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를 마주하는 시간

[What’s your Flavor] ⑦ 오설록 크리에이티브팀
©Minhwa Maeng
에디터. 윤정훈  사진. LESSNESS STUDIO, 맹민화, 윤현기  자료. 오설록

 

‹브리크brique› 12호 특집은 맛의 세계 이면에 자리한 ‘맛의 공간’을 다룬다. 먹고 마시는 일은 이제 생존보다 경험 차원에서 더 빈번히 다뤄지고 있다. 소위 SNS 핫플레이스라고 불리며 인기몰이를 하는 곳이 대개 카페나 음식점이듯, 오늘날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F&B가 견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일상을 환기하는 동시에 오감을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식음 경험은 취향과 소비의 정점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식당과 카페가 쏟아지고 있는 지금, 정교한 기획을 바탕으로 소비자의 이목을 끌고 자생력 높은 공간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 맛을 직접 내진 않지만 맛을 한껏 끌어올리는 장소와 분위기, 나아가 서비스까지 설계하는 공간 기획자들이다. 요식업이라는 바탕에 운영자 또는 브랜드의 개성, 독특한 세계관, 콘셉트에 맞게 정제된 각종 디자인 요소를 조화롭게 버무려 고유한 경험과 가치를 선사하는 이들의 작업은 새로운 브랜드가 탄생하는 과정에 가깝다. 공간이 음식의 맛에 주는 영향은 미미하나 총체적 경험의 만족도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그 전략을 유심히 지켜볼 만하다. 저마다 다른 색깔로 누군가의 취향을 저격하며 F&B 신scene에서 주목받고 있는 크리에이터들과 공간을 소개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맛있다고 했던가. 이제 공간의 맛을 음미해볼 차례다.

 

What’s your Flavor
① 브랜드라는 세계 — 서비스센터
② 공간의 표정, 경험의 온기 — 워프앤우프
③ 맛을 더하는 풍경 — 스튜디오 스토프
④ 장소성에 기반한 내러티브 — 논스페이스
⑤ 공간이 브랜드가 될 때 — 디노바
⑥ 마중물이 되는 건축 — PDM 파트너스
⑦ 차茶를 마주하는 시간 — 오설록 크리에이티브팀
#멋과 맛이 있는 F&B 스폿

 


차茶의 세계는 넓고 깊다. 원두라는 단일 재료를 사용하는 커피와 달리 차를 이루는 원재료는 잎, 꽃, 과일, 곡물 등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닌 원물을 어떻게 얼마큼 배합하느냐에 따라, 차게 혹은 따뜻하게 마시는지에 따라 맛과 향은 수많은 갈래를 뻗어간다. 차를 담는 시공간 또한 이렇듯 다양할 수 있다.

오설록은 차의 고유하고도 다양한 속성에 기대어 감도 높은 공간과 콘텐츠를 전개해온 브랜드다. 이들은 2001년 국내 최초의 차 박물관을 표방한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을 시작으로 도심 곳곳 다른 형태로 자리한 티하우스를 선보여왔다. 이는 여느 프랜차이즈 F&B 브랜드가 보인 행보와는 사뭇 다르다. 단순 제품 판매 혹은 매출 증대에 집중하기보다 차를 즐기는 경험과 그로부터 얻어지는 기억에 무게추를 두고 여러 공간을 전개해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 ©Minhwa Maeng

 

소비의 기준이 가치 있는 경험으로 옮겨가고 있는 지금, 단지 제품군을 다양화하거나 품질을 높이는 것만이 브랜드의 경쟁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한국의 차 문화를 정립한다는 정통성 위에 세워진 브랜드 오설록은 차의 다양성을 탐구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해 나가는 중이다. ‘차’하면 떠오르는 고착화된 이미지를 차츰 허물고 차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임으로써 그에 걸맞은 공간을 촘촘히 꾸려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단지 차를 내리고 마시는 공간이 아닌 ‘차를 마주하는 시간’을 설계하는 오설록 크리에이티브팀을 만났다.

 

“일상을 좀 더 가치 있고 특별하게 보낼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점에서 식음료 경험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나만의 럭셔리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결국 좋은 공간에 대한 수요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셈이죠.” — 유정주 오설록 크리에이티브팀 팀장

 

(왼쪽부터) 최현식, 이미지, 이나경, 박지원, 여유정, 유정주 팀장 ©BRIQUE Magazine

 

팀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유정주 크리에이티브팀은 공간 디자인, 제품 디자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세 파트로 나뉩니다. 서로 다른 파트가 하나의 팀을 이뤄 공간·제품·마케팅의 유기적 연계를 꾀하기 위함이죠.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광고의 중심이 TV와 종이 잡지에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으로 옮겨온 현재, 공간을 새로 오픈하거나 신제품을 출시하면 이에 맞춰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 또한 중요하니까요. 공간 디자인 파트는 5명의 팀원으로 구성됩니다. 저는 팀을 총괄하며, 최현식 님은 인테리어에 대한 전문성을 토대로 공간 설계 및 시공을 매니징합니다. 나머지 네 분(여유정, 박지원, 이미지, 이나경)은 VMD로서 그래픽 디자인부터 소품 셀렉까지 매장 내부를 세부적으로 연출하죠. 브랜드에 소속된 팀이기에 공간을 어떤 콘텐츠로 구성하고 운영할지 브랜딩 과정 전반을 고민합니다.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LESSNESS STUDIO

 

1979년을 시작으로 오랜 역사를 이어온 만큼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조금씩 변해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오설록의 주요 타깃은 누구이며, 어떤 메시지와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나요?

유정주 대부분의 브랜드가 그러하듯 소위 MZ세대라고 하는 20~30대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삼고 있습니다. 실제 오설록에 유입되는 고객 중 20~30대 여성의 비율이 높은데, 여기엔 차 소비 연령층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현상이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더해 세계적으로 차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어요. 일상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각광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팬데믹의 여파 또한 무시할 수 없죠.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커피 외 다른 마실 거리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진 겁니다.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카페 대신 매력적인 티룸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들도 늘었어요.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오설록은 일상 속에서 차가 왜 필요한지 더욱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나아가 차 문화도 트렌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F&B 브랜드로서 오설록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무엇이며, 다른 브랜드와 어떤 면에서 차별화된다고 생각하나요?

유정주 현재로선 ‘차’라는 소재 자체가 가장 큰 차별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체 농장에서 경작한 찻잎을 사용하는 등 원물 생산부터 고객 경험까지 폭넓게 관여하는 것 또한 차별점이죠. 이러한 강점을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화해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효과적이면서 자연스럽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LESSNESS STUDIO

 

국내 음료 시장에서 차보다 커피가 우세한 건 사실이죠. 커피와 비교할 때 차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경험은 어떤 게 있다고 보나요?

유정주 차는 고도화된 경쟁 속에 있는 커피에 비해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분야입니다. 다양한 리추얼을 만들어낼 여지가 많죠. 한국의 차 문화는 일본의 다도처럼 엄격한 의식을 따르진 않아요. 차와 관련된 옛 문헌을 봐도 그 과정은 굉장히 단출합니다. 고려 시대 승려들이 차를 재배하고 마시는 문화를 가르쳤지만 조선 시대 들어 숭유억불 정책으로 그마저도 사라졌죠. 일본이나 중국만큼 깊은 뿌리를 두고 있지 않기에 ‘차는 이렇게 마셔야 된다’라는 식으로 접근하진 않으려고 합니다. 요즘 시대와도 맞지 않는 방식이죠. 다만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서 보다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데 방점을 두고 차가 가진 고유한 매력을 부각하려고 합니다.

여유정 VMD 디자이너로서 드는 생각은 다양한 원물이 차의 큰 매력 요소라는 거예요. 커피도 원산지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세분되지만 찻잎이 우러나며 만드는 컬러가 시각적으로 무척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온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점도 그렇죠. 다양한 블렌딩 요소로 차별화된 비주얼을 제공한다는 점에 착안, 북촌점 기획 당시 차의 다채로운 수색水色을 표현하는 카드를 제작했어요. 제주 녹차에 동백꽃을 블렌딩한 제품의 경우 초록색에 분홍색을 얹어 물에 두 가지 색의 물감이 퍼지는 이미지를 표현했습니다.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2층 ©LESSNESS STUDIO

 

브랜드의 이미지와 성격을 극대화한 매장을 꾸준히 선보여왔습니다. 공간에 대한 브랜드의 관심이 어디서 비롯됐다고 보나요?

유정주 수준 높은 공간을 통한 고객과의 접점 확대는 모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 오랫동안 추구한 지향점이었습니다. 다만 2001년 제주에 개관한 오설록 티뮤지엄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한국의 전통 차 문화를 소개하고 널리 보급하고자 설립한 국내 최초의 차 전시관으로, 직영 차밭 내 위치시켜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강조했죠. 이처럼 브랜드의 정수를 드러내는 데 있어 공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기에 다양한 공간을 선보여온 것 같습니다.

최현식 오설록의 매장은 크게 티뮤지엄, 티하우스, 티숍 세 가지로 나뉩니다. 티뮤지엄은 전시관과 차 문화 체험 공간(티스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며, 티숍은 제품 판매가 주가 되는 백화점 내 매장을 일컫죠. 북촌점이나 한남점 같이 도심에 입지한 단독 매장이 티하우스에 해당하는데, 차가 익숙치 않은 고객까지 아울러 새롭고 세련된 차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구성이 확연히 다릅니다.

유정주 앞으로는 티숍 매장에도 변화를 줄 예정입니다. 더 현대 서울의 사례가 보여주듯 세일즈 위주의 공간도 경험으로 중심을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죠.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1층 차향의 방 ©LESSNESS STUDIO

 

공간을 기획할 때 구심점으로 잡는 기준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유정주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어떻게 브랜드를 표현할 것인가. 브랜드란 하나의 고정된 개체가 아닌 사람처럼 동시대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트렌드에 맞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로는 공간에 새로운 콘텐츠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브랜드가 꾸준히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알려 고객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죠. 셋째는 퀄리티입니다. 오설록이 건축가를 비롯한 크리에이터 다수와 협업하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콘셉트나 스토리가 좋아도 이를 뒷받침하는 공간의 퀄리티가 낮다면 해당 브랜드의 매력을 충분히 소구할 수 없어요. 더구나 요즘같이 공간에 대한 감도가 높을수록 집요하게 퀄리티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현식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근래 들어 SNS상에 트렌디한 공간이 많이 소개되는데 막상 가보면 실망하는 경우도 많아요. 특정 구역만 그럴듯하게 꾸민 일회성 공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또한 외관이나 인테리어에 치중해 유지 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기껏 의도한 디자인이 망가질 수 있어요. 이에 따라 브랜드 내 다른 팀과도 소통해 미관과 기능을 모두 갖춘 공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2층 다식공방 ©LESSNESS STUDIO

 

공간 기획 시 사업성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죠.

최현식 과거 F&B 브랜드의 공간은 디자인을 매뉴얼화해 여러 개의 매장을 냄으로써 수익을 높였죠. 하지만 이 경우 목이 좋은 곳에 입지해야 하고 그에 따라 임대료와 최소 매출이 높아져 리스크가 커집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를 꾀한 것이 바로 북촌점입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닌 고객들이 오히려 찾아오게 하는 매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죠.

 

하나의 공간이 탄생하기까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며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유정주 공간의 큰 틀을 기획한 다음 그에 맞는 건축가와 디자이너를 섭외합니다. 프로젝트마다 상이하나 북촌점을 예로 들어보죠. 모기업 차원에서 북촌로에 위치한 한옥과 양옥을 매입해 설화수와 오설록의 공간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두 브랜드의 정체성을 모두 잘 살리는 동시에 기존의 공간을 잘 리노베이션할 전문가로는 원오원아키텍츠의 최욱 건축가가 적임자였죠. 저희 역할은 이 3층짜리 양옥에 어떤 콘텐츠를 넣을지 고민하는 데서 출발했어요. 이 과정에서 비마이게스트 김아린 대표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소품이나 그래픽 디자인 제작물 또한 내부 VMD 디자이너와 이혜원 아라비 스튜디오 대표가 협업하여 진행했습니다.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요소를 다루다 보니 외부 전문가들과 다방면으로 협업할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저희는 분야별 디자이너의 주된 능력, 유행하는 형태와 소재 등 여러 리소스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3층 가회다실 ©LESSNESS STUDIO

 

한옥이 아닌 양옥에 위치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준다면요.

유정주 양옥은 1965년에 지어져 가족이 살다가 최근 십수년간 비워져 있던 건물이었습니다. 공사 전 현장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집안은 물론 마당까지 오래된 기물이 남아 있었죠. 무척 어수선했지만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설록 매장을 양옥에 둘지 한옥에 둘지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많았어요. 일반적으로 차라는 소재가 한옥과 더 잘 어울릴뿐더러 양옥은 고지대에 놓인 3층짜리 건물이라 식음 공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반대로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 ‘찾아올 수밖에 없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아린 대표가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주었고요. 물론 한옥도 식음 공간으로 적합하진 않았습니다. 활용 가능한 면적이 적어 서비스 동선을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3층 바설록©LESSNESS STUDIO

 

북촌점은 층별, 공간별로 구성이 확연히 다릅니다. 규모는 커도 내부 구성은 비슷비슷한 대형 카페와 비교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세분화 전략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정주 모든 층이 두루 사용되기 위해서는 층마다 다른 콘텐츠를 도입해 계속된 장면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가정집이었다는 데서도 공간 구성의 영감을 얻었죠. 한 층이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에 착안, 곳곳에 독립된 기능을 부여해 저마다 찾아가야 할 이유를 부여했습니다. 필요한 공간은 크게 상품 판매 공간, 음료 제조 공간, 다식 제조 공간, 고객 공간 다섯 가지였는데요. 이를 토대로 1층은 티를 소분해 판매하는 ‘차향의 방’, 2층은 전용 다구에 차와 어울리는 티 푸드를 만날 수 있는 ‘다식공방’과 ‘찻마루’, 3층은 티 칵테일을 판매하는 ‘바설록bar sulloc’과 티 클래스가 진행되는 ‘가회다실’로 구성했습니다.

여유정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VMD 또한 ‘오설록의 집’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접근했습니다. 이를 위해 오설록 브랜드 자체를 하나의 페르소나로 설정했어요. 차를 좋아하는 애호가가 그의 집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상상을 하며 여러 세부적인 요소를 매만졌죠. 1층 차향의 방에 들어섰을 때 차를 덖는 구수한 냄새가 온 공간에 풍기게 해 방문객에게 환대의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입구에 배치된 우체통과 거울도 같은 맥락에서 둔 소품입니다. 2층은 정성스럽게 만든 다식을 접하는 곳으로, 음식이 나가는 모습에 특히 신경 썼어요. 스태프의 정갈한 유니폼, 북촌 분위기에 맞게 특별히 개발한 디저트, 식기와 모듈을 이루도록 특별 제작된 트레이가 그것이죠. 3층 바설록은 숨은 보석 같은 공간으로 좀 더 신비롭고 클래식한 분위기로 연출했어요. 녹색 벨벳 소재 소파를 비치해 빈티지한 무드를 더했고, 원래 이 집에 있던 문과 조명, 자개장을 재사용한 것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3층 바설록 ©LESSNESS STUDIO

 

3층 바설록의 분위기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최현식 3층은 계단을 오르는 수고가 더해지는 만큼 더욱 특별한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차를 즐기는 색다른 방식을 제안하는 티 칵테일이 제격이었죠. 티 칵테일은 북촌점을 열기 전부터 내부적으로 계획이 있었는데,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바설록을 구성하는 데 있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차를 내리고 칵테일을 제조하는 바텐더의 모습이었어요. 이에 바텐더가 북촌 특유의 고즈넉한 풍경을 등지도록 바를 창가 쪽으로 배치했죠. 고객 반응이 좋아 다음 오픈한 한남점에서 한층 진화한 티 칵테일 메뉴를 선보일 수 있었고요.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 ©Minhwa Maeng

 

지난 9월 한남점을 오픈했죠. 기존 티하우스에 비해 좀 더 어둡고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북촌점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더군요.

유정주 페이스 갤러리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습니다. 갤러리 내에 고객이 머무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데 인근에 이미 유명한 카페가 많아 티하우스로 차별화를 꾀하고자 한 것이죠. 최현식ㅤ공간 구성은 저희와 오래 협력해온 매스스터디스와 함께 했습니다. 블랙 톤의 건물 디자인을 티하우스 내부까지 일관되게 적용했고, 현무암을 상징하는 거친 벽 마감으로 오설록의 본거지인 제주를 은유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 ©Minhwa Maeng

 

메뉴 구성과 프로그램에 있어 북촌점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유정주 한남점에서는 적극적으로 티 칵테일을 선보이고자 했습니다. 차와 증류수를 배합한 티 스피리츠tea spirits도 그러한 시도의 일환이죠. 차의 확장 가능성을 꾀하는 동시에 매출 상승을 기대한 것입니다. 객단가를 높이고 늦은 시간까지 고객이 유입될 여지가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다만 기존의 침출차 메뉴가 소외되지 않도록 신경 썼어요. 티와 티 칵테일의 균형을 목표로 삼아 칵테일을 주문하면 그것에 쓰인 차를 제공하고, 디자인 스튜디오 MYKC와 함께 메뉴판과 티 카드 등을 위한 그래픽 디자인에 특히 주력한 것이죠. 앞으로도 뒤로도 읽을 수 있는 듀얼dual 메뉴판을 제작하되 구분을 위해 티 칵테일 메뉴는 높은 채도의 그래픽 이미지로, 티 메뉴는 그보다는 차분한 톤으로 표현했습니다. 고객 경험에 있어 공간과 인테리어, 소품만큼 중요한 것이 그래픽이에요. 따라서 매장을 열 때마다 서체와 컬러 스킴 등을 충분히 고민합니다.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 ©Minhwa Maeng

 

기존의 F&B 브랜드부터 접점이 없는 패션 기업, 개개인이 저마다 특색을 담은 식음 공간을 선보이고 있죠. 오늘날 식음 공간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이며, 앞으로 F&B 트렌드는 어떻게 변할 거라고 보나요?

유정주 의식주 중 일상을 좀 더 가치 있고 특별하게 보낼 가장 손쉬운 방법은 결국 식음료 경험이 아닐까요. 음식을 먹을 때 재료의 신선도나 영양 가치를 따지는 것처럼, 매일매일 나만의 럭셔리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결국 좋은 공간에 대한 수요로 연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유정 브랜드의 관점에서 F&B는 접근성이 높아 더 많은 고객을 쉽게 유입시킬 수 있다는 점도 하나의 요인이라 생각됩니다. 좋은 공간 안에서 음식을 즐기며 함께 온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가치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죠. 다만 앞으로는 진정성이 더 중요히 여겨질 것 같아요. 트렌디하고 개성 넘치는 공간은 이미 너무 많기 때문이죠. 단순히 예쁘고 멋진 곳보다는 기획 의도와 철학이 진정성 있게 드러나는 곳이 결국 소비자에게 더 의미있게 다가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유정주 북촌점이나 한남점처럼 특화된 매장을 더 마련할 계획입니다. 제주 티뮤지엄은 현재 리뉴얼 중으로, 공사를 마치고 내년 상반기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일 예정이고요. 동시에 일본, 중국과는 차별화된 한국만의 차 문화를 토대로 글로벌 진출도 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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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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