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화 동판에 표현한 과거와 현재, 미래

[In your Area] ⑦ 울산 동네가게녹슨
©Yoon, Joonhwan
에디터. 박지일  사진. 윤준환  자료. (주)온건축사사무소

 

오늘날 서울 외 지역을 향한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수도권의 하위 개념(지방)으로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수도권 집중의 대안이자 매력적인 지역 문화의 기반(로컬)으로 여기는 시각이다. 지역에 대한 역설적 시선이 공존하는 이때, ‹브리크› 11호 특집 ‘인 유어 에리어In Your Area’는 지역을 누군가의 일과 삶이 전개되는 터전이자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공간을 창출하는 근거지로 바라보고자 한다.
서울의 작은 동네 또한 하나의 지역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좀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역의 전통과 문화, 자연, 심지어 결핍된 무언가를 토대로 조금은 다른 공간, 조금은 다른 문화를 일구는 크리에이터들을 조명했다. 미래 농업인들을 위한 도시를 꿈꾸는 기업인부터 문화 불모지 개척에 앞장선 건축가, 일상을 영위하는 장소로서의 도시를 문화적 유토피아로 만들고자 하는 기획자까지. 각 지역에 자리하게 된 저마다의 이유와 순탄치만은 않았던 과정, 그로 인한 변화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 

 

In your Area
① 헤테로토피아적 남해 – 헤테로토피아 최승용
② 이토록 멋진 농촌 – 진천 뤁스퀘어
③ 문화예술 불모지를 개척하다 – SOAP 권순엽, 장동선
④ 우리들의 오아시스 – 대구 미래농원
⑤ 공주, 작당을 위한 베이스캠프 – 마을호텔 박우린
⑥ 가장 제주다운 – 재주상회 고선영
⑦ 탄화 동판에 표현한 과거와 현재, 미래 – 울산 동네가게녹슨
⑧ 지역 특색을 반영한 로컬 스폿


 

일본의 안도 다다오, 스위스의 페터 춤토르, 중국의 왕슈. 이들은 성장한 지역의 특성을 자신의 건축에 반영해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2016년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를 시작으로 올해 프란시스 케레까지 최근의 프리츠커 수상자들 또한 자신이 성장한 지역에 건축적 토양을 뿌리내리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지역 건축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낯설다. 급격한 경제 발전과 아파트로 대변되는 현대 주거 양상에 비추어 볼 때 한국 현대 건축에서의 지역성은 건축 담론의 화두가 될 만큼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까닭이다.

울산에서 활동하는 정웅식 건축가는 울산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울산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2012년 개소한 (주)온건축사사무소(이하 온건축)는 지역 건축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다양한 모델을 제시하고 지역이라는 물리적, 환경적, 그리고 현실적 요인을 뛰어넘어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이 소통하는 관계를 구축해 여러 가능성을 제안한다. 화려하진 않아도 전원 풍경을 배경 삼아 묵묵히 자기 세계를 구축하며 도시의 풍경을 바꿔온 그는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유학을 다녀오지 않고 지역에 기반을 둔 건축가로는 최초의 수상으로, ‘울산에서 활동하는 괴력의 건축가’는 당시 그가 받은 심사평이다. 지역의 건축이나 건축가가 수도권에 비해 주목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온전히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그의 수상은 건축계에 여러 생각 거리를 남긴다.

 

©Yoon, Joonhwan

 

‘동네가게녹슨’(이하 녹슨)은 온건축이 울산 구도심에 설계한 아트공방 카페다. 건물이 위치한 중구 옥교동은 울산의 대표적인 중심지로, 1970년대 이후 경제개발 시기에 상업적으로 가장 번창했지만 지금은 구도심으로 전락했다. 건축주는 건축가의 제안으로 이곳에 시간을 담은 건축물을 짓고자 했다. 단순히 이 지역의 과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 미래까지 담아 방문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행복을 가져다 주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건축가는 이 작은 건축물 하나가 노후화된 지역의 모습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기능이나 구조적 생명이 다한 건축물을 철거하고 동네 사람들이 새롭게 공간을 만들어 갈 때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이 될 거라 판단한 것이다.

 

©Yoon, Joonhwan

 

협소한 땅 위에 지은 건축물인 만큼 공간은 수직적으로 구성됐다. 1층은 바리스타의 영역으로 아트숍과 베이커리를 겸하고 2층과 3층은 매장으로 활용된다. 테라스와 루프탑에서는 그림처럼 펼쳐진 구도심의 풍경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단순히 일렬로 층을 올리기보다 주요 공간을 지그재그로 쌓는 구성을 취했다. 각 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내부 공간과 외피 벽 사이에 배치해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도록 설계했는데, 계단을 제외하고 협소한 내부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내외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1층 건물과 외벽 사이 바닥에는 수공간을 만들어 옥골샘이 가지는 장소성을 반영하고자 했다. 이 수공간은 장소성의 반영을 넘어 방문객으로 하여금 감각적인 경험을 유도하는 건축적 장치로도 기능한다. 수공간을 흐르는 물소리는 모든 층의 사이 공간과 내부 공간에서 증폭되어 들리고, 콘크리트 벽 틈으로 들어오는 빛을 반사해 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수공간이 우물이라는 과거의 시간과 지역성을 반영한다면, 탄화 동판으로 둘러싼 건물의 외벽은 다가올 변화와 맞닿아 있다. 1549장의 동판으로 뒤덮인 외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 장 한 장이 각기 다르게 산화해 시간에 따른 다채로운 외형 변화를 보여준다. 햇빛에 반사되는 빛의 각도 또한 제각각이기에 건축물의 느낌도 시간대나 날씨에 따라 매 순간 다르다. 건물의 색상도 보는 각도에 따라 노란색, 금색, 청록색, 하늘색 등 다양하게 변한다. 추후 시간이 지나 동판이 더욱 산화되면 건물은 또 다른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녹슨은 이렇듯 과거와 미래를 담아 내면서 작은 건물 하나로 동네 풍경이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건축가의 바람을 실현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재료의 성질, 자동차와 조선업으로 대표되는 공업도시 울산. 울산에서 성장한 건축가가 마감재로 동판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정웅식 건축가를 만나 지역성과 녹슨에 담긴 의미를 들었다. 

 

 

울산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는 사무소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울산에 계속 머무르는 이유가 있나요?

학창 시절 떠난 유럽 여행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 계기가 되어 주었어요. 유럽의 도시가 가진 다양성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요. 놀라운 점은 도시의 특징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각 건축물에 지역 풍토와 도시 풍경을 반영했기 때문일 테죠. 그런 도시에서 건축가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 울산에 정착한 하나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 다양성을 울산에도 적용하고자 했나요?

어릴 때는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서울로 올라가 자리를 잡는 게 정해진 루트처럼 여겨졌죠. 태어나고 공부한 곳에서 시작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여기에 더하면 지역을 기반으로 건축 작업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지 않았으니 내가 나서서 해보자는 치기 어린 생각도 있었죠.

 

©Yoon, Joonhwan

 

그 치기 어린 생각이 원동력이 됐군요.

그런 부분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웃음), 학교를 졸업할 시점에 학교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서울로 올라가지 않으면 건축을 못할 것이라는 압박을 줄곧 했어요. 그때마다 왜 이런 통념이 고착화된 것인지, 정해진 방식을 따라서만 건축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 스스로 계속 물었던 것 같아요. 사실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두려움도 많았기에 걱정도 됐지만 같은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언제부턴가 오기가 생기더군요. 현재로선 끝까지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아직은 그 과정 속에 있어 종착지가 어디인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현실에 충실할 뿐입니다.

 

젊은건축가상 수상 당시 ‘괴력의 건축가’라는 평을 받았어요. 마음에 드는 표현인가요?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표현이었어요. 울산에서 작업하는 것에 대한 피해의식은 없었지만 불리한 부분은 있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수도권에 비해 발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방향성을 설정해 방법을 모색하고, 그것을 실험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당연한 과정들이 크게 조명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지역에서 묵묵히 작업하는 것에 대한 독려 차원이었다고 과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Yoon, Joonhwan

 

건축에서의 지역성은 언제나 화두죠.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나요?

서울 혹은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아요. 저도 반문하고 싶어요. 지역성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요? 다만 분명한 건 지역성이란 서울과 지방, 수도권, 나아가 먼 곳의 도시까지 모두 다를 거라는 거예요. 녹슨을 통해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가능성이에요. 민간 건축이라도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지점을 찾고자 했죠. 건물을 완성하고 나서는 그런 의도가 잘 발현되는 것 같아 건축가로서 기쁜 마음이고요.

 

녹슨에서 ‘재생’은 어떤 의미인가요?

도시의 쇠퇴는 큰 틀에서 봤을 때 물리적 환경의 노후화만을 뜻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고, 공동화 현상이 심각해지는 등 사회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죠. 도시 환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문제예요. 건축가로서 한 도시를 변화시키겠다는 원대한 포부보다는 살고 있는 동네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통해 더 큰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 작업을 계속해나갈 계획이고요.

 

©Yoon, Joonhwan

 

외장재로 사용한 탄화 동판은 이전까지의 작업에서 발견할 수 없던 부분인데요. 동네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자 한 의도인가요?

꼭 새로운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건축이 가져올 풍경은 프로젝트마다 다르기 마련이고, 그 결과는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게 아니죠. 최소 10년, 길게는 50년에서 100년 동안 건물을 사용한다면 그때에 이르러 발견되는 새로운 모습이 있을 거예요. 이처럼 어느 하나로 고정되지 않은 풍경을 만들기 위한 가능성의 탐구로 보여지면 좋겠습니다.

 

최근 이천과 하남에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도 했죠. 그간 울산에서 보여준 작업이 다른 지역으로 확장된 개념이라고 봐도 될까요?

확장이라기엔 너무 거창하고요. 사실 내부적으로도 그 작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물리적인 거리도 무시할 수 없었고요. 울산이 아닌 곳에 저희의 색을 입힐 수 있을지 판단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죠. 지역성이라는 거창한 패러다임보다는 소프트웨어적으로 연속선상에 있어 진행하기로 했어요. 모든 지역엔 다 그 지역만의 이야기가 있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은 모두 동일해요. 울산의 건축가가 이례적으로 이천에 작업을 했다는 단편적인 해석보다는 온건축의 색깔이 이천에 입혀지길 바랐다고 봐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Yoon, Joonhwan

 

지역에서의 건축은 기회일까요, 한계일까요?

그 자체로 기회이자 한계일 수 있죠.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앞으로 마주해야 할 문제들이 산재해 있을 거예요. 새롭게 부딪힐 일 투성이자 대부분의 과정이 넘어야 할 산이죠. 서울이나 수도권이라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와도 씨름해야 하고요. 가장 현실적인 한계는 인프라와 콘텐츠가 아닐까 싶어요. 수도권에 비해 직원을 채용하거나 클라이언트와 만날 기회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앞으로도 쭉 울산에서 작업할 예정인가요?

반드시 울산에서 건축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현재로서는 울산을 떠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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