건 없어요. 아파트에 비해서는 청소하는 범위가 좀 늘어났지만 운동 삼아 해요. 처음에는 시내와 거리가 있고, 근처에 부대시설이 없는 게 다소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막내 아이는 매일 치료실을 다니고, 두 딸의 학교와 학원도 그 근방에 있으니까 아이들 픽업하며 오가는 길에 마트 들러 장 보고 하는 일이 더는 불편하지 않아요.

 

주말에는 주로 무얼 하고 지내세요?

김현정 이사 오기 전에는 주말마다 나갔어요. 근데 여기 살고부터는 주말에 잘 안 나가요. 올 여름에도 냇가에 한 번을 안 갔어요. 이 집에는 물을 좋아하는 막내를 위해 작은 수영장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넓은 공간도 있고, 물놀이할 수 있는 마당도 있잖아요. 저나 남편은 중정에서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을 좋아해요. 가만히 있으면 바람도 살갑게 불고 어느 순간엔 새소리도 들리거든요. 딸들은 바깥에 앉아 달고나도 만들어 먹고, 동생 그네도 한 번씩 밀어주고 하며 저들 나름의 시간을 보내요.
김남웅 이사 오고 주말에 무엇보다 손님들이 집들이를 많이 오셨어요. 손님들이 오면 바깥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죠. 차도 한 잔씩 마시고요. 한 번 왔던 사람들이 좋다고 또 오니까 주말에 나갈 수가 없어요. (웃음) 내년이 되면 바뀔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중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런대로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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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김남웅 설계를 할 때 방은 거의 잠만 자는 공간으로 설정해서 안방이 좀 작은 감은 있어요. 패밀리 사이즈 침대를 놓아뒀는데, 그 외에 남는 공간이 거의 없어요. 다른 공간들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욕심은 끝이 없다 보니. (웃음) 안방이 더 넓었으면 좋았겠다 싶긴 하죠.
김현정 맞춤형이라는 게 늘 양면이 있는 것 같아요. 옷으로 들면, 내 몸에 꼭 맞아 좋다는 장점과 몸의 변화가 있으면 더 이상 맞지 않다는 단점이 같이 있는 거잖아요. 집도 마찬가지예요. 가구 사이즈에 맞춰 공간을 설계하다 보니 여유분이 없는 거예요. 어떤 때는 그게 딱 맞아서 좋아 보일 때도 있지만, 또 어떤 때는 여유 공간을 찾게 되니 그 마음에 따라 아쉬울 때가 있어요. 아무리 우리에게 맞춘 집이라지만,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뭔가를 계속 바라게 하고 다르게 보게 한다는 점이 재밌기도 한 것 같아요.

 

ⓒHan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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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공간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김현정 편안함을 주는 것. 단순하고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집이란 모름지기 편안한 공간이어야 해요. 저희 역시 아파트에 익숙했던 것이지 충분히 편안했을까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거든요. 물을 좋아하고 여기저기 뛰놀기 좋아하는 호기심이 많은 지호에게는 더더욱 그랬을 테고요. 공간이 주는 다양한 경험이 있을 텐데,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그때그때 필요로 한 경험들을 충족시키고, 집에서는 일차적으로 마음이 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집은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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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분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집’이란 어떤 곳인가요?

김남웅 저도 아내와 비슷하게 생각해요. 공간을 이루는 사람이 행복할 때야 비로소 좋은 집을 말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러려면 가족 간의 관계가 좋아야겠죠. 가족이 화목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거리와 적절한 애정이 필요해요. 저도 아이들도 이 집에서 각자의 시간을 편하게 보내면서 어디쯤에서는 가족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따로 또 같이 지내는 생활이 자연스러운 집이 곧 편한 집이고 좋은 집 아닐까요? 아직은 이사 온 지 일 년이 채 안 되어서 이 집에 적응할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저희 가족은 이 집에서의 생활에 그런대로 만족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행복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라면 좋겠어요. (웃음)

 

ⓒHan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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