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긍정의 감도를 높이다

[Uncommon Living] ⑩ 사용자 시나리오를 설계하는 '비밥 디자인 스튜디오'
에디터. 윤정훈  사진 & 자료. 비밥 디자인 스튜디오 BEBOP

 

대다수의 삶을 담는 주거 양식은 여전히 획일적이고 보편적(common)이지만 들여다보면 집이라는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것은 바로 개개인의 삶, 삶을 이루는 시간과 취향의 켜다. 취향에 기반한 공간은 개별적이고 고유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기성과 ‘다른(uncommon)’ 선택을 하는 경향에 주목하고자 한다. 장인 정신이 깃든 리빙 브랜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맞춤형 브랜드,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유일무이한 제품을 구현하는 디자이너, 확고한 취향으로 특색 있는 리빙 제품을 선별해 소개하는 편집숍까지. <브리크brique> vol.9 기획 특집은 범람하는 리빙 트렌드 속에서 마침내 중심이 될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Art and Craft
① 일상을 침투하는 비일상의 가구 – 최동욱
② 텅 빈 장식품의 초대 – 쉘위댄스
③ 한 명의 랩, 하나의 콘크리트 – 랩크리트
④ 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나무 조각 – 안문수

Craftsmanship
⑤ 패브릭 아틀리에의 한 끗 – 일상직물
⑥ 낡은 기술이 완성한 디자인 조명 – 아고
⑦ 생활 가구를 잘 만드는 사람들 – 스탠다드에이

Customizing
⑧ 사용자가 곧 크리에이터 – 몬스트럭쳐
⑨ 주방에 컬러를 입히다 – 스튜디오 비엘티
⑩ 생활 속 긍정의 감도를 높이다 – 비밥 디자인 스튜디오
⑪ 벽지를 만나는 새로운 방법 – 스페이스 테일러

 

기술 발전, 라이프스타일 변화, 취향 세분화에 따라 그저 기능에만 충실하던 생활용품이 익숙한 듯 새로운 모습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제품 디자이너가 있다. 기업이 달라지는 삶의 양태에 따라 새로운 필요나 욕구를 충족할 제품을 의뢰하면,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저만의 해석을 더해 우리가 익히 아는 사물을 기존에 없던 신박한 모습으로 탈바꿈시킨다. 누가 알았겠는가? 한 줄기 빛이 커피 한 잔을 대체할 줄은, 차량용 비상 탈출 망치가 오브제가 될 줄은.

 

©BEBOP

 

정수헌, 박리치, 강병욱 세 디렉터가 이끄는 비밥 디자인 스튜디오(이하 비밥)는 국내외 다양한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제품 디자인 스튜디오다. 이어폰, 스피커, VR 기기와 같은 소형 전자 기기에서 시작해 믹서기, 공기청정기, 전자
디퓨저, 가구, 조명 등으로 영역을 꾸준히 넓혀왔다. ‘비밥bebop’은 본래 1940년대 중반 미국, 상업적인 스윙재즈에 대항해 출연한 보다 자유분방한 재즈 연주 스타일을 일컫는다. 세 디렉터가 모인 술자리에서 우연히 나온 이 단어를 스튜디오 이름으로 정한 이유는 그들의 디자인 또한 비밥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작업 과정에서 즉흥성과 유연함을 추구해서다.

비밥의 디자인에는 특유의 긍정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 이 긍정의 기운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제품에 담긴 숨은 디자인 의도를 알 때 찾아오는 즐거운 ‘아하 모먼트’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프로젝트를 대하는 열린 태도다. 그들은 오늘의 삶과 공간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품 고유의 기능과 쓰임새를 위트 있게 재해석한다. 이는 임의로 양산한 기성 제품과 비밥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거친 제품이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BEBOP

 

비밥의 프로젝트 중 눈에 띄는 것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의 의뢰로 만든 제품들이다. 외형은 물론 양산을 위한 설계까지 제품 제작 전반에 디자이너가 관여해 디자인 의도가 더욱 분명한, 한층 흥미로운 메시지와 형태를 품은 사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이스케이프랩’과 함께 만든 ‘오브제머Objemer’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비상 탈출 망치’라는 의뢰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기존의 차량용 비상 탈출 망치는 대부분 붉고 투박한 형태인데, 이로 인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놓여 위급 상황 발생 시 정작 사용이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비밥은 정교하게 조각된 오브제 같은 망치를 디자인했다. 차량 내부와 유사한 분위기의 재료로 만들어, 대시보드에 올려 두어도 어색하지 않고 손쉬운 사용이 가능하게끔 한 것이다. 여기에 망치를 보관하는 케이스를 제작해 자동차 인테리어와의 담담한 조화를 꾀했다. 수차례의 프로토타입 제작을 거쳐 효과적으로 유리를 깨뜨리는 해머 헤드를 만드는 데도 공을 들였다.

 

©BEBOP
©BEBOP
©BEBOP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하나의 이야기로 발전시켜 제품 형태에 녹여낸다. 작은 에스프레소 잔의 몸통을 연상케 하는 조명 ‘올리Olly’는 제품의 특별한 기능을 재치 있는 디자인으로 전달한다. 제품을 의뢰한 스타트업 ‘루플Luple’은 비밥과의 첫 만남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듯 각성 효과를 주는 LED가 탑재된 조명’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는데, 여기서 영감을 받아 커피잔을 닮은 조명을 디자인했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제품을 사용하는 방식에까지 커피라는 콘셉트를 적용했다. 잔을 기울이면 그 안의 내용물이 새어 나오듯, 똑바로 서 있는 조명을 비스듬히 기울이면 불이 켜진다. 컵이 액체로 가득 찰 때 생기는 표면 장력을 표현하기 위해 렌즈는 살짝 볼록하게 솟은 모양이 됐다.

 

©BEBOP

 

비밥의 디자인 프로세스에는 제품이 놓일 자리를 면밀히 살피는 일도 수반된다. 창틀에 설치되어 바깥 공기를 안으로 들이는 동시에 정화하는 ‘벤투스Ventus 공기청정기’의 경우가 그랬다. 실내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무엇보다 창문에 설치된 모습이 이질적이지 않아야 했다. 기존의 창문형 에어컨의 조형이 필요 이상으로 부각되는 것을 반대 사례로 삼아 최대한 납작한 형태의 단색 공기청정기를 디자인한 결과, 원래부터 창과 제품이 하나인 것처럼 보이게 됐다. 또한 공기청정기가 사용자의 눈높이 언저리에 위치할 것을 예상, 팬fan이 회전하는 등의 기계적 퍼포먼스를 부러 드러내지 않고 매스감 있는 외관을 연출했다. ‘제타 뱅크’와 진행한 ‘인포메이션 로봇’도 이와 마찬가지로 로봇이 돌아다닐 일상의 장소를 충분히 고려한 프로젝트다.

 

“단지 색을 바꾸거나 옵션을 더하는 식으로는 다양하고 뚜렷한 개성을 가진 사용자들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이에 제품 간 조합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가 연출될 수 있는 더 넓은 범위의 커스터마이징 디자인 방법론을 찾아가는 중이다.” – 정수헌·박리치·강병욱, 비밥 디자인 스튜디오 공동 대표

 

ⒸBRIQUE Magazine

 

비밥의 영역은 단순히 제품의 조형이나 사용성에 한정되지 않고 사용자 시나리오 설계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국내 모 기업과 MZ세대를 겨냥해 단일 제품이 아닌 집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동을 아우르는 리빙 제품군을 기획하고 있는 것. 기존엔 하나의 제품을 어떻게 커스터마이징할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제품 간 조합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가 연출되는 좀 더 넓은 범위의 커스터마이징을 구상 중이다. 단지 색을 바꾸거나 옵션을 더하는 식으로는 다양하고 뚜렷한 개성을 가진 사용자들을 만족시키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각 제품이 역할에 따라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도 여러 형태로 파생되는 디자인 방법론을 찾아나가고 있다. 다채롭게 변모할 다양한 제품들 덕에 일상의 순간순간이 더욱 흥미로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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