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마스크, 의자로 다시 태어나다

[업사이클링 디자인] ① 폐마스크 재활용한 의자로 환경 메시지 전하는 '김하늘 디자이너'
©Haneul Kim
에디터. 김윤선  사진 & 자료. 김하늘 디자이너

 

버려진 것들에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는 업사이클링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이 최초의 쓸모를 다한 제품을 수거해 재사용하는 것까지를 의미한다면, 디자이너의 개입을 통해 버려진 제품의 새로운 쓸모를 찾아주는 일이 바로 ‘업사이클링upcycling’ 디자인이다.

친환경을 넘은 필(必)환경의 시대를 살아가는 다섯 명의 디자이너에게 업사이클링 디자인에 대해 물었다. 다루는 재료와 쓸모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의 작업을 관통하는 작업관이 있다면 ‘쓰레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다섯 명의 디자이너가 전해준 쓰레기의 미래. ‘버려진 것들의 미래’를 함께 그려보자.

 

① 폐마스크 재활용한 의자로 환경 메시지 전하는  ‘김하늘 디자이너’
② 버려진 유리병 재활용하는 리:보틀Re:bottle 메이커  ‘박선민 작가’
③ 제작부터 폐기까지 환경을 고려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위켄드랩’
④ 쓰레기를 소재로 일상의 물건을 만드는 ‘저스트 프로젝트’
⑤ 버려진 소재와 자연물의 쓰임을 확장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뉴탭-22’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환경 오염 문제가 큰 화두다. 환경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2020년 상반기 생활 폐기물 발생량은 약 5349톤. 이중 비닐과 플라스틱 폐기물은 전년도 상반기보다 각각 11.1%, 15.16% 증가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외출 자제로 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배달음식과 택배 주문으로 발생하는 일회용 용기와 포장재 등의 쓰레기 배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된 만큼, 폐마스크 역시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매달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마스크는 약 1300억 장. 이렇게 버려진 마스크는 단순히 쓰레기양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야생동물의 안전마저 해치고 있다. 한 환경단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거리에 버려진 마스크에 발이 걸려 위험에 처하거나, 운반과 매립 과정 중 바다로 흘러든 마스크를 먹이로 착각하고 삼켜 죽는 등 폐마스크로 인해 생명에 큰 지장을 받은 동물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며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Haneul Kim

 

그런데 여기, 이렇게 골칫거리인 폐마스크를 재활용해 ‘의자’로 재탄생시키는 혁신적인 업사이클링 아이디어를 제안한 디자이너가 있다. 계원대학교 리빙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김하늘 씨다. 그는 버려지는 폐마스크와 마스크 제작 과정 중에 나오는 자투리 자재로 의자를 만들어 최근 크게 화제가 됐다. 그는 ‘마스크를 재활용해 단순히 예쁘고 멋진 의자를 만드는 것보다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하늘 디자이너에게 서면으로 인터뷰를 청했다.

 

©Haneul Kim
©Haneul Kim

 

폐마스크도 재활용이 된다?

 

폐마스크로 의자를 만들어 큰 화제가 됐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일상을 포함한 많은 것들이 변했죠. 특히 마스크는 이미 필수품이 된 지가 오래이고요. 그런데 이 마스크가 전 세계에서 한 달 동안 1300억 장이나 폐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엄청난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그 소재가 잘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게 느껴졌죠. 그러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어요. ‘플라스틱 재활용은 이미 한창인데, 왜 플라스틱으로 만든 마스크는 재활용하지 않지?’ 막연한 의구심과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폐마스크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일종의 다짐을 하게 됐어요. 반드시 성공해서 폐마스크도 재활용이 된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고, 이 이야기를 많은 분께 알리고 설득하고 싶었어요.

 

재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 중에서도 왜 ‘의자​’를 선택했나요?

제가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라서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가구로 재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어요. 대학에서 리빙디자인을 전공하며 가구를 포함한 인간의 실생활에 필요한 디자인을 공부했거든요. 학과의 큰 커리큘럼 중 가구 분야가 있기도 했고, 평소에도 가구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요. 가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어떤 가구든 상관은 없었어요.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접했던 것이 의자였고, 가장 기초가 되는 것으로 생각해서 의자를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학교 졸업작품으로 출품할 계획도 세우게 되었죠.

졸업작품명은 Stack and Stack (In Pandemic)이다. ©Haneul Kim

 

제작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고요.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 지도 교수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기간이 제한적이라 보통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학기 중에 다뤄보았던 소재를 사용하거나, 공동 작업으로 팀을 이뤄 출품하는 게 보편적이죠. 그런데 마스크를 재활용하는 소재는 무척 생소했기 때문에 다들 의아해했어요.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이고, 그저 하나의 아이디어에 불과했으니까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제 스스로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많은 이의 우려에도 고집을 부려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갔고, 결국 이렇게 완성했죠. 원래 작년에 졸업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 예정이었는데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전시가 전부 취소됐어요. 전시가 취소된 건 아쉽지만 이 작업이 적지 않은 이슈가 되면서 다양한 언론에서 취재 요청을 받고 있어서 더 많은 분께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폐마스크가 의자로 거듭나기까지

 

마스크가 의자로 만들어지기까지 전반적인 제작 과정을 설명해주신다면.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일회용 마스크를 구성하는 재료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사용하는 일회용 마스크는 보통 ‘폴리프로필렌(PP)’이라는 플라스틱 소재를 부직포 형태로 만든 필터와 코 부분을 지지하는 철사, 귀에 걸기 위한 끈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여기에서 플라스틱 소재의 필터를 재활용 소재로 사용하고 있어요. 테스트를 할 때 철사와 끈도 마스크 필터와 함께 녹여 봤는데, 변색이 심해 보여지는 텍스처가 중요한 이 작업과는 맞지 않더라고요.
전반적인 제작 과정을 설명해 드리자면, 먼저 의자 제작에 필요한 거푸집이 필요해요. 거푸집은 소재를 부어 의자를 만들기 위한 틀이에요. 제가 직접 디자인한 의자 형태의 이 틀을 만들어서 금형으로 제작하고, 그 안에 수천 장의 마스크를 고온의 열풍을 가해서 액화시켜요. 그런 다음 천천히 식히고 굳히면 의자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다리와 좌판이 만들어져요. 이들을 결합하면 마침내 단단하고 질긴 플라스틱의 내구성을 가진 의자가 완성돼요.

 

ⓒHaneul Kim
거푸집에 마스크를 넣고 고온의 열풍을 가해 액화시킨다. ⓒHaneul Kim
다리와 좌판을 결합한다. ⓒHaneul Kim
완성된 의자. 쌓아서 보관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했다. ⓒHaneul Kim
©Haneul Kim

 

의자 한 개를 제작하는 데 얼마나 많은 마스크가 필요한가요? 의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마스크는 어디에서, 어떻게 구하는지도 궁금해요.

의자 한 개 만드는 데 대략 1500장 정도의 마스크가 들어가요. 처음에는 저와 지인들, 가족들에게 부탁해서 모았고, 나중에는 교내에 따로 마스크 수거함을 설치해서 주기적으로 수거했어요. 제 작업이 알려지면서 많은 분들에게 공감과 응원을 받기도 했지만, 위생이나 2차 감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어요. 사실 좀 속상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코로나로 인한 마스크 폐기물량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자는 의도를 더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죠.

 

마스크 수거함을 설치해 폐마스크를 수집했다. ⓒHaneul Kim

 

그러다 묘안을 찾게 된 게 바로 마스크 공장이에요. 공장에서 마스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폐기 원단이 전체 사용 원단 양의 10%나 된다더군요. 그 뒤로는 공장에서 폐기되는 원단을 받아 더 간편하고 위생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죠. 또 코 부분 철사와 귀걸이 끈을 제거하는 과정도 생략할 수 있었어요. 공장 측에서도 폐기를 위해 쓰는 비용보다 저에게 보내주시는 화물 비용이 더 저렴하다고 하셨어요. 서로 ‘윈윈’이었죠. (웃음) 참고로 제가 다녀온 공장은 규모가 작은 곳이었는데도, 한 달에 버려지는 자재가 무려 1톤이나 된다고 해요. 코로나19 이후 마스크 제작 공장이 4배 정도 증가했다는데, 그렇다면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에 더 큰 문제를 낳을 거라고 봐요. 그래서 현재는 사용하고 버려지는 마스크보다 버려지는 원단이나 불량품 마스크를 소재로 작업하고 있어요.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호르몬 문제도 심각한데요. 혹시 원료인 폴리프로필렌(PP) 재료에 높은 열을 가해 제작할 때 유해 물질이 발생하지는 않나요?

플라스틱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중 가장 많이 재활용되는 것이 폴리프로필렌(PP)인데, 그 이유는 환경호르몬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죠. 폴리프로필렌은 탄소와 수소로만 결합해 만들기 때문에 인체에 해가 없는 재료예요. 주방용기의 95% 정도가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지고, 위생에 민감한 아기 젖병 소재가 폴리프로필렌인 이유도 그렇죠.

 

폴리프로필렌 소재는 환경호르몬을 유발하지 않아 인채에 무해하다. ⓒHaneul Kim

 

색깔 있는 마스크도 재활용이 가능한가요?

가능해요. 의자는 별도의 채색 과정 없이 화이트, 블랙, 핑크, 블루, 이렇게 네 가지 색상의 마스크를 재활용해서 만들었어요. 또 네 가지 색상을 경우의 수로 섞어서 작업한 혼합 색채 의자도 만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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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소재를 활용해서인지 다소 투박해 보여요.

사실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의자를 만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렇지만 의자에 메시지를 담는 일 또한 쉽지 않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환경 오염에 대한 경각심, 그리고 공감을 위한 메시지가 담긴 작업이고, 그렇기 때문에 형태에 시선을 집중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앞으로도 단순히 예쁘고 멋진 의자 형태를 만드는 것보다는 마스크를 재활용해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 수 있다는 것과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 그 작업을 계속해나가는 것, 그리고 제품을 양산화해서 더 많은 분께 저의 메시지를 닿게 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되도록 하는 것이 저의 계획이에요.

 

ⓒHaneul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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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는 세상을 향한 하나의 메시지

 

의자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굳은 소신이 느껴지네요. 의자뿐 아니라 다른 가구나 물건으로도 적용이 가능할 것 같아요.

마스크를 재활용한 소재로 의자를 만들 수 있다면, 조명이든 테이블이든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봐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마스크뿐만 아니라 환경을 오염시키고, 힘을 다한 것들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생각입니다.

 

실제 사용 중인 모습 ⓒHaneul Kim

 

최근 많은 매체에서 마스크 의자를 소개하며 큰 관심을 받고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죠. 졸업을 앞둔 만큼 진로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할 계획인가요?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될 줄 상상도 못 했어요. 아주 얼떨떨하고, 꿈만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답니다. 제게 보내주시는 많은 공감의 목소리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코로나로 작년 한 해 모두가 힘들었잖아요. 제 작업은 직접적으로는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희망이고, 또 지나고 보면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그랬지, 하면서 말이죠.
앞으로도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건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무언가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나아가서는 인간이 겪는 어떠한 종류의 문제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 같은 목소리로 공감할 수 있는 기업과의 협업도 계획하고 있어요.

 

김하늘 디자이너 ⓒHaneul Kim

 

이 작업을 통해 많은 이들이 환경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을 텐데요. 일상에서 환경을 지키기 위해 실천할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 역시 나서서 환경 운동을 할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평소 분리배출을 꼼꼼히 하는 정도였죠. 오히려 이 작업을 시작하고 저도 더 많이 공부하게 된 것 같아요. 일종의 책임감이 생겼달까요. (웃음) 아무튼,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페트병의 라벨을 분리해서 버리거나, 일회용 배달 용기를 잘 세척하고 말려서 버리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겠죠. 사실 이렇게 쉽고 단순한 것도 귀찮아서 잘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이미 알고 있는 것만 잘 지켜도 분명히 지구는 지금보다 더 회복되고 건강해질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분명 소중한 일상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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