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유리병의 우아한 변신

[업사이클링 디자인] ② 리:보틀 Re:bottle 메이커 '박선민 작가'
에디터. 장은영  사진. 윤현기  자료. 박선민

 

버려진 것들에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는 업사이클링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이 최초의 쓸모를 다한 제품을 수거해 재사용하는 것까지를 의미한다면, 디자이너의 개입을 통해 버려진 제품의 새로운 쓸모를 찾아주는 일이 바로 ‘업사이클링upcycling’ 디자인이다.

친환경을 넘은 필(必)환경의 시대를 살아가는 다섯 명의 디자이너에게 업사이클링 디자인에 대해 물었다. 다루는 재료와 쓸모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의 작업을 관통하는 작업관이 있다면 ‘쓰레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다섯 명의 디자이너가 전해준 쓰레기의 미래. ‘버려진 것들의 미래’를 함께 그려보자.

 

① 폐마스크 재활용한 의자로 환경 메시지 전하는  ‘김하늘 디자이너’
② 버려진 유리병 재활용하는 리:보틀Re:bottle 메이커  ‘박선민 작가’
③ 제작부터 폐기까지 환경을 고려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위켄드랩’
④ 쓰레기를 소재로 일상의 물건을 만드는 ‘저스트 프로젝트’
⑤ 버려진 소재와 자연물의 쓰임을 확장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뉴탭-22’

 


 

유리 작가 박선민은 한번 쓰인 유리병을 재활용하는 ‘리:보틀 Re:bottle’ 프로젝트를 7년째 진행 중이다. 버려진 병들은 그의 손을 거쳐 잔이나 화병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도자기, 금속과 결합해 멋진 오브제가 된다.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빈 병으로 가득한 작업실에서 박선민 작가를 만나 공예가의 입장에서 바라본 업사이클링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선민 작가를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났다. ©BRIQUE Magazine

 

폐유리병을 활용하는 리보틀메이커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2014년도 제주도에서 진행된 기획전시가 계기였어요. 바다에 버려진 유리병을 재활용하는 작업을 선보인 이후 지금까지 유리병을 재가공한 작업을 하고 있죠. 유리병을 절단하고 조립하는 과정이 마치 ‘레고’처럼 재미가 있더라고요. 작업을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폐유리병을 사용한 업사이클링 작업이 전체 작업 중 80% 정도 돼요.

 

Re Antique series 2019 ©KCDF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
Re Antique blown series 화병 ©516 Studio

 

작업에는 어떤 병을 주로 사용하시나요?

수입되는 유리병을 주로 사용해요. 우리나라는 빈 병 수거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재사용이 활발히 이루어지지만 수입된 병들은 그러지 못하고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거든요. 그래서 이 병들을 잘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펍이나 와인바에서 꾸준히 병을 받고 있어요.

 

시스템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계시네요. 작업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병을 받으면 우선 물에 불려 라벨지를 제거하고 색상별로 분류해요. 그리고 기계를 사용해 원하는 높이에 맞춰 절단하고 병의 거친 면을 부드럽게 갈아내죠. 이 갈아내는 과정을 ‘연마’라고 하는데, 연마만 해도 열 단계 가까이 돼요. 유광 제품은 연마 작업이 끝나면 광택제로 광을 다시 내고, 무광 제품은 기계로 모래를 쏴서 매트한 질감을 만들죠. 여러 면을 붙여서 조합하는 제품의 경우에는 마지막에 절단면을 접착제로 이어붙이는데, 경화에만 최대 서른여섯 시간 정도 걸려요.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오브제들도 있고요. 굳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컵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사흘쯤 걸리니 과정이 굉장히 긴 편이에요.

 

박선민 작가의 작업실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제작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유리는 종류별로 팽창계수가 달라서 서로 다른 유리를 녹여서 붙이면 나중에 식었을 때 깨져버려요. 브랜드마다 다른 유리를 제가 일일이 다 테스트할 수 없다 보니, 같은 유리병끼리만 열로 가공해서 쓰고 서로 다른 조각을 이어붙일 때는 접착제를 써요. 작업실 보면 아시겠지만, 병이 정말 많이 쌓여 있어요. 그런데도 계속해서 병이 새롭게 들어오거든요. 최근에 병을 받은 와인바는 점포 세 곳에서 한 달에 약 2,000개나 버려진대요. 그 양을 제가 다 소화할 수는 없는데, 버려지는 병들을 생각하면 막막하죠.

 

©BRIQUE Magazine

 

버려지는 양이 엄청나네요. 작업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도 더 커지셨겠어요.

우선 버려지는 유리병들을 유심히 보게 됐어요. 작품 촬영하러 스튜디오에 갔다가도 작은 음료수병이 보이면 모아서 가져오곤 하죠. 제가 모르는 곳에서 버려지는 것들까지 책임질 수는 없지만, 제 눈에 보이는 것들은 허투루 못 버리게 됐어요. 주위 분들도 작업할 때 쓰라며 병을 모아두었다 주시고요. 유리병을 넘어선 환경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어요. 분리수거도 좀 더 철저히 하고 생수 살 때도 라벨지 없는 걸 골라요. 뉴스도 찾아보고. 환경 단체 같은 곳에 적은 돈이라도 후원하려 노력하고요. 무엇보다 저랑 비슷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는 한 번 더 눈길이 가요. 이제 업사이클링이 제 일상에 스며들어 당연한 것이 된 것 같아요. 언젠가 그게 필수인 시대가 올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말씀대로 앞으로는 리사이클링, 업사이클링이 일상이 될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지속 가능성이 특히 이슈인데 주변의 변화를 체감하시나요? 

처음 작업을 시작했던 2014년만 해도 ‘재미있네’ 정도의 반응이 다였는데 최근에는 확실히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요. 2019년부터 2년 연속으로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상품 개발 사업에 선정됐고, 이를 통해 개발된 상품이 2020년 대한민국 우수공예품으로 뽑혔어요. 또 작년에는 미국 코닝 유리박물관Corning Museum of Glass에서 발행하는 국제 저널 New Glass Review 41의 ‘올해의 유리 작가 100인’ 공모에 선정되기도 했고요. 국내외로 관심이 커지고 업사이클링 작업의 우수성도 인정해주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좋아요. 

 

Re Antique series 머그 ©KCDF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
©Seon Min Park

 

이번에 새로 병을 받게 된 와인바에서도 버려지는 병을 활용해서 굿즈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셨대요. 이런 걸 보면 세상이 점점 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죠. 결국 나중에는 작품 자체의 형태나 아름다움만으로 주목받을 정도로 리사이클링, 업사이클링 소재가 일반화될 것 같아요.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하지만 개개인이 노력한다고 환경 이슈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기업이나 국가 차원에서 투자가 필요할 것 같아요. 특히 재활용 가능한 자재를 소재별로 분류 및 관리하는 시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를 작업자들끼리 많이 해요.

 

Re Antique blown series ©516 Studio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업사이클링 디자인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꼭 환경을 위해 이 작업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다만 유리를 전공한 입장에서 병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만큼의 수고와 비용이 들어가는지 아니까 많은 병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이 병들로 내가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 생각했죠. 단지 ‘환경을 위해서 이런 작업을 한다’는 생색이 아니라 시대성을 반영하는 메시지요. 

역할을 다한 유리병에 새로운 역할을 준다고 생각하며 작업해요.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여러 관계를 새롭게 갖게 되잖아요. 한 시절이 끝난다고 그때의 관계나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고, 나이를 먹어가며 또 다른 관계를 맺고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유리병에 감정이입도 되고 그래요. (웃음)

가장 중요한 건 사용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공예가가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담고 메시지를 전달해도 사용자가 제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잖아요. 제가 이 가치를 우리 곁에 오래 머무를 수 있게 해달라는 메시지를 작업에 담아 보내고, 사용자들이 그 메시지가 담긴 공예품을 아껴서 꾸준히 사용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Re: Bottle’ 프로젝트가 완성되겠죠.

 

©BRIQUE Magazine

 

*Re: Antique series는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공예디자인 상품개발을 통해 선정 및 개발 지원된 상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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