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진정한 나를 마주하다

[Stay here] ⑤ 결핍을 통한 사색의 시간 ‘아틴마루’
©atinmaru
에디터. 윤정훈  사진 & 자료. 비케이아키텍처

 

머무는 공간이자 장소를 뜻하는 오늘날의 ‘스테이stay’는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안한다. ‘여행’과 ‘집’,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재고하기를 요청받는 과정에서 스테이의 맥락은 폭넓게 재편되는 중이다. 브리크는 이번 특집에서 공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야기가 명확한 여러 스테이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각 공간에서 건축가, 디자이너, 운영자가 제안하는 바는 결국 변화하는 동시대의 생활 양식과 닿아 있다. 자연 속에서의 휴식, 자발적 고립, 일과 생활, 스포츠와 문화 활동, 유려한 건축 공간에서의 비일상적 경험까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스테이의 궤적을 살피는 일은 이 시대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과 다름 아닐 것이다.

 

Stay here
① 오늘의 여인숙 – 삼화 여인숙 
② 완벽한 고립의 시간 – 의림여관 
③ 세 가지 사색의 공간 – 서리어
④ 고요함 속 감각을 여는 호텔 – 이제 남해
⑤ 숲속 진정한 나를 마주하다 – 아틴마루

⑥ 호텔과 글램핑 사이 – 글램트리리조트
⑦ 일과 쉼이 공존하는 곳 – 오-피스제주
⑧ 꼭 하룻밤만큼의 예술 – 다이브인 인사
⑨ 여기가 내 집이었으면 – 어 베터 플레이스


숲 한가운데 가장 작은 집
어떤 추억은 그저 생각에 머물지 않고 기어코 무언가를 꺼내 보이게끔 만든다. ‘아틴마루atinmaru’는 긴 여행의 끝에 만들어진 스테이다. 설계자이자 운영자인 비케이아키텍처의 최봉국 대표는 건축가로서 10여 년의 경력을 이어가던 중 돌연 세계여행을 떠났다. 아내와 딸과 함께 오프로드 SUV를 타고 러시아에서 출발해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거쳐 아이슬란드와 페로제도에 이르기까지, 여행은 1년여간 이어졌다. 긴 여정을 마치고 나니 지난 시간을 공유할 공간에 대한 바람이 생겼다.

대부분의 시간을 차 안 또는 캠핑장에서 보낸 경험은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이 그리 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도리어 최소화된 공간에서 바깥의 자연을 온전히 감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에 북유럽 캠핑장의 캐빈에서 모티브를 얻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이라는 콘셉트를 도출했다. 자연을 충분히 누리는 가운데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선사하는 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atinmaru
©atinmaru

 

나무를 닮은, 숲을 담는 건축
양평군 서종면 명달리. 시내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닿을 수 있는 아틴마루는 삼면이 잣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단절된 땅이다. 차 한 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을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면 가파른 언덕이 나오는데, 1만여 제곱미터의 땅에 네 개의 캐빈과 라운지 건물만이 들어서 있다. 아틴마루가 들어서기 전 이곳은 난개발로 심하게 훼손된 땅에 불과했다. 오랜 시간 숲을 지켜온 나무들은 잘려 나간 지 오래였고, 본래의 지형은 계단식으로 깎였다. 인근 건설 공사 중 발생한 산업 폐기물도 가득했다. 이에 본격적으로 건물을 세우기 전 본래의 능선을 회복하는 공사가 선행됐다.

 

©atinmaru

 

나무가 사라진 곳에 세운 라운지와 캐빈은 숲을 새롭게 담아낸다. 라운지는 리셉션과 조식 제공 등이 이루어지는 아틴마루의 공용 공간으로, 300×300mm의 굵직한 기둥이 도드라지는 외관은 본래 그 땅에 있던 잣나무를 상징한다. 높은 천장고에 통창을 더한 2, 3층에는 의자 몇 개만이 놓였다. 시선은 자연스레 밖으로 향할 수밖에 없고, 덕분에 실내에서도 숲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다. 

 

©atinmaru

 

특수 제작한 아연 골강판을 덧댄 캐빈은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반사해 그 모습을 조금씩 달리한다. 나뭇잎이 무성한 여름이면 짙은 녹색을 머금고, 한겨울이면 숲을 덮은 눈으로 하얗게 변한다. 캐빈에 난 두 개의 창 또한 숲에서의 경험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가로로 넓은 수평창은 객실 내부로 드는 광량을 적절히 조절하고 숲의 전경을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측면에 길고 좁게 난 창은 목재에 옹이가 생기면 위아래로 길게 갈라지는 현상에서 착안했다. 좁고 기다란 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는 가운데 마치 나무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의도했다.

 

©atin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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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통한 사색의 시간
여행에서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만큼 아틴마루는 운영자가 생각하는 좋은 여행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권하는 스테이다. 투숙객에게 되도록이면 ‘캐빈 밖에 나가보기’를 권유하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해서다. 땀이 조금 날 때까지 햇빛 아래 가만히 앉아 있는 것, 깊은 숲에서만 들을 수 있는 생경한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그 가운데 바쁜 일상 속 외면했던 감정과 마주하는 것, 잊고 살았던 추억이 선명해지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 따라서 객실은 바깥에서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돌아와 지친 몸을 잠시 쉬게 할 정도면 충분했다.

캐빈은 의도적인 배제와 결핍의 공간이다. 26㎡의 공간에는 싱글 침대 2개와 책상, 이제는 사용법도 가물가물한 CD플레이어, 샤워실과 건식 화장실뿐이다. 소위 유행하는 스파 욕조나 블루투스 스피커는 물론 TV나 취사 시설, 심지어 무선 인터넷도 없다. 당연히 객실 내에서는 내 분신과도 같았던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고, 취사가 불가능하니 포장해 온 음식만 먹을 수 있다. 

 

©atinmaru

 

여느 스테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기대하고 왔다면 당황스러울 터. 하지만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에 집중한 결과다. 어설프게 여러 가지를 갖추기보다는 공간을 만든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제안을 넘어 강제된 결핍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의식적으로 차단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핍이 불편이 되지 않게끔 하는 최소한의 장치는 캐빈 밖에 마련해 두었다. 새벽까지 불을 켜두는 라운지에서는 인터넷과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수 있고, 저녁엔 영화가 상영된다. 때때로 투숙객들 사이에서 즉흥적인 술자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각 캐빈에 딸린 야영대에서는 개인 화기 동반 시 직원 안내에 따라 취사가 가능하다.

 

©atinmaru

 

비움이 주는 무수한 발견
투숙객마다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은 각양각색인데, 적게는 두 번 많으면 다섯 번까지 다시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재방문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재방문자의 경우 점차 가져오는 짐이 줄어든다는 것. 머무는 동안 다 먹지도 못할 음식과 보지도 못할 영화들을 전자기기에 담아오기보다는 숄더백 하나에 책 한 권과 와인잔, 요가 매트 또는 악기 하나를 들고오는 식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꺼이 공간이 건네는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atinmaru

 

익숙함이 부재한 곳에는 새로운 발견 또한 있는 법, 관점을 바꾸면 얻어갈 경험들로 가득하다. 이른 아침 숲을 가득 채우는 물안개, 고라니와의 우연한 눈 마주침, 한겨울 미처 사람의 발길이 닿지 못한 눈이 그것일 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나서부터 여간 쉽지 않았던 10분 이상 책 읽기 또는 풍경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다 선잠이 드는 일이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가마봉 꼭대기 작은 집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숲의 민낯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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